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한-미전 시청앞 길거리 응원을 다녀와서

 아침 하늘은 흐렸다. 붉은 티셔츠를 입은 아침 뉴스의 기상 캐스터는 "오늘의 날씨는 대구만이 중요하고 서울은 상관 없습니다"라는 엽기적인 멘트를 하였다. 하지만 60만명의 젊은이들이 서울의 길거리에서 자신들의 열정을 길에 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서울의 날씨가 중요치 않다는 말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축구를 비롯한 땀흘리는 운동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것은 물론, 구경하는 것도 싫어한다. 월드컵 축구 개막식때에도 나는 PC 앞에 앉아서 적 전투기와의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내게 있어서 한국의 16강 진출은 파쇼 집단의 집단최면일 뿐이고 축구 열기는 집단 난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개막식 이전에 언론들은 월드컵 열기가 부족하다고 우려를 나타내는 기사와 보도를 내보냈지만, 그런 부족한 월드컵 열기도 내게는 지옥과도 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화 주제가 축구와 군대 이야기라던데, 오히려 여자들이 축구 이야기를 하는지라 축구를 싫어하는 나는 여자들과 이야기할 주제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날 저녁, 거의 2/3 정도는 우연에 가깝게 한국팀의 폴란드전을 TV로 보게 되었다. TV를 보고 있는 순간에도 붉은악마의 응원전은 집단 히스테리로만 느껴졌었다. 폴란드전은 2:0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방송에서 반복하는 승전보보다도, 열광적인 응원열기에 대한 보도가 내 관심을 끌었다. 그 열광적인 응원단들은 아마도 한국팀이 폴란드 문전에 골을 넣었을 때 내가 느꼈던 아주 작은 감정의 동요를 몇 배로 많이 체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단순히 집단 히스테리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느껴졌다. 축구에는, 적어도 월드컵에서만큼은 축구공 이외의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들끓게 만드는 그 무엇이 대체 무엇인지 직접 느껴보기 위해, 미국전에서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보리라고 마음먹었다.

 미국전 경기는 오후 3시 30분이었다. 그 전날 시내의 교통 통제 상황을 주의깊게 파악한 후, 광화문쪽은 지나치게 인파가 몰릴 것이라 생각되었고 혹시 모를 사고의 우려도 있어 행선지를 시청앞 광장으로 정했다. 경찰은 의도적으로 시청앞쪽으로 장소를 마련하고 응원단의 집결을 유도할 것이었다.

 미국전 당일, 오전 11시경에 일행인 내동생과 동생의 친구 두 명을 만나 동대문에서 응원복을 샀다. 경기복 모조품은 비싸서 포기하고, 월드컵 공식 기념 상품인 분홍색 라운드 티셔츠를 사서 입었다. 머리에는 예전에 공군 행사때 선물로 받은 조종사용 빨간 머플러를 동여매었다. 일행중 한명은 붉은 손수건을 머리에 썼다. 이날만큼은 그러한 행색의 일행이 시내를 활보하는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전인데도 이미 을지로 5가와 동대문 근처에는 시청쪽으로 가려는 붉은 티셔츠의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옷을 사서 막 갈아입고 응원장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우리도 택시를 잡아타고 시청으로 향했다.

 경찰이 도로를 차단한 관계로 을지로 입구에서 택시를 내려 시청앞 광장까지 걸어갔다. 인도로 걸어가고 있다가, 문득 일행중 누군가가 "야 찻길로 가도 되네"라고 말했다. 차량 통제 때문에 을지로 입구에서 내렸으면서도 도로가 우리를 위해 개방되어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몸소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가 응원단에게 개방되어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자 우리 일행은 일부러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서 광장쪽으로 갔다. 서울 시내의 도로 한복판을 응원단이 아니라면 누가, 그리고 언제 또 이렇게 활보해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응원단에게 개방된 도로를 지나 광장으로 향하는 우리들 자신이 전사(戰士)가 된 느낌이었다.

 광장쪽으로 걸어갈 때는 광장에 한무리의 응원단만이 보여 늦게 온 것이 아니라고 잠시 생각했었다. 그러나 광장에 도착해서 프라자호텔쪽을 바라보자, 이미 광장은 반대편까지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시야에 들어왔던 한 무리의 군중은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고 하는 응원단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우리는 주 화면에서 한참 떨어져서 스피커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가장 왼쪽의 외진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시작 4시간여 전인데 이미 광장의 주요한 자리는 모두 차있었다.

