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웨이 전투의 승패요인 분석 *

 미드웨이 전투는 전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되곤 한다. 전투의 중요성 면에서는 두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극적인 진행 과정, 결과 등에 있어서 분명 눈에 띄는 전사의 한 장면임에 틀림 없다. 일본군이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결과에 대해서 흔히 연속된 우연의 결과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분의 저서에서는 이러한 전투의 우연적인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근거로 일본군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하지 않은 악의 군대였기 때문에 일본군의 패배가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전사를 단순한 잡담 소재로 삼을 것이 아닌 한에는 전투의 결과를 우연의 결과로 해석하거나 신의 섭리로 해석하는 것에은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미드웨이에서처럼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가진 군대조차도 단 몇 번의 우연적인 요소들로 인해 심각한 패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전장이라면, 이세상 어느 군대라도 승리를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전날 밤 꿈을 잘꾸기만 하면 저절로 대군을 맞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즉, 계속된 우연으로 전투의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것은 분석을 위한 적절한 결론이 될 수 없다. 신의 섭리 운운하는 것도 개인의 가치관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역사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법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미드웨이에서 일본군이 패한 것을 신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면, 태풍이 오거나 혜성이 나타난 것을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인 소신의 정도를 벗어난 미신적인 세계관에 가깝다.

 

미군

일본군

총 투입 전력

항공모함
전함
순양함
항공기

3
0
12 
343

항공모함
전함
순양함
항공기

6
7
14
약 430

손실

항공모함
항공기
구축함
전사
 

1
147
1
307
 

항공모함
항공기
중순양함
수송선
전사

4
332
1
1
약 2500 (추정)

표 1 : 미, 일의 총 투입 전력과 손실 비교

  다른 전사들보다도 미드웨이 전투를 연속된 우연의 결과라고 하는 평가가 많은 것에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에도 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몇몇 전투 중의 사건은 우연성이 인정된다 할 정도로 평범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다. 홈지기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드웨이 전투에서 우연의 요소가 과연 전투의 실제 결과를 발생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전투 시간표
 
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 발생했던 중요한 사건들을 우선 정확하게 따져보아야 하겠다. 이 글의 목적은 미드웨이 전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므로, 배경설명같은 부분은 생략하고 실제 전투가 벌어진 6월 4일의 사건 위주로 전투 일지를 구성해보았다. 붉은 색은 일본군의 행동, 파란 색은 미군의 행동을 표시한다.

0415

미드웨이 미군 정찰기 발진

 

 

0430
 

일본 1차 공격대 발진
정찰기 발진

폭격기 72, 전투기 36
 

 

0500

도네의 정찰기 지연 발진

 

 

0545

미 정찰기, 일본 공습대 발견

미드웨이 미군기들 이륙

 

0552

미 정찰기, 일본군 함대 발견 (1보)

 

 

0600
 

일본군 1차 미드웨이 공격
 

폭격기 72, 전투기 36
 

미군기 17대 손실  
일본기 5대 손실 

0700

일본군, 미드웨이 2차 공격 요청

 

 

0700

스프루언스 폭격대 발진

급강하 폭격기 70, 뇌격기 29, 전투기 20

 

0710

미드웨이發 미군, 일본 항모 공습

폭격기 4, 뇌격기 6

폭격기 2, 뇌격기 5 손실

0715
 

나구모, 대함용 함재기 무장을 대지용으로 교체명령

 

 

0728

 

도네 정찰기, 미 함대 발견 (1보)
나구모, 함재기 무장 대지용 교체작업 중단 지시

 

 

0755

미드웨이發 미 해병 폭격대 공습

폭격기 16

8대 손실

0820

B-17 편대 공습

폭격기 19

쌍방 피해 없음

0800
 

미드웨이 해병 폭격대 공습
 

폭격기 11
 

미군기 2대 손실 
일본 전함 1척 손상

0809

도네 정찰기, 미군 함대 재보고 

항모가 없다고 오보를 냄

 

0830

도네 정찰기, 미 항모 확인

 

 

0838

요크타운 공격대 발진

급강하 폭격기 17, 뇌격기 12, 전투기 6

 

0840
 

일본군 1차 공격대 착함
 함재기 무장 대함용으로 교체 지시

 

 

0915

일 함대, 미 함대 쪽으로 전진

일 함대 방어기들 이륙

 

0920
 

호넷 폭격대, 일본군 발견 못하고 미드웨이로 귀환

급강하 폭격기 35대, 전투기 10대
 

 

0930
 

호넷 뇌격기대 공격
 

뇌격기 15
 

뇌격기대 전멸
어뢰 0/1발 명중

0958
 

엔터프라이즈 뇌격기대 공격
소류 고속 정찰기 발진 

뇌격기 14
 

뇌격기 10대 손실
0/7발 명중

1010

 

요크타운 뇌격기대 공격

 

뇌격기 12, 전투기 6

 

뇌격기 10, 전투기 4 손실
어뢰 0/5명중
일 전투기 10 손실 

1024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 폭격대 공격

 

급강하 폭격기 52

 

아카기 2/?
카가 4/9
소류 4/13발 피격

1030(?)
 

