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의 몇몇 정치적 이슈들 *

 같은 소재를 반복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이번엔 다른 관점에서 태극기...에 대한 문제를 짚어볼까 한다.

 태극기... 비평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태극기...는 정치적으로는 중립적 시각으로 묘사했다는 감독의 주장과는 달리, 정치성을 성공적으로 배제하지 못했고 도리어 상당한 이념적 측면의 논쟁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태극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은지 그 비율이야 어떻든간에, 연령층과 상관 없이 감동적으로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그리고 국군의 묘사에 대해서 불쾌하게 느낀 사람도 분명 적지 않게 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면, 한 작품이 여러가지의 해석으로 민감한 논쟁의 소지가 되었다는 것은 감독이 의도했던 바를 관객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혹시 그것마저 상업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바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렇게 같은 영화에 대해서 정 반대의 시각이 나타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 태극기...와 플래툰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내용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영화 플래툰에서는 수색에 나선 소대원들이 부비트랩에 동료 둘을 잃고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마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흥분 상태에서 근처 마을로 가서 결국 주민을 사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사건이 나온다. 태극기에도 매우 비슷한 상황 설정이 있는데, 즉 북진 중 이북 지역에서 우익 마을의 학살을 국군들이 접하고 시신을 수습하려다가 부비트랩에 대원들을 잃고 난 후 흥분 상태에서 발견한 포로들을 사살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두 영화의 에피소드가 설정은 매우 비슷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실제로 전장에서 드물지 않게 발생했을 수 있는 포로 사살에 비해서 마을 주민을 이유 없이 사살하고 아이들을 강간하고 마을을 불태운 사건이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 플래툰은 단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지 미군의 양민 학살을 직설적으로 고발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고 그 장면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반면, 태극기...에서 국군의 포로 사살을 비롯한 몇몇 장면들은 국군들을 학살자로 묘사해서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으로서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매우 비슷한 설정의 두 개의 에피소드가 하나는 비교적 영화의 주제에 잘 어우러져 이해된 반면 다른 하나는 스토리 라인에서 개별적으로 떨어져 나와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일부에서 이야기하듯이 편협한 우파적 시각으로 창작의 자유를 간섭하려는 태도 때문에 빚어진 일일까.

 플래툰의 마을 학살 사건은 그 전개과정이 충분한 시간적 비중을 두고 묘사된다. 지루하고 위험한 수색이 우선 있고, 그 와중에 부비트랩으로 동료를 잃는다. 게다가 경계를 서던 한명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는 병사들이 흥분해서 주변 마을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도망치는 베트콩 의심자를 쏘아죽이기도 한다. 관객은 그 점진적인 과정에 함께 몰입되어서, 병사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마치 같은 소대원이 되기라도 한 듯 1인칭의 시점에서 병사들의 정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마을에서 아낙네가 번즈 상사에게 알아듣지 못할 말로 항의를 할 때 관객은 그 아낙을 보호해야 할 양민으로 느끼기보다는 저 아줌마 죽으려고 환장했나...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결국 번즈 상사의 시각을 따라간 관객들은 마을에서의 사건을 끔찍한 일로는 여길지언정 "광기어린 미군들의 양민 학살"이라고 선악의 구분에 따라서 규정하기는 힘들게 된다.

