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nocking on Heaven's Door *

 저 옛날 어떤 동화작가가 지은 이야기 중에 주석으로 만든 군인 인형과 인형의 주인인 꼬마 아이간의 우정을 소재로 한 것을 아주 어렸을 적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성형을 잘못해서 한쪽 다리가 없는 군인 인형이 버려져 떠돌다가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장군들의 위인전기들을 보면 어렸을 적부터 전쟁놀이에 대장 노릇을 했다는 천편 일률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그런 것을 보면, 시대를 불문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전쟁 문화는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는 것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아주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갖고 놀던 장난감들 중 많은 수가 군인이나 무기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중에는 조악하게 성형된 녹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군인 인형들이 있었는데, 6인치 스케일 급의 그 군인 인형은 전통적인 아미맨(플라스틱 군인 인형) 류 인형의 한국판 카피본이었다. 남성 우월주의 사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군사와 전쟁이란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 꼬마에게조차도 흥미를 유발하는 매력이 있거나, 혹은 남자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그것에 매력을 가지도록 키워지는 것만은 틀림 없는 것 같다.


아미맨 - 원본 자체도 상당히 조악한 장난감이지만 70년대에 국내에서도 무단 카피판이 팔린 적이 있다.

 요즘 국방부에서 만드는 국군 방송에서 고전 밀리터리 드라마 "전투"를 해준다. 이 컬러판은 80년대 초에 한국에서 방영된 마지막 시즌인 시즌 5인데, 그 이전의 시즌들도 우리나라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다. 홈치기는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그 초기 시즌들을 TV에서 보았었고 컬러판 시즌 5를 본 것은 대략 초등학교 중반 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전투"의 인트로 중

 영화나 드라마를 간접 체험의 도구라고 볼 때, "전투"는 전쟁 장난감이라는 본능적인 도구를 벗어나서 홈지기에게 전쟁 그자체에 대해서 실체적으로 간접 체험을 하게끔 해준 최초의 수단이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는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저 로봇 만화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관점에서의 흥미만이 있었으나 점차 국가와 역사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 드라마를 보고 떠오르기 시작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 궁금증이란 미군과 독일군이 왜 서로 싸우는가, 지금은 왜 만나면 안 싸우는가, 그리고 지금은 안싸운다면 언제 싸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문제를 궁금해한다는 것은 곧 전쟁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대하여 이해를 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초등학생의 관점이라는 것을 다시금 밝혀둔다) 보통의 경우 남자 아이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아버지가 풀어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전쟁 문화라던가 전사라는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아버지가 밀리터리 매니아가 아닌 한 아들에게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고, 홈지기에게도 또한 그랬다. 결국은 어떠한 특정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서가 아니라 머리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이라는 현상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전투라는 드라마가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홈지기의 호기심은 자연히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학구적인 방법으로 풀어준 것이 중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휴맨 카인즈의 승리와 패배 시리즈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히 흥미위주로 쓰여 있으면서도 역사서라는 틀을 갖춘 장서였기 때문에 중학생 수준에서 전사를 접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자료였던 것 같다. 당시 학교 도서관에는 시리즈의 앞부분 20권이 소장되어있었고, 그 시리즈를 모두 본 후에는 자연스럽게 "전쟁"이라던가 "군사" 등의 키워드로 연결되는 책들을 도서관에서 찾아가면서 보았었다.


휴맨 카인즈 "승리와 패배" 시리즈 중

 드라마, 역사책 말고 또다른 훌륭한 간접 체험의 수단은 다큐멘터리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EBS에서 한 프로그램 중에 BBC에서 제작한 World at War 시리즈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아마 이 프로그램이 홈지기가 2차대전 영상을 대량으로 접한 가장 첫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당시 잘 나오지도 않는 TV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비디오 테입에 EP로 녹화를 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었는데, 결국 녹화 화질이 나빠서 소장은 못했다. 나중에 영풍 문고 군사 코너에서 한국어판 비디오본이 진열되어있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상당히 비쌌던 관계로 사지는 않았다. 요즘의 2차대전 다큐멘터리들은 재연 프로그램 형식으로 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그때 당시의 영상으로만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도 소장가치가 충분할 것 같다.


