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장병들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종종 국군장병들이 있기에 우리가 두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다고 도덕책을 외우듯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의 생활이 군장병들의 희생의 덕택이라는 것은 흔히 잊고 살아왔다.

 우리가 시청앞을 붉은 물결로 물들이는 동안, 장병들은 자신들의 피로 서해바다를 붉게 물들여야만 했다. 미진한 대응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지만, 국가적인 행사가 치러지고 있는 마당에 적극적인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군의 사상자에 누구보다 분노한 것이 군 스스로일테지만, 그래서 가진 모든 전력을 투입하여 즉각반격을 하고 싶었을 것이겠지만, 확전을 피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상황을 조기 종료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적함은 도주했다.

 교전 소식은 월드컵 열기에 가려졌다. 이해가 간다. 군사적 긴장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군의 사명이므로 네 명의 목숨값과 월드컵 열기를 맞바꾸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었으리라. 군의 존재의의란 것이 애당초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3-4위전이 열리던 대구 경기장에서 경기전 그들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가질 때, 모 방송의 앵커는 그 묵념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몰랐었다. 그렇게 그들은 죽어서도 사명을 다한 셈이다.

 대한민국 해군은 전술적으로는 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노력을 다해 확전을 막았고, 나라가 군에 대해 요구하는 바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몸을 녹여 구멍난 곳을 메우는 납덩어리와도 같이... 월드컵에 해를 끼치려는 목적인 듯한 북의 도발은 우리사회에 최소한의 영향만을 끼친 채 수습되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는 대한민국 해군이 진정한 의미의 승리자라고 홈지기는 생각한다.

 적어도 월드컵 폐막식이 끝날 때까지 장병들의 희생은 지난 99년의 연평 해전만큼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희생이 월드컵의 한골만큼의 값어치도 없거나 99년의 승전에 비해 외면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희생을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먼 훗날에는 2002년에 월드컵이 있던 와중에 서해 바다에서 "사소한 충돌"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라도 기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이제까지 우리가 평화를 향유하면서도 우리의 평화를 지켜주는 사람들(이번에 전사한 인원수보다 훨씬 많은 수가 1년동안 근무중 사망한다)을 잊고 살아왔던 무례함에 대해서도 함께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전사한 장병들께 조의를 표하며, 부상당한 분들의 조속한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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