* 진주만 상공의 공중전 *

* 이 글은 게시판에도 소개드린 적이 있는 Michael Slackman 저 Target: Pearl Harbor 중 휠러 기지와 할레이와 기지에서 있었던 미육군 항공대의 긴급출격 기록이 담긴 제12장 Against the Odds 부분을 번역한 것입니다. 웰치와 타일러 두 명의 P-40 조종사가 출격했던 사실은 영화들에도 나와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밖의 출격 얘기는 홈지기를 포함 적지않은 분들에게 생소한 내용인 것 같아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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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캄(Hickam) 기지에서 폭격기들이 파괴되어 나구모(Nagumo)의 항모가 피해 없이 탈출할 가능성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일본 항공기들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국 요격기들의 저항을 예방하는 것에 달려있었다. 오아후(Oahu) 섬 중앙에 있는 휠러(Wheeler) 기지에 사령부와 주력이 주둔한 제14 요격비행단이 하와이 상공을 통제하는 전투기 지휘 책임을 맡고 있었다. 하워드 데이빗슨(Howard Davidson) 준장이 지휘하는 이 비행단에는 상대적으로 신형인 99대의 P-40, 39대의 구형 P-36, 그리고 각종 구형기들이 있었다. 이 전투기들은 무장을 하지 않았고 통상적인 경계 상태에 있었는데, 이는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려면 4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다. 데이빗슨 준장 휘하인 제44과 제47 2개 대대는 사격 훈련을 위해 할레이와(Haleiwa) 및 벨로우스(Bellows) 기지에 임시로 전개했다.


당시 하와이 기지 배치도
(
http://www.ibiblio.org/hyperwar/AAF/7Dec41/)

첫 공격기들은 동북동 방향 5,000 ft 고도에서 휠러 기지로 다가왔다. (길을 잃은 일부 일본기들은 콜레콜레(Kolekole) 계곡을 통해서 서쪽에서 접근했을 수도 있다.) V자 대형을 이룬 일본기들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선회하면서 격납고들로 강하했다. 그곳에는 요격기들이 주기해 있었고 폭격, 기관포와 기총 사격의 맹공격에 무방비였다. 실제로는 혼란이 엄청나서 일본의 비행 군기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휠러 기지의 공식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 번째 강하 단계 이후 적기들은 사실상 모든 순서와 대형을 상실했다. 공격은 기총으로 계속되었다. 기총 공격 단계에서는 적기들이 공중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방향에서 공격을 가해왔다.

데이빗슨 장군은 일본기가 휠러 기지에 쇳소리를 내면서 강하할 때 숙소에서 면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화를 냈다. 그는 엔터프라이즈(Enterprise)호에서 복귀하는 조종사들이 자기들 기지로 가는 길에 있는 육군 항공 기지에서 저공비행으로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데이빗슨 중장은 킴멜(kimmel) 제독에게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폐를 끼치지 말도록 조치하라는 서신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첫 폭발음과 그 뒤를 따르는 기총소사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못된 장난 이상의 일이 벌어져 일요일 아침이 망가졌음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사령부를 파괴에서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기총소사를 하는 일본 전투기들이 지상에 떨군 반짝이는 20mm짜리 구리 탄피를 주우러 집 밖으로 달려나간 10살 먹은 쌍둥이 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는 있었다.


일본군 1파(좌), 2파(우) 공격 개황
(
http://www.navpublishing.com/phtour1.htm)

