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싸워야 하는가 *
희생은 목적으로만 합리화된다
일전의 다른 글에서,
전장에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군인의 시각에서 정치가의 전쟁 의지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군인은 정치가의 결정을 자의적으로 비판할 입장은 아니다. 개전과 종전은
100% 정치가의 몫이고, 정치가가 전쟁을 결정하면 군인은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것이
유일한 할 일이다. 전쟁 행위의 이전에는 근본적으로 전쟁의 정치적인 목적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전쟁의 목표가 정해진다.
그리고, 전쟁의 목표가 정해지면 그 전쟁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한
여러 작전들이 계획된다. 그리고 그 작전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투들이 존재하게
된다. 즉, 모든 개별 전투들은 적군이나 아군, 혹은 양자의 계획적인 의도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여기서 계획적인 의도란 곧 작전 목적이다. 목적 없는 작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목적 없는 전투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군이 의도하지 않았던
교전이라고 해도, 적의 의도를 저지하는 것이 아군의 교전 목적이 될 것이다. 전장의
병력은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적을 만나면 싸우고 잘싸워서 이기는 병력이
많으면 전쟁에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력은 명확한 목표를 가진 채로
작전과 임무에 투입되고, 그 목표들역시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그보다 상위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즉, 각자 독립된 개별 전투들이
모여서 전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행위가 그 아래의 세분화된 전략, 전술, 전투들을
통해서 수행된다. 아무리 많은 목숨이 희생되는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무의미한 전투와
살육으로 점철되고 전개되는 것은 아니며, 무의미한 전투와 그로 인해 발생한 무의미한
피해들이 전쟁과 전투원이라는 이유로 결코 정당화될 수도 없다.
개별 임무들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저항력이 있는 적을 일부러 찾아 나서서 쌍방의 물리적인 파괴를 추구하는 작전이라는 것은 계획되지 않으며, 극히 예외적인 작전형태가 아닌 한 적의 저항이 더 커지는 것이 임무의 성공이 되는 경우도 없다. 대책없이 무작정 적을 찾아다니다가 만나 전투를 벌여서 단지 적보다 더 잘싸움으로써 전투와 전쟁의 승리를 추구한다는 따위의 개념은 군사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교전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대책 없이 적과 만난 뒤에 전투를 잘해서 이기겠다는 임무목표를 세우는 지휘관은 없다는 얘기다. 계획된 작전이란 분명하게도 아군의 임무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적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성공 포인트이다. 적을 더 많이 만나서 더 많이 죽일수록 더 큰 승리가 된다는건 없다.
폭격 임무라면, 적의 전투기나 대공
방어를 만나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물론, 그것은 독실한 신앙심을 통해서 기대하는
결과가 아니라, 임무 입안시에 정보 분석을 토대로 적의 저항이 최소가 될 경로와
방법을 택하여 임무 제원을 계획함으로서 추구하는 것이다. Fighter sweep 임무도,
적기를 찾아나서서 격멸한다는 간단한 설명만을 보면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작전 자체의 목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fighter sweep 임무의
목표는 적의 공중 저항이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임무 수행 중 적의 저항을
만났다면 강제로 그 저항을 제압하는 것이 임무중목표 달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이지만, 공중전 적기
격추숫자가 sweep 임무의 성공 기준은 아니다. Fighter sweep 임무에서도,
적기를 한대도 구경하지 못하고 귀환했다고 한다면 해당 지역의 적의 공중 위협이
없다는 임무 목표를 확인한 것이므로 일차적으로는 전투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성공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이 저항력을 숨기기 위해서 아군의
sweep 임무부대에 교전을 회피했다는 식의 적 대응은 다른 임무를 통해서 해결해야
할 다른 종류의 문제가 되므로 논외로 한다.) CAP 임무도, 주어진 시간동안 적과
한번도 교전하지 못하고 맡은 지역의 순찰만 하다가 귀환했더라도 임무 목표에 입각해서
보면 임무를 성공한 것이다.
