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이의 초실속 기동 - 레드플래그 뒷얘기 *
우리공군과 인도공군의 Su-30MKI, 프랑스의 라팔이 참여한 레드플래그가 끝나고 난 후 한 미군 조종사가 퇴역 장성들에게 실시한 강연 동영상이 11월 초에 YouTube에 떴다. 그리고 이 동영상은 Aviation Week와 Flight International 등의 항공 관련 언론에서도 이 동영상을 기사화할 정도로 많은 이슈가 되었다. 국내의 관련 게시판들에서도 이 얘기들이 돌았으므로 동영상과 기사를 이미 보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다. 그중에서 인도공군의 Su-30의 공중전에 대해 평가한 얘기가 있어서, 그부분을 조금 더 깊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화제가 된 동영상:
관련 기사:
Flight International 기사
Flight Global 기사
AViation Week 기사
이중에서 Aviation Week에 실린 기사 중 Su-30의 공중전 성능 평가에 관한 부분을 인용해본다.
Against the much larger RCS Su-30MKI, the F-16s and F-15s won consistently during the first three days of air-to-air combat, he continues. However, that was the result of trying to immediately go into a post-stall, thrust-vectored turn when attacked. The turn then creates massive drag and the aircraft starts sinking and losing altitude. "It starts dropping so fast you don't have to go vertical [first]. The low-speed tail slide allowed the U.S. aircraft to dive from above and "get one chance to come down to shoot," the pilot says. "You go to guns and drill his brains out." The Su-30 is jamming your missiles so...you go to guns and drill his brains out."
원문을 직역해보는 대신, 이 문단의 내용들을 풀어서 생각해보자.
문단 중에서 go into a post-stall, thrust vectored turn when attacked라고 한 표현을 다시 설명하자면 Su-30이 방어기의 입장이 되었을 때 TVC를 사용하여 최대한의 급선회를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post-stall이란 일반적인 실속에 빠진 이후라는 의미가 아니고 실속에 빠지게 되는 한계 받음각을 초과하는 영역의 기동을 했다는 의미이다. Post-stall maveuver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초실속 기동(Post-stall maneuver)
공중전투전술 컨텐츠에서도 설명한 적이 있다시피, 통상의 항공기는 받음각이 높아질수록 양력이 커진다. 그리고 조종간을 급하게 당길 수록 받음각이 커지면서 민첩한 기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받음각이 커질수록 양력도 무한정 커지지는 않고, 받음각이 커지다가 어느 시점에서 양력이 최대치가 된다. 이를 임계 받음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받음각이 더 커지면 날개면을 지나는 공기흐름이 파괴되면서 양력을 상실한다. 통상의 항공기는 이렇게 급기동으로 하면서 임계받음각을 초과하는 경우 횡방향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스핀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우수한 항공역학적 설계를 가지고 횡안정성이뛰어난 항공기들은(주로 카나드 장착 항공기나 TVC 장착 항공기들이 이에 해당하지만 재래식 설계형 항공기도 일부 포함됨) 임계 받음각을 초과하더라도 스핀에 빠지지 않고 기체 자세를 유지하면서 기동을 계속할 수 있다. 이렇게 임계 받음각을 넘어선 영역에서 기동하는 것을 post-stall maneuver maneuver라고 한다. 동영상과 위 기사에서 말하는 post-stall은 이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초(超)실속 기동 정도라고 표현하면 적당할 것 같다. (실속후라고 액면대로 직역하면 그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쉽게 말해 코브라기동으로 대표되는 바와 같은, 수호이의 장점이라고 일컬어지는 극단적인 기동능력을 공중전에서 써먹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결과는... 강연에서 말한 바와 같다.