 응원을 위해 돗자리와 생수를 준비해간 우리들은 음료수를 사러 돌아다니는 응원단들을 보면서 우리의 준비성에 스스로 뿌듯해했다. 그러나 막상 응원연습이 시작되자, 흔들 것을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은 우리들은 뻘쭘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응원단들은 갖가지 악세서리, 머플러와 더불어 주최측에서 제공한 태극기를 손에들고 열심히 흔들기 시작했다. 게양용 태극기를 준비한 이들은 일부는 국기봉으로 휘날리며, 또 다른 일부는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이때처럼 태극기가 젊은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태극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될 줄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었다. 그것은 국경일에 국기를 게양합시다라고 하는 상명하복적인 태극기 게양 캠페인과는 전혀 다른 그어떤 것이었다. 우리에게 태극기는 경건의 대상이 아니라, 붉은 티셔츠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모인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멋진 표상이었다, 우리도 역시 태극기를 갖고 싶었는데, 다행히 어느 아주머니가 작은 태극기를 한박스 갖고 와 나눠주셔서 우리 일행도 하나씩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응원단은 "한국 美쳐라"라는 절묘한 이중의미의 구호를 쓴 피킷을 흔들기도 했고, 또 누구는 히딩크 감독의 가면을 쓰는 등 각양 각색의 복장과 피킷이 넘쳤다. 빨간 내복에서 붉은 색 고무장갑에 이르기까지, 이날은 모든 붉은 색의 것이 총 집합하는 날이었다.

 관광차 모인 외국인들도 많는 않지만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대규모 거리 응원 자체을 체험하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의 눈이 파란 색이건 검정색이건, 피부색이 검든 희든 아무 상관이 없이 모두가 하나이고 우리의 동료였다.

 일부에서는 오늘의 시내 응원을 두고 사고의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사고우려와는 아무 상관 없는 천진난만한 분위기였다. 전통적으로 축구 응원은 과열되기 쉽고 유럽의 훌리건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에 대한 명언을 비틀어 "축구는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전쟁의 연장이다"라고 하기도 했다지만, 광장에 모인 응원단들은 전의를 불태우는 집단이라기보다도 공연장에 놀러온 젊은이들에 더 가까웠으며, 단지 거리 응원문화에 동참하고 스스로 응원을 즐기고 싶어서 모인 것 뿐이었다. 내가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관람하러 그곳에 간 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고 싶어서" 간 것이었던 처럼, 다른 많은 젊은이들이 그 자리에 모인 이유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정치성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미국 국기를 바탕으로 도안한 상표를 가슴에 크게 새긴 티셔츠나 심지어 가슴에 ARMY라고 새겨진 미 육군의 운동복인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도 아무런 비난의 눈길이 주어지지 않았다. 응원을 주도한 사회자분은 계속해서 안전응원을 강조했지만 그런 코멘트가 오히려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술취한 사람이 많으면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맥주를 파는 잡상인에게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앞으로도 이런 잡상인은 철저히 차단해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맥주를 사먹는 사람은 내가 본 근처에서는 전혀 없었다. 대부분 생수를 미리 준비해왔거나 콜라와 같은 가벼운 음료를 사서 마시고 있었다. 응원석은 담배를 피는 것까지도 주변의 심한 야유의 대상이 될 정도로 순수한 지역이었다. 방송사 헬기 몇대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군중 상공에서 비행을 하면서 자아내는 묘한 흥분 이외에는 물리적으로 긴장될만한 요인이 없었다. 뒤늦게 온 사람들이 가끔 집단 중간에 끼어들어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도 스크린 관람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굳이 시비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경기 시작 직전에 앉아서 관람하려는 사람들과 서서 관람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라"와 "서서봐"라는 약간은 유머스런 구호경쟁도 있었으나, 바닥에 빗물이 고여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게 되자 그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었다.

  하늘은 아침부터 흐렸고, 오후가 되면서 작은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기 한시간쯤 전에는 이미 폭우로 변해 있었다. 응원단들은 대부분 우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인파속에서 우산을 쓰고 있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우비를 사서 입은 사람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는 쏟아지는 비속에 그냥 서있었다. 조금씩 거세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이정도로 오다 말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에 막무가내로 버티다보니 어느새 폭우 속에 서있게 된 것이었다. 폭우속의 응원 현장은 방송화면에 나온 것보다는 사실 좀더 심각했었다. 바닥은 빗물이 그대로 고여서 깊은 곳은 신발이 모두 잠길 정도였고, 대부분 붉은 티셔츠 하나만 달랑 걸쳐입고 있던 응원단들은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비에 그냥 젖는 정도가 아니라, 자동차 앞유리로 빗줄기가 흐르듯 얼굴로 흘러내려서 손이나 머플러 등으로 얼굴을 계속 씻어내리지 않으면 눈으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앞의 스크린을 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응원장소의 방송국 카메라는 폭우가 내릴 때는 돌아가지 않아서 방송 화면만 보고는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폴란드-포르투갈전때 화면에 비치던 그 폭우를 몇시간 앞서 서울에서 맞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장대비로 인하여 응원을 포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 폭우는 함께 있는 사람들을 더욱 하나로 녹여주는 용액으로 작용했다. 나도 비 때문에 응원을 못하게 된다는 걱정보다도, 이렇게 비까지 맞고 기다렸는데 혹시 대구에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컸다. 다행히 스크린에 나타난 대구의 경기장에는 해가 비치고 있어 안도를 했다.

