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어 BFM - 기본 원리 *

거의 20년 가까이 비행시뮬레이션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보아온 질문 중 하나가 아마도 다음의 질문일 것 같다. 그리고 홈지기는 종종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Q: 적이 꼬리를 물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A: 죽으면 됩니다.

이렇게 답한다고 홈지기를 욕하는 사람도 많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두 조종사가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고 치면 당연히 꼬리를 문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높고 꼬리를 물린 사람이 죽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꼬리를 이미 물렸다면 실력에서도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결국 죽어야지 별 수 있겠나. 불리하면 진다. 이건 공중전에서든 동네 강아지들 싸움에서든 똑같이 통용되는 진리이다. 이기고 싶으면 불리할 때 어떻게 싸울지를 생각하기보다 애당초 불리해지지를 않을 방법부터 생각해야 한다. 만약 싸움이 불리해졌다면? 불리한 줄 알았다면 1초라도 빨리 도망치는게 상책이다.

방어 BFM은 우리말로 쉽게 말하면 방어기동이다. 단, 공중전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꼬리를 물렸을 때 어떻게...?"에 대한 단편적인 답변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생각해야 한다. 즉 방어 BFM에서는 단순히 적기가 내 꼬리를 물었을 때 적기를 죽이는 비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불리하지 않게 되는 법, 불리해졌다면 살아서 도망치는 법, 도망칠 수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렸을 때 해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 등을 다룬다.

1. 공격기 쪽으로 급선회
조종사가 불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기보다 앞서서 생각할 일은 불리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공격기라고 가정하면 적기의 꼬리 쪽으로 더 다가갈수록 더 유리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방어기는 단순히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즉 적기가 가급적 내 꼬리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면 된다. 그리고 가급적 적기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이 좋다.

어느 순간 적기를 발견했다고 해보자. 우선 이 적기와 싸울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한다. 공중전은 공평하게 치르는 스포츠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실전에서 적기를 발견한 순간은 항상 중립 상태가 아니며 어느 한쪽이 유리하거나 불리할 것이다. 내가 유리하다면 적을 공격하면 된다. 반대로 내가 불리하다면, 전투를 피할 수 있으면 가급적 일찍 피해서 도망치는게 좋다. 만약 이미 적기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거나 해서 도망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된다면 적기에게 꼬리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적기를 향해 맞서야 한다. 적기의 반대 방향으로 돌면 오히려 적기에게 내 꼬리를 더 쉽게 내줄 뿐이다. (그림 1)

그림 1. 올바른 급선회 방향

그리고 빠르게 적기를 향해 돌아서 가급적 적기와 높은 각도로 만나는 것이 좋다. 적기를 향해 빠르게 돌지 않는다면 적기가 내 꼬리쪽으로 더 깊이 들어오게 된다. 반대로 적기를 향해 빠르게 돌면 적기와 더 높은 각도로 만나게 된다. 아래 그림은 적기를 향해 빠르게 돌았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차이를 보여준다. 적기와 더 높은 각도로 교차할수록 방어기에게는 더 좋다. 거의 정면으로 적기와 비슷한 각도로 교차를 한다면 사실상 방어 상황이 아닌 중립 상황이 된다. (그림 2)

그림 2. 방어 시 급선회의 필요성

적기가 아직 나에게 충분히 가까이 오지 않았다면 아마 적기와 가까이 지나칠 것이다. 이때 대개의 경우 적기는 나를 향해 계속 다가오고 있으므로 속도가 빠르고, 나는 적기를 향해 선회를 했으므로 속도가 느리다. 일반적으로는 속도가 느리면 기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불리하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면 선회반경이 좁다. 지난 회에서 선회반경이 좁은 비행기는 서로 같은 방향으로 도는 2서클 선회(nose-to-tail)보다 서로 마주 보고 도는 1서클 선회(nose-to-no)가 더 유리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므로 속도가 느린 방어기는 교전 상황을 서로 마주보는 선회 상황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오버슛의 개념이 필요하다.

2. 오버슛
오버슛(Overshoot)은 우리말로 바로 옮기면 추월이다.
적기가 뒤에서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적기가 나를 추월해서 앞으로 나갔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황이 곧바로 뒤바뀌어 내가 적의 꼬리를 무는 상황이 될 것이다. 얼쑤 좋구나! 이것을 적기가 나의 3시-9시 선상을 지나쳐서 내 앞으로 추월했다고 해서 3-9라인(Line) 오버슛이라고 한다. 그러나 적기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짓을 항상 해주기만 바랄 수는 없다. 공중전 전술은 항상 적기가 어느 상황에서든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야 얘기가 된다. 때문에 적기가 바보짓을 해서 나한테 죽기를 바라기보다는 적기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게끔 기동해야 한다. 다음 그림을 보자.