휠러 기지의 말단 계급에서는, 에드먼드 러셀(Edmund Russell) 일병이 식당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전날 Dive Bomber라는 영화를 보면서 비교적 평온하게 저녁을 보냈다. 러셀 일병은 일요일 메뉴를 준비하면서 냉동고에서 고기를 얼마나 꺼내야 하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아침 일을 시작하는 동안 첫 폭격기가 기지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데이빗슨 장군처럼 처음에는 해군이나 해병대 조종사들이 일요일 아침에 육군에 폐를 끼치면서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첫 폭발음을 들었을 때 러셀 일병은 비행기 중 한 대가 추락했다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의 폭발이 들리자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러셀 일병은 가장 가까운 엄폐물인 와히아와(Wahiawa) 학교 근처의 유칼립투스 가로수로 달려갔다. 그는 비행기들이 기총 소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날개의 일장기를 보고 전날 밤의 영화가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일본기들은 격납고들에 공격을 집중했지만 다른 표적들도 폭격했다. PX 창고와 다른 창고들도 폭탄을 맞았다. 지상요원들이 잠자고 있던 텐트와 제6 요격 대대 막사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폭발로 인해 비행사들이 막사 2층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이들 중 대부분은 심한 골절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휠러 기지의 방재 계획은 훌륭하지 못했다. 기지 대공방어는 기지 소방대에서 차출한 최소 인원에게 맡겨졌고 이들은 당시 50구경 기관총 운용 훈련을 6시간 받은 상태였다. 분명히 누구도 대공 방어가 필요한 비상 상황 중에는 당연히 소방대에도 큰 부담이 있으리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기관총을 소방서 지붕에 설치했다. 소방대원들은 자신들이 그 무기를 실제로 사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관총을 맡는 것보다는 화재와 싸우는 것이 더 값어치 있는 일이 되리라고 판단했다. 기관총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본 영창의 교도관과 수감병들이 그 무기를 잡았다.


50구경 기관총 수냉식

휠러 기지의 다른 장병들은 각자의 형편에서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상황은 참으로 무자비했다. 불타는 비행기들에서 옆 비행기로 불이 옮겨 붙고 있었다. 72 요격 대대 소속의 모든 P-40들이 파괴되었고 근처의 격납고에 보관한 탄약들이 폭발하고 있어 그 부대원들이 하는 구조 작업이 특히 위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2 요격대대의 찰스 페이(Charles Fay) 하사는 일본기의 기총소사로 두 곳에 부상을 당했으면서도 불타는 격납고에서 항공기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도널드 플랜트(Donald Plant) 이병은 부상자를 이송하던 중 기총소사에 의해 전사했으며, 다른 장병들은 공격기들에게 소화기를 사격하는 무의미한 저항을 시도했다.

14 요격비행단 작전장교 케니스 버그퀴스트(Kenneth Bergquist) 소령은 휠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을 알았다. 그는 데이빗슨 장군에게 전체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는 참모 차량과 운전병을 불러서 포트 쉐프터(Forp Shafter)에 있는 정보본부로 갔다. 휠러 기지를 간신히 빠져나왔을 때 진주만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일본기 대열을 만났다. 이들이 그의 참모 차량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운전병에게 멈춰서 엄폐하라고 지시했다. 운전병이 길 옆의 덤불숲으로 차를 모는 동안 버그퀴스트 소령은 뒷바퀴 뒤에 웅크렸다. 하지만 운전병이 서두르다가 브레이크를 확실히 잡아놓지 못했고 소령은 진주만 쪽으로 느리게 굴러 내려가는 차를 따라서 웅크린 채로 걸어야 했다. 비행기들에서 총탄이 빗발치고 몇 발은 차에 맞았지만 버그퀴스트 소령은 구르는 차의 펜더를 붙잡은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만을 당했다. 공격이 끝났을 때 그는 운전병을 찾을 수 없었고 수풀 속에 숨은 다른 병사들 속에 섞인 것 같았다. 그래서 버그퀴스트 소령은 포트 쉐프터로 직접 차를 몰았다. 후에 그는 운전병이 다리에 부상을 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보본부로 가는 길이 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상병을 부주의하게 남겨두고 떠난 것을 그 후 여러 해 동안 후회했다.