World at War

전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이런 자료들은 지금 되새겨보면 전쟁을 내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거나 시각적 상상력을 충족시켜주는데 주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승리와 패배 시리즈나 World at War 시리즈 등은 기본적인 제작 컨셉이 사실의 기록과 전달을 위한 것이지, 내면적인 이해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홈지기 스스로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전쟁을 내면적으로 이해하고픈 생각이 별로 없었고 지식의 획득이 주된 목표였으며, 이런 자료들은 그저 이런 취향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자료들의 특성이 홈지기의 그러한 당시의 취향을 만들어내는데 일정도 기여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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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을 이해하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걸프전이었다. 그 이전에 홈지기에게는 전쟁이란 지나간 역사 속의 일들에 불과했었지만, 대학교 1학년때 벌어진 걸프전은 처음으로 "현재 진행형"인 주요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투의 현장에 직접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나오는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전쟁을 접한다는 것은 지식의 획득이라는 관점에 따르더라도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이었다. 걸프전이 터진 초기에는 전쟁에 대한 그동안의 지식을 통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해석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걸프전의 보도자료들을 꼼꼼하게 보면서 뭐랄까, 그동안의 역사 자료들의 무대 뒷편을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자료화면이었다. 91년의 걸프전 보도영상들은 스커드 요격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지상전에서는 실전 교전 장면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영상 촬영 여건이 훨씬 더 나빴을 2차대전 다큐멘터리 필름들도 거의 대부분이 실전 도중에 찍은 장면이 아니라 단순한 훈련이나 행군, 또는 교전 후의 촬영 장면 등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방송이나 다큐멘터리 등에서도 91년 당시에 단순히 일간 보도용으로 실제 지상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전선에서 한참 멀리서 촬영한 훈련 장면 등을 마치 실전 전투장면쯤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집해서 쓰고 있다.) 그러자 역사 자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정보를 접하는 양에 집착하던 태도에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91년 걸프전 영상 중 - 다이나믹해 보이지만 일선의 실전 중의 장면은 아니다

 이러한 지식 개념에 대한 혼란을 겪는 와중에 군대를 가게 되었다. 홈지기는 군부대에서 근무하는 방위였는데, 이게 또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의 중간쯤에 걸친 기이한 경험이 되었다. 현역으로 복무를 했다면 생활 그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밀리터리 매니아로서 군인 신분이 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외 거주 생활을 하다보니, 그리고 전투 병력으로 편제되기는 했지만 그다지 긴박하지는 않은 후방부대에 있다보니 군에 대한 일반인으로서의 거부감의 원인이 될 만한 부분들(이를테면 내무생활 같은)은 상당히 생략하고 넘어간 결과 당시 생활을 3인칭의 관점에서 돌아볼 여유가 생겼었다. 소집해제(아는 분은 알다시피, 행정상 병역의 형태가 현역 입대와 다르기 때문에 방위는 제대라고 하지 않고 소집 해제라고 한다.)를 손꼽아 기다리는 입장이라는 점에서는 일반인과 밀리터리 매니아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나름대로 군생활을 즐길 만한 여지가 있었다. 이를테면 부대 시설 도색 작업을 할 때 모형 잡지를 뒤져가면서 고증을 맞춘다거나, 사격이나 야전훈련같은 것을 나름대로 즐긴다거나 하는 자질구레한 면의 차이가 있었다. 야외 작업을 다니면서 대대 이발소에 있던 카세트 레코더에 60년대의 포크락 음악을 틀어놓고 월남전 분위기를 즐기던 장면들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어느날 8시 아침 점호를 위해 점호판에 모여있을 때, 나보다 한참 고참들을 비롯한 전우들이 서로 몸싸움을 하면서 장난을 치는 것을 보자,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군인이 아닐 때는 군인 하면 로봇처럼 움직이는 로마군단 병사와도 같은 존재를 떠올렸었는데, 지금 여기서 점호판을 뒹굴고 있는 병사들은 그저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모인 고등학생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잠깐동안은 빠질 대로 빠진 방위들이라 이러고 있구나라고도 생각했었지만, 곧 그것과는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불과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을 뿐인 것이다. 대부분이 고등학교 졸업한지 1~2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고등 학생 때에서 크게 달라졌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자 비로소 어떤 저술물들에서 전쟁을 표현할 때 "불과 19살밖에 안된 젖먹이 어린애들이 죽어간 사건"이라는 뉘앙스로 표현하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전쟁이란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실제의 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인 것이었구나!