임무
목표에 따라서는 적을 적극적으로 발견하여 격멸하는 것이 임무 목표인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조직이 무너진 적의 잔존 병력을 소탕하는 것이라던가
공중전력으로 적의 지상 부대를 찾아서 섬멸하는 등 저항능력이 없는 상대를 찾아서
섬멸하는 형태의 임무이지, 적의 저항능력의 중심을 찾아서 소모적인 교전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적과 물리적으로 충돌해서 적을 더
크게 소모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작전 목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아군의 피해를 키울
뿐만 아니라 적 전투력을 물리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은 전쟁 승리 혹은 전투 승리에조차
별다른 큰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중요한 전술지형이 있고
그곳을 전차 100대로 이루어진 적 부대가 방어하고 있다고 해보자. 얼마간의 전투
후, 적 전차 70대를 파괴하고 30대만 남았더라도, 적이 방어의지를 가진 채로 해당
지점을 장악하고 있다면 작전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반면, 100대의 적 전차중 30대를
격파하고 70대가 남았더라도, 적이 방어의지를 상실하여 철수나 항복 혹은 도주를
하여 목표지점이 아군의 수중에 떨어졌으면 임무는 성공한 것이다. 즉, 적을 물리적으로
격파하는 것은 임무 성공여부의 척도가 될 수 없고 교전행위란 본질적으로 아군의 의지를
강요하고 적의 의지를 제압하기 위한 과정에서 상호 의지의 대립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며 임무 성공여부는 누구의 의지가 달성되었는가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판단될 수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10대의 전차를 상실하면서 하루에 미국 전차 50대를 파괴하면, 다음날 미국 공장에서는 100대가 나오고 독일 공장에서는 5대가 나오는 식이었다. 독일군이 적과 만나는 전장에서 전투를 아무리 잘해도 그것이 전쟁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전술상황에만 기여할 수 있다. 공장의 생산량이 전장의 소모량을 보충할 수 없는 현대전에서는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질 법도 하지만, 반면 현대전에서는 지휘통제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적의 저항능력을 궤멸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적의 일선 전투부대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놓이지 않는다. 설령 적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저항능력이 없는 적을 격멸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지, 아군 전투기 10대가 적진으로 가면서 아군의 작전행동을 다 노출시키고 적 요격기 10대의 출격을 예상하는 따위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홈지기는 교전행위가 그자체로서 전투나 작전의 주된 목적이 아니라 가급적 피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교전상황의 관점을 이해해야만 전투와 작전, 전쟁 수행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느낄 것인가
시뮬레이션 게임을 간접체험의
수단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전쟁의 어떤 부분을
체험할 것인지 명확하게 인식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최근 들었다. 전투시뮬이
묘사하는 전투 그자체를 체험하는 것이 간접체험의 목표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런
의미도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굉장히 많은 부분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말해왔다시피, 아무리 전쟁이라도 교전은 가급적 피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이고 작전이란 본질적으로 적의 저항을 최대한 피하면서 임무목표를 추구한다. 전장의 군인이
희생을 각오하고 전투를 벌이는 것은, 적을 많이 죽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의 전투기량을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다. 아군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고 임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불가피하게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뮬게임을 통하여 전장의 군인을 간접체험해보려는
사람 역시 적을 파괴하거나 죽이는 것을 체험해보기 위해서 싸우는 것도, 전투기량을
뽐내기 위해서 싸우는 것도 아니요 임무 목표에 입각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려는
노력(거기에는 부분적으로 교전행동도 포함되긴 한다)을 하는 그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홈지기는 생각한다. 간접체험이 플심의 목적이라면 싸우는 행위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게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적을 많이 만나고 전투를 많이 치르는 것이 보다 재미있는 것이겠지만, 임무 수행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이 굉장히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BARCAP 임무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적기를
한번도 못만났다면 임무에 성공하였다고 즐거워할 만할 것이다. 반면 전투가 게임의 목적인
한은, BARCAP같은 미션은 기피대상 1호일 것이다.
