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재적 군사분야 접근론 *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밀리타리 취미를 가진 사람은 학교 전체에 몇 명 없을 정도로 희귀한 존재였다. 밀리타리라는 취미 장르가 사실상 표면화되지 못했고, 단지 특이한 개인으로서만 존재했었다. 매니아들 간의 유기적인 상호작용도 아주 작은 단위에서만 가능했으며, 각자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형태로 취미활동의 대부분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상황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PC통신이었는데, 여느 소수 취미에서 그랬듯이 밀리타리계에서도 PC통신이나 인터넷은 소수취미인 매니아들 간의 유용한 접촉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매니아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자, 혼자서 내공을 쌓는 것이 전부이던 과거의 형태와는 달리 서로간의 내공경쟁이 취미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매니아 집단은 다른 평범한 친구나 동료들과는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눈다는 기쁨에서인지 항상 열띤 논쟁들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러한 수많은 논쟁들 속에서 밀리타리 매니아라는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매니아들이 각자 나름대로 존재할 때는 자신의 정체성이 매니아의 정체성 그 자체였지만, 집단화한 이상에는 집단으로서의 공통된 특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의식적으로 그러한 고민을 했거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판자로서의 역할
 매니아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적인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들 중 한 부류는, 비매니아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을 접할 수 있는 매니아의 특성상 여론을 이끄는 역할, 특히 비판을 통해 군의 발전을 꾀함으로서 관심분야에 대한 애정을 사회화시키는 것이 매니아로서의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한 인식은 반사회적인 오타쿠의 부정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매니아라는 장르를 사회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줄 수 있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매니아의 정체성을 주류 집단에 대한 발전적인 비판이라는 것이라고 할 때, 밀리타리 매니아층이 형성된지 10여년 정도 흘렀고 군사 사이트들의 방문객이나 회원수를 보면 상당히 영향력 있는 여론집단으로서 밀리타리 매니아들이 역할을 하고 있을 법도 한데, 정작 군은 밀리타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토론이나 여러 새로운 시각의 주장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구체적인 정책의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매니아계층의 의견이 여론의 전면에 내세워지지도 못하고 있다. 매니아들의 수많은 "전문성 있는" 토론들이 고물 자전거 갖다 버리라는 식의 악질 선동보다도 사회적인 값어치가 없고 매니아들이 전문성이 뒷받침된 건전한 비판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다른 많은 온라인상의 취미 동호회들은 그 분야에서 주류 집단에 대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자기만족이 취미활동의 목표인 사람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문제일 것이나, 비판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추구하는 사람들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일단 남들이 눈여겨 보기라도 해야 비판이든 옹호든 어떤 역할을 할텐데, 사실상 밀리타리 매니아계층은 사회와의 유기적인 관계 유지에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개별적으로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규모를 감안한 평균적인 차원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화 실패의 이유는 무엇일까.

 군이 오만해서 눈과 귀를 닫고 있고 일반 여론들이 무식해서 매니아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매니아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 문제가 발견되었으니 이제 군이나 일반여론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만 하면 되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설령 그러한 분석이 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인식을 통해서는 현실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 문제를 외부에 두었으니 외부적 요인이 바뀌어야만 현실이 따라서 바뀐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군과 일반 여론이 매니아들의 의견을 경쳥해 달라고 떼쓰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군이나 일반 여론은 매니아들의 여론이나 의견을 귀담아 들어줄 의무도, 이유도 없다. 매니아가 무엇이길래? 매니아가 하늘에서 떨어진 군사학 교수단쯤이라도 되나? 자기들이 좋아서 모여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을 남들이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웃기는 얘기다. 매니아들이 하는 말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들어주지 말라고 해도 제발로 찾아와서 조언을 구할 것이고, 가치가 없다 생각하면 매니아들이 무슨 생떼를 쓰던지 무시해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즉,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며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만 능동적인 현실 개선이 가능하다.

