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워 솔저스

월남전의 초기에 최로로 시험된 공중강습 작전은 이후의 월남전의 모습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할 무어(Harold G. Moore) 중령의 7기병연대 1대대가 겪은 이아 드랑(Ia Drang) 계곡 전투는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헬기 공중강습 작전이었으며, 또한 월남에서의 베트콩과 미군간의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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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강습 작전은 영어로는 air assult이며, 헬리본 작전을 지칭하는 현재의 개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아 드랑 전투 당시의 작전 용어는 air mobile로, 공중 강습이 공중 침투부대와 통합된 지상 및 지원화력을 포괄하는 의미인데 비하여 air mobile은 단순히 지상부대의 헬기를 이용한 기동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이아 드랑 전투는 초기의 개념인 air mobile이 어째서 air assult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가를 잘 보여준다. 헬기를 이용함으로 인해서 비행장을 점령하거나 넓은 강착지역을 확보할 필요가 없이도 병력의 효과적인 종심 투입과 유지가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다수의 적을 물리적으로 괴멸시킨 결정적인 힘은 강습 부대의 소총탄이 아니라 지상부대와 밀접하게 협조된 포병, 헬기, 고정익 항공기들의 화력 지원이었던 것이다. 이아 드랑 전투에서의 강습 부대의 역할은 어느 곳을 점령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적을 접촉하여 화력을 적에게 유도하면서 스스로 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육군의 현 교리인 입체 고속 기동전은 공중강습 작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므로, 공중강습 작전은 대한민국 육군에도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 군에서는 공중강습 작전을 위해 육군항공 전력을 항작사에서 통합 관리하고, 여단급의 공중강습 부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일반 보병부대에서도 공중강습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군의 공중강습 작전도 종심으로 투입된 부대를 화력으로 어떻게 엄호하느냐가 작전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인데, 현재 중지된 AH-X 사업에서 요구하던 공격헬기의 종심전투능력이란 이런 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아 드랑 전투의 진행경과는 간단했다. 베트콩의 출몰이 있자, 450명으로 이루어진 할 무어 중령의 제7기병연대 1대대는 적을 수색 섬멸하라는 명령을 하달받고 아무런 구체적인 적정도 파악하지 못한 채 강착지역 X-ray에 맹목적으로 투입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강착지역은 월맹 정규군 사단 사령부의 코앞이었으며, 적을 수색하러 움직일 것도 없이 강착지역에 착륙하자마자 2000여명의 월맹군에 포위된 채 치열한 교전에 빠져든다. 공격해오는 월맹군에게 양면으로 포위된 대대는 헬기로 보급과 증원병력을 지원받으면서 강력한 포병과 항공 지원의 엄호 아래 급편방어를 실시하여 3일간 전투를 치른다. 결국 월맹군은 1800여명의 인원손실을 겪고 후퇴하여 최초의 공중강습 작전은 승리로 기록되었다. 이 승리는 부하를 소중히 여기는 할 무어 중령과, 전우애로 뭉친 대대원들이 일궈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이 단순히 전투의 경과와 승패를 영화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공중강습 부대의 창설과 훈련과정에서부터 무어 중령과 그 부하들을 조명해나간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 그 전우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국의 관사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잊지 않고 묘사하여, 흔한 전쟁영화에서 군인들이 자동 전투기계쯤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전장의 군인들도 가족이 있는 한사람의 인간이고 전쟁에서의 한명의 목숨도 평화시의 한명의 목숨과 똑같이 귀중한 것이라는 점을 영화 내내 이야기하고 있다. 전사 재현보다도 이러한 인간적인 면이 영화의 주된 관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똑같이 헬기로 투입되어 적에게 포위되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기술적으로 재현하는데 중점을 둔 블랙호크 다운과는 관점이 상당히 다르다. 한명 한명의 위치와 각개전투까지 세심하게 묘사한 블랙호크다운과는 달리, 위 워 솔저스의 전투장면 묘사는 한 개 소대가 수류탄 한발에 전멸할 정도의 대형으로 카메라 앵글에 맞춰서 몰려다니는 등 부대 대형이나 전술보다는 화면 자체에 신경을 더 많이 쓴 것 같다. 그렇지만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의 결론은 한결같다. 전쟁은 나서는 안된다는 것.
 배우들은 포트 베닝에서 5개월간 훈련받았고 헬기 조종사 역을 맡은 배우는 헬기 조종훈련을 받아서 실제로 헬기를 몰았다고 한다. 보통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들기까지 한두달 정도걸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배우들은 민간인으로 군인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 실제로 군인이 된 셈이다.