시뮬게임을 통해 교전상황 자체를 즐기는데 그친다면 넓은 의미에서 아케이드 게이머와 별다른 차별성을 찾기 힘들 것이다. 시뮬게이머는 아케이드 게이머와 의심없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흔히 자부하곤 하지만, 막상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적지 않은 경우 표면적인 자기합리화 이외에는 의외로 그 둘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별해서 묘사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아보인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체험의 대상"의 관점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시뮬 게이머이든 아케이드 게이머이든, 각자가 즐기는 게임의 종류가 무엇이었던간에 전투와 파괴행위 그자체를 추구한다면 그것을 게임하고 논다고 부르든 간접체험이라고 부르든 본질적인 면에서 그 둘 사이에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적과 만나서 전투기량을 발휘하는 전투 그자체는 간접체험의 관점에서는 그다지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무기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적을 제압할 자신감과 그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기량이 없는 군인이라면 애당초 전장에 나설 수도 없을 뿐더러, 아무리 사실적인 게임이라고 해도 생사가 달린 전투중의 판단과 결심의 중압감을 재현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틀에박힌 전투기술만을 보여주는 AI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에라면 더더욱 그렇다. 많은 시뮬인들이 시뮬게임을 잘하기 위해서 실제 전투기술이나 전술들을 참고하려고 하지만, 전투기술을 게임에서 고수가 되어 게임에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받아들인다면 전투기술은 더 이상 체험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전투기술에서 그 실제 의미나 가치가 한참 멀어진 게임 공략 필살기로 바뀌게 된다. 실제로 많은 경우, 배럴롤을 해서 적기를 오버슛시킨다는 것이 3단 콤보 필살기와 비슷한 뉘앙스로 쓰이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프라인 미션이든, 멀티 CO-OP이든, 온라인 아레나든, 경우에 따라서 한번 출격에 적기 여러 대를 격추하고 내려오는 것도 게임으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전과와 임무 목표의 달성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에스코트기가 아무 위협이 되지 않는 적과 교전하다가 메인 편대를 방치해서 메인편대가 전멸해버렸다면, 그 에스코트 조종사가 한번 출격에 5대를 격추했든 10대를 격추했든간에 그를 보고 뛰어난 전투조종사라고 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20번을 거의 무의미하게 죽어놓고 21번째의 출격에서 적기 10대를 격추했다는 식의 무용담이라면, 전과라는 측면에서도 무슨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반면, 메인 편대가 임무수행을 하는 동안 나타난 적기를 에스코트 전투기가 멀리 유인해서 메인 편대의 성공적인 임무수행이 달성되었다면 그 에스코트기는 적기를 한 대도 격추 못했어도 책임을 완수한 것이다. 홈지기라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조종사와 함께 싸우고 싶다. 물론, 임무 달성을 위해서 죽어도 된다는 투의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생명존중 따위의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운운하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게임에서는 흔히 잊기 쉽지만 살아 돌아와서 자신과 자신에게 주어졌던 무기를 온전히 다음 임무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든 임무의 가장 귀중한 목표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정 죽어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전투중의 죽음에 여러 가지 합리화를 하면서 서슴없이 죽으면서 플레이하는 태도를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단순히 재미로 시뮬게임하는 사람들도 엄연히 굉장히 많으니 말이다. 그러나, 임무중 죽을 위험이 있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면, 생존을 추구하는 비행과는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그 두가지의 체험이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되고 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손실을 피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간단히 생략한다면, 그 즉시 플심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연습도구쯤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모든 패키지 게임은 동적 캠페인이든 정적 캠페인이든 싱글미션의 집합이든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플레이어가 어떤 미션에 참가함으로서 게임을 수행하게 된다. 아케이드 게임에서 메인 모드격인 인스턴트 액션 모드는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단지 조종법을 연습해보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미션이라는 것도 실제 전쟁의 작전과 마찬가지로, 임무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아군 전투력의 구성이 있다. 그리고 적의 방어가 있다.
미션 에디터로 직접 만들어내지
않는 한 임무 목표가 없는 미션, 즉 아군 4기가 XX지역으로 아무 이유 없이 비행하고
그곳에서 역시 아무 이유없이 비행하던 적기를 만나서 교전을 벌이는 식으로 아무
목표 없이 전투만 하기 위한 미션이란 것은 어느 시뮬게임에서도 재현하지 않는다. 싱글
미션은 미션의 임무 목표가 독립적이다. 성공과 실패, 그것이 끝이며, 플레이어의
노력의 결과 역시 다른 어떤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임무 달성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면에서 상당히 미습한 조건만을 제공한다. 반면, 동적
캠페인에서의 미션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전체 전쟁 목표에 입각한 연속적인 일련의
작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개별적인 임무들이 있고 각각의 임무의 결과는 상호연계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적 캠페인에서의 미션 진행이 훨씬 더 임무수행에 보람을 얻을 수가
있다. 단순히 반복했을 때 똑같지가 않으므로라거나 깰 미션의 갯수가 많아서라는
이유가 동적캠페인의 장점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아군 전투력의 구성이라는
것은, 깊이 논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아군이 존재하지 않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적의 방어라는 것은 조금은 그 존재가 모호하다.
