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아식별과 팰콘4.0 (하)

이제 게임에서의 적아식별 이야기를 해보자.

 게임에서는 적아식별이 의도적으로 쉬운데, 이는 당연하게도 게임성의 향상을 위한 목적에서이다. 게임은 대부분 교전 그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하는데 실전에서와 같이 은폐를 추구한다면 교전이 벌어질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전장환경 의 시각적 영역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게임중 대부분(특히 비행 시뮬레이션)에서는 무기의 식별과 모니터의 시야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유닛에 라벨을 표시한다. 라벨 표시는 무기 종류와 거리를 표시해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적아식별을 해준다.
 적아식별은 어떻게 하면 되지요?라고 질문한다면, 라벨과 색깔로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거의 모든 게임에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팰콘4.0의 매뉴얼에서조차 우리의 보나니 아저씨는 라벨을 켜기를 권장하고 있다.) 적아식별에 관한 모든 논의는 더 이상 불필요하다. 이제 다음 단계는, 게임에서 익힌 대로 지금 당장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자동차 위에 붙어있는 라벨을 보고 국적과 차종을 구분해보는 실습을 해보는 것이다. 실제 세계에 라벨이란게 어디 있느냐고? 헛소리 하지 말라고? 죄송하다. 게임에 라벨이 있어서 실제 세계상에서도 라벨이 있는 줄 알았다. 여하튼, 게임을 잘하고 싶으면 그냥 라벨을 켜고 하면 된다.
다만, 홈지기에 대한 분노는 잠시 접어두시길. 이것이 게임에서의 적아식별에 대한 논의의 끝은 아니다.

 라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에서의 분명한 적아식별법을 위한 대안중 하나이다. 라벨을 켜라는 것을 해답으로 원치 않는다면, 라벨이 아닌 어떤 종류의 답변을 원하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적아식별은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이미 팰콘의 여러 기능들을 통한 정보의 종합 및 분석방법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키보드 한두 개를 눌러서 분명한 산수공식처럼 얻을 수 있는 적아식별법 단축키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 세상에는 라벨이 없다. 마찬가지로, 실제 세상에는 100% 맞는 적아식별법이란 것도 없다. 실제 세상에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아군 오인사격으로 인한 한명의 희생도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실제 세계의 적아식별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해왔던 바와 같이, 적아식별은 단편적인 "방법"이 아니라, 주어진 수단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하는 기술을 통하여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마린을 생산하려면 단축키 뭐뭐를 누르면 된다라고 답변할 수 있지만, 적진을 살피는 방법에 대해서는 단축키가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팰콘 플레이어에게 라벨을 켜고 플레이하라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라벨을 켜면 점수상으로는 20%가 깎이지만, 홈지기의 생각으로는 전투감각이 80%는 바뀐다. 사실성이 깎이기 때문에 라벨을 켜고 하고싶지 않고 그때문에 적아식별방법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일단 가상하다. 그러나, 라벨을 켜는 것이 비사실적인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100% 확실한 적아식별방법을 요구하는 질문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게임 공략법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AWACS에 적아식별 요청을 해서 적군이라고 답변받고 사격했더니 아군이더라. 게임 개떡같다. 적아식별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다음의 사례들을 보라.
 아파치 헬기가 전방으로 출격해서 미확인 차량을 발견하고 무전으로 지휘관에게 위치를 보고했다. 지휘관은 그지점에 아군은 없으니 사격하라고 반복해서 확인하였으며 조종사는 명령에 따라 사격했다. 표적은 명중했고, 아군이었다.
  다른 아군 부대가 이미 지나가고 없는 지역으로 전차대대가 전진을 하고 있던 중 전방에서 미확인 차량을 발견하였다. 작전계획상 그시간에 그지역에는 아군이 없어야 하므로 대대장은 사격명령을 내렸다. 사격한 표적은 부대 이동중 고장나서 뒤쳐져 수리차량을 기다리고 있던 아군 차량이었다.
  모두 걸프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 26건이 더있었다.

