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전의 5단계 *
공중전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모여서 심판의 호각소리에 따라 치르는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조종사는 임무를
위해 살아남고 적의
저항을 물리치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마치는 과정들을
스스로 제어하고 거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중전의 진행 단계를을 분석해보고
이해하는 것이 성공적인 공중전투를 위한 초석과도 같습니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조종사는 전투에
돌입하고 교전하고 전투를 중지하고 후퇴하는데 크게 다섯 가지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이 다섯 단계의 과정에서 각각 적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승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이 과정들은 책장을 넘기듯이 구분되거나 모든 단계를
저절로 또는 반드시 거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도, 공중전의 5단계에 대한
논의는 각 단계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전투의 일반적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조종사는 우선 가급적 먼저 적기를 발견하고 먼 사거리의 무장으로 멀리서 적을 먼저
공격하며, 속도 혹은 고도의 우위를 확보한 채로 전투를 시도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희망사항이
항상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전투의 초기 서로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때는 둘중 한명, 또는 두명 모두가 전투를 중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모두 높지만, 교전이 길어질수록 원하는 기동을 하는데 필요한 기동에너지 소모가 많아져서 전투를 중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둘중 한명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따라서, 현재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판단하여 상황이 불리하다면 가급적 일찌감치 전투를 회피하거나
전투중 언제라도 가능한 교전을 중지하여야 합니다. 전투 시작시의 유리성이나 불리성이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일단 싸우면서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라든가 나는 실력이 뛰어나니까
어떤 상태에서 적기와 싸우더라도 상황을 역전시켜서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공중전의 5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발견
?접근
?교전
?기동
?이탈
1. 발견
예로부터 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은
육지건 바다건 하늘이건 간에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한 후에 싸움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적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이 나를 발견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적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적을 발견하는 것의 중요성은 미국의 2차대전의
공중전의 영웅 척 예거가 남달리 시력이 뛰어났다는 것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척 예거는 2.0이 넘는 시력을 가졌고, 남들은 적기를 볼 수조차 없을 때
이미 적기를 발견하고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2차대전당시의
조종사뿐만 아니라 현대 전투기의 조종사들도 시력보호에 남다른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그에 덧붙여서, 현대의 전투기는 지상이나
AWACS의 관제, 기체에 장착된 레이다의 성능이 적을 먼저 발견하는 능력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각종 전망화면을 통해서 사방을 항상
주시하십시오. 보통의 시뮬레이션은 조종석에서 3차원공간중 실제의 조종사가 볼
수 있는 곳은 모니터를 통해서 볼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의
조종사는 볼 수 없는 특수한 전망화면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전망화면을 100퍼센트
활용할 수만 있다면 사실적인 게임 모드에서도 모니터를 통해서 실제의 조종사를 능가하는 시각적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레이더를
장비한 현대 제트기에서도 육안 탐색은 매우 중요한 조종사의 책임과업중의 하나입니다.
레이더를 장비한 비행기라면, 레이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가급적 넓은 범위의 상황을 파악해야 합니다. 주변을
눈으로 살펴보고 레이다를 조작하여 탐색을 하는것은 귀찮은 노동이 아니라 미사일이나
기관총을 쏘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며, 공중전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이루는 작업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뮬레이션에서 단지 흥미를 위해서 이러한 중요한 과업을 생략하거나
단순화시키기도 하지만, 시뮬레이션에서의 묘사만을 가지고 실제 전투의 모습을 오해해서는
안되겠지요.
누가 먼저 상대방을 발견하는가는,
적기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기습을 하느냐 아니면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에
놀라 당황하고 때로는 공격받았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격추당하느냐를 결정짓는
달린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탐색작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한다면,
수십 마일이 넘는 긴 비행경로라도 지루하게 생각되기는 커녕 손은 레이다와 조망화면
조작으로 바쁘기 그지없고 머릿속은 온통 계속되는 고민과 혼란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렇게 공중전에서 무기를 발사하고 비행기를 기동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작업인
탐색작업을 소흘히 하면서 공중전의 승리를 꿈꾼다는 것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종사에게 많은
과업을 부과하는 현대의 전투기 조종석
다만, 시뮬레이션에서나마 보다 쉽게 이 과정을 그냥 넘어가고 재미있는 공중전만을 즐길 수는 있습니다. 우선은, 시뮬레이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적기와 만날 때까지 자동비행을 시켜주어 조종사의 업무를 격감시켜주는 시뮬레이션도 있고, 쉬운 난이도 옵션을 선택하면 탐색 및 레이다 작업의 업무량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적보다 먼저 적을 발견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을 하거나 기습을 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단지 적과 똑같은 시간에 발견하여 (양쪽 다 컴퓨터가 발견하는 것이므로) 똑같은 입장에서 만나서 반반의 확률로 전투에 돌입하게 될 뿐입니다.