 처음 모였을 때 응원단들은 앞에서 응원을 리드하던 진행자의 지시를 따라 하는 것도 쑥스러워하곤 했었지만, 경기 시작시간이 가까워지고 경기장 화면이 스크린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모두들 자발적으로 응원의 함성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누가 딱히 리드를 하지도 않는데도 경기 내내 수십만의 응원인파 여기저기에서 "대~한 민국"과 오필승 코리아 노래 등등이 계속해서 산발적 또는 집단적으로 시청앞 광장에 울려퍼졌다. TV로 경기를 관람할 때는 붉은악마의 응원구호가 촌스럽고 유아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어느새 나도 사력을 다해 그 구호들을 외치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공을 차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으므로 최선을 다해서 외쳤다. 경기장 중계음성에서 대한민국 구호나 오필승 노래가 나오면 서울의 거리 응원단도 함께 따라하였다. 당시에는 일개 응원단으로써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전국의 백만 응원단들이 일시에 같은 구호와 같은 노래르 부르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장엄한 광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장의 선수들, 관객들, 그리고 거리 응원단들은 모두 하나였다. 응원단들은 단지 조금 더 흥미롭게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수들과 함께 숨쉬고 아파했다. 황선홍 선수가 흘리는 피가 스크린에 클로즈업 되자 내 이마에 흐르는 빗물역시 피인 것 처럼 생각되었다. 사실 야외에서 응원을 하면서 관람하는 것은 화면에 그다지 집중할 수가 없어서, 페널티킥에 실패했을 때도, 그리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있던 프리킥이 골로 연결될 때에도 응원단들은 한박자 늦게 탄식하고 환호를 했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집에서 또는 호프집이나 회사에서 안락하게 구경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선수들과 더욱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 아래에서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안정환 선수의 골 세레모니는 단지 조금 진지한 조크정도로 받아들여졌겠지만, 우리에게는 자뭇 비장한 행동으로 비쳐졌다. 주변의 응원단중 몇몇은 그 골 세레모니를 보고 소리내어 흐느끼기도 했다. 나역시 빗물을 닦는 척 하면서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훔쳐내었다. 한국 선수단은 그 골 세레모니로서 이 자리에 모인 젊은 응원단들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한국인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몸으로 말해주었다. 그것은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폭우속에서 그들을 열렬히 응원하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고, 한국인이 아닌 한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만의 암호였다. 선수들과 응원단들은 승리를 하고 나서 그것을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함께 공유했지만, 응원단들에게는 그 골세레모니 하나만으로 그곳에 있었던 모든 이유가 설명되고 또 보람되게 느껴졌다. 인터넷 등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가장 많이 표출하는 것이 젊은 층이었지만, 경기가 끝났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응원단 중에서 미국에 대한 기존의 반감을 근처의 미국 대사관을 향해 표출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젖은 몸을 이끌고 당당하게 미국 대사관 앞을 지나서 귀가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미국 대사관에 돌을 던지는 대신에 그보다 더욱 세련되고 힘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정서를 그들에게 표현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시민들은 비에 흠뻑 젖은 응원단들을 마치 선수들처럼 대해주고 격려해주었다. 비에 젖은 네 명이 택시에 타서 택시 안이 모두 젖게 되었는데도 기사 아저씨는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수고했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 동네에서 택시에 내리자, 붉은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던 동네 사람들은 "응원단인가봐"라며 우리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호프집에서는 우리를 위해 에어콘을 꺼주고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우리를 대하는 시민들은 선수들에게 하지 못하는 격려를 응원단이었던 우리에게라도 대신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시청앞 광장에 가기 전, 우리들은 붉은 티셔츠의 응원단들을 보면서 상표를 따져가면서 진짜와 가짜 옷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어디에서 산 어떤 티셔츠를 입고있었든간에 모두 진짜 거리 응원단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동네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티셔츠의 상표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고, 티셔츠가 젖었느냐 젖지 않았느냐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했다. 집에와서 뉴스를 보면서, 호프집이나 회사에서 경기를 응원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람들은 경기를 시청했을지언정, 우리와 함께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폭우속에서 속옷이 젖으며 경기장의 선수들과 응원단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있을 때, 지붕 속에서 TV를 시청한 사람들은 에어콘 바람을 쐬며 맥주를 홀짝거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이 들자, 나역시 그들중의 한사람이었지만, 60만명의 젊은이들이 시내 한가운데에서 폭우를 맞으며 서있을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힘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뉴스에서 우리가 있었던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 등을 보여주자 뜨거운 그무엇인가가 가슴 속에서 또다시 느껴졌다. 그곳에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했던 내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구호와 오필승 노래가 귓전에서 맴돈다. 처음엔 단지 길거리 응원도 한다는 뉴스에 나도 한번 가보고싶다는, 그리고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저런걸 해보나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참가하게 되었지만, 수십만명의 젊은 가슴들과 함께하고 난 후에는 나도 어느새 12번째의 선수중 한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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