 영화는 미군의 승리를 조금도 축하하지 않는다. 무어 중령은 몇배로 우세한 적을 전멸시키는 승리를 거두었으면서도,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는 지휘관으로서 전사한 병사들에 대한 책임감에 가슴아파한다. 월맹군 병력들이 공습으로 죽어나갈 때도 통쾌하기는커녕 진혼곡풍의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며, 적이었던 월맹군 역시 가족을 가진 한사람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다.
 원작의 주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고, 월맹군측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도 영화 전체에 객관적이고 자연스럽게 녹아있다기보다는 형평성을 의식하여 억지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애쓴 티가 난다. 신 레드 라인이나 스타린 그라드 등이 그렇듯 전쟁영화가 감상주의로 빠지고 감독의 전쟁에 대한 개똥철학을 군인역할을 맡은 배우의 대사로 관객에게 강의하는 형태가 되어 버리면 겉잡을 수 없이 비현실적이고 유치해지기 십상이지만, 위 워 솔저스는 원작자들이 실제 참전 지휘관과 종군기자라서 뚜렷한 주제와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신파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상적인 부분이 많으면서도 전쟁영화로서의 중심은 잃지 않은 편이다.

 영화 제목이 그대로 주제를 나타낸다. 즉 그토록 처참했던 전장에 같이 있었던 전우였다는 전우애를 기억하는 것이다.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도 무어 중령의 대대에는 실종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부상자와 전사자까지 모두 수습할 정도로 똘똘 뭉쳐 서로를 위해 싸우고 있었고 그러한 단결력이 수 배의 적에 포위된 상태에서도 조직이 와해되지 않고 전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 전우애는 좁게는 이아 드랑 전투에서 같이 싸웠던 부대원들사이의 것일 수도 있고, 넓게는 군복을 입고 근무했거나 근무하는 모든 군인들간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군인이거나 군인었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아 드랑 전투에서 싸웠던 부대원들의 정서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서는 모가디슈 전투에서 싸웠던 레인저 병사들에게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 군인의 정서란 것이 군복만 입으면 개가 되는 대한민국 예비군의 특성을 말하는 것은 단연코 아니다. 물론 군대에 "끌려가서" 허송세월을 하다 오고 군대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싸기 싫어하는 자기부정형의 예비역이라면 군인의 정서 따위는 생각도 하기 싫을 테니 예비역이라고 하더라도 군인의 정서 운운하는 것을 이해도 못하겠지만.
 홈지기가 민간인 신분으로서 군인의 정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밀리타리 오타꾸라서도 아니고 전쟁에 미쳐서도 아니다. 군인이라는 것도 인간사회의 한 부류이고, 훌륭한 군인의 덕목이란 훌륭한 인격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홈지기는 한창 인격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할 시기에 시나 소설이 아니라 전장의 군인들과 지휘관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보냈지만, 비정상적인 정서를 가진 정신병자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마초주의자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느낀다. 전장의 병사들과 지휘관들은 여러 모로 홈지기에게 인격적인 스승이 되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할 무어 중령 역시 병사들에게, 그리고 영화 관객들에게 인격적인 스승이 될 만한 귀감을 보여주었다. 3인칭의 관람객일 뿐인 홈지기조차도 저런 지휘관 밑에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십, 결단력, 용기, 의지력, 동료애, 희생정신 등은 비단 전쟁터의 군인에게만 필요한 반사회적 덕목이 아니라, 평화시의 사회구성원들에게도 역시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들이다. 그런 점에서, 위 워 솔저스는 일차적으로는 군인들의 정서를 묘사한 영화지만 넓게 보면 인간애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블랙호크 다운이 철저히 군인의 시각에서 군인의 정서를 묘사한 것이라면, 위 워 솔저스는 보다 보편적인 시각에서 군인의 정서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WS5.jpg우리나라는 빨치산 진압부대에서부터 6.25 참전 용사, 월남전 참전용사, 부산 동의대에서 죽어간 전경들, 그리고 단순하게 의무 복무기간을 마친 일반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군인이었던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것을 오히려 당연시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반면 어떤 종류의 전쟁에 참가했든간에 군인으로서 전우를 위해 싸우고 목숨을 바쳐가며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억할 수 있다는 미국의 분위기는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미국이라는 국가가 군산복합체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어서 그렇다는 따위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시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들의 생명을 주저없이 버려가면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 바로 군인들이며, 그들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는 그 임무를 위해 평화시에조차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예우하고 기억해주는 것은 군국주의적 광기가 아니라 그들의 은혜를 입고 있는 사회인으로서의 당연한 보답일 것이다. 징병제 폐지에 대한 논의도 흔하게 나오는 요즘이지만, 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그들을 존중해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회에 없어도 될 암적인 반민주적 조직이니까 가지 말자라는 군 부정이 징병제 폐지론의 근거라면, 징병제 폐지는 오히려 더욱 실현될 수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서라면 그 누구도 군대에 가려하지도 않을 것이고 군인이라는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시라고 해서 군을 필요없는 존재로 치부하거나 비하한다면, 실제로 위험이 닥쳤을 때 과연 누가 우리와 우리의 기족들을 위해서 죽어줄 것인가. 위 워 솔저스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을 것을 준비하고 또 실제로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미군이지만  이 영화는 어느 나라의 군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우리나라의 군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젊은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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