소류 정찰기, 미 함대 발견
 무전기 고장으로 보고 불능

 

 

1040

히류 폭격대 발진

폭격기 18대, 전투기 6대 

 

1200
 

히류 폭격기대, 요크타운 공격
 소류 정찰기 귀환

 

일본 폭격기 13대 손실
요크타운 3/6발 피격

1400

지꾸마 정찰기, 요크타운 발견

 

 

1430

히류 뇌격대, 요크타운 공격

뇌격기 10, 전투기 6

어뢰 2/5발 피격

1500

요크타운 퇴함

 

 

1540

미 정찰기, 히류 발견

 

 

1600

스프루언스 폭격대 발진

폭격기 36대

 

1700

스프루언스 폭격대, 히류 공격

 

4발 피격

1730~
2100

일 항모 4척 침몰 및 포기
 

 

 

 우연의 요소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에 우연적인 요인이 얼마나 개입하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들이 얼마나 있는 지부터 살피고 나서, 그 사건들이 실제로 우연히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지를 분석해보겠다.

1. 일본군 잠수함대의 전개 지연
 원래 일본군은 작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5월 31일까지 잠수함대를 진주만 해역에 배치하여 미 함대의 이동을 경계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 잠수함대의 이동이 지연되어 6월 1일에야 경계선을 칠 수 있었고, 미 함대는 이미 그 이전에 진주만을 빠져나갔다. 이것이 일본군의 최초의 중요한 경계실패라고 받아들여지곤 한다.

2. 일본군의 정찰 문제
 미드웨이 전투에서는 일본군 정찰기들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0430분에 나구모는 미 함대를 찾기 위해 7대의 정찰기를 내보냈는데, 그 중 순양함 도네의 사출기가 고장을 일으켜 도네에서 출발한 4호 정찰기의 출발이 30분 지연되었다. 그런데, 그 30분 늦게 출발한 도네의 4호 정찰기가 가장 먼저 미군 함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으로 출발이 되었다면 적어도 실제 역사적 사건보다 30분 일찍 일본군이 미 함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전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4호 정찰기의 북쪽 지역의 정찰을 맡은 5호 정찰기도 미 함대를 발견할 수 있는 경로를 지나갔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날씨가 나빠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0시경에 미 뇌격기들의 연속 공격을 받자 나구모는 그 때까지 입수한 정보인 미 함대의 항모 1척 말고 그 이상의 항모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소류의 고속 정찰기를 보내 추가 정보를 획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소류의 정찰기는 미 항모를 모두 발견했지만 무전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보고를 하지 못하고 12시가 되어서야 함대로 귀환해서 직접 구두로 보고를 해야 했다. 이 소류 정찰기의 무전기 고장도 일본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사건으로 여겨지곤 한다.


 일본군 정찰기 운용 현황

3. 일본 항모 피격 순간
 일본군은 몇 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미 항모를 공격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공격대가 막 이륙하는 순간 50여대의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대가 일 항모를 덮쳤다. 그래서 갑판에 대기하고 있던 함재기들이 유폭을 일으키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 때문에 미군의 폭격 순간이 30분 정도라도 늦었거나 빨랐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되곤 한다.

4. 날씨
 미드웨이로 접근하는 동안 일본군은 날씨 때문에 고생했고, 작전 당일에도 일본군은 미 함대를 찾는데 날씨가 장애가 되었다. 후에 나구모는 보고서를 통해서, 일본 정찰기는 구름 때문에 미 함대를 발견할 수 없었던 반면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대의 공격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제 하나하나를 생각해보자.