발견한 물체는 반드시 적인지 아군인지를 식별하고 가능하면 기종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슈팅게임이 아닌 시뮬레이션에서는 각자의 임무를 가진 아군과 적군의 부대와 장비들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지 모르므로 교전을 하기 전의 적아식별은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육안으로, 아니면 전자장비, AWACS와 같은 다른 정보제공수단을 이용하여 적인지 아군인지 여부를 식별합니다. 각각의 항공기, 그리고 게임에서마다 에서 적아를 식별하는 방법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므로 탑승한 항공기의 적아식별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적아식별이 확립되어있어야만 합니다.
F-16의 피아식별 기능인 NCTR막대(왼쪽으로 길어지면 적기일
확률이 높다)
2. 접근
접근이란 발견한 목표물에 대해서 이후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어나가고 가능한 적절히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대개는 가급적 속도 혹은 고도의 우위를 점한 채로 적을 기습할 수 있는 지점으로 신속히 움직이게됩니다. 적의 레이다 탐색 구역은 일반적으로 전방 폭 120도 이내의 범위로 한정되며, 후방의 약 60도 이내와 후하방은 육안 사각지대가 됩니다. 이 구역 안에 있다면 레이다로 적을 조준하거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적에게 발견될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적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서 유리한 지점에서 주의깊게 적에게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서 가급적 적을 기습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유리한 위치로 먼저 접근을 시작하면, 그 후에 적기가 아군을 발견한다고 해도 이후 행동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으므로 여전히 어느정도는 나에게 유리합니다. 지나치게 무리하게 적과 싸울 것만을 생각하면 어렵게 얻은 유리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접근 단계에서는 유리성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기체
후하방은 육안 사각지역이다.
이후 전투의 승패는 접근 단계에서
유리성을 얼마나 확보하고 들어가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불리한 상황에서
현란한 기동을 펼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조종사는 죽은 목숨입니다.
적 조종사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상 적 조종사는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전술적인 판단이 내려져야 합니다. 만약 접근단계에서 적에 대해 유리성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면, 유리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전투를 지연시키거나
아니면 전투를 회피해야 합니다. 단, 이것이 대등한 조건에서 도망을 치라던가
적과 만나 겁을 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접근단계에서 가급적 유리성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전투를 회피하라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단 전투를 시작하고 나서 적에게 꼭 달라붙지 않는 아웃 파이팅을
통해 전투중에 유리성을 얻어나갈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유리함과 불리함에 상관
없이, 전투조종사는 임무 달성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임무 달성이나 전투의 승리가 어떻게 해도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임무 혹은
전투를 회피해야 합니다.
저와 온라인에서 종종 만나 함께 비행을 하며
알게된 핀란드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그친구는 우리가 2명이고 상대방이 혼자뿐인데도
고도 우세를 가진 채로 전투를 해야 한다는 원칙에 매달려서 동고도의 2:1 숫적 우세
상황에서 도리어 도망을 치더군요. 그정도로 소극적인 조종사는 전투조종사라고 할
수도 없겠죠. 그렇게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도 역시 게임으로서의 목숨부지 법칙에만
입각해서 군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져버리는 비현실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이다를 이용한
기습위치로의 접근 예
적이 먼저 나를 발견한 경우라면 침착하게 적이 나의 꼬리를 잡거나 기습공격을 시작을 하지 못하도록 현 상황에서 최선의 대책을 시도해야 합니다. 적의 레이다 조준에 걸렸을 경우에는 행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취하여 적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못하게끔 합니다. 적의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대부분 레이다와 연계되어 발사되고 단거리 열추적 미사일도 부분적으로 레이다와 연동하여 사용하게 때문에, 현대 전투기에서 활성상태인 레이다 위협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은 주변의 위협을 판단하는데 극히 중요합니다. 레이다의 조준고정을 피하는 것이 적의 미사일로부터 살아남는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적의 레이다가 나를 향하고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은 ECM을 켜고 채프를 뿌리는 소극적인 방법과, 적기에 먼저 미사일공격을 가하는 적극적인 방법 등이 있습니다.
