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 vs 공수 *

* 2월 28일자로 디시 2차대전갤에 올렸던 글을 재조사를 거쳐 편집해서 등록합니다.
아무래도 요즘은 직업과 관련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데, Squadron 관련 논단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업 특성상 정확한 단어 정의와 어원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게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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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말은 80년대까지만 해도 한참 잘 쓰이던 말이다. 연합군 최대 규모의 Airborne 작전이었던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멀고먼 다리 기사에서도 Airborne을 공정이라고 표기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언제쯤인가 어떤 모형지(로 기억)에서 공정이란 말은 일본말을 직역한 틀린 말이고 공수라고 해야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뒤로 공정이란 단어를 쓰면 왠지 몰지각한 인간이 되는 것 같은 제발저린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우선 Airborne의 사전적 의미부터 찾아보자.

air·borne

1: done or being in the air : being off the ground: as a: carried through the air (as by an aircraft) b: supported especially by aerodynamic forces or propelled through the air by force c: transported or carried by the air <airborne allergens>
2: trained for deployment by air and especially by parachute <airborne troops>
-Merrian-Wepster 영영사전

간단히 해석하자면
1. 공중(공기)으로 이동하는, 하늘에 떠있는 상태.
2. 공중, 특히 낙하산을 이용하여 작전투입되도록 훈련된.
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AWACS(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에서는 1번의 의미로 쓰이는 것이고, 82nd Airborne Division이라고 할 때는 2번의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말에서 "공정"이라는 단어의 근거를 찾아보자.

공정[空挺]
[명사]<군사> 지상 부대가 항공기를 이용하여 전투 지역 또는 적 후방에 투입되어 적을 공격하는 일.
-국립 국어원 제공 네이버 국어사전

일반 사전이라서 군사용어 정의 소스로서 신빙성이 없다고 봐야 하나? 그렇다면.

공정작전
정의: 전술적 또는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지상전투부대 및 장비를 목표지역까지 공중 이동시키는 작전.
-용병술어연구/김광석/병학사
* 이 책은 군 공식 간행물은 아니나 육대 총장이 미군과 우리군의 군사용어 비교연구를 위해 저술한 것으로서 공식 간행물들을 직접 인용하거나 참고해서 쓴 책임.

공정부대(空挺部隊, Airborne Force)
공수착륙이나 공중투하로써 전투지대에 투입되어 전투작전을 수행할 목적으로 편성 및 장비되고 훈련된 부대로서 지상군과 공군으로 구성됨
-합참 한글용어사전

공정작전(空挺作戰, Airborne Operation)
전략적 또는 작전적 임무수행을 위하여 전투부대와 장비를 수송항공기에 의하여 목표지역으로 이동시켜서 공두보를 확보한 후 제한 지상작전을 실시하는 작전. 통상 임무, 지휘, 규모, 항공기의 형태 및 용도, 근무지원에 의해서 공중기동 작전과는 구분될 수 있음.
-합참 한글용어사전

그밖에 91년도에 현역 육군 대대장이 전세계 Airborne 작전의 역사를 소개한 편저인 "신화는 또다시 창조될 것인가!"에서도 책 내내 Airborne을 공정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Airborne 작전의 선도임무를 수행하는 CCT를 공정통제사라고 부르고 있다.

"공정"은 엄연히 표준어사전과 군사용어집에 나와있고 실무에서 쓰이고 있는 "우리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Airborne의 영영사전적 정의 중 2번의 의미에 상응한다. 일본말을 무분별하게 직역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는 분명 필요하지만 "공정"이라는 단어는 그런 왜색 단어, 다시 말해 같은 의미를 가지는 다른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한자어를 음가만 한국말로 읽은 잘못된 단어에 속하는 케이스가 아니다.

물론 "공정단"은 일본 자위대 편제이므로 다른 나라 편제에 써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506th Airborne Regiment를 506공정단이라고 하면 틀린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테면 Airborne Div.은 요즘은 공수사단이라는 표현이 더 널리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공수사단보다는 공정사단이라고 표기해야 원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담을 수 있다.

 

* 우리나라의 특수전 부대인 "공수특전단"을 줄여서 부르는 "공수부대"라는 비공식 명칭이 정규군 소속인 Airborne 부대를 지칭하는 용례와 혼용되면서 발생하는 혼란이 상당히 심각하다. 특전사가 공수부대니까 특수부대가 아니라는 해괴한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아래 링크 참조)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걸까?

 

우리말에서 공수(空輸)와 공정(空挺)은 그 정의가 다소 상이하다.

공수 [空輸]
[명사]<교통> ‘항공 수송’을 줄여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제공 네이버 국어사전

공수(空輸, Airlift)
공중수단을 이용하여 병력, 장비 및 물자를 이동하는 것.
-합참 한글용어사전

보다시피, "공수"는 단순히 공중을 통한 이동 그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공정"은  공중 이동을 통해 작전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용어 정의상 다소의 차이가 있다. 디시 갤에서 "물품을 공수해오다" 할 때의 그 공수냐고 묻는 분이 계셨는데, 맞다. 그 공수이다. 영어 단어와 비교하자면 공정은 Airborne의 2번 정의에 해당하고 공수는 위 합참 한글용어사전에도 있다시피 Airlift, 혹은 Airborne의 정의 1번에 해당한다. 따라서 Airborne의 2번 정의로 쓰이는 Airborne Division을 공수사단이라고 하면 그 정의가 정확하게 옮겨지지 않는다.

디시갤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공정"이 일본 군사 용어인 "공수 정진"의 약자를 차용한 것이기 때문에 써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앞에 링크한 책에서도 정진의 정(挺)자가 "정신대"의 용례에서와 같이 일제의 군국주의적 한자이기 때문에 써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 또 찾아보았다.

정진06 挺進
「명」여럿 가운데서 앞서 나아감.
-국립국어원 제공 표준국어대사전

 뿐만 아니다. 검색사이트들에서 이 단어의 용례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네이버 검색 挺進

야후 검색 挺進

군사분야에서 뿐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쓰는 단어이고, 일본과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불교계통에서도 쓰이는 것을 보면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단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당시 광복군이 계획했던 국내 공중 침투 진공 작전을 "정진작전"이라고 하고 그 부대를 "정진군"이라고 불렀다. 요약하자면, "정진"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제국주의 정신을 담아 쓰던 말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이다.

결론
우리나라 밀리터리계에서는 "강하엽병(Fallschirmjäger의 어원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한자로 직역한 엉터리 조어로서, 그냥 공수 혹은 공정부대라고 하는 것이 적절함)"이나 "항공단(비행단이라고 해야 함)"같이 일본의 밀리터리 서적들을 생각없이 베끼면서 무분별하게 수입한 일본한자어들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일본한자어에 대한 문제의식이 특히 "공정"이라는 단어에만 투영되는 것은 홈지기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지금까지 알아보았다시피 "공정" 혹은 "정진"이라는 단어가 일본식 용어라는 주장 자체가 아무런 근거없는 민간어원설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론 요즘에는 "공수"라는 단어가 군당국이나 일반 사회에서 Airborne의 사전적 정의 1, 2번을 모두 포괄하는 용례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고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의미전달이 되기는 하지만, "공정"이라는 단어를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구체적인 정의를 가진 전문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충분한 고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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