그림 3. 비행 경로 오버슛

위 그림에서는 방어기가 급선회를 하는 동안 공격기가 아직 방어기의 뒤쪽에 있기는 하지만 방어기의 비행경로 바깥으로 밀려나가 있다. 이것도 오버슛의 일종으로, 비행경로 오버슛이라고 한다. 공격기가 방어기의 앞으로 지나쳐나간 것이 아님에도 이것을 왜 오버슛이라고 부를까. 다음 그림을 보자.

그림 4. 리버스(Reverse)

공격기가 볼 때는 방어기가 오른쪽에 있으므로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선회를 해야 한다. 하지만 방어기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공격기가 처음에는 오른쪽에 있다가 공격기가 비행경로 오버슛을 한 뒤에는 후방이나 왼쪽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따라서 방어기는 이 때 선회방향을 왼쪽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을 선회방향을 반전한다고 해서 리버스(Reverse)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두 비행기 모두 같은 방향으로 상대의 꼬리를 향해 선회하는 nose-to-tail 상황이었지만, 방어기가 선회방향을 바꾸자 서로 마주보고 선회하는 nose-to-nose 상황이 되었다. 말했다시피 속도가 더 느린 방어기에게는 더 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1. 공격기 쪽으로 급선회를 한다.
2. 공격기가 비행경로 오버슛을 하게 된다.
3. 방어기가 선회 방향을 반전한다.
4. 서로 마주보는 Nose-to-Nose 상황이 만들어진다. (방어기에게 이로움)

계속 이어지는 다음 그림을 보자.

그림 5. 시저스(Scissors)

선회방향을 바꾼 방어기가 공격기와 다시 마주쳤다. 그러면 공격기는 방어기의 선회경로를 또다시 오버슛하게 된다. 그러면 방어기는 또다시 선회경로를 반전할 수 있다. 공격기가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계속 방어기쪽으로 선회하려고만 한다면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두 비행기가 계속 엇갈리면서 비행하게 된다. 이렇게 두 비행기가 계속 엇갈리는 모양이 가위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시저스(Scissors)라고 부른다. 시저스가 계속되면 속도가 더 느린 비행기가 계속 유리한 상황이 되고 결국 공격기가 방어기의 앞쪽으로 밀려나갈 가능성도 생긴다. 그러면 드디어 방어기와 공격기의 상황이 뒤바뀌는 것이다.

3. 이탈
불리하면 도망쳐야 한다. 이것은 진리다. 적의 총알이나 미사일을 소모시키고 내 비행기를 말아먹으면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은 너무 수지가 안맞는 장사이다. 비겁하다고 욕하지 말자. 도망치는 것도 기술이다. 공중전 전사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만나는 적기를 모조리 다 격추시켜서 살아돌아온게 아니라 불리할 때 도망칠 줄을 알았던 사람들이다.

도망치는 기술은 간단하다. 역시 적에게 처음부터 꼬리를 보여주지 말고 일단 적과 맞서서 적기가 높은 각도로 지나치게끔 만든 다음 그 방향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그러면 적기는 180도를 돌아서 쫓아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지체되고 속도도 느려진다. 반면 나는 적기가 선회를 할 동안 속도를 높여서 갈 수 있기 때문에 적의 무기 사정권 밖으로 벗어날 수가 있다. 그와 반대로, 적과 교차하기 전에 방향을 반대로 바꿔 도망치려고 하면 나는 선회를 하면서 속도가 줄어들고 적기는 직선으로 속도를 높이면서 쫓아오기 때문에 탈출이 더 힘들어진다. 이러한 이탈 요령만 알면 비슷한 성능의 기종으로 적기와 싸울 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교전을 중지하고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도망치고 싶다고 해서 곧바로 적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되고 적에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적기가 내 꼬리 쪽으로 움직일 공간을 없앤 다음 그 방향으로 계속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6. 이탈 방법

4. 정리
맨 위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해야겠다.

Q: 적이 꼬리를 물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A: "←↓→↓← +" 이렇게 하면 공격기가 내 앞으로 와서 저절로 죽습니다.

공중전에 이런 필살기 버튼이 있다면 홈지기도 좋겠다. 그러나 방어 기동은 한두 가지 테크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순진하고도 편한 마음으로 필살기 버튼 조작법 같은 되치기 한판승 기술을 찾는 분들한테 논문을 써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러니 결국 홈지기로서는 그냥 "죽으세요"라고 하는게 역시 순진하고 편한 답이더란 얘기다. 다음 회에 좀 더 구체적인 기동술들을 다루기는 하겠지만, 일단은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기본적인 원칙부터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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