 우선, 일본군 잠수함대는 계획대로 제시간인 31일에 도착했어도 미 함대를 탐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호넷과 엔터프라이즈로 이루어진 16 기동부대는 5월 28일에, 그리고 요크타운은 30일에 진주만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찰기들의 문제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 힘들다.
 우선, 장비 고장 문제를 따져보자. 순양함 도네의 정찰기는 사출기 고장으로 출발이 지연되었고, 소류의 정찰기는 무전기가 고장 났다. 전장에서 장비 고장은 우연이라고 쉽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전장에서 장비가 고장 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 평소에 정비를 철저히 했어야 되는게 아닌가 말이다. 어떤 전사라고 할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장비가 고장 나서 작전이 그르쳐진 것을 두고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묘사할 수는 없다.
설령 장비 고장이라는 것이 실제로 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확률적 사건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전장에서의 모든 행동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백업 대책이 미리 준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의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도네의 정찰기가 출발이 지연되었을 때 즉시 다른 정찰기를 띄워서 공백을 메우는 것이 사출기 고장에 대한 정상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즉, 도네의 사출기가 고장난 사실 자체보다도 출발 지연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당초 새벽에 출동한 일본측 정찰기는 3개 순양함에서 5대와 항모 아까기, 카가에서 각 1대씩이었는데, 미드웨이 해전에서 상실한 수상기(전함 및 순양함에 탑재되는) 총수는 10대였다. 나구모가 공격전력을 최대한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폭격기를 정찰용으로 운용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을 인정해주더라도 순양함 탑재 수상기들까지 투입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충분히 가지 않는 부분이다. 적어도 사출기가 고장 나서 이륙이 지연되는 정찰기를 대체할 한 대의 정찰기조차 뽑아내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10시경에 출발한 소류의 고속 정찰기는 무전기 고장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시간을 따져보면 무전기가 고장 났든 안났든 사실상 전황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소류의 정찰기가 출발한 것이 10시 경인데, 일본의 3척의 항모가 공격받은 것은 10시 24분부터이다. 소류의 정찰기가 출발할 때 이미 미 함재기들은 일본 항모를 향해 날아오는 중이었으므로, 소류 함재기의 무전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3척의 일본 항모 피격이라는 상황이 바뀔 수는 없다.

 일본항모의 피격순간은 매우 극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간발의 시간차로 일본 항모가 안타깝게 타격을 입은 것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나구모 제독이 함재기들의 무장을 대지용으로 바꾸라고 했다가 다시 대함용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번복하여 이 명령 번복으로 인하여 폭탄들이 갑판에 방치되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최초 무장 변경 명령은 7시 15분에, 그리고 대지용으로 바꾸고 있던 무장을 다시 대함용으로 바꾸라는 명령 번복은 8시 40분에 이루어졌고, 그 작업이 완료되어 출격 준비가 된 것은 10시 20분이 조금 넘어서였다. 즉, 간발의 타이밍의 적절한 순간에 미군기가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8시 40분부터 10시 20분까지의 1시간 40분 동안, 그리고 좀더 길 게 본다면 처음 무장 교환 명령이 떨어진 7시 15분부터 10시 20분까지의 3시간 동안 언제든 미군의 폭탄이 한 발이라도 떨어지면 격납고에서 유폭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출격완료된 공격대의 총수는 4개 항모에서 108대였으므로, 항모 한 척 당 거의 30대를 올려 보내야 하므로 출격준비된 갑판의 함재기들이 모두 이함할 때까지는 짧게 잡아도 30분(약 11시까지)은 걸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2차 공격대가 모두 이함하고 난 뒤라고 하더라도 귀환한 1차 공격대는 여전히 격납고에서 재보급 작업을 벌이고 있으므로 유폭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즉, 사실상 오전 내내 일본 항모는 위험한 상태였고, 그 긴 시간 중의 어느 한 시점에 미군의 급강하 폭격대가 성공적인 공격을 펼쳤을 뿐이다.

 날씨 문제는 패전의 이유치고는 지나치게 어이없는 얘기다. 정찰기가 정찰을 못할 정도로 날씨가 나쁘다면 귀환을 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6호 정찰기는 기상조건때문에 정찰을 포기하고 귀환했다. 5호 정찰기가 미 함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구름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나구모도 그렇게 보고하고 있으나, 구름이 가려서 시정이 제한되었다면 비행 안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시정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여러 문서들에서 중복 수색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도 크게 제기되고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부주의했다기보다는 적을 찾으려는 의지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밖에 생각하기 힘들다.
 어떤 책에서는 나구모의 패전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기상조건이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였지만, 사실 나구모의 변명은 말도 안되는 억지다. 정찰기가 무슨 수를 써서든 미 함대를 발견 못할 정도로 기상이 나빴다면 미 항모에서 함재기들이 출격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거나 지연되었어야 할 것이고, 나구모의 함대에서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을 구름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들 역시 나구모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어야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름이 미군 폭격기대를 가렸던 안가렸던 간에 나구모는 미군 급강하 폭격기대를 막을 수단 자체를 그 순간에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존에 상공에 있던 방어 전투기들은 무장이 떨어졌거나 저공에 있었고 새로 준비된 전투기들은 그제서야 이륙할 준비가 막 끝나 방공에 구멍이 뚫려있었으니 미군의 접근을 알았더라도 어차피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드웨이 전투 결과의 요인 중 하나로 미군에는 레이더가 있고 일본군에는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일본군 함대가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구모의 패전 보고서는 중립적이고 쌍방에 똑같이 적용되는 기상 문제를 자기한테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하면서 패전의 원인을 날씨 탓으로 돌리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타당한 원인
 이상과 같이, 홈지기는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불운했던 요인들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단편적인 부분들은 실제로 우연성과 거리가 있는 인적 요소들이라고 본다. 그러한 사실들이 우연적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아마도 미드웨이 전투가 당연히 일본의 승리로 돌아갈만 한데 결과가 그렇지 못했으므로 합리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해내기가 그만큼 힘들게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홈지기는 그러한 단편적인 사건들을 중요한 일본의 패전 요인으로 보지 않는데, 이는 단지 단편적인 사실들의 우연성의 부정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본질적인 이유들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 불확실한 작전 목표
 우선, 애당초 일본군의 미드웨이 작전은 작전 목표가 극히 불확실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미드웨이를 공격하면서 미 항모가 반격해오면 압도적인 전력으로 섬멸할 수 있으니 좋고, 반격이 없으면 미드웨이를 점령할 수 있으니 좋다는 것이 미드웨이 작전의 목표인데, 아무리 봐도 미드웨이 공격이 주목표인지 아니면 미드웨이 공격을 미끼로 미 항모와 결전을 벌이는 것이 주목표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어차피 실제로는 그 말이 그 말이니까 상관 없지 않은게 아니냐고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나구모 제독이 상당히 우유부단한 지휘관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미드웨이 전투에서 역시 나구모의 우유부단함을 지적하는 비판이 많은데, 드러난 사실만 보면 그럴 법도 하지만 적어도 미드웨이 작전에서만큼은 그것이 꼭 나구모의 전적인 책임만은 아니라고 본다.