받음각과 양력
코브라기동은 초실속 기동의 대표적인 예이다
원문에서는 엄청난 항력으로 인해 고도 침하가 되었다고 한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받음각이 커지니 엄청난 항력이 발생하고 그로인해 잉여에너지(Ps)가 매우 큰 -값이 되므로 우수한 공력학적 특성 덕분에 항공기 자세 유지는 가능했지만 고도와 속도를 모두 잃어 앉은 오리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문에서 low speed tail-slide라고 한것은 이런 초저속 상태에서 고도를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양력이 생성되지 않아 적기쪽으로 기수를 들고 있어도 고도가 침하되는, 다시 말해 항공기가 지면 쪽을 향해 뒤로 밀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 받음각은 90도를 넘어간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기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근접전투 중에 스핀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어차피 전술적 기동성은 잃어 버리기는 마찬가지이고 방어기가 알아서 고도를 상실하니까 공격기가 고도 우위를 일부러 얻으려고 하지 않아도 고도분리가 생겼고 따라서 기총으로 프롭기에서 붐앤줌 하듯이 킬을 했다고 한다. 시뮬레이션 해본 분들은 아마 충분히 연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연상만 되는게 아니라 게임을 하면서 많이 겪는 흔한 패턴이기도 하다. 특히나 락온이라는 우수한 항공역학엔진을 가진 현대전 비행시뮬레이션을 즐길 수 있는 요즘에는 더욱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락온에서 건파이팅을 할 때를 떠올려보자. 락온에서 F-15를 조종할 때 적기쪽으로 최대한의 급기동을 하면 10G가 훌쩍 넘어가면서 'maximum angle of attack' 경고음성이 나온다. 그순간에는 기수가 확 돌아가지만 불과 몇 초만 지나면 속도가 확 줄고 기수가 오히려 돌처럼 굳어져 버린다. 이건 비행기의 속도 벡터 방향이 바뀌는게 아니라 받음각이 확 커지면서 받음각이 커지는 만큼 기수가 더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어, 순간적인 급기동을 하면서 3초 동안 비행기의 속도 벡터가 50도 회전하고 받음각이 5도에서 45도로 높아졌다고 해보자. 이 때 조종사는 속도벡터 50도 + 받음각 40도 = 90도를 회전한 것처럼 느끼게 되고 물론 이 때 기수 방향이 실제로 90도 돌아간다. (아래 삽화) 그러면 조종사가 느끼는 선회율은 초당 30도가 된다. 그러나 받음각이 커지다가 어느 선에서 멈추고 나면 그 이후로는 받음각 증가분이 없으므로 기수 회전율이 갑자기 낮아진다. 즉 받음각이 커지는 것을 멈춘 후 3초간 속도벡터가 아까와 똑같이 50도 회전했다고 하더라도 조종사가 느끼는 선회율, 즉 실제 기수 회전율은 초당 17도로 갑자기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예에서는 조종사가 처음 3초동안 기수가 확 돌아갔다가 그 이후 3초간은 갑자기 둔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더욱이 받음각이 커지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낮아져서 속도벡터 변화량도 실제로 줄어들게 되므로 기동성 둔화정도는 훨씬 더 심해진다.
받음각 증가로 인한 기수 변화량 증가
고받음각을 얻을 수 있는 기종일 수록 기동 시의 받음각 변화로 인한 기수변화의 증감 비율이 커지므로 락온에서 특히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는 이러한 조종 특성도 포스트스톨 기동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락온에서 maximum angle of attack 경고가 나오더라도 스핀에 빠지지 않고 기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아도 역시 락온의 물리모델에서 포스트스톨 영역이 구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전세계에서 러시아 기종들만 포스트스톨 기동능력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락온의 F-15에서만큼은 포스트스톨 영역의 기동이 가능한 것으로 구현된 셈이다.
팰콘 4.0은 FBW 시스템에서 받음각 한계치를 제한하는 F-16을 모델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고기동 영역의 비행특성을 액면 그대로는 체험하기 힘들다. 하지만 manual pitch override 기능을 끄고 기동해보면 비슷한 방향성은 느낄 수 있다. 항공기가 임계받음각을 넘지 않도록 FBW 시스템에서 제한하는 이 기능을 끄면 순간적으로 좀더 높은 받음각으로 기동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추가된 영역의 기동성을 활용한다면 에너지손실이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F-16의 E-M 차트를 보면 끝단이 뾰족하지 않고 평평하게 무뎌져 있는데, 무뎌진 부분을 가상으로 재생해서 다시 뾰족하게 만들어본다면 동일한 속도대에서는 선회율이 높아질수록 Ps값이 낮아지므로 그 추가된 선회율의 영역에서는 매우 낮은 Ps값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즉 포스트스톨 기동이 통상적인 E-M 차트를 벗어나는 기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선회율이 높아질수록 잉여에너지(Ps)가 낮아진다는 원칙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더 급격하게 기동을 할수록 더 급격하게 에너지를 손실한다는 사실은 F-16에게든수호이에게든 당연한 현상이다. Su-30MKI와 같은 TVC라고 하더라도 없던 추력이 새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추력이 방향만 바뀌는 것이므로 에너지 손실로 인한 기동성 상실 문제에는 별 도움이 안되리라고 생각된다. 도움이 되기는 커녕 극한의 기동성을 뽑아내기 위해 TVC를 지나치게 남발하면 에너지 관리에 더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선회율과 Ps값의 상관관계
받음각 경고음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최대한의 급기동을 하는 동안 충분한 에너지를 유지하는 적기는 고도 우위를 얻고, 그상태에서 눈앞에 뻔히 보이는 상방에 있는 적기를 향해 기수를 당기려 해도 기수는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고 에너지손실만 가중된다. 그리고는 적에게 정지표적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는 락온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전투기에서 순간선회율 위주로 전투기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포스트스톨 기동이 가능한 기종이나 TVC를 장착한 기종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것이다.