휠러 기지 옆에 흩어져 있는 보병 주둔지인 스코필드(Schofield) 병영도 공격을 받았다. 다만 피해와 사상자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폭탄 한 발은 제25 사단장 맥스웰 머레이(Maxwell Murray) 소장의 관사 앞마당에 떨어졌다. 머레이 소장이 공격에 대해 처음으로 취한 대응 행동은 사단 포병대에 탄약을 불출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막사 지붕에 기관총을 거치하라고 지시했지만 병사들이 이미 30구경 기관총을 막사 건물 지붕에 설치하고 응사하고 있었다. 34 공병연대원인 엘저 코츠(Elzer Coates)는 동료들에게 휠러와 스코필드가 실제로 적의 공격을 받고 있음을 납득시키려 노력했다. 실제로 제34연대의 몇몇 대원들은 훈련을 구경하러 막사 지붕으로 올라갔다. 마침내 이들은 쏟아지는 흙더미에 의해 아래 서있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상황을 깨달았다. 병사들은 기관총을 가지러 무기고로 뛰어들어갔지만 벨트에 장착된 탄약이 없었기 때문에 쓸모가 없었다. 이들이 탄약을 벨트에 장착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한 대의 일본기가 그들 머리 위를 지나서 기지에 식수를 공급하는 2개의 큰 물탱크를 폭격하고 기총소사했다. 폭탄은 두 개의 탱크 사이에 떨어져 폭발해 피해는 없었지만 코츠는 물탱크의 총탄 구멍에서 물이 뿜어져 나우던 것을 기억한다.


30구경 기관총 수냉식

당시 제27 보병연대 서무계원이던 작가 제임스 존스(James Jones)는 소설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에서 군생활과 12 7일의 공격에 대한 기억을 그렸다. 그날의 그의 실제 경험은 더 평범했다.

스코필드 병영의 보병 막사에서는 일어난 병사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일요일 아침에 일요 특식인 계란이나 팬케이크와 시럽 이외에 우유 반 병이 추가로 나왔다. 우리 대부분은 3km 밖에 있는 휠러 기지 쪽에서 들리기 시작하는 폭발소리보다 우유를 받아 쥐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쟤들 뭐 터뜨리나? 어느 고참이 팬케이크를 입에 물고 말했다. 낮게 나는 전투기가 다가오며 바로 머리 위에서 기총을 연사하자 우리는 여전히 우유를 도둑맞지 않으려 손에 꼭 쥔 채로 밖으로 뛰어나 보고는 곧 진짜 역사의 순간 속에 있다는 경외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스코필드 지역의 방공은 제98 해안포병연대의 책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기들을 격추한 것은 연대의 3인치(76.2mm) 대공포가 아니라 병사들의 개인화기였다. 스티븐 솔츠만(Stephen Saltzman) 중위와 로웰 클랫(Lowell Klatt) 병장은 연대와의 연락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들은 굉음을 내며 콜레콜레 계곡을 지나는 항공기를 보자 원대로 복귀해서 휠러 비행장 동쪽 끝에 있는 지정된 위치로 갔다. 8:30분 쯤에 솔츠만 중위는 급강하에서 회복하려는 2대의 발(Val) 폭격기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옆에 있는 초병에게서 브라우닝 자동소총(BAR)을 빼앗아서 무릎에 놓고 이들이 미군기가 아님을 확인한 후 사격을 시작했다. 클랫 병장도 그를 따라했다. 두 대의 비행기는 급강하를 계속했고 선두기가 이 두 명에게 기총소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항공기는 건물 뒤로 사라졌고 클랫 병장과 솔츠만 중위는 큰 폭발음을 들었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이들은 한 대의 비행기가 격추된 것을 보았다. 후에 이들이 날개, 엔진, 프로펠러를 미국제라고 오인했다는 잘못된 소문도 돌았다.


3인치 고사포와 브라우닝 자동소총(BAR)

통상 휠러 기지에 주둔하는 요격대대인 제47 대대는 훈련일정 덕분에 심각한 피해에서 벗어났다. 이 부대는 휠러 기지 북쪽 15km 가량인 오아후 북부 해안에 있는 할레이와 기지에 임시로 전개해 있었다. 할레이와는 다른 기지들과는 달리 집중 공격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곳에 상설 주둔하는 부대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군은 그곳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격기들이 8:30경에 한차례 기총소사를 가했지만 한 대의 P-36만이 피해를 입었고 소총과 기관총 사격으로 공격을 격퇴했다. 일본군은 다른 곳의 표적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할레이와의 피해가 가벼워서 제47 대대의 조종사들이 이곳에서 일본기에 대응해서 약간의 출격을 할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조지 웰치(George Welch)와 케니스 타일러(Kenneth Taylor) 소위는 휠러 기지에 있었다. 이들은 할레이와로 다급히 전화를 걸어 지상요원들에게 비행기의 전투 준비를 갖추라고 알렸다. 그리고 15km 거리에 있는 할레이와로 차를 타고 갔을 때 지상요원들이 대대 요격기들의 출격 준비를 갖추기 위해 서둘러 작업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타일러와 웰치는 8:20경에 P-40을 타고 이륙했다. 50구경 기관총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날개에 탑재된 4정씩의 30구경 기관총이 유일한 무장이었다.


