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4월자 

전쟁의 감상 [현충일 기념]

 

 전쟁에 관한 책은 많습니다. 수많은 책들에서 전쟁을 이야기하고, 당시의 전술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며, 용감한 사람들의 무용담을 전합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빠뜨리죠. 바로 인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의 기술적인 면만을 강조하죠. 어떤 전장에서 어떤 무기가 사용되었는가, 어떤 무기가 무슨이유로 상대방의 무기를 이길수 있었는가, 심지어는 전차의 헤드라이트모양새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등등을 파고 듭니다.  무기위주로 전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마치 어떤 무기가 저절로 움직여서 적과 싸운다는식으로 생각합니다. T-34가 4호전차를 능가해서 소련전선이 독일에게 불리해졌고 발지전투는 킹타이거의 출현으로 미군이 엄청난 재앙을 맞아야만했다는식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전투의 전술적인 면을 강조하고 전쟁을 이끌어가는 것은 전술적인것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당시의 상황을 가치있게 기록한 전술서적을 탐닉합니다. 전술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부대를 하나의 생명유기체로보고 단위부대의 행동만을 문제삼습니다. 어떤 행동이 잘되었는가,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야만했는가등등에 대해서 말하고 연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병사들의 죽음을 단지 "손실"이라고 말하고, 한자리에 있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죽음은 "심대한 손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부대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하여 공포에 사로잡혀서 언제죽을지 모르는채 땅에 엎드려있는것을 "공격의 지연"이라는식으로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쟁터에서의 무용담을 즐깁니다. 누가 어떤 고난을 뚫고 얼마나 혁혁한 전공을 세웠는가등등을 읽으며 자신이 전장의 모습을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몇명을 죽였고, 어떤 전차병이 적전차 몇대를 파괴했고, 어떤 조종사가 적기를 몇대 격추시켰다는등의 일화에대해서 즐깁니다.

 이 대부분의 경우에있어서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이 전쟁을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접근방법을 모두 택해본 저로서는, 이중 어떠한 것도 전시의 군대의 모습과 병사들의 모습, 그리고 전장의 모습을 제대로 묘사할수 없다고 단언할수 있습니다. 평화시의 군대조차도 묘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깡패들의 패싸움같은정도의 긴장감조차도 전달하지 못합니다.

