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술 *

비행 쪽뿐 아니라 지상전 쪽에서도 사실성 면에서 호평받은(사실성이란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게임들이 몇몇 출시되는건 알고 있었는데 사서 해볼 형편은 못되다가, 데모 버전이 있다는 것이 문득 생각나서 몇가지를 받아서 해보았다. 그중 최근 해본 것으로 풀 스펙트럼 워리어(이하 FSW)와 확장팩, 브러더즈 인 암즈(BIA)와 확장팩 등이 있다. 대개 튜토리얼과 한두개의 미션을 해볼 수 있는 정도지만 게임엔진이나 컨셉을 느껴보기는 충분한것 같다. 두 종류의 게임 모두 모두 홈지기 취향에 잘 맞는 것같다고 느꼈다.


Brothers in Arms - Earned in Blood


Full Spectrum WArrior - Ten Hammers

BIA는 2차대전이고 FSW는 현대전이 배경이지만 두 게임 모두 분대전투를 구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FSW는 완전 3인칭이고 BIA는 1인칭+분대 지휘의 컨셉이지만, BIA는 주인공이 적을 몰살시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대개의 다른 FPS들과 달리 분대를 잘 지휘해야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 종류의 게임 모두 "주인공"의 관점이 아닌 "분대장"의 관점에서 게임에 임해야 한다는 점이 유사하다. 1인칭 FPS가 분대전투화 된다는 것은 비행시뮬에 빗대어보자면 아군없이 혼자 열심히 싸우던 F-15II급의 게임에서 AI 윙맨이 게임에 체계적으로 통합된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대전투 게임이다보니 당연히 분대 "전술"에 대한 개념이 게임에 들어간다. FSW는 애당초 미군 병사들 훈련용으로 개발한 것을 상용으로 컨버전한 것인만큼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소부대 단위의 전술행동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이를테면 이동 명령을 내리면 이동한 다음 해당 지역의 안전을 확인해서 보고하는 동작을 취한다. FSW는 애당초 군납버전의 주목적이 우연성의 요소나 개인의 실력으로 인한 결과의 차이를 배제하고 철저히 분대장이 취한 전술 행동의 결과를 구현해서 보여주는 교육적인 효과였다보니 적절히 엄폐된 분대원들은 아무리 치열한 총격전에서도 절대 죽지 않는 식의 다소 비현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지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매 전술행동이 전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이걸 비사실적이라고 할지 전술의 재현에 충실하다고 할지는 취향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다.) BIA는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분대원이 없다치고 혼자서 다 죽이고 다니는 식의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하고, 분대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전술적인 마인드를 지녀야 한다. 이런 게임들을 우리 군에서도 소부대 전술 교보재로 활용하거나 권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확히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군에도 PC방이 있고 내무반에도 콘솔게임기를 가져다놓는 세상이니 게임을 교보재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혹은 서바이벌 게임 팀의 전술 마인드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두 게임 모두 튜토리얼 혹은 게임 진행 전반에서 분대의 2개조(우리나라식 편제로는 분대장조와 부분대장조에 해당)가 사격과 기동을 협조하는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적을 발견하면 한개조가 제압사격으로 적을 고착하고 다른 조가 우회기동을 통해 적에게 효과적인 사격 위치를 확보하여 적을 격멸하는 패턴이 두 게임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소개되고 쓰이는 기본적인 분대전술이다. 각 조가 사격과 기동의 최소 협조단위가 되는 것이다.


BIA에서 강의하는 "사격과 기동"

그런데 그부분은 두 게임이 우연히 비슷해진 것이 아니라, 실전의 분대전술을 게임에 적용하다보니 전술 형태가 당연히 같아진 것이다. 사격과 기동의 협조는 지상전 전술에서 가장 기초되는 개념이고 분대 전투에서도 본능적으로 구사해야 하는 전술 행동이다. 분대의 조간 협조 행동은 공중전에 빗대면 2기 ACM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2차원이냐 3차원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공중전에서 2기 ACM의 상호협조 개념과 지상전에서의 사격과 기동이라는 상호협조 개념은 2vs1로 한 유닛이 적을 고착하고 자유로운 상태의 다른 한 유닛이 적에게 결정적인 공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공중전에서 전술의 최소 단위인 2기 ACM이 안되면 그것은 공중전의 재현라고 할 수 없고, 지상전에서도 각 조별 사격과 기동의 협조가 되지 않으면 그것을 이상적인 "전투"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전투를 재현해보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놀이"에 가깝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화 비평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시피 전술은 당대의 전투 형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고 따라서 전술 구현이 정확해야 비로소 "리얼한" 전장 구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전사에서도 이러한 전술행동이 불가능한 훈련안된 병력들은 떼죽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긴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고 전쟁터에 끌려나간 병사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을 "실제적인 전투"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분대 공격 - 미육군 소총소대 교범
(그림을 클릭하면 확대)

 
2기 ACM - 미공군 F-16 교범

---------------------------------------------------------------------------------------

