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키건과 번역 *

존 키건 저작하면 일단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사실 학술 서적 치고 존 키건 책 정도면 어려운 축에 낄 이유가 별로 없다고 본다. 상업출판물이 아닌 학술자료들은 원문 자체가 가독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교정도 제대로 안봐서 문장이 매우 거칠고 문장 길이도 너댓줄은 기본인 경우도 많다. 그런 케이스에 비하면 키건의 책은 문장의 퀄리티만 놓고 보면 읽기에 특별히 힘들지 않다. 어렵다는 대표작인 2차대전사만 봐도 내용상으로는 그물침대에 누워서 홍차 홀짝거리면서 보면 딱 맞을 수준이다. 키건의 저작들은 전반적으로 마치 노인네가 손주한테 옛날얘기 들려주듯 하는 느낌이다. 홈지기가 정말로 어려운 책이라고 인정하는 존 키건의 저작이 있다면 "세계전쟁사"이다. 그 책은 사서이면서도 시간순을 무시하고 저자 임의의 개념에 따른 순서대로 구성을 하였고, 독자들이 상당한 기반지식이 이미 있다고 전제하고 쓴 글이며, 여러 학문분야를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쓴 저작이기 때문에 내용이 정말로 난해하다. 그렇지만 그것도 교정 볼만큼 봐서 나온 상업출판물이기 때문에 문장은 깨끗하다.

이미 말씀드린 적이 있다시피, 홈지기는 국내에서 존키건 책이 정식 상업출판물로 나오기 전에 육본에서 발행한 "전투의 실상(The Face of the Battle)"을 본 적이 있다. 그게 홈지기가 처음 접한 존 키건의 책이자 존 키건의 첫 저작이다. 그 책을 접한 분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홈지기는 그 육본판 전투의실상에서 존 키건이 달필가라고 느끼로 하룻 밤동안 책을 놓지 못하고 책 한권을 떼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 접어들어서 키건의 저작이 국내 출판계에서 인지도가 생기면서 똑같은 책이 다른 번역자의 손을 통해 상업출판물로 나왔는데("전쟁의 얼굴", 지호), 그 책은 하루에 두세 페이지만 읽어도 집어던지고 싶어졌다. 그러니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존 키건 하면 두세 페이지만 읽고도 집어던지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여겨지는게 당연할 것도 같다..

마침 홈지기가 이 두 권을 모두 갖고 있어서, 같은 원저작을 다른 번역자가 번역한 결과물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동일한 일부 부분을 발췌해서 소개해본다.

...이 책은 전문적인 역사서이며, 참모대학의 강의를 위한 교재 및 다른 역사가들의 믿을 만한 참고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군사적 사건들이 연대 순으로 기술되어 있다.그러나 58년 전 길레몽에서 3,000명의 영국군(특히 제 10 킹스연대)들에게 일어났던 그 속이 뒤집히는 이야기를 이렇게 평범한 산문체의 글로 쓰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정말로 속이 메스꺼운 것은 각주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이다: "빅토리아 십자훈장'이 제10킹스연대의 의무장교인 'N.C. 채바스' 대위에 수여되었다. 그것은 엄청난 포화 속에서도 부상자를 구하는데 용감했던 그의 임무수행 정신이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영국군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빅토리아 십자훈장이 매우 귀중한 것이며, 위험을 무릅쓰거나 죽음을 불사해야지만 수여받을 수 있는 영예임을 알고 있다. 만약 "채바스"가 그 훈장을 두 번씩 받은 세 사람 중의 하나이며(두 번째 훈장은 그의 사후에 수여되었음), 그의 대대가 정열은 있으나 완전히 훈련받지 못한 병사들로 구성된 불안한 조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하였다"라는 기록과 "공격 성공 기회는 사라졌다"는 기록으로부터 제10킹스연대에 인접했던 타 부대들은 무리하게 행동하지 않고 참호 속으로 들어가서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추측할 수 있다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1916년 8월 8일의 길레몽의 상황, 즉 싸우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에 전투를 하다가 죽어간 병사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역에 우리가 이러한 공인 역사가들의 감정 제거와 그로인한 비감동적인 역사기술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투원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볼 때 진정한 전사기술 방식의 본질이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할지라도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는 것은 숙제로 남아있다.

"직접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술회하는 것"을 단순히 참고 자료로 사용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년 전투담과 전투 분석의 핵심적인 요소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19세기 이전의 평범한 병사들은 거의 문맹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접근방식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육본판-

...이것이 기술적 역사라는데 동의한다. 또한 이는 무엇보다도 참모대학 강의에 사용할 자료와 다른 역사학자들이 참고할 만한 권위 있는 출처를 제공하기 위한 군사적 사건의 연대기적 기록으로서 계획되었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글이 58년 전 그날 아침 기유몽에 있었던 영국인 3천 명, 특히 제10 왕립연대 1대대원들에게 일어난 아주 끔찍한 일을 설명하기에 적합한가? 그 사건이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는 것은 다음의 구절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제10왕립연대 1대대의 군의관 N. C. 샤바스는 포화가 빗발치는 가운데 부상자를 구출하는 뛰어난 무공으로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받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영국군에 관해 다른 것은 전혀 모른다고 해도 빅토리아 십자훈장이 죽음을 각오했을 때에만 또 희생을 대가로 그리고 당시에는 극히 드물게 수여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이와 함께 샤바스가 십자훈장을 두 번 받은 단 세 사람 중의 한 명이고, 두 번째 훈장은 사후에 수여되었으며, 그의 대대가 열정적이었지만 훈련이 부족한 자원병으로 구성된 키치너 부대였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전혀 전진할 수 없었다"와 "성공할 가망성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 인접 대대가 다급히 참호로 복귀했고 그들을 버려두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면, 1916년 8월 8일 기유몽의 무인지대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전투원들의 이 일화에서 우리는 거의 최악의 상태에 이른 제1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명시적 감정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군대 역사 편찬의 감성적 난점을 해결하겠다는 공식 역사가들의기술 방식은 불만족스럽다. 지나친 주관적 편견을 배제하고 개별 전투원들의 감정을 탐색하는 것은 군대 역사학의 서술방식에 있어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전투원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은 무방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때와 장소에서 전투 서사와 전투 분석에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19세기 이전의 사병은 거의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채택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호판-