 나구모 제독은 일본 정찰기가 실제로 미 항모를 보고하기 전까지 줄곧 미 항모전단이 미드웨이 해역에 없다고 가정한 것처럼 작전을 하였는데, 적극적으로 미 함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등 주변에 미 함대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정작 2차 공격대는 대함 무장을 장착한 채로 대기를 하고 있었고 섬에 대한 추가 공격은 머뭇거렸다. 홈지기는 이러한 애매한 행동이 나구모의 우유부단함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애당초 작전 목표가 미드웨이 공략인지 적 함대 격멸인지 불확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 함대를 유인해내서 결전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나구모 제독은 주변에 미 함대가 없을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되고 미 함대가 있다는 가용한 정보가 불충분하더라도 미 함대와 싸우러 온 이상 미 함대를 발견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미드웨이 공략이 주된 목표였거나 적 함대가 없다고 확신했다면 2차 공격대에 대함 무장을 장착하고 당장이라도 적 함대를 향해 출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그랬다면 나중에 무장 변경의 혼란이 더 줄었을 것이다), 미드웨이에 대한 2차 공격 요청에 대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진주만 공습 당시 섬에 대해 연이은 2차의 공격을 실시했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결과론 적인 얘기긴 하지만, 2차 공격 요청을 받았을 때 곧바로 2차 공격대가 출동했다면 1차 공격대의 수용과 재무장이 오히려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미국 항모는 1차 공격대가 귀환했을 때쯤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전장에서는 이도 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있는 것보다는 최선의 결정이든 차선의 결정이든 간에 일관되고 결단력 있게 판단하는 것이 종종 훨씬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결단을 못내린 채로 몇 시간에 걸쳐 2차 공격대의 무장을 떼었다 달았다 하는 동안 1차 공격대의 귀환까지 겹쳐서 미 항모를 발견한지 2시간이 지나서야 출격준비가 되었으니 타이밍이 충분히 늦어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의 작전 목표가 이렇게 불확실했던데 비해서 미군은 일본군의 항모전단을 공격한다는 매우 명확한 목표를 가졌고 지휘관들도 이 목표를 의심없이 수행하였다. 그래서 일본군의 수송선단을 발견하고도 공격을 하지 않을 정도로 미군의 작전 목표와 실행은 철저하였다. 결과적으로 미군의 노력은 일본 기동함대 공격이라는 한가지로 집중될 수 있었다.

 미드웨이를 점령하고 미해군이 나타나면 미해군도 섬멸한다...이런건 구체적인 실천 목표로서의 작전이라기보다는 제멋대로 희망하는 상상 속의 결과를 현실적인 목표와 혼동한 것에 불과하다.