네 자신을 알라
 홈지기는 비판자로서의 역할의 근거인 밀리타리 매니아계층이 일반인과 다른 전문성 있는 집단이라는 자아인식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전문 직업인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매니아와 일반인은 완전히 동등하다. 매니아는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보다 더 깊이있는 정보를 단 A4 한 장만큼도 얻지 못한다. 모두 원칙적으로 공개된 정보만을 얻을 수 있고, 그러한 정보 접근 수준은 전문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같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관심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보를 접촉하느냐 마느냐,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접촉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매니아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깊이있는 정보를 접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심지어 어떤 매니아들은 자신들이 접하는 정보가 고급정보라는 착각에서부터 자신들이 전문 직업인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심각한 망상에까지 도달한다. 사실 이정도 망상에까지 이르면 발전적인 비판은커녕 군조직과 구성원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막가파식 비방으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공개된 군사정보들을 장바구니에 담듯이 주워담는다고 해서 전문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니며, 접촉하는 정보의 양이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매니아는 특이한 집단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전문성 있는 집단은 아니다. 전문인에 대해 상대적인 정보접근의 한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전문적인 시야를 가지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전문 취미랍시고 밀리타리 매니아들만큼 주류집단의 수준에 비해서 전문성이 뒤떨어지는 장르도 아마 없을 것이다. 홈지기는 매니아가 스스로를 전문성 있는 집단이라고 착각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높일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고 매니아로서의 한계를 초과하는 근거없는 주장을 일삼아 그로 인해 주류계층으로부터 쉽게 무시당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고 본다. 매니아의 단편적인 시각과 군의 체계적인 시각과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예 1) AH-X 사업의 경우, 사업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매니아층의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남북한 기갑전력을 비교해보니 국군 전차전력으로 북한 전차전력과 맞서고도 남는데 대전차 공격헬기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 그 주된 논지였다. 매니아답게 전형적인 무기 제원에 입각한 분석이다. 그런데, 군의 소요제기 이유는 그런 논리와 전혀 다르다. 육군의 3대 기본 작전교리 중 하나가 입체 고속 기동전인데, 쉽게 말하면 한반도의 좁고 험난한 지형특성상 지상에서 기동전을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공중기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지형의 제약을 극복하고 기동전을 달성하자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에서는 지상의 기갑전력과 함께 육군항공전력이 매우 중요시된다. 즉, 현행 교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노후 헬기 대체뿐만 아니라 현재의 육항 전력을 대폭 강화시킬 필요가 절실하다. 사업의 방법론상의 문제는 제기할 수 있을지언정, 교리에 따른 무기체계 확보의 차원에서 소요제기된 사업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많은 매니아들은 자신들의 시각에 따라서 사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남한의 전차전력이 우세한 것을 몰랐었는데 매니아들이 전문적인 지식으로 가르쳐주었다며 군이 고마워하고 반성하며 소요제기를 취소할 리 만무하다.

 예 2) 또다른 육군의 주요 교리중 하나로 도로 견부 종심 방어 체계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선형 방어선은 한 곳만 뚫리면 그 방어선은 전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6.25때의 고지사수 중심의 선형 방어선의 개념으로는 북한 기갑부대의 돌파전법에 충분히 대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적의 기갑부대의 종심돌파를 차단 및 지연하는 것을 방어체계의 주목표로 삼아 도로주변의 감제고지 및 능선군에 일련의 종심 방어체계를 편성한다는 개념이 도로견부 종심 방어 체계이다.
 그런데, 이 도로견부 종심방어 교리도 매니아계층으로부터 심심치 않게 비판받는다. 보병 대전차 화기래야 90밀리 무반동총이나 LAW 따위가 고작인데 그런걸로 어찌 적 전차부대를 공격할 수 있으며 도로견부 진지라고 해도 전차포 한방에 박살나는데 어떻게 방어전투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역시 매우 매니아다운, 그리고 최하급 제대 사병다운 관점이다. 사실 이런 것을 비판하겠다고 나서는 것만도 매니아 중에서는 상당한 내공인 셈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종심 방어의 개념으로 본다면 비기동부대 위주의 종심방어체계는 적의 주력부대를 결정적 방어 전투로 저지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라 적의 예봉의 돌파는 허용하되 지속적으로 도로를 통제함으로서 적의 병참선을 위협하여 전과확대를 막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통례이다. 즉, 종심방어체계는 적을 선택적으로 통과시켜서 적의 병과들의 유기적인 협조를 깨뜨려 궁극적으로 전체 적 전투력 와해를 추구하는 일종의 거름종이 역할을 한다. 적군으로서는 기동전에 필수인 속도를 유지하려면 측면과 병참선이 위태로워지고, 그렇다고 종심 방어선을 직접 전투로  일일이 깨고 내려가려면 공격속도가 둔화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종심방어에서 결정적인 전투는 계획된 kill zone에서 이루어지거나 아군의 기갑전력으로 구성되는 기동 예비대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전술사고에 입각해서 본다면 참호에 들어앉아서 90밀리 무반동총으로 T-62를 어떻게 막느냐는 의문은 어리석은 질문에 불과하다. 이 역시 군부가 매니아의 비판에 대해서 도로견부 진지에서 적 주력 전차부대와 싸우면 90밀리 사수가 죽을 줄 미처 몰랐다고 사과하면서 교리를 없애지 않을 것임은 물론이다.