P-40B(위, 아래)와 P-36(가운데)

두 장교는 편대를 이루어 할레이와에서 남쪽으로 향하며 적기를 찾았다. 이들은 휠러 기지를 지날 때 기지의 잔해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았지만 공격 1파는 이미 그 근처를 떠났다. 지상 관제소는 타일러와 웰치에게 바버스 곶(Barbers Point) 지역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1,000피트의 고도에서 에와(Ewa) 기지를 공격하고 있는 약 10여대의 일본기 집단을 만났다. 이들은 적기들을 향해 강하하며 사격을 시작했다. 웰치의 기총 중 하나가 고장났지만 각기 한 대씩의 발(Val)을 격추했다. 타일러는 그 후 바다 쪽으로 탈출하려는 다른 한 대의 급강하 폭격기를 격추했다. 웰치는 기총이 고장난 것에 더해서 좌석 바로 뒤에 소이탄을 맞았다. 비행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그는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구름 속으로 상승했다. 연기가 가라앉자 그는 전투 중인 타일러와 합류했다. 그는 다른 한 대의 비행기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바다 위에서 격추했다. 타일러는 적어도 다른 두 대의 적기에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주: 이 글에서는 미 전투기들에게 격추된 일본 폭격기들이 모두 발 급강하 폭격기라고 되어 있으나 다른 자료에서는 B5N 케이트(Kate) 폭격기들도 있었다고도 함.


D3A Val 폭격기

에와에서의 전투 후 웰치와 타일러는 연료와 탄약이 필요해졌다. 이들은 휠러에 내려 재보급을 받고 9:00에 다시 이륙했다. 웰치는 무사히 이륙했지만 타일러가 막 떠나려고 할 때 다른 한 그룹의 발 폭격기들이 휠러에 도달했다. 타일러는 정면에서 기총소사를 하면서 다가오는 적기를 마주한 채 이륙하여 그가 마지막 적기라고 생각한 적기의 꼬리에 매우 가깝게 기동했다. 하지만 그가 표적에 사격을 시작했을 때 다른 발 폭격기가 뒤에서 그에게 사격을 가했다. 타일러는 왼팔에 관통상과 다리에 파편상을 입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승했다. 그는 웰치가 도우러 와서 그 공격기를 격추하는 덕분에 살아났다. 그 발 폭격기는 후방 기총으로 웰치의 엔진, 프로펠러, 카울링을 명중시킨 후 휠러와 할레이와의 중간쯤에 추락했다. 이 두 미군기가 퇴각하는 일본기를 추격하면서 웰치가 한 대의 적기를 격추하여 그 날 4대의 격추를 기록했다. 타일러는 탄약을 모두 소모하고 부상을 입어 전투력을 상실한 채 휠러로 돌아왔다.

일본군이 경시한 할레이와의 47대대에서 출격한 것은 웰치와 타일러만이 아니었다. 로버트 로저스(Robert Rogers) 중위와 해리 브라운(Harry Brown) 소위, 존 데인즈(John Dains) 소위도 차편으로 휠러에서 할레이와로 갔다. 이들은 노상에서 기총소사를 피하면서 기지에 도착한 후 데인즈는 P-40, 다른 두 명은 P-36을 타고 약 8:50에 각각 이륙했다. P-36들은 50구경 기총을 쓸 수 없는 상태라서 각기 1정씩의 30구경 기총만으로 무장했다. 로저스와 브라운은 할레이와 부근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상승한 후 서로를 식별한 다음 북쪽을 향하는, 아마도 항모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일본기 소그룹을 발견했다. 브라운은 공격을 가해 명중탄을 기록하고 일본기가 스로틀을 죽이고 플랩을 내리며 강하하자 표적을 지나쳤다. 그 후 로저스와 브라운은 오아후의 북서쪽 끝단에 있는 카에나 곶(Kaena Point)으로 갔다. 데인즈는 최소한 한 대의 일본기와 교전하고 손상을 입은 채 할레이와로 귀환했다가 다시 출격했다. 한편 존 웹스터(John Webster) 중위가 P-36을 타고 이 작은 기지에서 이륙했다.