실전이라면 예상되는 적 방어를 가급적 피할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게임에서는
적 방어가 없으면 게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싱글미션에서는 항상
정해진 적 방어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건 단순히 적이 똑같이 나온다는 문제를
떠나서 굉장히 민망스러운 문제가 된다. 적 방어의 규모와 위치를 정확하게 다 알고
하는 전투란 세상에 없다. 아무리 정보력이 뛰어난 군대라고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적의 저항을 만나서 순간적인 상황조치를 하는 것이 적과 만난 군인이 해야 할 사실상
가장 중요한 책임의 하나인데, 그것을 다 알려주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전투가
아닌 것이다. 싱글미션이라는 구조는 적 방어를 할 때마다 임의로 생성하지 않고 정해진
유닛을 정해진 방법으로 등장시키는데, 두어 번 플레이해보면 적이 얼마나 나오는지, 그리고 대부분
어디서 나오는지도 다 안다. 여러분들 모두 느끼시다시피, 정해진 적군을 죽일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순간 시뮬레이션게임의 미션은 아케이드적인 판수깨기로 돌변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역시 싱글 미션은 그저 연습정도의 단순히 제한적인 체험 도구일 수밖에 없고, 알려지지
않은 적의 방어를 스스로 대비하거나 적의 방어를 제압하는데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동적 캠페인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휘관으로서의 플레이
일개 전투원의 입장에서 교전행위는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노력의 일환이지만, 전투원의 신분을 떠나
작전을 스스로 계획해야 하는 부분까지 게임에서 접하게 된다면 교전행위는 가급적
피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전제는 게이머로서 할당된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관점이 된다. 스스로 적의 저항을 예측하고 가급적
적의 저항을 피할 수 있도록 임무를 계획해내야 하는 것이다. 상위차원의 작전의
오류가 하위차원의 임무성공이나 전투기량만으로 극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게이머
스스로 임무입안까지 해야 하는 플심 게임들에서는 1:1 전투기동술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실제로는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해진다. 그런 임무입안 기능을 제공하는 게임들은,
형식은 전투비행시뮬이지만 전투비행 플심이라기보다도 AI가 아니라 여러 게미머들이
각각의 유닛을 조종하는 점만이 다를 뿐 사실상의 워게임에 가깝다. 스타크래프트에서
게이머의 마우스 클릭 하나로 두세 부대의 유닛의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전담당관 한명(실제 군조직이라면 한명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의
판단과 지휘관의 말 한마디로 수십의 아군 AI나 수십명의 플레이어들의 목숨이 한꺼번에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그 특성상 예하 병력을 소모시켜서 적의 병력을
격멸하는 물리적인 충돌이 상당히 과장되게 묘사되지만, 상당히 문제있는 군인이 아닌 이상 예하 병력을 필요에
따라 소모시킬 수 있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실제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소모품이란 쉽게
보충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전투에 믿고 투입할 수 있는 훈련된
예하 병력은 단기간에 보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예하 병력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늘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실제로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한 통상 개별 임무 달성을 위한 병력의 소모보다는 오히려 임무목표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병력을 보존하는 것이 훨씬 높은 우선순위이다.), 작전 입안자가 가져야
할 전문적 능력, 지휘관의 지도력이나 결단력같은 것들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나를
따르라"의 수준보다 훨씬 전문적이고 고차원적인 것이다. 여러 게임에서 게이머들이
만드는 미션을 보면 그런 프로와 아마츄어의 차이를 굉장히 많이 느낄 수 있다. 적의 대공방어망이 치열한 지역으로
아무 대책 없이 공격하는 경로를 스스로 잡아놓고 작전을 수행하던 중 SAM에 맞아죽고 나서 그
결과를 "게임에서
SAM의 명중률이 너무 과장돼있다" 따위의 게임 사실성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과 10마일만 경로를 우회하면 적 출몰지역을 비켜서
표적에 도달할 수 있는데도 적의 출몰경로 직선상에 에스코트도 없는 폭격편대를
계획했다가 몰살당하고 난 뒤 "이 게임에서는 머리수로 맞장뜨는 것이
확실한 작전 노하우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휘관으로서의
전문적인 시각에 서보는 것 역시 게임을 간접체험 수단으로서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관점이라는 얘기다.