 오인사격은 여러 가지 악조건이나 실수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게임에서도 오인사격이 발생할 소지는 항상 있다. 팰콘에서 오인사격이 발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팰콘의 전장환경이 실제 세상과 그만큼 비슷하여 불확실성의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오인사격을 100% 방지할 수 있는 식별비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인사격의 여지를 줄일 수 있도록 정보 분석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팰콘에서 오인사격을 했다면, 그것은 팰콘의 적아식별 기능 묘사가 잘못되어있거나 적아식별 비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적아식별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적아식별을 위한 항전장비 운용 및 판독능력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체 매뉴얼의 영역이지, 전술의 영역은 아니다. 기체탑재 항전장비가 제공하는 적아식별 기능은 분석해야 할 다양한 정보중의 일부일 뿐이다.

  특히 원거리의 무기 투사를 추구하는 현대전에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표적 탐지수단과 정보전달 수단이 제공된다. 적아식별을 시각 정보에 의존하려는 태도는 이 모든 현대전의 첨단장비와 시스템의 능력을 거부하고 2차대전때의 방법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빚는다. 우리는 부대 산개와 은폐기술이 발달하고 정보 소통이 제한되던 2차대전당시 아군간의 교전으로 인한 피해가 높았다는 것을 이미 논의했었다.

 전장에서의 정보수집과 분석을 시각이나 단편적 정보에만 의존하려는 태도를 피하면 교전 자체는 오히려 간단명료해진다. 다음의 소총 분대들의 예를 보자.
 소총분대 A와 B는 각각 최전방 진지 점거임무를 맡았다. A 분대는 임무를 맡은 즉시 맡은 진지에 들어가서 열심히 경계를 펼쳤다. B 분대는, 분대장이 상급 부대 상황과 인접 부대 상황, 적정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받고(실제 작전이라면 필수요소이다) 그를 분석한 결과, 분대 진지로부터 3/9 라인 전방에는 일체의 아군이 행동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전방에 일단의 병사들이 나타나면, A분대는 적아식별을 위해 육성이나 시각적 정보를 통해 적아식별을 하기로 하였고, B분대는 일단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고 분대장의 명에 따라 발포를 하기로 하였다. B분대의 현장 적아식별은 기존의 정보를 재확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하는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 실제 교전이 발생하면 당연하게도 B분대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조종사의 주장을 들어보자.
  "대대 임무 목록에서 BAI 임무를 골라 1번기로 출격하였다. 임무 지역인 STPT 3과 4 사이에는 수많은 지상 표적이 레이다로 확인되었다. 매버릭 화면으로 봐도 전차 모양이 구분이 안되고, AWACS에 물어보면 모른다거나 너무 늦게 대답하기 때문에 유용하지 않았다. 접근하여 확인하려고 하면 피격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마땅히 적아식별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가진 무장을 소모하지 않고 귀환하면 비효율적이니까 아무 표적이나 락온해서 폭격을 하고 왔다. 결과는 아군 파괴였다."