2. 일본군의 전력 분산
 이점은 여러 문서들에서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한번 확인해볼 수 있다.
 우선, 앞의 표에 언급된 총전력은 일본군이 월등히 우세하지만, 일본군의 전력 분산으로 인하여 막상 전장에서 맞닥뜨린 서로의 전력은 일본군이 항모 4척인데 비해 미군은 3척과 미드웨이 섬(흔히 전력 비교를 할 때 놓치기 쉽지만 미드웨이 섬은 그 자체로 일본군에게 상당한 전술적 딜레마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119대의 항공기라는 실제 전력을 가진 어엿한 기지였다.)으로서 오히려 미군측이 유리한 상황이었고, 항공기 숫자에 있어서도 일본군의 나구모 기동함대가 수상기를 포함하여 약 330대를 보유한데 비해 미군은 육해공 합쳐서 343대로 역시 조금 더 많았고 일본 함재기의 1/3정도는 작전에 직접 투입되지도 않는 예비기였다. 실제로 일본군의 공격대는 1차와 2차가 각각 108대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함대 방어전투기를 감안해도 250대 정도만 출격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래된 자료들에서는 나구모 부대의 항공기 세력을 250대 가량으로 추산하기도 하는데, 4개 항모의 제원상 작전기 수용 대수를 계산해보아도 이와 거의 맞는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총전력은 우세했지만 일본군의 상당수 병력은 서로 지원해줄 수도 없는 먼 거리의 아무 쓸모없는 위치에 있어서 전투에 도움이 안되었고 실제 전투에서는 미군의 전력이 오히려 우세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일본군의 전력분산의 대표적인 예가 알류산 열도 공략부대이다. 2척의 항모가 포함된 알류산 열도 공략 부대의 임무는 양동 작전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군의 미드웨이 공략은 단순히 섬 점령만이 목표가 아니라 미 함대를 유인해서 격멸하려는 의도도 가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미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모른다고 가정할 때 알류산 열도에 양동작전을 편다는 것은 즉 미 함대를 그 쪽으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 함대와 결전을 벌이려고 했다면 주력부대인 나구모가 미 함대를 맞아 싸우게끔 계획했어야 한다. 그러므로 미 함대를 끌어낸다는 목표 하에서는 양동작전을 통해 적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도록 기만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필요했던 것이다. 양동작전이 아니라 단순한 알류산 열도 점령이 목표였다고 하더라도, 큰 작전을 하는데 하나의 목표에 전력을 집중하지 않고 의미 없이 전력을 분산시킨 잘못을 탓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쓸데없는 병력 분산이나 축차 투입 같은 비효율적인 부대 운용은 단지 미드웨이에서만의 특별한 실책이 아니라 다른 전선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일본군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어느 한 지점에 병력을 일시에 집중하여 주요 전투를 우세하게 이끌려하기보다 동시에 여러 곳의 관심지역에 병력을 분산하거나 축차 투입하여 결과적으로 어느 곳의 작전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지휘관 개개인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일본군의 전반적인 전략 전술 이론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3. 정찰
 일본군의 정찰기들이 작전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할 때도 언급하였지만, 나구모는 상식 밖으로 정찰에 소홀했다. 일본군이 단지 7대의 정찰기를 운용했던데 비해서 미군은 미드웨이 섬에서 38대의 카탈리나 정찰기를 일찍부터 운용하고 있었고 요크타운에서도 작전 당일에 나구모 함대를 발견할 때까지 10대의 급강하 폭격기를 정찰기로 운용하고 있었다. 개개 정찰기들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하기를 따지기 이전에 애당초 미군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정찰기를 운용하여 일본군을 먼저 발견할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점은 작전 목표가 불확실했다는 것과도 깊이 연관이 되는 문제이다. 일본군의 총 투입 전력은 미드웨이 섬만을 빼앗는 소극적인 목표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미 함대와의 결전을 각오해서 구성된 전력이다. 그렇다면 나구모 제독은 미 함대와의 결전을 반드시 하리라 각오하고 전장에 나섰어야 했으나, 단지 미 함대가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해서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이것은 작전 목표 자체를 망각한 것이다. 적군이 없다는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과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으므로 없을 것 같다고 추정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미 함대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정찰기를 소극적으로 운용하고 정찰기 승무원들 역시 소극적으로 행동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심지어 미 함대를 발견 해놓고도 한시간 동안이나 함종을 식별 못하고 있었으니, 시간 손실로 따지면 도네의 정찰기가 지연 발진한 것보다 이게 사실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만약 여러분께 모월 모일에 신촌 유흥가에서 카메론 디아즈를 찾아 보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마 100명에 99명은 신촌 근처에조차도 가지 않을 것이고, 미친 척하고 가보는 어쩌다 한명조차도 구석구석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 사람에게는 "없는 것"을 찾으려는데 노력을 쏟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구모 함대도 이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단지 전적으로 나구모의 잘못인가 하면 홈지기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애당초 미 해군을 유인 섬멸하려는 취지로 작전을 구상해놓고 정작 작전 목표는 미드웨이를 빼앗고 미해군이 오면 미해군도 섬멸한다...이런 어정쩡한 작전 목표를 세웠으니 나구모도 미해군과 결전을 벌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지 않고 미해군이 없을 것이라는 정보 반 기대 반의 마음가짐으로 전장에 나섰던 것이다.