3. 교전
교전 단계는 접근단계의 이후에 발생하거나,
또는 적에게 기습을 당한 경우에 곧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일단 무기 사거리에 들어오면,
무기를 사용해서 적에게 선제공격을 가합니다. 무기발사의 타이밍은, 적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다 치명적인 무기 발사 구역에서의 기습
공격을 시도하고,
적이 우리를 발견한 상태에서는 가능한 무기의 최대사거리에서 선제공격을 시작하여
적에게 방어적인 행동을 강요하여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적보다 먼저 사격을 하면 이후에 상황전개의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현대의 전투기라면 통상 레이다 미슬로 최초 공격이
시작되고, 구형 전투기들은 최초의 기습공격내지 짧은 횟수의 반복 공격 기간동안이
공격 단계에 해당됩니다.
가시거리밖의 레이다교전 단계나 아웃 파이팅 단계,
기습 공격 등에서 적기 격추에 실패하면 근접전투에 들어가게
되고 다음 단계인 기동으로 넘어갑니다.
4. 기동
기동은 적기보다 유리한 위치를 얻거나 계속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적의 추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또한 실수를 했을 경우에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만약 적이 유리한 위치나 상황에 있다면, 알고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전투를 중지하고 적에게서 빠져나오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적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오직 여러분 스스로의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도망치라는 것에 대해서 불평할 수도 없고, 불리한 상황에서 갑자기 유리해지는 마술 같은 방법을 일러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게 있다면 세상에 격추당하는 비행기라는게 존재하지 않겠죠. 그저 모든 최대한의 살기 위한 노력과 상대적인 기체 성능의 이용, 임기응변이 필요합니다. 도그파이팅의 승패는 조종사의 실력과 체력, 그리고 기체 성능이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기동성에 의해 좌우됩니다.
한쪽의 피로써만
끝낼 수 있는 공중전의 가장 깊은 늪인 도그파이팅
기동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공중전의 꽃이 아닙니다. 적기를 격추하는 것은 접근-공격단계에서이고, 기동은 앞의 두 단계가 완벽히 수행되지 못했을 때 오류를 수정하거나 생존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실시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불리하거나 위태로운 상황을 기동술로 만회하겠다는 생각은 한낱 꿈입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접근-공격-기동 단계로 접어들수록, 그리고 기동 단계가 길어질수록 escape window는 점점 더 닫히게 되며 상황인식능력도 급격히 저하됩니다. 따라서, 현란한 기동술과 사격술에 의지해서 한소티에서 높은 격추를 달성하면, 그때 당시에는 잘 싸운 것처럼 생각될 지 모르지만 교전중의 실수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에 그 경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얼마못가서 죽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에서 캠페인 모드를 해보더라도, 안전 위주로 플레이하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높은 킬수와 경력을 얻게 되지만, 안전하게 플레이하는 것이 재미 없다고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면 단기적으로는 성적이 높지만 경력이 오래 지속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그 조종사의 경력은 별 것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한소티에 3-4대를 격추하고 두어번만에 죽는 파일럿과 한소티마다 한 대를 격추할까말까하지만 늘 살아돌아오고 자기 기체를 보존하는 파일롯중 장기간의 전쟁에 필요한 것은 당연히 후자입니다. 공중전투에서는 관속에 들어간 영웅보다 내일 다시 출격할 수 있는 조종사가 필요합니다.
