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
이 강좌는 저의 개인적인 간접체험의 결과물입니다. 이후에도 말씀드리게 되겠지만, 이 강좌는 "공중전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가상적인 해답의 집합입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최상의 답변은 실제 파일롯이 내릴 수 있겠으나, 모니터 파일롯인 저로서는 그러한 기존의 군의 노하우를 완전히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구하여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 자료들을 이해하였으며, 부분적으로는 시뮬레이션 자체의 노하우를 포함시켜 이 강좌의 구조를 완성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공중전투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그 체험도구가 전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하여 실제 공중전술을 연구발전시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전투비행시뮬레이션 강좌인 셈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 강좌는 단지 게임들을 잘하기 위한 팁 모음집은 아니며, 보편적인 공중전투의 원칙과 방법, 조종사의 사고방식이나 전술적인 판단기준등을 이해함으로써 보다 거시적인 면에서 전투비행시뮬레이션을 잘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하나의 지침으로 쓰일 수 있고자 합니다. 그를 위해서, 실제 파일롯들이 겪는 문제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생각하는가 등등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글을 썼습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데이터가 아닌 전술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할 때 때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포함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전투에는 단일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PC의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 공중전투를 가상적으로 체험해보기 위한 것"이라는 목적에 입각해서 PC 전투비행시뮬레이션을 하고자 하는 분께 제가 가진 나름의 자료와 노하우들을 함께 공유해드리고자 합니다.
비행시뮬레이션이 발전해오면서 실제 공중전투와 전투비행시뮬레이션의 이론간의 격차는 점차 해소되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전술과 교전의 노하우만 가지고 본다면 사실상의 차이가 거의 없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플심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있다는 점, 인터넷을 통하여 실제 공군의 교범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리얼리티 향상으로 인하여 실제의 공중전술이 모니터 파일롯에게 역시 실질적으로 유용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 실제 교범이나 전투기 매뉴얼을 구해서 보는 것은 이젠 흔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때문에 90년대 중반부터 계속 업데이트되어온 이 강좌 내용정도는 다른 문서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문서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을 간략화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면, 플심 매뉴얼에 있는 기동 설명들은 지면관계상 기동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외관상의 모습이나 실행방법등을 설명하는데 그칩니다. 또한 에너지에 관한 설명도 불과 한두페이지에 걸쳐서 짧게 언급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고 실전에는 그다지 유용치 않은 단편적인 지식전달에만 그칠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각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거기에 덧붙여진 이후에야 비로소 그런 자료들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곤 합니다. 이 강좌는 그러한 간격을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노하우로 커버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글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본격적인 강좌로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비행시뮬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비행시뮬레이션을 대해야 하는 것인가를 대충 짚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시뮬레이션에 대한 정의나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 관점을 다른 분들께 강요해서 이대로 생각해야만 진정한 사이버 파일롯이다라는 식의 도덕적 우월주의 따위를 부르짖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의 강좌의 진행 관점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그만큼 내용에 대한 이해가 잘 뒤따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뮬레이션에 대한 관점이 다르면 그것으로 수행하는 전투의 모습도 역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SIMULATION"은 "모의실험"입니다.
그렇다면 비행시뮬레이션은 무엇을
모의실험 하는가? 당연히, 비행기와 비행, 그리고 공중전투에 대한 모의실험이 되겠죠. 단,
우리가 다루는 것은 게임으로 제작된 PC용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입니다. PC 시뮬레이션
게임은 과학용 시뮬레이션이나 훈련용 등과는 달리,
실제 현상의 모의실험으로부터 과학적 실험값을 산출하거나 실제 조종사의 훈련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PC용 시뮬레이션의 궁극적인 목적은 유희에 있다고 하는 것이 좋겠죠. 사실적이라거나
기타 등등의 어떤 설명을 붙이더라도, 결국은 유저에게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수단이며,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든 하나의 상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만약 시뮬레이션을 하는 목적이
단지 일반적인 의미의 유희에 있다면, 비행 시뮬레이션은 파괴본능의
대리충족이라는 면에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재미를
충족시키는 훨씬 훌륭한 아케이드 게임은 많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비행시뮬레이션을 하는
우리들은 시뮬레이션에서 유희 이외의 무언가 다른 것을 얻는다고 해야 시뮬레이션의
존재의의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가상파일롯들은 그러한 "그무언가"를
위해 비행시뮬레이션을 한다고 자부심 있게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고차원적인
이상을 누구보다도 추구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하드코어 매니아임을 증명하려는 수많은 플심인의 글월들은 마치 나치독일에서
자신이 유태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정도로 대단히
열성적인 내용과 표현들에 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아케이드 게이머와
구별지으려는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비행시뮬레이션이 아케이드
게임과 다른 "그무엇"이란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행시뮬레이션은 "간접체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일등과 마찬가지로 실제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컴퓨터상에서 환경을 제공하고 그것을 체험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체험은
역사적 가상 체험이지, 공중전술의 학습을 위한 체험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PC 시뮬레이션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조종사가 되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상체험을
보다 리얼하게 경험하기 위해서, 전술과 역사에 관한 공부는 필수적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많은 사이버파일롯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해야겠죠.
어떤 경우에서의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이 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답변의 관점은 "실제 조종사가 하는 대로"가 됩니다.