 우선 전쟁의 기술적인 입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전장이 인간이 발딛고 있는 장소라는것을 망각합니다. 무기가 만들어내는 전장의 모습이라는 관점은 중요하기는 합니다. 전투자체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죠. 그러나 이는 단지 인간위주로 생각했을때 그런것입니다. 전차병들에 있어서, 셔면전차의 모양이 어떻게 바뀌어왔는가, 또는 BF-109의 어떤형식이 어떤 무장을 하고있는가는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갖고있는 총이 적을 맞출수 있을것인가, 나의 전차가 적전차를 파괴할수 있을것인가, 나의 전투기가 적 전투기보다 더빨리 선회하거나 상승할수 있을것인가만이 문제가 되고 그 요구조건만 충족시켜준다면 그무엇이라도 괜찮은것입니다. P-51B형이 조종석후방이 막힌 형태라고 말할때 단지 그것이 B형과 D형의 구분점일뿐인가? 실제로 그 작은 차이는 책상머리에 앉은 한심한 설계가들의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설계에의해서 그에 탑승한 많은 조종사들이 뒤를 보지 못한 결과로 죽어가야했다는것을 뜻합니다. (후방이 막힌전투기가 많이 나오는 태평양의 에이스를 해보면 왜 이따위로 비행기를 만들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됩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그렇게 안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전술적, 전략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마치 병사들이 기계처럼 장교가 시키는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싸우는줄로압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여기저기서 들어본바로는, 그리고 실제로 군대사회를 경험해본바로는 군인들은 단지 당면한 자신과 전우의 위협에 대응하는 아주 본능적인 행위로써 전투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경우의 역사서에서 우리는 단지 공포심의 증대로인하여 자신들보다 몇분지 일밖에 안되는 적을 상대하여 지리멸렬하고 몰살당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전투의 전술적인 접근은 장교들에게 부대를 통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도구가 되고 어떻게 해서 독일군이 프랑스를 몇주만에 항복시켰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지만, 그래도 전장의 실상을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하나의 예로 롬멜의 Infantry attack을 들어보겠습니다. Infantry attack은 가장 훌륭한 책들중의 하나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입각한 사실적인 기술이 일품이고, 교육적가치도 매우 높은 책입니다. 실제로 롬멜은 1차대전의 경험인 이 Inafantry attack이라는 책으로인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고도 할수 있으며 저역시 이 책의 훌륭함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 잘못인지는 모르지만, 이 infantry attack을 보고 제가 가졌던 제1차 세계대전에관한 상상은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infantry attack이 참호전을 별로 다루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Infantry attack에 의하면 대부분의 전투는 소규모 부대의 기술적인 전투행위이고 1개소대가 한나절동안 사격을 받고도 아무도 사망하지 않을수 있다는 식의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즉 1차대전은 그렇게많은 사람들이 죽던장소가 아니었고 몇몇 운없는 사람들이나 행동을 잘 못한 사람들 정도가 죽어나갈뿐이라는것입니다. Infantry attack에서도 전투에서의 희생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적의 진지에서 발견한 피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것은 둘째문제고) 아군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것을 짐작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금 제가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1차대전의 모습은, 참호속에서의 지루한 나날과, 기관총을 향해 아무런 보호도없이 달려가다가 죽는 모습들입니다. 실제로 참호에서 뛰쳐나와  공격을 하는 연대들은 불과 몇분만에 수백명의 죽음을 맞아야했고 그 대부분은 참호에서 뛰쳐나와 몇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전쟁의 무용담을 즐기는 사람들은 전장에서의 개개인의 모습을 접하기때문에 가장 전장의 모습을 잘안다고 스스로 자부하게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극단적으로 선별된 사실이며, "혁혁한 전공"을 위해서는 운이 필요하다는것을 무시합니다. 미하일빗트만이 적전차를 100대이상 격파했다거나, 하르트만이 적기를 3백몇대 격추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단지 공장의 생산필요량을 늘려주고 더 많은 장례식을 치러야하게 했을 뿐이지 결코 그들이 다른사람보다 뛰어났다는것을 말하는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사람들의 훌륭함을 깎아내려는것은 아니지만, 그런식의 신화적 묘사는 전쟁이 난다해도 나는 안죽을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줍니다. 전장에서 자신이 죽고사는것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완전히 운에 기인하는데도말입니다. 만약 보병이라면, 아무리 각개전투를 잘하고 잘뛰어도 적의 집중사격이나 아무곳으로든 떨어지는 포탄, 또는 적의 예상치 않은 매복으로 언제나 죽을수 있습니다.

 조종사라면, 아무것도 아닌 적의 훈련비행사가 쏘아댄 탄환에 맞을수도, 자신도모르게 다른 비행기와 충돌할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하르트만이나 갈란트보다도 더 뛰어난 비행실력을 갖고도 더 일찍 죽은 조종사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하르트만이나 갈란트, 또는 비트만이 그런 전과를 올릴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그러한 전과를 올릴수있을만큼 다른사람들보다 오래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트남에 참전했던 조종사의 말을 들어봐도 적기를 격추하고말고는 자신의 기량에 달린것이지만 죽느냐 사느냐는 운에 따른것이라고 합니다. 전투비행시뮬을 하는 분들도 알겠지만 아무리 자신이 컴퓨터의 AI를 능가한다고해도 캐리어모드를 끝까지 한번도 죽지않고 살아남는다는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아실겁니다. 많은 전공을 올린 사람들은 수많은 위험을 겪었다는 점으로는 칭송받을만하지만, 그들 자신이 올린 수치상의 전과로인해 칭송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영웅들의무용담은 또다른 크나큰 위험을지지고 있습니다. 바로 죽음을 미화시킨다는것이죠. 아마도 동양권의 특성이겠지만, 아주 열세한 병력으로 다수의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장렬히 전사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장하고 용감하다고 떠벌립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는 쓰레기같은 가치관입니다. 전투에서 적을 몇명더 죽인다고 전쟁에 어떤 도움이 되는것도 아닌데, 어떠한 전술적 필요성도 없으면서 단지 더 많은 적을 죽였다고해서 용감한 행동인 것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는 없을겁니다. 그것도 지어낸이야기라면 더더욱말입니다. 사실이지 후방에서 지연전을 실시하는 부대라고해도 미끼로 그냥 죽는것이 아니라 최대한 살아서 계속행동을 해야하는것입니다. 미끼가 아니라면 불리한줄알면 재빨리 도망쳐야죠. (영화 매버릭에서 멜깁슨이 한말이 생각나는군요. 오늘 싸움에서 도망친자는 내일도 도망칠기회가 주어진다.)