홈지기에게는 원본이 없기 때문에 어느 것이 원문에 가까운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아예 줄거리 재구성 수준의 윤문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앞서 말했다시피 번역자의 개인적인 역량이나 스타일이 번역물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문에 가깝다"는 판단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번역자는 대상 독자층이나 글의 성격을 감안해서 의도적으로 쉬운, 혹은 경직된 문체를 만들어서 쓸 수 있다. 그리고 또 그래야 한다. 존 키건은 이 자신의 첫 저작에서 기존 전사의 경직되고 관행적인 서술방식을 매우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존 키건 고유의 학술적 색채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존 키건의 저작들은 애당초 고의적으로 경직된 문체를 쓰거나 영한 사전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어를 줄줄이 베껴적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치 않을 것이다. 존 키건이 저명한 노 학자라고 해서 고의적으로 경직된 문체를 쓴다는 것은 키건의 저작을 화석화시키는 또다른 학술적 오만함에 다름아니라 본다.

홈지기에게는 달필가인 존 키건, 다른 독자들에게는 난해한 문체의 학술저자인 존 키건, 이 차이는 퍽이나 큰 것 같다. 그리고 번역자의 능력에서 이러한 차이와 존 키건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이라면 참으로 안타깝다. 다른 학자도 아닌 존 키건이라면 더더욱 그 가치가 온전히 받아들여질 만하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홈지기는 학문의 길을 걷는 것도 아닌 직업번역사 신분으로서 일하고 있지만 학문 분야에서 번역작업의 중요성은 한사람의 독자로서, 그리고 실무 번역사로서 모두 깊이 이해가 된다. 육본판 전투의 실상이 홈지기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홈지기가 작업하는 글 하나하나도 많은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기에 책임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바닥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번역일을 직접 하고 있는 홈지기의 입장에서는 그런 모든 얘기들이 결국 내가 잘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단, 분명히 말하자면, 이 글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잘 된 번역물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존 키건의 저작을 번역한 번역사분들 개개인을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남이 작업한 번역물의 옥의 티를 찾아내는 것은 무척 쉽지만, 실제로 잘 된 번역물이 나오기는 독자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넘어야 할 산이 서너 고개는 족히 된다.

 

"The Face of Battle"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는데, 육본판 전투의 실상은 미래전쟁을 전망하는 5장이 빠졌고 지호판 전쟁의 얼굴에서는 5장이 들어갔다. 그러나 육본판에는 존 키건이 88년판본에서 쓴 13P 분량의 서문이 들어 있다. 이 서문은 간단한 인삿말이 아니고 존 키건이 자신의 첫 저작인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내용으로서 키건의 필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지호 판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다. 이 서문은 단지 이 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존 키건의 일생동안의 학술적인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데, 홈지기가 존 키건의 관점에 동조하면서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하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해본다. 사실 이 서문이 혼자 보기는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방문객들께서 원하신다면 나중에 서문 전문을 따로 올려보도록 하겠다.

...내가 부모님이 보시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Daily Telegraph)의 복사본을 통하여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알라메인(Alamein)', '카지노(Cassino)', '노르망디(Normandy)' 전투 등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겪은 경험이었다.

그들은 아주 친숙하게 그것들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곤 하였는데 나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었다. '키드니 리지(Kidney Ridge)'에서 총을 쏘고 디-데이(D-Day)에 소어드 비치(Sword Beach)를 걸어 올라갔으며 모나스터리 언덕(Monastery Hill)의 경사진 곳에 있는 바위를 이리저리 기어올라 가고 안헴(Arnhem)에 낙하산으로 투하 되었던 사람들이 '샌드허스트'에 모여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전력을 증명해주는 훈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훈장들은 단순한 전쟁영웅으로서의 뿐만 아니라 군(軍) 십자훈장(Military Cross)이나 공로훈장(Distinguish Service Orders)과 같은 용맹에 대한 훈장들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몸에 전쟁의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 특히 관심을 끈 사람은 공로 훈장을 수여받은 자로써 20년 전의 전투에서 얻은 실명한 눈 위에 검은 안대를 덮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매료시킨 것은 그들이 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말하는 태도였다. 나의 대학시절 전공과목인 군사역사를 배울 당시에 서적을 탐독하면서 해답을 찾을려고 공부했던 세계 역사의 사건들이 그들에게는 때로는 가벼운, 때로는 슬프고 자극적인, 항상 당연한 사실로써의 환담거리였다. "몽티(Monty)는 그것을 박살내고 늙은 가련한 구르카스(Gurkhas)는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 연대에 대항했었지. 나는 안헴(Arnhem) 철교가 내 발 밑에 다가오는 것을 느꼈지. 나는 그가 계속 가도록 그의 옷깃을 잡아 흔들었어 - 그는 다음 지뢰밭에서 죽었어. 나는 그들에게 미군의 응급치료소로 데려가달라고 했어요. 그들이 페니실린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던거야."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내가 자라며 배워왔던 역사책에 없는 내용과 그것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부정된 전쟁의 모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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