방법론의 문제
그런데 인도공군은 조종사 인적자원도 미공군이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몇안되는 공군이고 Su-30MKI의 고기동성능과 TVC 장치를 공대공 전투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연구가 자체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을텐데도 근접전투에서 에너지 관리에 실패하여 불리한 상황을 맞는 매우 초보적인 미숙함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는 점이 의아하다. 어쩌면 개별 조종사들의 에너지와 전투 운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인도공군, 혹은 동구권 공군의 근접전 전술사상 자체가 그런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도공군은 원래 자기들이 생각한 대로, 그리고 그 비행기를 가지고 그렇게 싸우라고 설계자들이 생각한 방법대로 싸운 셈일 것이다. 만약 에너지를 희생해서 각도를 얻으라고 교육하고 모든 조종사들이 그런 방법으로 비행한다면 그들 내부적으로 훈련할 때는 기수를 남들보다 더 잘당기고 TVC를 더 잘쓰는 사람이 전투에서 유리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전투방법과 대적할 때는 그러한 내부의 노하우와 경험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차원의 서로다른 전투방법론들 간의 우열은 많은 경우 다른 종류의 전투방법과 직접 접촉을 하기 전까지는 깨닫기 힘들 수도 있다. 이는 전술이나 교리가 단지 연구나 경험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군사집단의
사고방식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투란 마상창시합처럼 싸우는 것이라고 의례껏 생각하던 유럽의 기사단이 전투란 사냥하듯이 기동성 있게 싸우는 것이라고 의례껏 생각하던 몽골 기병대와 맞붙었을 때 비로소 그 두 가지 전투방식 자체의 우열이 비교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자신들의 전투방법이 주어진 무기체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인지를 고민할 이유조차 없었다. 그 두 가지 종류의 전투방법은 학술적인 연구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유럽인들과 몽골인들의 사회와 생활, 그리고 사고방식이 반영되어 형성된 각자의 군사문화였기 때문이다. 보다 가깝고 비슷한 예로는 2차대전 일본군을 들 수 있다. 적과 똑같이 격투전에 들어갔을 때는 격투전을 남들보다 더 잘하는 능력이 승리의 주된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정해진 패턴 이외의 것을 생각하거나 접해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투에 이기기 위해서 격투전 기량을 더욱더 갈고닦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전투방법, 즉 일격이탈 전술을 구사하는 적과 상대하면서는 단순히 개인의 기량의 우열이 아닌 전술사상의 차이가 전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격투전을 위해 갈고닦은 기량은 큰 의미가 없어졌던 것과도 비슷하다.
서로다른 전술사상간의 충돌이란 서로다른 문화간의 충돌이기도 하다
인도 공군은 수 년 전에 인도에서 실시한 인-미 연합훈련인 Cope India에서 에이스급 조종사들을 투입하여 들리는 바에 따르면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은 적이 있었고, 이번 레드플래그에서도 조종사들의 전문성에 관해서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인도공군은 세계적으로 탑클래스에 드는 많은 비행시간을 가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이번 레드플래그의 결과를 참여한 조종사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이번 훈련 결과도 인도 공군의 전술, 즉 군사문화가 다른 집단의 그것과 접촉하는 기회였다고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군사분야에서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렇게 전혀 다른 군사문화간의 접촉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다. 아마도 쌍방이 이번 훈련의 결과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할 것이고 다음번에는 아마도 다른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혹은, 다른 적지않은 역사적 군사집단들의 예에서 그랬듯 문화적 충돌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기존의 관점을 답습하는데 그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의미있는 개선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어떤 경우든 다음번의 접촉이나 충돌 시에는 이번 훈련에서 얻은 교훈들을 각자가 얼마나 소화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코브라기동으로 대표적으로 묘사되는 수호이의 급기동 능력은 실전에서 에너지 손실을 유발하므로 이러한 고기동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오히려 전술적으로 불리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번 훈련 결과는 사실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레드플래그 뒷얘기들은 그러한 오랜 이론상의 논쟁들이 논쟁의 소재가 되었던 그 기종으로 실제의 세상에서 실증된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조건이 같다면 그러한 고기동 능력이 없는 항공기보다는
있는 항공기가 분명 더 유리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며, 강연에 나온 미국 조종사도 수호이 기종의 잠재성만큼은 분명히 인정했다. 하지만 조종사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만큼 그러한 능력을 얼마나 적절히 구사해서 최적의 전투성능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에서 조종사에게 더욱 큰 책임도 돌아간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이번의 훈련 결과는 인도 공군이 아직 그러한 새로운 차원의 성능을 활용하기 위한 이상적인 해결책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음을 보여준 사례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