5. 이탈
상황이 허락하지 않거나 임무상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기와의 공중전은 가능한 한 피해야합니다. 그리고 전투중이라도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가능한 한 전투를 중지하고 후퇴해야 합니다. 설령 승리확률이 70%가 넘는다고 해도, 임무상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중전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90%만큼 유리하다고 해도 10번만 싸우면 그중 한번은 죽어오는 것인데 그런 전투를 반복한다면 자신도 머지않아 죽게 될 것입니다. 고작 10번 출격하고 죽어 버리는 조종사는 전쟁에서 필요 없습니다. 위험이 비교적 작더라도, 단순히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 위해 그 위험에 무의미하게 빠져드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격추기록을 올리려는 충동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종사에게 격추기록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쓸데없는 것입니다. 한번의 출격에 10대를 격추하고 죽어서 돌아온 조종사보다는 1대도 격추 못하고 10번을 임무완수한 조종사가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세계역사상 최고의 격추기록을 가진 에리히 하르트만의 경우, 대략 적기를 3번 만났을 때마다 한 대의 적기를 격추했다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즉 오래 살아남는 것이 당장의 한 대의 적기를 격추하는 것보다 더욱 가치있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면 격추기록은 자연히 올라가게 됩니다. 공중전에서의 전투중지 가능성 여부는, 적과의 상대적인 속도가 빠를 수록 전투중지를 하기 쉬우며, 적과 높은 각도로 지나친 상황에서 적에게서 이탈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언제든 전투를 중지하고 적에게서 이탈할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전투를 수행하는 능력은 스스로 얼마나 오랜동안 살아서 비행할 수 있느냐에 직결됩니다.
적기를 격추했더라도, 교전시에 발생하는 기총이나 미사일 궤적, 혹은
적기의 폭발 화염이 주변의 항공기들의 주의를 끌 게 되므로 위험을 벗어나거나 교전이
끝났다면 신속히 전장을 이탈해야 합니다.
공중전에서 왜 굳이 후퇴할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전투를 수행해야 할까요? 혹 그것은 비겁한 생각이 아닐까요?
많은 시뮬게이머들은
공중전을 칼싸움이나 또는 권투시합과 같은 스포츠처럼 여기고 두명중 한명이 승리를
얻고야 마는 행위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교전 중지라던가
후퇴같은 개념을 아예 고려사항에 포함시키지 않고 전투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공중전은 공정한 상황에서 승패를 가르는 시합이 아니라, 무슨 수단을 써서든 내가 살고
적의 의도를 방해하는 전쟁행위의 일종입니다. 따라서 싸워서 승리하기를 바라지
말고 승리한 후에 싸운다는 손자병법의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대로 싸운다면
내가 살기 힘들고 적의 의도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지상전과 마찬가지로 전투를 피하거나 중지하고 후퇴를 해서 생존을
도모해야 합니다.
만일 지상전에서 후퇴라는 개념을 생각치 않고 항상 한번의 전투로 승패를 가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전투를 치른다면, 상황이 불리한 측은 전투를 중지하고 후퇴를 하여 훗날을 도모할 기회를 놓친 채 끝까지 싸우다 전멸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지상전을 치르는 경우는 없으며, 대부분의 지휘관은 승기를 놓쳤다는 판단이 서면 전투를 중지하고 후퇴하여 생존을 도모합니다. 보통은 백중세로 시작한 전투는 한쪽에 승기가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는 서로간에 실제적인 피해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으며,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후퇴를 하면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패배한 측이 입는 손실의 대부분은 전세가 불리한 측이 남은 병력을 데리고 안전하게 후퇴를 할 타이밍을 놓쳐서 전황이 완전히 기운 다음에 비로소 발생하게 됩니다. 공중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중세인 상황에서 적기를 우연히 격추하거나 격추당하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이고, 많은 경우 전반적인 상황이 한쪽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기운 뒤에 결정적인 격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상황이 불리해지고 있다면 전투를 중지하고 후퇴를 해서 생존을 도모하고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나가거나 완전히 교전에서 이탈하여 훗날을 기약해야 합니다. 공중전이라고 해서 꼭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투를 하려는 것은 승세를 잃은 장군이 전장에 남아서 적에게 모조리 전멸당하는 것을 눈뜨고 보고만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절치 못한 행동입니다. 후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신이 상황 통제력을 가진 채로 필요할 때 후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A와 B 두명이 서로 번갈아서 주먹을 한 대씩 날린다고 가정해봅시다. A가 맨처음의 한 대를 친 순간, A의 피해는 없고 B는 약간의 피해를 입지요. B가 한 대를 치면, 일단 한 대 맞고 치는 것이니 A가 때린 것만큼은 안아프겠죠. 