전투원이 개인 전투뿐 아니라 상위차원의 임무 목표를 생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무 입안자도 더 상위차원의 작전이나 전략의 목표를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가용한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쓸모없는 표적을 공격하기 위해 가용 전력중의 상당수를 투입하는 식의 임무 계획이나 전멸할 것이 뻔한 무책임한 임무계획등은 그저 재미있게 즐기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전략상황에 입각한 책임있는 전력 운용이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아군의 상위 전략에 백해무익한 것이 될 것이다. 개별적인 전투가 원치않는 조건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획해야 하는 작전들도 여러 가지 악조건을 무릅쓰고 불가피하게 입안해야 하는 것들도 있다. 물론 아무리 주의깊게 계획된 잘 짜여진 임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임무 계획과 지휘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임무 입안자로서 가용한 자원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가지고 주어진 조건 하에서 상위 전략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임무를 계획하고 효과적인 임무달성의 방법을 찾으며 가용한 전력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하는 등등의 노력 그자체가 임무 계획자의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또다른 형태의 귀중한 체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재미있게 동료들과 놀 수 있는 미션을 만들어 즐기면서 플레이하는 것은 전투원 개인으로서 즐기는데 목적을 둔 플레이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놀이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홈지기가 워게임 매니아이기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플레이어 개인들이 유닛을 조종하는 1인칭 시뮬레이션에서 사실적인 개별 전투환경의 조건뿐만 아니라 전술이나 전략적인 부분까지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기능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기능을 제공하는 여러 게임들에서 그 장점이 충분히 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 싸우는가
플심의 멀티플레이가 특별한
체험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홈지기의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CO-OP 멀티 미션이든 온라인
아레나든간에, 하고 있는 게임이 아무리 사실적이라는 평(이것은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에 불과하다.)을 듣는 것이라고 해도,
비행과 전투의 기본이 안된 동료와 함께, 그리고 또는 가미가제식의 임무를 하면서는 역사적 사실이나 현실을
게임을 통해서 가상체험하고 있다고 결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었다. 아무런 전략적
목적도, 심지어 임무자체의 목표마저 불확실한 작전(즉 실제로는 비슷하게라도 존재할
수 없는)에서라면 게임에서나마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 작전과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간접체험이라는 면에서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게임 그자체를 이기기 위한 전투의 필요성이라는
면에서조차 대체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본질적인 회의가 들었다. 게임에서라도
생존을 우선적인 목표로 간주하니, 작전과 임무를 위해 불가피하게 위험을 무릅쓰면서
나의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저 즐기기 위한 죽고 죽이기식의
플레이에서는 나와 동료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투를 벌이고 희생이 발생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명분을 찾을 수 없었고, 무의미하게 죽느니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시뮬레이션이 간접체험의
수단이라면 기꺼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겠지만, 킬링타임과 쏘고 즐기는 재미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굳이 많은 시간과 때로는 비용을 들여가며 시뮬레이션에 어떠한
매니아적인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깊이있는 간접체험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남기지만, 게임 고수에게 남는 것은 게임 깨기용 필살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작전과 임무 수행, 그로인해 발생하는 희생
등은 더 큰 단계의 전술,전략적인 목적이나 뚜렷한 임무 목표등의 충분하고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가피한
전투의 명분을 이해하거나 혹은 세워가면서 플레이를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간접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하의 전투원들과
전투력을 지휘하는 지휘관(게임 리더)은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적의 저항과
교전을 가급적 피하여 아군의 전투자산을 보호하면서 효과적으로 임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 올린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게임의 사실성이라는 것은, 특히 전장의 재현이라는
면은 단순히 그 게임의 비행모델이
어떻고 하는 것을 떠나서 그 게임을 하는 사람의 취향과 태도에 무척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멀티플레이를 위주로 하는 게임이라면 그러한 플레이어 요소가 90%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플심인들은 자신들이 고차원적인 그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곧잘
주장하지만, 그 고차원적인 무언가라는 것이 사실적이라고 소문난 게임을 하드에 인스톨하는 것으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시뮬게임의 고차원적인 그무엇이란 고작해야
조금 복잡한 키조작법을 외우는 능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우리 스스로
고차원적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에 따르는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깊이있는 체험을 위한 실질적인 충분한 노력들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