휠러에서는 루이스 샌더스(Lewis Sanders) 중위가 제 46 요격대대의 비행기와 조종사들 일부를 모았다. 샌더스는 오스니얼 노리스(Othniel Norris), 존 태커(John Thacker), 필립 라스무센(Philip Rasmusen) 소위와 함께 네 대의 P-36을 마련해서 8:50에 이륙 준비를 마쳤다. 노리스는 엔진을 시동한 채로 새 낙하산을 가지러 비행기에서 내렸고 제 45 요격대대의 신참인 고든 스털링(Gordon Sterling) 소위가 기회를 잡았다. 그는 이 전투기에 올라타서 활주로로 택싱하고 있는 나머지 비행기들과 합류했다. 샌더스는 관제소에서 편대를 이끌고 카네오헤(Kaneohe)와 벨로우스(Bellow)로 가서 일본기들에 대항해서 그 기지에 공중 엄호를 제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46 대대의 다른 조종사인 프레드 쉬플렛(Fred Shifflet) 소위는 다른 대대의 살아남은 P-40을 앗아 타고 휠러에서 이륙했다가 벌집이 된 채 귀환했다. 샌더스의 편대가 이륙하고 약 30분 지나서 말콤 무어(Malcom Moore) 중위가 다른 P-36을 타고 휠러에서 이륙했다.

로저스와 브라운은 카에나 곶에서 초계를 하면서 웹스터와 무어를 만났다. (무어는 휠러에서 혼자 왔다.) 일본기들이 카에나 곶을 항모로 귀환하기 위한 합류지점으로 정했기 때문에 이 네 대는 수많은 표적들을 만났다. 로저스와 웹스터는 편대를 이루어 두 대의 일본기를 공격했지만 로저스의 비행기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웹스터는 다리에 부상을 당했다. 이 두 명은 할레이와로 돌아가야 했지만 로저스가 격추되기 직전에 브라운이 그를 구했다. 2대의 비행기가 로저스를 추격했고 그는 급강하로 피했다. 로저스는 이들 중 한 대를 속여서 그에게서 이탈하게끔 했고 다른 한 대는 50피트도 안되는 거리에서 한 차례의 연사로 격추했다. 무어는 다른 비행기를 공격했지만 그 적기는 구름 속으로 도망쳤다. 한편 브라운은 혼자서 10여대 이상의 일본기를 만났지만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대형을 분산시킨 후 이탈했다. 그 후 그는 무어에게서 벗어난 적기를 만났다. 브라운이 이를 공격하여 이 함재기는 연기를 끌면서 바다 쪽을 향했고 브라운은 추격을 포기했다. 무어, 웹스터, 브라운, 로저스는 모두 할레이와에 안전하게 내렸다.

다른 육군 조종사들이 에와-휠러-카에나 곶 축선에서 싸우는 동안 샌더스, 스털링, 라스무센, 태커는 카네오헤와 벨로우스를 향해 남동쪽으로 비행했다. 그는 공격을 위해 근접 대형을 이루라고 명령한 후 스털링이 노리스의 비행기에 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별 수 없이 이 신참을 자기 오른쪽 윙맨으로 놓고 카네오헤 만 상공에 있는 9대의 공격기들을 향해 편대 선두에서 강하했다. 샌더스는 적기의 리더에 사격을 했고, 표적에서 연기가 솟아나는 것을 보고 360도 선회해서 후방의 안전을 확인했다. 그가 선회를 마쳤을 때 스털링이 한 대의 적기를 격추하는 것을 보았다. 스털링이 승리를 자축할 시간도 없이 즉시 한 대의 제로기가 그의 뒤에 붙었다. 낡은 P-36으로는 이를 피할 수 없었고 그는 격추되었다.