 이런 무지에서 비롯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른바 비판적 주장들이 어쩌다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이트에서 한 달에도 몇 번씩 애당초 논쟁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 얘기를 가지고 심오한 전문적 토론이랍시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을 보다보면 처음에는 무언가 유용한 얘기가 있을까 하고 둘러보다가도 나중에는 그러한 사이트들 자체를 아예 무시하게 된다. 이러니 매니아들의 시각과 전문성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별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그 사안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표면에 나타나는 빙산의 일각의 부분만을 보기에 생기는 의문들인 것이라면 타당성 있는 비판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일단은 단편적으로 접하는 정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부분에까지 논의가 진전되면 전문성 있는 근거가 아니라 군사분야에 대해 문외한인 일반인의 사고방식과 하등의 다를 바 없는 개인의 일반상식으로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모습들을 홈지기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그렇지만, 설령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실 그 자체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그 사실이 있게 될 때까지 나름대로의 내부적인 체계화 과정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정작 그러한 체계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개인의 상식만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군의 발전을 위한다는 취지로 비판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기 머릿속에서 어떤 사실을 지어 낸 후 다시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코메디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근거없는 비판들이 난무하면 그 속에서 진정 가치있는 비판을 구분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군개혁이라는 비판자들의 선의의 목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소가 될 뿐이다..

 홈지기가 말하는 깊이있는 체계적 바탕이란 것은 군사보안이라는 보호막 때문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매니아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수준의 비판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홈지기라고 해서 다른 매니아들과는 다른 정보접근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홈지기 역시 똑같이 공개된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한 사람의 매니아일 뿐이고 군 간부 출신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얻는 정보도 솔직히 없지는 않지만, 누구나 그런 정보소스들은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런 정보들은 공개적인 토론에서 인용하지 못하기에 결국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자신의 논지를 위한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할 수 없다면 자기나름대로 논리를 지어내서 어떻게든 군을 비판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고 자의적인 결론을 단정하려 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최고수급의 매니아에게라도 마찬가지다. 밀리타리라는 장르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일견 모두 다 군사분야라고 해서 엇비슷해 보여도, 군장 수집가와 무기제원 매니아는 관심 영역이 본질적으로 상이하고, 심지어 전사 매니아와 군사학 매니아간에는 같은 자료를 놓고 보더라도 접근법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자신이 넓은 의미의 밀리타리 매니아라고 해서 혹은 남들이 알아주는 고수라고 해서 군사분야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가지는 의견에 저절로 합리성이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그에 합당한 기반 지식이지, 밀리타리 매니아라는 추상적인 이름표가 아니다. 무기 제원 매니아나 군장 수집가의 작전 교리에 대한 지식은 군사분야에 아무 관심 없는 도봉구의 홍길동씨와 별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밀리타리의 여러 분야에 대해 포괄적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각 세부장르의 고유함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임을 알려둔다.) 도봉구의 홍길동씨가 군사분야에 대해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자유이나, 그것을 전문성 있는 주장이라고 하긴 힘들다. 넓은 의미의 밀리타리 매니아가 자신의 세부 관심사 이외의 분야나 자신이 여지껏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홍길동씨의 의견 이상의 의미가 없다.

