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아식별과 팰콘4.0 (상)

 고대와 중세를 지나 근대까지의 전쟁에서는, 전장에서 맡붙는 군대는 각자 밀집대형을 취하고 있었고 눈에띄는 복장과 표식을 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정규전에 임하는 정규군들에게 적아식별이라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례로, 나폴레옹 전쟁시 영국군은 붉은색의 군복을 입었고 프랑스군은 푸른색을 입었으며, 대대나 연대들은 밀집대형으로 포진을 하고 기동했다. 이러한 부대의 대형은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분명하게 관측하고 적아를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무기의 효과가 미약하였으므로 각개병사의 무기 효과를 집중하기 위해서 산개대형이 아닌 밀집대형을 취하였으며, 무기의 원거리 투사능력이 극히 제한됨으로 인하여 원거리에서 적에게 관측을 당하더라도 교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적이 아군 주력부대의 무기 범위에 들기 전에 밀집한 적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으므로 쌍방간 전술적 기습을 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장상황이 이러하였으므로, 굳이 적의 관측을 피하기 위한 복장을 착용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지휘관이 제한된 지휘통제수단을 가지고 야전에서 대군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해서는 휘하 병사들에게 눈에 잘 띄는 군복을 입힐 필요가 있었다.
 19세기가 되어서야 극도로 눈에 잘 띄는 군복색깔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1차대전때까지도 여전히 위장 효과보다는 자국의 전통이 고려된 단색 전투복이 주류였다.

이러한 고시인성 전투복의 종말은 무기체계의 발달과 맥을 같이한다.

개인화기의 화력이 증가하고 야포, 기관총등 다량 살상무기의 화력이 증가함에 따라 단위부대들은 두가지 이유에서 밀집대형을 포기하게 되었는데, 첫째로는 예전에는 밀집 대형으로만 발휘할 수 있던 화력을 소수의 전투력으로도 동일하게 발휘할 수 있으므로 밀집 대형으로 화력을 밀집시킬 필요가 없어졌으며, 두 번째로는 증가된 적의 화력에 대하여 밀집대형으로는 대량의 사상자 발생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력이 대폭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위 지휘관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배웠던 밀집 대형 전술을 답습함으로 인하여 남북전쟁과 1차대전에서는 매 전투마다 상상하기 힘든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점차로 대형이 산개되고 지휘통제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더 이상 아군끼리의 필요성으로 인한 고시인성 군복을 착용할 이유가 없어졌다. 반면, 무기 사거리가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에 원거리에서라도 적을 발견하면 그 적에게 화력을 투사할 수가 있게 되었으므로,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야전부대들의 당면한 과제는 적에게의 노출을 가급적 피하여 먼저 적을 공격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적에게의 노출을 피하기 위해 시인성을 낮추면 불가피하게 아군간의 식별능력도 현저하게 저하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발견하면 서로 숨어서 먼저 쏘려고 하지 내가 누구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먼저 알려줄 생각은 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는 드물던 오인사격이라는 것이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상당히 빈번해졌다. 공식 전사에는 아군간 교전과 피해가 정확히 기록되어있지는 않으나, 여러 군사역사 저자들은 오인교전이나 사격은 굳이 언급되지 않고 공식적으로 묻혀졌을 것이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당시 아군의 전방 지상 부대들이 아군 공군의 융단폭격을 받았던 일마저 알려져있다.
 전장에서 적아 식별이 힘들어지게 된 주된 이유가 군대의 산개와 은폐기술 향상이라고 한다면, 아군간의 오인사격은 산개와 은폐기술 향상에 따르는 지휘통제능력의 향상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장에 있는 군인들은 확실하게 아군이라고 확인하기 전에는 일단 적이라고 간주하려는 경향(이런 경향은 게임을 해봐도 나타난다.)이 있으므로, 오인사격이나 아군간 교전은 짧은 시간에 적아구별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폐기술이 향상되어 접적 당사자가 자체적으로 적아구별을 쉽게 하지 못하게 된 이상, 추가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추가정보는 당연하게도 지휘계통이나 통신계통을 거쳐서 얻을 수밖에 없으므로, 아군간 오인 교전은 지휘통제능력이 미비한 결과인 것이다. 실제로 아군 사격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상황은 포병-일선부대, 공군-지상군, 폭격기 승무원-전투기 등의 경우과 같이 접촉 당사자간에 의사소통수단이 극히 힘들거나 불가능한 경우들이다.

 최근 미국이 치르는 전쟁에서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오인사격, 특히 전체 전상자 중에서 아군 오인사격으로 인한 사상자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전시가 아닌 평시의 폭격훈련장에서조차 오폭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밀 현대무기의 실용성에 대한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전에서의 미군의 오폭으로 인한 사상자 비율이 증가한 것은 전체 전상자 수가 감소하였음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오인사격 사상자 비율이 높아졌고 무기의 정확성 증가로 인하여 매 오인사격시에 사상자가 증가하였으며 첨단장비로 인하여 오인사격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쉬워진 것일 뿐, 오인사격 빈도 자체가 절대적으로 증가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전의 오인사격은 수십만명의 적을 궤멸시키는 동안 28건이었다.) 2차대전이나 월남전등에 비해서 은폐기술이 더욱 향상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인사격이 줄었다면, 지휘통제 능력의 향상을 통하여 접적 당사자가 적아식별을 위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1km밖에 전차가 한 대 있다고 하자. 2차대전때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실루엣과 국적표식 등을 확인하여 적아구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가 제한되는 상황, 즉 역광상태라서 표적의 실루엣만 보이고 국적 표식이 보이지 않는데 그 물체가 적의 전차를 노획하여 아군 마킹을 한 것이었다면? 관측 당사자는 정보의 제한 때문에 그것을 적 전차로 오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현대의 군대라면 상급부대나 기타 지휘통제 기구(AWACS라던가 JSTARS와 같은)에 문의를 하여 제한되는 정보를 보충함으로써 오인 교전을 줄일 기회를 가질 수가 있다. 물론 현대전에서도 시각이나 기타 충분한 적아구별을 위한 정보의 제한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결국 오인 교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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