A6M 제로 전투기

한편 라스무센도 문제가 생겼다. 그의 50구경 기관총이 고장나서 방아쇠를 당기자 저절로 모두 발사되어버렸다. 어쨌든 그는 한 대의 발 폭격기를 격추했다. 그는 승리를 거둔 직후 스털링과 그가 격추한 적기가 모두 바다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라스무센은 샌더스가 스털링을 격추한 일본기를 후방에서 공격하여 즉시 복수를 하는 것을 보았다. 라스무센은 이를 얼마 지켜보지 못했다. 두 대의 제로기가 측면 공격을 해와서 그의 비행기 전체에 피해를 입혔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죽은 줄 알았다. 머리 윗부분에 맞았다고 생각했다. 머리 위에서 어떤 덩어리를 느낄 수 있었고 분명히 내 뇌라고 생각했지만,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1~2분간 애쓴 후에 헬멧 꼭대기로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플라스틱 유리 더미만이 있었고 피나 상처는 없었다.

스털링을 격추한 비행기를 떨군 후 샌더스는 그 지역을 돌다가 다른 제로기와 정면으로 만났다. 서로 접근하면서 두 조종사는 상대의 꼬리에서 사격위치를 잡기 위해 상승하면서 기동을 시작했다. 샌더스의 낡은 P-36은 더 신형이고 강력한 일본 전투기에 상대가 안되었으므로 그는 또 다른 희생자가 되기 전에 교전을 이탈했다. 존 태커는 첫 공격에서 기총이 고장났지만 일본 기에게 공격하는 시늉을 계속했다. 그는 20mm 기관포에 맞은 후에 휠러로 향했지만 일본기로 오인되어 지상 사격을 받았다. 태커는 하는 수 없이 상승해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곧 라스무센이 가까스로 비행기를 조종하면서 샌더스의 엄호를 받으며 도착했다. 라스무센은 당장이라도 추락할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휠러의 방어병들이 쏘아대는 대공사격을 받으며 착륙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샌더스는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착륙을 했고 곧 태커가 뒤따랐다.

12 7일에 2회의 출격이 더 있었다. 데인즈와 웰치는 9:30에 각기 그 날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할레이와를 떠났다. 이 때 데인즈는 손상된 P-36 P-40으로 갈아탔고 웰치는 계속 P-40을 탔다. 그 때는 일본기들이 항모로 돌아가고 있었고 두 조종사 모두 표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은 휠러로 돌아가는 중에 마구잡이 대공포 사수들에게 사격을 받았다. 웰치는 안전하게 내렸으나, 데인즈는 골프 코스 근처에 추락해 사망했다. 존 데인즈와 고든 스털링이 휠러와 할레이와에서 출격한 조종사들 중 유일한 전사자였다. 이들은 도합 10대의 확인격추와 몇 대의 추정격추를 기록했다.

* 주: 일본군 측 기록에 의하면 공중전에서 격추된 일본기는 11대라고 함.

12 7일에 격추된 일본기들 중 반 이상을 육군이 격추했다. 대공 방어 책임을 맡은 육군 해안포대들은 거의 제때 공격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이 부대들의 전투위치는 대부분 주둔지에서 몇 km 거리에 있었고 때로는 탄약도 먼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전형적인 예가 현역으로 소집되어 바버스 곶 부근의 캠프 말라콜레(Camp Malakole)에 배치된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부대인 제251 해안포병연대였다.

E포대의 윌리스 라이먼(Willis Lyman) 중위는 일요일 아침에 있을 캠프 말라콜레의 새 예배당 헌당식을 준비하고 있다가 같은 연대 장교인 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휠러-스코필드 지역에서 전화한 부인은 많은 소음이 들리고 크고 검은 것들이 주변에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을 했다. 라이먼은 아침의 연습일 뿐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는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나가서 진주만 쪽을 보았다. 그는 공중에서 폭발 섬광들을 보았고 동시에 일단의 비행기들이 자신의 기지 쪽으로 오는 것을 발견했다. 라이먼은 이를 더 잘보기 위해 쌍안경을 잡았다. 비행기에 그려진 일장기를 보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안 그는 포대에 있는 2정의 30구경 기관총(대공용이 아니라 지상 방어용으로 배치된)에게 교전을 지시했다.