4. 미군의 정보능력
 미드웨이 전투를 거론할 때 항상 미군의 역정보 작전이 중요하게 거론되는데, 이점도 조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정보력의 차이로 인해 일본군은 미 함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 채로 전장에 진입하였는데 비해 미군은 일본군이 확실히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채로 전투를 시작하였기에 전투에서 미군이 그만큼 유리하게 싸울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드웨이 작전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미 항모를 끌어내어 격멸한다는 것이었으므로, 일본군의 공격을 미군이 탐지해서 그에 대처한 사실이 일본군의 결정적인 패인이 될 수는 없다. 미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몰랐다면 미드웨이 방어를 위해 함대를 제때 출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므로 미드웨이 섬은 점령했겠지만 미 항모를 끌어내어 격멸한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 결과가 일본군의 패배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재 입장에서 볼 때 역정보 작전을 통해 미군이 출동한 것이 결정적인 공훈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미 항모들이 전장에 나타나는 것은 일본군의 계획에 애당초 포함되어있던 것이기 때문에 미군이 항모를 출동시킨 그 자체가 일본군의 패인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정보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미해군의 역정보작전보다는 상대적으로 일본군의 정보수집 및 교환 능력이 미군에 비해 부족하여 지휘관이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도움을 주지 못하였던 것이 일본군의 패인에 더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시간대별 사건 분석
 당일의 사건들을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일본군이 아깝게 패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선, 말했다시피 정찰에 투입된 전력이 극도로 차이가 났고 이는 적을 발견하는 시간차이를 만들어냈다. 미군은 카탈리나 정찰기가 일본 함대를 5시 52분에 발견했고, 일본군은 도네의 정찰기가 7시 28분에 미 함대를 발견했는데 함종도 확인 못했고 8시 30분이 되어서야 미 항모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미군에 비해 무려 2시간 40분이나 늦게 상대방의 항모를 발견한 것이다. 적 발견이 2시간 40분이나 늦었으니 일본군이 이륙도 하기 전에 미군의 공격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게 당연하다. 게다가 일본군은 절반은 이미 미드웨이 공격에 나서있고 출격대기 상태의 전력은 108대였는데 비해서, 미군은 일본 항모를 발견하자마자 애당초 수적으로 우세한 항공전력이 대부분 공격에 투입되었다.
 흔히 오전의 미군의 공격을 무의미한 가미가제 파상 공격이라고 치부하기 쉬운데, 사실 그 전체 규모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엄호 전투기와 일본군 항모를 발견 못하고 되돌아간 미군기들을 빼고라도 미군이 최초의 명중탄을 올리기 전까지만도 미군은 총 97소티의 공격을 일본군에 가했다. 이는 실제로 일본군이 출격준비를 하고 있던 총수와 거의 맞먹는다. 그렇다면 미군의 어리석은 공격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7시 10분부터 10시 24분까지 그 정도 규모의 공격을 받고도 일본군 항모들이 아무 피해가 없었다는게 도리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0시 20분 경의 미군 급강하 폭격기대의 공격이 일본에게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언제든 일본 항모들 중 몇 척이 큰 피해를 이미 입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전 거의 내내 일본 항모는 단 한발의 폭탄으로라도 유폭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유념하자.)
 이 97소티의 미군 공격이 흔히 생각하듯 모두 얼토당토 않은 자살 공격이었는가 하면, 미드웨이發 공격대의 공격현황의 정확한 자료는 구하지 못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3개 항모에서 발진한 3개 뇌격기대대들만도 9시 30분부터 한시간 여에 걸쳐 공격을 하는 동안 총 41대의 뇌격기가 13발의 어뢰를 발사하는데 성공하였다. 공격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일본군이 철저하게 방어에 성공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일본 항모들이 운이 좋았던 셈이다. 일본군이 요크타운을 공격할 때의 뇌격기대의 성공률은 3/6이었으므로, 미군이 그보다 절반의 명중률만 달성할 수 있다고 쳐도 일본 항모가 그 공격에 3-4발정도 피격되었더라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으니 오히려 일본군이 운이 좋았다. 더욱이 3개 뇌격기 대대 중 2개 대대는 엄호전투기가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으면서도 호흡이 맞지 않아 근접 엄호를 실시하지 못하여 뇌격기대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니, 이역시 일본군에게 운이 좋았다면 좋았던 셈이다. 호넷의 급강하 폭격기대 35대가 일본군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역시 일본군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오전의 공격들을 감안해본다면, 미 항모에서 발진한 급강하폭격기 부대의 공격 성공은 일본군이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군이 먼저 발견되고 난 뒤 압도적인 규모의 공격을 수시간 동안 운 좋게 계속 넘겨오다가 언젠가 당하고 말 일을 그때서야 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0시 24분에 급강하 공격기 부대들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일본군이 경계가 소홀했다거나 구름이 가리웠다거나 그런 것은 다 부질없는 변명이고, 그 이전의 대규모의 공격에 대항하느라 그 순간 일본군에게는 미군의 공격에 대처할 능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이 공격은 운이 없이 당한게 아니라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한 것일 뿐이다. 일본 항모들이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하면 피할 수도 있었는데 아깝게 피격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다음 수치를 보자. 이 때의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총 52대였고, 그 중 10발이 3개 항모에 명중하였다. 폭탄을 미리 잘못 투하한 기체들도 있었으니 실제 투하 발 수는 52발보다 작다고 하더라도 명중률이 대략 20%로서, 사실 일본 항모들은 그정도의 대규모 공격에 대해서 오히려 잘 피한 셈이다.