 군복을 직접 입어본 것만큼 전쟁의 이면적인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는 없었던 것 같다. 군인들은 항상 "전쟁을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군인들 자신이다"라는 말을 한다. 후방부대에서 페인트칠이나 하던 방위병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실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입장이야 설명하려고 노력해서 무엇하랴. 노파심에서 강조하건대, 군대가야 사람되고 군대에 갔다 오면 군복은 거들떠도 안보게 될 것이라는 류의 표현과는 전혀 다른 관점의 얘기이다.

91년의 걸프전과는 달리,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방송 기자들이 위성 영상폰을 들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그를 통해 카스터 장군이 이끌던, 그리고 할 무어 중령이 이끌던 그 7 기병대가 사막을 질주하는 것을 지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3-7 기병 대대와 해병 1원정군에 임베드된 기자들은 바그다드에 이를 때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의 교전을 직접 겪으면서 이를 보도했다. 바그다드 공습 시에는 미군기에서 투하한 폭탄들이 카메라에 똑똑히 잡혔다. 그리고 바그다드 침공을 대비해 바그다드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서방 언론사의 카메라들은 결국 바그다드 시가전을, 그리고 티그리스 강 제방에서 벌어지던 공화국 수비대원과 브래들리 간의 전투를 생중계하기에 이르렀다. RPG가 날아가고, 브래들리의 체인건이 대응 사격을 하고,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던 공화국 수비대 대원 중 한명은 참호에서 뛰어나오다가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지구 반대편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내의 뉴스 보도에서는 이장면이 편집되었다) 홈지기는 TV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전투, 그리고 전쟁터에서 진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TV를 통해서 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간접 체험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충격을 받았다. 간접 체험으로서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고 할 만했다.