기지의 경비대 부사관인 준 디킨스(June Dickens)는 두 대의 일본기가 폭음을 내면서 기지의 주도로를 기총소사할 때 공격을 처음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무장 경비대원들과 함께 대응했다. 사보타주 경계를 위해 BAR로 무장하고 화재 감시탑에 배치된 두 명의 대원이 가장 효과적인 사격을 제공했다. 두 대의 사보타주 경비용 트럭에 탑재된 기관총들도 도움이 되었다. 대공 사격장 부근의 해안에 있는 한 해병 부대는 갑자기 실제 상황에 처해서 무기를 잡았다. 적어도 한 대의 비행기가 말라콜레 해안의 바다에 추락했다.

그 지역의 다른 일본기들은 우연히 전투에 빠져든 엔터프라이즈(Enterprize) 소속기들의 아침 비행을 만났다. 그들 중 일부는 공격기들과 교전해서 서로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냈다. D 포대의 레스터 밀즈(Lester Milz) 대위는 한 대의 발 폭격기와 SBD 폭격기가 공중전 도중 충돌해서 두 명의 일본기 승무원과 엔터프라이즈 소속기 조종사인 보그트 주니어(J. H. L. Vogt Jr.) 소위와 3등 무전사인 피어스 시드니(Pierce Sidney)가 전사했다고 보고했다.


SBD 폭격기

B 포대가 75mm 포를 조립하여 웨스트로크(West Loch) 해군 탄약창의 전투위치로 옮기는 데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유진 캠프(Eugene Camp) 병장의 트럭은 뒷길을 따라 포대의 지정된 위치로 가는 동안 계속 기총 소사를 받았다. 그는 이동 중인 도로에서 헌병이 모든 주요 교차로에 배치된 것 같아 놀랐다. B 포대는 일부 다른 방공 부대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B 포대의 배치 지점에는 탄약창의 탄약 벙커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75mm 탄약이 이미 포상에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글라라(Oglala) 호의 생존자 20여 명으로 증원된 포대원들이 전투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을 때는 더 이상 표적이 없었다.

말라콜레, 히캄, 휠러에 폭탄이 떨어지기 8분 전에 카네오헤 해군항공기지가 그 날의 첫 공격을 받았다. 카네오헤는 PBY 부대인 제1 정찰비행단의 모기지였다. 공격 하루 전인 토요일 아침 검열에서 기지의 대원들은 사보타주의 위험을 경고받았다. 부분적으로는 사보타주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제1 정찰 비행단의 항공기 대부분을 수상기 램프에 모아놓았고 네 대는 약 1km 떨어진 만에 계류하고 네 대는 1번 격납고에 주기했다. 카네오헤에는 36대의 비행기가 있었는데 거의 전부가 PBY였다.


PBY 수상정찰기

기지 사령관인 해롤드 마틴(Harold Martin) 중령은 7:45 직후에 커피를 즐기고 있다가 10여 대의 전투기들이 800 피트 고도에서 기지로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이 부근의 하와이로아(Hawaiiloa) 고지를 돌아서 기지로 접근할 때 그의 아들이 비행기에 일장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기지에 경고하기 전에 전투기들이 기지에 기총소사를 시작했고 정찰기들 중 많은 수가 소이탄에 의해 불이 붙었다.

기지 행정반 건물 앞에서는 해병 경비대가 국기게양식을 위해 집합해 있었다. 기총 소사가 시작되자 군기상병이 국기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그의 부사수는 8:00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상병이 국기 게양줄을 올리는 동안 그보다 가벼운 그의 부사수는 단호하게 줄을 잡고 있었다. 이 결연한 부사수는 깃봉을 절반쯤 딸려 올라간 후에 이를 포기했다.