 위 조종사는 가능한 적아식별방법을 찾으려 애썼으나 팰콘의 적아식별 기능이 애매하고 매버릭 화면의 묘사가 비사실적이라서 적아식별에 실패하였고 아군을 오폭하게 되었다라고 생각한 독자께서는 아마도 공대지 임무를 하면서 아군 오폭을 밥먹듯 했을 것이지만, 완전히 틀렸다. 이 조종사는 A 소총분대의 예에서처럼 정보수집과 분석을 소흘히 하여 전투에 실패한 것이다.
 전투기 출격 임무에서는, 소총 분대에서처럼 이륙 전에 이미 가용한 정보의 대다수가 주어진다. 공대지 임무라면 표적의 위치, 모양, 이동 방향, 예상 위협등이 정보로 제공된다. 위의 조종사는 이륙전 정보를 하나도 획득하지 않고 비행에 올라갔다. 이륙전 브리핑 내용에만 신경을 썼더라도, 표적의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아군 오폭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이륙전 브리핑을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MFD에 나타나는 FLOT 선을 주의깊게 봄으로써 오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FLOT 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그 선 부근의 적아구별은 상당히 불확실하지만, 통상 FLOT에서 20nm 이상 너머의 표적은 거의 확실하게 적이다. 그러므로 적진 후방으로 들어가 날면서 발견하는 물체의 적아식별이 안된다고 해서 공격을 하지 않고 도리어 아군 진영으로 넘어와서 미확인 표적에 공격을 한다면 조종사의 전문적인 임무수행이라기보다는 코메디언의 원맨쇼에 가깝다. 결과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지만. AWACS의 정보도, 통상 어떤 표적을 지정해서 그것이 적입니까 아군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정확한 대답이 잘 안나오지만, 적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위치를 제대로 알려준다. 단, 그 위치에 가서 제대로 폭격하는 것은 순전히 조종사의 몫이다. 최악의 경우 어떤 수단으로도 적아식별을 하지 못하였다면 폭격을 하지 말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곳에나 폭격을 한 것은 조종사의 전과 욕심이 초래한 재앙이다.

 정리해보자.
1. 이륙전에 표적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다는 것을 브리핑시에 알려준다. 이것으로도 80%는 충분하며 사실상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2. 비행에 올라가면 MFD에서 아군과 적군의 경계선을 불확실하게나마 그려준다.
3. 매버릭 화면이 있다면, 이동하는 지상부대의 이동 방향을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브리핑 정보를 토대로 맞는 표적인지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4. AWACS에게 물어보면 불확실하게나마 지정된 표적의 적아식별 여부를 알려주고, AWACS가 원하는 표적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준다.
5. 추가해서, 윙맨으로 출격했다면 AI 리더는 아군을 오인사격하지 않으므로 리더만 잘 따라다녀도 원하는 임무목표에 공격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아식별 방법이 없어서 걱정인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위에 나열한 방법 말고도 더 있을 수 있다. 각각의 정보는 항상 조금씩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팰콘이 잘못 만들어져서가 아니라, 전쟁의 고질적인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전형적인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길은 가용한 여러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하는 것이며, 팰콘4.0의 조종사가 위의 다섯 가지의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할 능력만 있다면 표적구분에 실패하는 일은 사실상 없을 것이다. 이정도의 정보 분석에 이르면 정보가 불충분해서 아군을 공격하는 상황보다도 단순히 기기 조작의 오류가 초래하는 아군 오사가 더  위험하다.

 적아식별 방법에 대한 질문에 "라벨을 켜십시오"가 궁극적인 답은 아니었다. 그럼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님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각각의 정보 획득 방법은 매뉴얼에 나온다. 적아식별 방법이 궁금한 조종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 획득의 방법이 아니라,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일 것이다. 실전에서는 정보부서에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일선의 군인은 그 정보 보고를 토대로 정보부서에서 만들어준 교전규칙에 따라 교전을 한다(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일정 경계선을 넘는 표적에 대한 무제한의 발포권을 부여받기도 한다.). 접촉 현장에서는 기존의 정보와 대조하는 작업을 하여 교전 규칙 적용을 판단하는 것이며, 미확인 물체와 접촉하여 거기에서 새로운 적아식별 정보를 얻으려 시도하는 것(통상 생각하는 좁은 의미의 적아식별)은 전체 적아식별 절차중 제한된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정보 수집과 분석, 교전규칙 적용등의 모든 절차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이 능력은 단축키를 외우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노하우의 영역에 해당한다. 이것이 적아식별방법이 무엇인가요?라는 대답에 간단한 두세 줄의 문장으로 대답할래야 대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종종 가장 위험한 적은 무기를 나에게 겨눈 적군이 아니라 전투의 승리를 자동판매기에서 뽑으려는 스스로의 나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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