 반면, 영화 전체 내용중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차지하는 비중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태극기...에서 포로 사살 위협 장면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플래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짧은 묘사로 넘어간다. 인민군에게 학살된 마을로 진입하는 잠깐의 장면, 그리고 시신을 수습하려다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장면까지는 러닝타임상으로 상당히 짧다. 또한 플래툰에서는 부비트랩으로 동료를 잃은 지점에서 근처 마을로 이동하여 마을을 소개하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게끔 연출이 되어있으나, 태극기...에서는 우물의 부비트랩에서 국군이 죽은 후 포로를 발견할 때까지가 시나리오상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일이면서도 그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서 마치 다른 장소에 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국군들의 연기도 포로를 잡을 당시에는 별로 흥분해있는 것 같지 않고 평범한 동굴 수색소탕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포로를 잡고 나서야 흥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국군들이 흥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부비트랩에 의한 아군 희생인데(그렇지 않다면 우물의 부비트랩 폭발은 줄거리상 별 필요성이 없는 부수적인 장면에 불과하게 된다), 정작 포로를 사살하려 할 때에는 동료의 죽음때문에 흥분했다기보다는 양민학살에 대해 흥분한 것처럼 묘사된다. 훈련되고 산전수전 다겪은 군인들이 전장에서 양민학살 장면을 보고 흥분해서 보복을 한다는 것은 양민학살을 보고 느끼는 감정인 인도주의 정신과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료의 처참한 죽음에 대해 흥분하는 설정보다 설득력이 훨씬 떨어진다.
 이 때문에 플래툰에서는 관객의 감정의 선이 병사들을 계속 따라가지만 태극기...에서는 관객이 국군의 감정의 선에 몰입하지 못하고 우물에서 동료를 잃고 난 후 동굴의 포로 획득 장면에 이르러서는 감정의 끈이 끊어져 버리고 멀쩡하던 병사들이 이유없이 포로들에게 흥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차이가 나게 된데에는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특성의 문제도 있다. 영화 플래툰은 말그대로 1개 소대가 소재인만큼, 30명 가까운 소대원 전원이 모두 주연, 조연 내지 단역으로서 각각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일례로, 지금은 개성있는 배우로 잘 알려진 조니 뎁도 플래툰에 단역으로 출연했었는데, 영화 초기에 주인공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는 역할로 한번 등장한 후 영화 중간쯤에 첨병으로 행군하던 중 기습을 받고 부상당한다. 그리고 주,조연들은 이정도 수준의 단역에게까지 동료의 입장에서 대사가 주어지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한다. 물론 관객들이 모든 대원들의 캐릭터를 전부 인식하고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면에서 영화의 소대원들은 관객들에게 "동료"라는 인식이 주어지고 따라서 수색중 동료들이 처참하게 살해될 때 소대원들이 동료를 잃었다는 감정을 관객들이 좀더 잘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반면, 태극기...에서는 주인공 주변의 병사들의 야전 사생활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아서 동료의식을 느낄 새도 별로 없고, 두 주인공 주변 인물들은 예닐곱 명이 초반부에 각자 자기소개(이거 20세기 초반의 소설에나 쓰이는 상당히 유치한 캐릭터 소개 방식이다...)를 해주는 것 말고는 조연급 캐릭터들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나마 그 이외의 대원들은 주,조연과 한마디의 대사도 안하는 엑스트러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주변의 누가 죽어도 그냥 두부조각 튀는 장면 하나 추가라는 생각이 들 뿐이지, 안타깝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그러한 감정이입의 실패는 공형진이 죽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나리오상으로는 공형진이 죽은 사건이 큰 비극이라고 느껴져야 하는데, 홈지기가 보기에는 깐지룩 거리던 주변 사람 하나 죽어나간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게다가 우물의 부비트랩에 죽는 국군은 조연중의 한명조차도 아니고 그냥 엑스트라였다. 그러다보니 똑같이 부비트랩에 동료를 잃는 장면이면서도 플래툰에서는 처참하게 동료를 잃은 사건이 되는데 비해 태극기...에서는 관객에게 깍두기 국물이 또한번 튄 사건으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결국 마을 학살과 부비트랩에 의한 동료의 죽음이 병사들의 흥분의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관객은 병사들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게 되어 사건 현장에 있던 한사람의 또다른 목격자가 되기보다는 평화로운 2004년의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에 머무른 채로 "모두 똑같아"라고 외치는 원빈과 동일한 입장에 서게된다.