 엄호 전투기와 일본군을 발견 못하고 귀환한 대수를 빼도 미군의 오전 1차 공격이 끝날 때까지 미드웨이發 폭격기들은 총 56소티, 3개 항모의 뇌격기와 폭격기들은 총 93소티, 도합 149소티의 공격을 가했다. 일본 항모를 목표로 출격에 임한 출격대수를 모두 따지자면 210소티에 달한다. 일본군이 궤멸당한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이지 않는가? 일본군의 운명은 10시 24분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미군에게 일찌감치 발견되었을 때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If...
 시간대별 사건 분석에서, 미드웨이 전투에 운이 개입되었다고 한다면 오히려 일본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도 적지 않다고 중간중간 언급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무시하고 또 일본군이 불운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 일본군에게 최선의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가정하고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소용 없는 일이지만 일본군에게 불운이 있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지 다시 정리해서 확인해보는 차원에서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우선 도네의 정찰기가 지연 없이 출격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일본군이 미 함대를 발견하는 시간은 7시 28분에서 7시경으로 당겨진다. 그리고 실제로는 함종을 식별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지만 함대를 발견하는 즉시 항모를 확인했다고 하면 일본군이 미 항모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은 실제 사건보다 1시간 30분 빨라지는 것이다. 그랬다면 미드웨이 2차 공격요청이 7시였고 나구모가 대함용으로 무장한 2차 공격대의 무장을 대지용으로 바꾸라고 명한 것이 7시 15분이므로, 이런 혼선 없이 7시에 2차 공격대의 108대가 대함 무장으로 즉시 출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가정하더라도 스프루언스의 함재기 119대가 0700시에 출격한 것은 막을 수 없다. 스프루언스의 함재기 선두부대들이 7시 30분 경에 일본 함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여 9시 20분 경에 일본 함대부근까지 도달하였으므로, 일본군도 비슷한 속도로 도달한다고 치면 일본 함재기들 역시 빨라도 7시 30분 경 이함하여 대형을 갖추어서 9시 20분쯤 되어야 요크타운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은 8시 38분부터 이함하기 시작하였고 9시 20분 경에는 이함을 거의 마쳤을 시점이 될 것이므로, 일본군이 아무리 빨리 미 함대를 발견해서 출격했다고 하더라도 3척의 미 항모에서 출격한 210대의 공격 편대군을 막지 못했을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미군의 공격 시간표는 실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게 된다.
 즉, 일본 정찰기들이 아무리 빨리 미군을 발견했더라도 3척의 일본 항모의 손실은 피할 수 없고, 단지 바뀌는 것이 있다면 108대의 일본기들이 요크타운을 향해 약 10시 20-30분 경에 공격을 할 수 있었다는 점만 달라진다. 실제로는 요크타운은 1200시에 24대의 히류 함재기의 공격을 받아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가정을 근거로 한다면, 히류를 이끌었던 야마구치 제독이나 야마모토 제독은 최후까지 결전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으므로 이후의 전투는 1척의 일 항모와 두 척의 미 항모가 계속 결전을 벌이는 형태가 되었을 것이므로 일본군이 승리하고 미드웨이 섬 점령에 성공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본이 최하 3척의 항모가 침몰하거나 큰 피해를 입은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채로 승리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동안 미군이 실제보다 더 운이 좋을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본이 유리하게끔 몇 번의 가정을 붙여야만 했다. 즉, 일본군은 미드웨이에서 사소한 악운들이 모두 합쳐져서 큰 패배를 당한 것이라기보다, 당일의 전장상황 자체가 일본군이 패할 위험이 큰 상황이었으며 당일의 상황만 놓고 볼 때는 오히려 일본군에게 반복된 행운이 따랐어야만 항모간 결전에서 승리할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지휘관의 판단
 언급하였다시피 나구모 제독은 우유부단하다는 평이 지배적이고 미드웨이의 작전수행도 그런 면에서 나구모의 책임을 많이 묻곤 한다. 홈지기도 넓은 의미로서는 그에 동의하지만, 작전 당일의 구체적인 판단에 대해서 만큼은 개인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싶다. 흔히 나구모의 지휘능력의 부족을 들어 작전 당일에 있었던 나구모의 모든 판단들을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가 멍청하고 무능력해서 계속된 잘못을 하여 패했다고 치부하기 쉬운데, 이역시 일본군의 패인을 불운으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무책임한 분석이 될 것이다.

 나구모의 큰 실책으로 꼽히는 것은 우유부단하게 함재기의 무장을 바꾸도록 명령을 계속 번복(대지용 무장으로 교체하라->무장 교체를 중단하라-> 대함용으로 바꾸라)한 것이라던가, 미 항모를 발견하였을 때 대지용 무장만으로라도 공격하자는 야마구치 제독의 건의를 묵살하고 1차 공격대 수용과 무장 교체 작업을 지시한 것 등이다.