정보의 선택과 지식화
 
앞부분에서 밀리타리 매니아와 일반인들의 차이란 존재하는 정보를 접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했었다. 밀리타리 매니아들만을 놓고 볼 때에도, 군사보안의 문제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의 문제보다도 공개된 정보 중에서 자기만족의 용도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선별한 정보들이 어떤 사안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쓰이기에는 부적합하거나 주어진 정보의 분석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한계가 커지는 문제가 더 크다. 즉, 매니아로서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목적의 정보처리와 사회성 있게 쓰일 수 있는 형태의 정보처리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다른 글에서 소개했듯이, 미군에서 직접 발간한 1차 소스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1차 소스인 군당국의 공식 발간 문서는 심도있는 논의를 위한 가장 유용한 자료이다. 이를테면, 공군의 작전의 종류에 대해서 검색해보면 대학교 학회지에 기고된 글이 나온다. 이 자료는 명확하게 근거있는 소스를 인용한 것이 아니라 적당한 기본자료들을 기고자가 상식선에서 얼기설기 짜맞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만든 자료들에서는 오류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저자가 그 내용에 대해서 책임을 못 진다는 것이다. 눈에 띄거나 잘 안띄는 오류가 있는 자료들이 무분별하게 반복 인용되다보면, 사실관계가 상당히 훼손될 위험이 있다. 치열한 논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사람이 전제했던 근거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되면서 그동안의 지루한 논쟁들이 일순간 무의미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1차 소스는 이런 문제를 명백하게 방지해주고, 확실한 사실관계 내지는 적어도 군당국의 명확한 견해를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예에서 공군의 작전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겠다면 대학교 학회지의 글을 찾아보기보다 공군에서 발간한 공식 문서에 명시된 공군의 작전의 종류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는 것이 확실하다. 즉, 미군 문서 공개 사이트에서 교리관련 문서 분류 기호인 AFDD- 계열 문서들을 찾으면 된다. 육군 자료를 찾아보면 브래들리 전투차의 좌석별 분대원 배치에서부터 미군의 21세기 초 작전교리인 FORCE21 교리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설명이 된 문서들도 얻을 수 있다. 쓸모없는 것만 공개한 것이 아니라, 일견 군사보안으로 막혀있을 법한 자료들도 웬만한 것은 다 공개돼있다. 우리 군의 홈페이지들에서도 미군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간부들의 학술논문들을 구해볼 수 있다. 문제는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없고가 아니라,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토론과 자기계발의 소스로서 얼마나 잘 활용하는 가이다. (그런 점에서 공식 문서들을 접할 수 있게 된지 수 년이 지났건만 밀리타리 매니아들의 수많은 정보의 교류 중에서 그런 자료들이 쓸모있는 소스로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은 프라모델 설명서 한 장을 구하고도 기뻐하던 세대의 사람이 보기에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보더라도 가치있는 정보나 이론을 다루는 서적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전문 서적들의 상당수는 군의 고급 전문 인력들이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들이고, 그중에는 군 고급 교육기관의 교재로 쓰이는 것들도 있다. 고전 서적들은 옛날 장군들이 배우고 익히던 것들이다. 요즘의 저술가들이 쓰는 책들로는 따끈 따끈한 현대 군사학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매니아들 역시 그런 학술 서적들을 풍부하게 접하다보면 전문성 있는 시각을 쌓아 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역 군인의 실무를 대체할 능력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인으로서 군사분야의 여러 사안들을 깊이있는 시야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은 충분히 될 수 있다. 밀리타리 매니아라면 책장 한두 개에 자료서적을 가득 채워 소장하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닌데, 항공력 운용 동향을 취급한 전문서적을 사는 대신 무기 그림책을 사서 모은 뒤 항공력 운용 개념같은 것을 민간인이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항변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단, 정보를 수집하거나 외우는 것으로 깊이있는 이해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자료의 선별 능력에 더하여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발간한 책자에서 브래들리 계열의 보병전투차는 탑승인원수가 적어졌음으로 인하여 하차 전투력의 약화를 초래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많은 매니아들은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용한다. 하지만, 미군 교범에 따르면 M2A3 브래들리 소대의 하차 팀 인원수는 M113 APC 소대의 하차 팀 인원수와 같고, 도보 소총 소대의 3개 소총 분대 인원수와 같은 27명이다. 도보 소총소대에는 기관총을 장비하는 화기분대가 있지만, 기계화 소총소대에서는 화력 지원의 역할을 APC나 전투차가 하므로 지원화력도 더 강하다. 이러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M2A3 브래들리 소대 교범, M113 소대 교범, 경보병 소대 교범 등 3개의 교범에서 관련 항목을 찾아 비교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학술 서적이나 논문은 참고문헌 목록이 몇 페이지에 달하는 것이 기본이다. 