 여기서 근본적으로 연출 의도상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플래툰의 번즈 상사는 양민을 사살한 사람이면서도 그 캐릭터가 흑백논리로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나름대로의 불가피성이 충분히 설명될 기회를 가진다. 플래툰에서는 결국 주인공이 번즈상사를 죽이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입을 빌어 엘리어스와 번즈 상사 모두가 스승이다...라는 말로서 번즈 상사의 입장도 함께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반면, 태극기...에서 장동건(이진태)은 그 상황이 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캐릭터라거나 불가피하게 그렇게 되어가는 캐릭터가 아니라, 처음에는 아우를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아우를 위해라는 명분을 지나쳐서까지 "전쟁의 광기에 취해버리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장동건의 행위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관점에 서기보다는 장동건식의 행위들에 대해 선악의 기준으로 단일한 가치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그것이 감독의 의도하는 바일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 장동건과 그 분대원들의 행동은 플래툰의 양민 학살 장면과 달리 정치적인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태극기...에서 정치적으로 이슈화된 또 다른 몇몇 에피소드들 즉,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경우도 역시 줄거리상 관객이 그 사건의 선악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설정되어 있다. 그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여부로서 합리화되는지의 문제를 떠나서, 줄거리 진행상 감독이 주장한 정치적 중립성이 불가피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 플래툰에서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정치적 또는 인도주의적 판단은 자제하고 단지 병사들의 시각으로서만 사건을 묘사한다. 태극기...에서 감독은 정치적 관점을 배제하기보다는 인민군도 국군도 함께 잘못했다...는 식으로 양비론을 펼친 것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6.25의 국군과 인민군에 양비론을 펼치면 6.25에 참전한 국군의 정당성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가 된다. 사실 태극기...가 양비론적 시각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은 감독의 주장일 뿐이지, 실제로 영화를 보면 인민군이 잘못한 것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국군의 만행은 카메라 앞에서 영화 내내 저질러지고 뿐만 아니라 줄거리를 진행해가는 큰 축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 영화에서 우익마을 양민 학살은 주범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고, 북한이 남침했다고 헌병 차량에서 방송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장면 역시 북한의 잘못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부분이 되지는 못한다. 헌병 트럭에서 거짓말 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결국 영화에 등장하는 "인민군의 잘못"들은 명시적이지 않고 변명의 소지가 다 있는 반면, 국군과 보안대의 만행은 줄거리상 반드시 악랄한 만행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하게 되어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혹시 이런 양비론적인 태도가 혹시 요즘의 진보적 사회 분위기에 영합한 흥행 노림수로서 쓰인 것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태극기...제작 단계에서 감독과 국방부측간에 시나리오상의 이견으로 인해 국방부의 제작 지원이 무산되었다는 것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감독은 국방부에서 원하는 바대로 시나리오를 수정할 경우 줄거리가 배달의 기수화되어 버린다는 이유로 시나리오 수정을 거절하여 협의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홈지기가 생각하기로는 작품의 일부분에라도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을 꺼릴법 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국방부가 시나리오 전체를 망칠 정도로 터무니 없는 요구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슈가 된 부분은 3부분인데, 즉 장동건이 군에 끌려가는 동생을 구하려다가 같이 끌려가는 장면, 장동건이 대대장을 보복 살해하는 장면,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이다. 이중에서 강제 징집 부분은 국방부의 요구대로 장동건이 동생의 곁에 있기 위해 자원 입대하는 것으로 처리했더라면 강제로 끌려가도록 처리한 것보다 오히려 장동건의 형제애가 더 빛났을 것이다. 대대장을 살해하는 장면은 장동건의 당시 감정을 묘사하는 수단으로 쓰인 것이라는 점만큼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 의도를 다른 방법으로 묘사할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줄거리상 반드시 장동건의 손으로 대대장을 살해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이은주의 그러한 죽음이 줄거리의 진행에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생각되어서 감정의 몰입을 방해한다.
 어차피 국방부의 지원을 받는 것도 일종의 거래인 이상 수십억원대의 투자자의 의견에 대해서 시나리오상 큰 흐름에 손상이 없는 범위 내에서의 조금의 타협의 여지조차 무시한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거래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감독의 의지에 따라서 거래가 결렬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단지 쌍방의 이해가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지 그것을 국방부의 시나리오 억지 변경 요구와 근시안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협상 결렬에 대한 감정적 보복심리 표출에 불과하다고 본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고 감독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것을 강변하고 그런 점에 있어서 정치적 논쟁을 피해갈 해명의 여지가 어느쪽으로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굳이 이념적인 측면에서 단정해서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다만, 감독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치적인 중립을 유지하고자 했다면 양비론적인 태도는 그다지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그나마도 주의깊은 배려가 아쉬웠다고 본다.

  또한 정치성을 배제하는 노력의 주의 부족뿐 아니라,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도 그분들에 대한 배려가 충분치 못했던 것이 이 영화가 국군에 대해 취하는 입장에 대해서 오해를 사게 된 또다른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애국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헐리우드의 영화와 단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헐리우드 전쟁영화들에서는 대부분 설령 제도권이나 정치권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더라도 참전용사 개개인들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는 시각이 영화 전반에 배어있다. 전쟁영화뿐 아니라, "분노의 역류"에서는 소방관들에 대한 경의의 태도를 느낄 수 있고,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영화의 소재인 여성 프로야구선수들에 대한 경의와 애틋함이 묻어난다. 물론 그러한 부분들이 단지 고도의 상업적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 서사물의 제작에서 진지하게 참고해볼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꼭 영화를 배달의 기수 풍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다소 애매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작품 전체에 묻어나는 태도와 관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례로, 영화 플래툰은 고발 영화적 성격을 띠면서도 전반적으로 참전용사들에 대한 예우의 태도는 잃지 않는다.
태극기...에서도 영화 플래툰을 비롯한 많은 서사적 전쟁 영화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과 같이 엔딩 부분에 참전용사들께 경의를 표한다는 멘트 하나를 자막처리만 했더라도 태극기...를 불쾌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숫자가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을것이다. 또 주연을 맡은 장동건이나 원빈이 인터뷰 자리에서 진지한 자세로 자신이 연기했던 그분들을 잊지 않고 경의를 표한다는 멘트 한마디씩만 했더라도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동건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연기했다는 것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듯이 소풍다녀와서 들뜬 어린아이같은 태도로 무릎 다쳐가면서 고생했으니 재미있게 봐달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자신의 배역에 몰입했다면 자신이 영화에서 연기한 그런 끔찍한 일들을 실제로 겪은 수많은 참전 용사들 앞에서 무릎 다쳐가면서 고생했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을까. 물론 배우로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영화에서 그리고자 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를 감안한다면 그런 개인적인 고생담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보기에 더 좋았을 것 같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의 대상에 대한 그런 예우는 꼭 참전용사들을 국가적 영웅으로서 존경해야 하기 때문에서만이 아니라, 그분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겪었던 비극적인 과거(적지 않은 참전용사들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를 소재로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측으로서 그분들께 취할 당연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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