 그런데, 나구모로서는 당시의 매우 제한된 정보하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나구모의 개별적 명령들이 패전을 유발했다는 것은 단순히 결과론 적인 이야기일 뿐, 당시의 나구모로서는 제한된 정보를 토대로나마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했다는 충분한 기록이 있다.
 말했다시피 무장 교체를 자꾸 반복한 것은 정보가 부족했고 작전 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아서 등의 근본적인 이유가 있으며, 성격이 원래 우유부단하기 때문만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보다 확실히 더 나은 다른 대안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지 강력한 전력을 미 함대에 투입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자 한 의도가 지나쳐 미군의 선제공격을 허용함으로써 결국 아예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말이다.

 대지 공격용 무장으로라도 공격하자는 것도 전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이야 그렇게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 당시의 정상적인 상황에서 섣불리 그런 원칙에 위배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미 항모를 발견한 8시 30분에 대지 무장을 장착한 공격대를 출격시킨다면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폭격기들만 보내야 했고, 그랬다면 큰 피해를 면치 못했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1차 공격대의 상당수는 착함해서 재공격을 준비하지 못하고 연료 부족으로 바다에 빠져 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지 공격 무장으로 곧바로 출격했다면 한 번도 공격을 못한 실제 사실보다는 조금 나았겠지만 당시 입장에서 본다면 전체 항공전력의 절반은 그냥 버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투기 엄호도 없이 효과도 의심스러운 무장으로 출격시켜야 한다는 것이니, 단 한번의 기회 이상은 어차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자신의 전투력을 내다 버리듯이 할 지휘관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군의 계속된 공격을 받고 있던 상황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애당초 먼저 발견당했고 미군이 투입한 항공전력 자체가 워낙 우세했기 때문이었으므로, 자력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미군의 공격은 어쨌든 파상적인 것에 불과하고 있었던 것이니 꼭 나구모나 겐다 중령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릇된 판단을 하였다는 비판은 그들로서는 억울하게 생각될만도 하다. 다만, 출격 준비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계속해서 적 항모를 향해 다가가면서 공격을 뒤집어 쓴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출발이 지연되는 도네의 정찰기를 대체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데서도 볼 수 있듯이, 미드웨이 전투에서는 전반적으로 우유부단함의 문제보다는 계속해서 바뀌는 전장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융통성이 부족했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였던 것 같다. (이점은 무장에 상관없이 신속한 출격을 하자는 요청을 묵살한 것과도 연결된다)

 미드웨이의 나구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패전을 유발한 패장의 결심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단정하고 그 지휘관이 무능하거나 멍청해서 그런 잘못된 명령을 내려서 전투에 졌다는 식으로 비난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것은 앞뒤가 뒤바뀐 결과론 적인 이야기일 뿐이며, 전장의 어느 지휘관이라도 전투 결과를 다 알고 있고 전지적 시점의 역사책을 보는 현재의 우리들보다 훨씬 제한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 중차대한 결심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전사를 대해야 한다. 지휘관이 최선의 판단과 결심을 했더라도 결과는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사를 대할 때는 당시 지휘관의 판단을 현재의 시점에서 전투 결과에 자의적으로 대입하고 마음대로 재단해서 불공정한 누명을 씌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는 홈지기가 지어낸 주장이 아니라...누구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저명한 군사학자의 의견인데 백 번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패장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심지어 유명인사나 역사가의 저술물들에서도 발견되기도 하니 일반인인 우리들이 전사를 대할 때는 그만큼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결론
 미드웨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미군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투입하고도 지휘관의 판단 착오나 불운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역전패를 당하였다는 의견이 많이 있다. 홈지기는 불운이나 개인에게 패전 책임을 씌우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며, 미드웨이 전투는 여느 전투와 다름없이 보편적으로 치루어진 전투이며 그에 따라 보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온 평범한 전투, 즉 군사학적으로 볼 때 전투결과가 비합리적이지 않고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본다. 일본군의 패인으로는 근본적으로 작전 목표가 불확실했던 점, 일본군이 전체 전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병력 분산으로 인해 전투 당일 접적지점의 실제 전력비는 도리어 미군이 우세했다는 점, 당일의 일본군 작전 지휘에 융통성이 부족하여 유동적인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미군의 승리 요인은 간단하다. 일본군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본군을 먼저 발견했으며, 우세한 전력으로 줄기차게 공격에 임해서 결국 일본군을 격멸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그저 여느 다른 승리와 별다를 바 없는 보편적인 승리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군과 일본군의 승패 요인들은 특이하거나 우연적인 요인들이 아니라 보편적인 전략 전술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설령 우연적인 요소가 작용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일본군에게 행운이 작용한 부분 역시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정황을 따져보면 우연의 요소들은 어느 쪽에 유리한 것이었던 간에 전투의 결과를 결정적으로 바꿀 정도로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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