밥벌이도 아닌 취미로 활동하는 매니아들이 그 정도로까지 매달려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존 자료를 머릿속에 단순히 붙여넣기 하는 수준만큼은 벗어나야만 한다. 단일 자료를 인용하여 얘기하다보면, "그 자료 잘못된 건데?" 라는 말 한마디로 멀쩡한 사람 바보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자료의 오타를 그대로 믿고 우기다가 망신당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참고 자료라는 것은 필요할 때 필요한 내용을 활용할 수 있게끔 준비해놓는 것과 자료들을 적절히 검색하여 활용할 능력이 필요한 것이지, 굳이 직접 소장하고 있거나 모두 암기하고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암기하는 지식은 동호회 모임이나 술자리 정도에서나 쓸모가 있다.

내재적 접근법
 홈지기는 평소에 예술은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에서와도 같이 예술인이라는 사람들 내부의 협잡에 의한 사기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예술이론 과목을 강의하는 철학전공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토론식 수업이라 의견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기에 홈지기의 평소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자네가 예술이 뭔지를 몰라서 그래"라고 홈지기의 의견을 간단히 무시해버렸고, 그에 대해서 홈지기에게는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도대체 예술계가 뭐라고 하길래 자기들끼리 심오한 척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그 교수님의 세 과목 강의를 자유선택으로 전부 쫓아다니면서 들었다. 그 강의들을 통해 예술계가 어떻게 자기합리화 논리를 만들어놓고 있는지를 배우고 익혔고, 나중에 예술계 자신의 자기합리화 논리체계를 바탕으로 그 교수님에게 역시 예술은 사기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다시 제시하였다. 그러자 비로소 더이상 몰라서 그런다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고, 예술계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의견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었다.
 비판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하나의 합리성 있는 의견으로서의 가치를 지녀야 그 이후의 어떠한 논의들이라도 역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류계층으로부터 하나의 의견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주류의 체계를 연구하고 주류의 논리로서 말해야 한다. 비판을 위해서는 비판대상에 대한 연구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비단 밀리타리라는 장르에 국한되는 문제이거나 군의 아집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문화장르 전반에 걸친 보편적인 상식이다. 군사분야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도 군사분야가 지금의 형태로 발전해온 과정과 체계를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1,2차 자료를 통하여 군의 논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어보자면 내재적 군사분야 접근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군을 옹호하는 논리를 개발하라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꼭 비판을 목적으로 접근하라는 것도 아니다. 설령 군대에 무슨 억한 일을 당해서 내심 어떤 결론을 주장하고 싶더라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주장의 근거의 객관성과 합리성이 깨질 때 그것은 더 이상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악질 선전선동이 되는 것이다. 사안이나 관점에 따라 어떤 결론에든 도달할 수 있을 것이지만, 보편 타당한 과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어떤 결론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 의도는 순수하다는 둥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데(군사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적인 주제에서든 이런 사람 정말 많이 만났다), 결코 의도의 순수함 여부가 수단을 정당화 시켜주지 못한다. 이세상에 자기가 순수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첨언하자면, 군이 비판받을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군이 무슨 악의 온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장해서 떠벌리는 것도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사회조직이라도 유토피아적 이상향의 모습에 도달할 수 없듯이, 군에 대해서도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의 모습이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본질적으로 군이라는 조직은 그 특성상 민간인의 기준이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불가피한 요소를 가지는 부분도 많고, 군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꼭 군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군도 하나의 사회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회조직에 꾸준한 개혁과 발전, 그리고 그를 위한 비판이 필요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군 역시 꾸준한 개혁과 발전과 비판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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