그게아니라 전술적인 가치를위해 지역을 고수하는것이라면 상급부대에서 보고만있어서는 안되는것이구요. 어쨌든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적에게 아군보다 큰 피해를 입히고 전멸한다는것은 사실상 거의불가능한일일뿐만아니라 가치도 없는 일인것입니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죠. 바둑에도 비슷한 격언이 있던가요? 아생후 살타라고..

자 이제 매듭을 지을 시간이 된것같군요.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에 접근하는 세가지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각각의접근방식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위한 가치는 있지만 그모두는 전쟁을 미화시키는경향이 있으며 그어떤 방법만가지고도 전장의 공포감이나 참담한 실태를 올바르게 알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글을 쓴 너는 그 실태를 아느냐...

1차대전이나 남북전쟁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떼지어서 몰려가고 포탄이나 기관총에의해 추풍낙엽처럼 죽어갑니다. 그것들을보면서 예전에는 "저건 거짓말이야 영화적인 과장이야 감독 누가했어?"라는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각종 자료들에서 나타나는 피해율 수치와 기록, 증언들을 구할수 있게된 후의 견해는 영화 Glory, 갈리폴리, 기타등등의 남북전쟁및 1차대전을 묘사한 영화들은 최소한 그 엄청난 피해묘사에있어서만틈은 상당히 사실에 근접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방위였지만 군복을입고 몇년간 생활하면서 나도 저런 상황에서 이름도 모르는 땅의 진흙속에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뼈와 함께 머리를쳐박고 죽어넘어지는 엑스트라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니 결코 그러한 장면들을 장난이나 멋으로 생각할수가 없게되더군요. 그리고 존 키건의 저서 "전투의 실상"에서 병사 개개인을 중심으로하는 역사학의관점을 보고는 그 생각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존 키건은 영국육군사관학교의 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군들을 안전한곳에서 자신들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시간만 허비한다는식으로 묘사했습니다.) 결국 전장은 무기나 전술이 어떻고 훈장이 어떻건간에 살아있다는것만이 다행이고 아름다움도 낭만도 과학도 없으며 오직 매장도못한 전사자의 뼈위에 엎드리고 옆에서 폭발한 포탄으로 전우의 시체가 조각조각나서 내몸에 흩뿌려지는 장소이며 하루하루 내목이 제자리에 붙어있는지를 검사하고 안도의한숨을 내쉬는(폐가 가슴속에 제대로 있을때만 가능하지만) 장소라는것을 깨닫게된거죠.         

 어떻게보면 제가 전쟁을 미화한다고 비난한 그러한 것들을 접하고서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되었다는것은 아이러니칼한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실을 알려는 진지한 자세가 있다면 아주 작은 사실에서도 아주 많은 것을 배울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전쟁을 미화하는 작품이나 철학이라도 그 내부에는 결코 지울수없는 전쟁의 잔인함이 남아있게 마련이므로 원한다면 어렵지않게 그런것들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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