그다음 A가 주먹을 날리면, 방금의 B의 주먹보다는 덜 아프겠지만 A는 두 번 때렸고 B는 한번 때린 것이니 A가 단연 유리한 상태이죠. 그다음 B가 반격을 하면, 역시 그앞의 A가 때린 것보다는 약할테니 똑같이 두 번의 주먹을 주고받았다고 하더라도 B의 피해가 여전히 조금 더 높을 것입니다. 이렇게 최초 몇 번의 주먹 교환동안에는 먼저 때린 A에게 선제공격의 유리성이 가시적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한정 길어진다고 생각해보면, 주먹 교환이 반복될수록 서로의 피해가 누적되면서 A와 B간의 피해의 차이는 줄어들 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주먹을 날린 A는 "먼저 때려서 유리하니까 상대가 죽는 꼴을 보자"고 생각하기보다, 최초의 선제권의 우세가 남아있는 동안에 싸움을 중지하는 것이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피해비율(비록 그것이 절대량으로는 그렇게 크지 않더라도)을 부과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전투에서의 선제권의 우위는 기습공격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에 대해 기습공격을 가하는 것은 먼저 주먹을 날리는 것과 같습니다. 즉 최초의 얼마동안은 기습공격을 가한 측이 사실상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적에게 다소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습을 받은 적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최초 일격에 적이 저항 불능의 궤멸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한 선제공격을 한 측의 유리성은 점차로 사라지고 전투는 대등한 상황의 소모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적이 기습공격을 시작한 측보다 소규모였다면 최초 기습으로 적을 궤멸시키거나 전세를 아군에 기울 게 할 수 있겠지만, 쌍방 전투력이 비슷하거나 상대의 전력이 더 큰 규모였다면 최초에 적에게 기습공격으로 약간의 유리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전투를 오래 끌고갈수록 선제공격자에게는 불리해집니다. 때문에 전술 수준의 기습적인 교전은 통상 공격자가 선제권의 우세를 점유할 수 있는 단기간으로 한정되고 공격자는 일정 시간동안만 공세를 유지하다가 공격을 중지하는 것이 적에게 상대적으로 더 높은 피해를 부과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비행시뮬레이션이나 워게임등을 해보면, 교전 초기에는 선제권을 가진 측이 적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피해를 유발할 수 있지만, 어느정도 교전이 진행되다 보면 적이 입는 피해비율에 대해서 선제공격측이 입는 상대적인 피해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전투를 해보면, 최초에 적에게 다소의 피해를 입혔으므로 이기고 있는 전투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결과를 보면 최초공격을 한 아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거나 오히려 더 많은 손실을 입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보통은 현재 상황이 유리하다고 해서 적에게 조금 더 많은 피해를 계속 입히고 싶은 마음에 전체 상황인식을 놓치고 전투행위 자체에만 집착하기 쉽습니다. 지상전이라면 한쪽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 사실상의 저항능력이 상실되지만, 공중전에서는 한두 대의 항공기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아군에게 피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적을 전멸시키기를 추구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손실을 부과한 채로 교전을 중지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최초에 우세한 상황에서 교전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최초 단기간의 공격으로 적의 반격능력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다면 유리성을 가지고 있을 때, 적어도 백중세일 때 교전을 중지하는 결단력을 가질 수 있어야만 자신과 아군의 전투 자산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부대원을 거느린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교전중지 타이밍이 더욱 심각한 주제가 됩니다. 적에게 조금의 손해를 입히고 아군은 피해없이 전투를 중지할 것인가, 아니면 적에게 더 높은 피해를 입히고 아군의 다소의 피해발생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임무상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전투피해 차원에서만 생각해본다면, 지휘관으로서는 적에게 입힐 피해에 입각해서 생각하기보다 아군이 입을 피해를 기준으로 부대를 이끌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한번의 전투마다 5%의 손실이 있다고 한다면, 20번의 전투 후에는 당초 전투력의 절반을 손실하게 됩니다. 지휘관으로 캠페인 모드를 수행하다보면 작은 손실이라도 얼마나 감수하기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치루어지는 전쟁상황에서는 부하 한명, 비행기 한 대가 귀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캠페인에서 어떤 부대가 100회를 출격한다고 해보죠. 이 경우, 최초의 출격에서 한 대의 항공기가 격추되었다면 그 부대는 그 캠페인에서 100소티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실제 세상이라면 전투원 한명한명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가 되기에, 더더욱 지휘관은 적에게 입히는 피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아군의 피해를 줄인다는 관점에서 전투를 지휘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