그리고 이 해답은 모든 종류의 비행시뮬레이션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행시뮬레이션이 사실의 재현에 있어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벽한 현실이론의 맹목적 적용이 구체적인 각각의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정한 상황에서
항상 정확히 맞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플레이어가 전술과 기동의 원리를
잘못 적용함으로써 나타나는 격차도 있는데, 그것은 플레이어
스스로의 한계이지 시뮬레이션 자체의 한계는 아닙니다.
부분적으로는 특정한 게임에서 특정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시뮬레이션의 재현의 한계로 인해 특정한 게임에서만 적용되거나 혹은 강조되는 예외적인 경우일 뿐으로, 일반적인 공중전투에 관한 보편적인 해결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개별적인 특성들은 강좌에서 애써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아케이드 게임과 비행시뮬레이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케이드 게임이라면, 적들은 단지 죽어주기 위해서 등장하며 이편의 행동에는 별반 상관 없이 일정한 행동 루틴만 가지고 움직입니다. 그러나, 비행시뮬에서의 적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AI로 무장을 하고서, 그들 나름대로 일정한 임무를 받고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비행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달성하고 플레이어의 임무를 방해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온라인 아레나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또한, 아케이드 게임은 아군과 적군의 피해비율이 극히 불균형한 반면, 비행시뮬레이션은 아군과 적군의 피해비율에 있어서 아케이드 게임보다 훨씬 균형적입니다. 사실은비행시뮬도 재미라는 요소를 첨가하기 위해, 그리고 AI의 한계 등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보다 상당히 적군의 손실이 높은 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트 전투기의 경우에 한 조종사가 한번 출격에 상당히 많은 적기를 격추한다거나 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난이도와 임무에 따라서는, 아군이 일방적으로 궤멸적인 패배를 당하는 일도 흔히 일어납니다.
적기를 격추하기 힘들다던가 또는 캠페인에서 살아남기 힘들다...이것들은 모두 당연합니다.
2차대전중 각국의 수십만을 헤아리는 조종사들중,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전체 참전 조종사 숫자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시뮬레이션에서도 캠페인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쉬울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실제 전투조종사라는 것은 단지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 혹은 폭격을 제대로 성공시키기 위해 수년-수십년간씩 정부의 예산으로 직업삼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성공을 보고서 하루아침에 또는 단지 몇달간 조이스틱을 잡아본 경험만으로 단번에 에이스가 되겠다느니, 또는 리흐토펜을 능가하는 조종사가 되겠다느니 하는 것은 한낱 꿈에 불과할 뿐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접한 전투기 시뮬인 "Red Baron"을 접할때만 해도 앞뒤 구분도 못하고 주변 조망을 이해도 제대로 못해서 근처에 있는 적기를 제대로 발견하지도 못했으며, 전투는 커녕 기본적인 선회조차도 제대로 할 줄 몰랐습니다. 모든 사이버 파일롯은 이러한 초보시절을 반드시 겪습니다. 그런 기본 비행도 제대로 못하는 조종사가 공중전에서 적기를 격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술적인 능력이 서로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1대1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50프로가 되며 적기를 몇 대 격추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이냐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플레이어의 일차적인 관심은 생존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게임이니까 생존을 별 문제삼고싶지 않고 귀찮은 공부 없이 죽고 죽이면서 즐겁게 놀고싶다고 한다면,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닙니다. 다만 그러면 전장에서 순전히 경험만으로 노하우를 쌓아서 적기를 격추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데 예측 불가능한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자면, 매뉴얼도 한번 안보고 고수인 친구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서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면 백날 깨져봐야 그렇게 깨지는데서 얻는 노하우만 가지고는 테크트리 올리는 법도 아마 제대로 익히지 못할 것입니다.
매뉴얼 숙지는 필수입니다. 최근의 전투비행시뮬레이션 매뉴얼들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단지 소장가치등의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주어진 항공기를 조종하기 위한 기본 조작능력 숙달을 위해서 매뉴얼 숙지는 기본중의 기본으로써, 누가 시켜서라던가 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보다 나은 비행을 위해서 새로운 시뮬레이션은 정품으로 구입하여 스스로 매뉴얼을 읽는 습관을 붙이도록 합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 귀찮더라도, 최소한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사전 찾아보듯이 필요한 부분만이라도 찾아보도록 합시다. 매뉴얼의 내용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며, 대한민국의 정규 의무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혹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쉽게 느껴지므로 매뉴얼의 수준이 그것을 읽는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 게시판등에 조종법같은 매뉴얼 내용을 질문해봤자 매뉴얼 이상의 답변은 나오지 않으므로, 뭔가가 궁금하면 매뉴얼을 보는것이 오히려 더 빠른 길입니다. 한 가지 종류의 시뮬레이션의 모든 조종키를 숙달하기란 어느정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스타크래프트의 3개 종족의 단축키들의 갯수를 세어본다면 비행시뮬레이션의 키조작의 어려움에 대해서 불평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시뮬레이션은 적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는 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살아있고 적을 죽일 수 있어야 결과적으로 재미도 있겠지요. 자신의 생존, 이 점에 입각해서 본다면 모든 문제는 달라보일 것입니다. 뻔히 위험한 상황속에 뛰어들어 뛰어난 손재주로 적기 두세대를 격추하고 죽어 버릴 것이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아서 경력을 유지해갈 것이냐의 문제는 전투시의 행동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저의 모든 강좌내용은 적을 많이 죽이기가 아니라 임무에서 살아돌아오기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될 것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