서바이벌게임계에서 이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다. "군장 매니아 대 트리거 해피간의 갈등". 서바이벌게임계에서 그 두가지의 가치가 가장 중요시된다는 것일까. 서바이벌게임하러 안다닌지 10년이 족히 넘었지만 당시 홈지기가 서바이벌계에서 그다지 흥미를 못느낀 것도 사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였다. 서바이벌게임하면 BB탄으로 체험해보는 "가상 전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게임에 나가보면 어떤 사람들은 게임 자체보다는 군복이나 장비 자랑하는데 더 열심이고 심지어 장비 가지고 사람 무시하기도 하는가 하면(이건 비단 서바이벌계뿐 아니라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와 같은 다른 모든 취미분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게임 자체를 즐긴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도 상당수는 "가상의 전투"를 즐긴다기보다는 비싼 장난감총으로 사람 쏴서 맞추는 재미(=trigger happy)를 즐기는 것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전술 구현같은 개념은 당연히 다른 세상 얘기였고 말이다. 홈지기가 게임하러 다닐 당시 자칭 빡세게 한다는 동호회도 있었는데, 그 빡세다는 것도 교범대로 전술행동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다섯 발자국 뛰어와서 앞으로 한 바퀴 구르고 무릎쏴"를 조직적으로 훈련하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여러 팀들마다 각자의 성격이 있고 또 팀의 개성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분들도 물론 많이 계시겠지만, 적어도 홈지기가 게임나가던 당시에는 서바이벌게임 전반적인 분위기가 홈지기 취향과 상당히 동떨어져있다고 느꼈었다.
서바이벌 게임하는 분들 중에는 실전적인 전술전기를 펼치면서 게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다. 많은 실전경험과 우회기동을 할 수 있는 전술적 마인드 등을 얘기하자면 그럴 법도 해보인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라는 것은 전술 구현을 위한 기초 요소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그 끝은 아니다. 공중전에 빗대어보자면 BFM 수준 이상을 넘기 힘든 도그파이팅 노하우를 가지고 공중전을 통달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겠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의 전술전기 수준에서 "나는 우회를 해야지"라는 정도를 생각하는 것과 체계적인 전투조직의 차원에서 사격과 기동의 협조를 비롯한 전술적 행동을 하는 것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PC게임의 멀티플레이는 그런 기능이 새로 생겼을 때는 기능 그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90년대 중반의 온라인 플레이 초창기만 해도 집에서 "모플(모뎀 플레이)"을 하려면 상대방 전화번호를 알아서 모뎀으로 전화를 걸어야 1vs1 도그파이팅 한게임이 되는 식이었다. (지방 사는 사람과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시외전화요금을 내야했다.) 그리고 어차피 제공해주는 환경이 1vs1에 국한되어있었다. 그러니 그자체로 신기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가 보편화된 지금은 과연 실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온라인 플레이가 싱글플레이보다 더욱 뛰어난 전장환경을 제공해주는가라는 질문에는 갈수록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참여자들의 개인 기량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온라인 co-op 미션이 AI윙맨들을 데리고 하는 싱글미션보다 더 나은 경험이 되었던 적이 오히려 드물었으니 말이다. 멀티플레이만 가면 대부분 종류의 게임이 퀘이크화되어 버리는 1인칭 FPS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홈지기는 경력 많은 서바이벌 게이머, 러싱과 댄싱 잘하는 FPS 게이머, 도그파이팅 잘하는 전투플심 게이머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느낀다. 즉 개인은 노련한 경험자로서 개인 단위의 싸움에 능하거나 혹은 그를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반면 통합된 전투집단의 일원으로서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이란 궁극적으로 개인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목적에서라면 게임을 대하는 관점이 개인 차원에 머무른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과 전투는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고 군대라는 체계화된 집단이 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게임이 "가상의 전장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전장을 만들어주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 존재하고 그 조직이 구현하는 전술이 존재해야 하는데, 일반화시켜서 말하자면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단순히 개인들이 모여있는 군중이고 전투는 개인차원의 싸움들의 집합에 더 가깝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진짜같은 군장과 모형총, 아무리 그래픽 뛰어난 FPS, 아무리 비행모델 뛰어난 전투플심이라는도구(tool)를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 전투 환경을 지향하는 가상의 환경을 생성해내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서바이벌 게임계가 군장 매니아와 트리거해피 게이머들이 주도하는 분위기라도 그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밀리터리 게이머라고 자처하면서 러싱과 댄싱, 점프샷을 주요한 전투기술로 삼는 1인칭 FPS 게이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십, 수백명이 참여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참가하면서 도그파이팅 이상의 마인드를 가지지 못하는 전투플심 게이머들에게도 또한 같다. 어떻게 플레이하든 각자의 즐기는 취향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홈지기의 취향에서는 "전술"이라는 것을 추구하거나 구현하지 못하는 밀리터리 게임에서라면 개인의 재미를 떠나 "가상으로 구현된 전장"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다지 깊은 의미를 둘 수 없었다. 정도야 어쨌든간에 밀리터리 게임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쏘고 즐기는 그자체보다도 역사책, 다큐멘터리, 전쟁영화 등에서 보고들은 전투 현장에 참여해보고 싶은 일종의 인터랙티브적인 취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단순히 개인 차원의 테크닉에 얽매이기보다 좀더 넓은 시각에서 전투와 전장의 모습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전술이라는 측면에서도 비중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논단 메뉴로  |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