첫 번째 공격에서 만에 계류된 정찰기들이 파괴되었다. 8:15에 두 번째 공격기 그룹이 카네오헤를 때렸다. 이 그룹은 약 18대의 항공기로서 대부분 급강하 폭격기였고 기지에 더 많은 피해를 입혔다. 수병들과 민간 근로자들은 램프 지역에서 불타는 비행기들을 끌어내려 노력했다. 일부 대원들은 소총과 기관총을 잡고 일본기들에게 응사했다. 존 핀(John Finn) 중사는 지상에 있는 비행기에서 50구경 기관총을 잡고 수 차례의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에까지도 사격을 계속했다. 기지에서 일하는 재치 있는 민간 계약자인 샘 아베이(Sam Aweau)는 히캄과 벨로우스에 카네오헤 피습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이를 믿지 않았고 침착하게 상황전파를 한 소용이 없었다. 끊어진 급수 및 전기선들을 수리하기 위해 건설 노무자들을 신속하게 투입했다. 마틴 중령은 기지의 민간 전화 교환수인 스펜서 여사가 공격 내내 침착하고 솔선했다고 칭찬했다.

9:00에 후사다 아이다(Fusada Iida) 대위가 이끄는 소류(Suryu) 소속 전투기 중대가 기지를 한 번 더 때려서 기지는 세 번째로 공격을 받았다. 아이다의 친구이자 그의 편대장 중 한 명인 이요조 후지타(Iyozo Fujita) 중위는 진주만 공습이 그의 첫 전투였다. 중대는 전투기의 대항이 있는지 확인하면서 섬을 두 바퀴 돌았다.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이들은 카네오헤 뒤에 있는 멋진 절벽인 팔리(pali)를 지나 동쪽에서 기지로 강하했다. 후지타는 첫 전투 임무에 매우 긴장했고 대공포 사격의 포연을 보고도 거의 진정되지 못했다. 어쨌든 그와 그의 중대는 철저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3차 공격 중 탄약을 꺼내는 병사들로 가득찬 격납고에서 한 발의 폭탄이 폭발하여 기지에 가장 많은 전사자를 초래했다.

아이다 대위의 비행기가 지상 사격에 맞아 연료가 새기 시작했을 때 일본군의 집요함이 나타났다. 후지타는 비행기에서 흰 수증기가 새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중대의 남은 비행기들을 가리키고 그 다음 항모가 있는 북쪽을, 그리고 그 자신을 가리킨 다음 지상을 가리켰다. 이는 의미가 분명했다. 중대장은 중대에게는 기동부대로 돌아가라고 지시했고 그 스스로는 전에 조종사들끼리 한 약속을 지킬 것이었다. 즉 누군가 항모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는 탈출하지 않고 적 표적에 충돌하기로 했었다. 조종사들은 이 약속을 입증하기 위해 낙하산을 소류에 두고 오기도 했다. 아이다는 강하를 했지만 중요한 표적과 충돌하는데 실패하고 언덕에 추락했다. 아이다 대위를 잃었지만 카네오헤에 대한 일본군의 공격은 거의 최대한의 성공을 거두었다. 기지의 모든 비행기들이 파괴되거나 큰 손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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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로우스 기지의 출격 (같은 책의 다음 챕터 중에서)

 제86 관측대대의 필립 윌리스(Phillip Willis) 소위가 활주로에 갔을 때 그는 제44 요격대대의 한스 크리스챤센(Hans Cristiansen) 소위가 P-40 조종석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챤센은 그의 불편한 낙하산 때문에 힘들어했기에 윌리스는 비행기로 달려가서 그를 뒤에서 밀었다. 그 순간 아이다 대위의 조종사 중 한 명이 그를 발견하고 기관총으로 크리스챤센과 그 P-40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윌리스는 크리스챤센의 피를 뒤집어 썼지만 낙하산이 탄환을 막아준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다른 두 명의 요격기 조종사가 하늘로 올라갔지만 제 46과 47 대대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조지 화이트맨(George Whiteman) 소위는 두 대의 제로기의 사격을 받으면서 벨로우스를 이륙해서 하늘에 뜨는데는 성공했지만 1,000피트에 도달하기 전에 격추되었다. 새뮤얼 비숍(Samuel Bishop) 중위는 운좋게 살아나기는 했지만 그의 P-40은 일본기와 교전해보지 못하고 카일루아(Kailua) 만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그는 다리에 부상을 당하고 크게 접질렸지만 라니카이(Lanikai) 해변으로 헤엄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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