왼쪽: 이라크전 개전 첫날 바그다드 공습 / 오른쪽: 3-7 기병대대의 진격


티그리스 강둑에서 교전을 벌이던 바로 그 브래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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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인류에게 전쟁은 끔찍한 것이라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보편적인 상식에 입각해서 볼 때 전쟁을 지적 유희의 대상으로 여기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별종임에 틀림 없다. 전쟁을 더 잘 알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전제를 도외시한다면 어느 부분인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실상, 막상 현장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하기 전에는 정제된 자료들만 가지고는 오히려 전쟁에 관한 "보편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아 보인다. 존 키건도 지적했듯, 전쟁과 관련된 사료들은 당초의 목적상 전쟁의 감성적인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전쟁 사료를 이해하는데 감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야 할 직업상의 이유가 없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사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서 내면적인 이해를 해 나가는 데에는 각자의 능력이  필요해지는 셈이다. 이것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현실과의 괴리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홈지기는 최근, 홈지기의 전쟁관이 현실과 괴리를 갖고 있을 때(즉 전쟁은 끔찍하고 비참한 것이라는 대전제를 그다지 깊이있게 느끼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괴리를 스스로 찾아낼 능력이 없었을 때 어째서 외적 요인에 의해서 그 점을 시정하는데 도움을 받아서 이를 스스로 깨달아나가야 하던 오랜 시행착오의 시간을 생략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되었다. 그를 시정할 외부적 요인이 없었던 것일까. 있었는데 알량한 밀리터리 매니아의 관점에서 그를 간단히 무시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전쟁의 끔찍함에 대한 기록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그것을 느끼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려 했을 뿐이었다. BBC의 다큐멘터리에서 처참하게 죽은 시신들이 나왔을 때 그것을 처참함의 묘사라고 느끼기보다는 감성을 배제하고 정서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요즘에는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의 매체뿐만이 아니라 밀리터리 동인지나 군사 사이트 등이 대량의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수단으로 떠올랐지만, 아무리 많은 정보 제공 수단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의 공유를 통하여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경쟁하는 문화로 흐르게 된다면 이러한 현실과의 괴리 문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홈지기의 열렬한 전쟁 프로그램 시청 덕분에 당신마저도 TV에 군인이 등장하면 군복을 보고 어느 나라 군인인지를 거의 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되셨지만, 그러한 간접 체험 이전에 홈지기의 어머니는 6.25를 직접 겪으셨다. 홈지기의 부모님이 6.25 당시 10살이 조금 안되셨으니 6.25를 온전히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이신 셈이다. 홈지기의 외가는 홍천-인제간 44번 국도상의 중간쯤에 있고, 아버지 고향은 양구군 관대리 근처이다. 언제쯤인가 강원도인 부모님들의 고향 부근에서 6.25의 여러 주요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부모님이 겪으신 전쟁 이야기를 종종 물어서 듣곤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미처 피난을 멀리 못가시고 홍천 부근에서 길도 없는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전쟁을 나서 직접적인 화를 면하셨다고 하는데, 그래도 간접 체험 자료들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곤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홈지기가 어머니에 비해서 전쟁에 관해 단편적인 지식들은 더 많이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밀리터리 매니아라고 해도 전쟁 그자체를 이해하는 면에서는 군대도 안들어오던 산골짜기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전쟁을 겪은 분에게조차도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어쩌면 홈지기의 전쟁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간 과정은 나이든 사람에게 더 이상 전쟁이라는 것에서 마초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간다는 전형적인 케이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달라지면서 이해의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어렸을 적에는 전쟁이란 군인 "아저씨들"의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지금 내나이의 거의 절반밖에 안되는 어린애들이 겪은 이야기가 되었다. 독일 에이스 누구누구는 불과 20대 중반이었더라는 얘기는 내가 그 또래였을 때는 아무 의미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굉장히 심각한 얘기로 이해가 된다. 그러한 표현을 쓴 저자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일 테고 말이다. 얼마 전 이오지마 전투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미 해병대원 중 한명이 전투 중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는 것을 회고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쓰렸다. 내가 그 또래일 때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매니아로서 쌓아온 간접 체험의 양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어린 신병의 나이보다는 그의 부모의 나이에 더 가까워져가려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밀리터리 매니아로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의 여러 간접 체험들을 통하여 얻은 전쟁에 대한 지금까지의 결론은, 결국 전쟁은 끔찍하다는 것이다. 전쟁에 무언가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 같은 것은 없었다. 전사란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 사는 얘기였다. 그리고 전쟁이란 교통사고나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인간사의 극단적인 형태일 뿐이었다. 그간의 지적 호기심이 결국 인류 보편의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론으로 회귀한다는 것이 한편으로 당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허망하기도 하다. 그동안 밀리터리 매니아랍시고 전쟁에 대해서 무언가 심오한 지식을 가졌다고 착각하면서 대체 뭣을 했었나.

그렇지만 아주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의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에, 비록 직접 체험을 한 사람에 비하면 하잘 것 없겠지만 전쟁에 아무런 구체적인 관심이 없이 그저 전쟁은 나쁘다는 화석화된 문구를 읊조리는 사람이나 단체들에 비해서는 전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전쟁은 끔찍한 것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 보편적인 결론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교훈은 홈지기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다.

 이라크 전이 터지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모 방송국에서 이라크전 발발 최초 속보를 담당하였던 앵커분과 그분의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당시 홈지기는 시뮬레이션 게임 화면으로 9시 뉴스 영상 소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노래방 화면에는 공교롭게도 이라크전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문득 마이크를 들고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도 공감을 안했다. 전쟁을 보도하는 9시 뉴스와 시뮬레이션 게임 영상이 아무리 해도 어울리지 않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래방과, 이라크전 영상과, 반전 포크락 음악은 서로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만큼은 그 방의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지구 한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더 가까이 있다고 느꼈고, Bob Dylan의 메시지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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