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군 과학화 훈련단(KCTC) 체험행사 후기 *

행사 전야.
내일 있을 체험행사를 잘 해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안왔다.
결국 날밤을 새고 말았다.

출발.
날이 밝았다.
비가 내렸다.
이왕 체험하는거 제대로 해보겠구나...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다가 7시가 다 되었다.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출발장소인 삼각지로 향했다. 한 5분쯤 남기고 도착했는데, 집결지 바로 앞의 은행 인출기가 아침이라 닫혀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전철역 인출기에 내려갔다 왔다. 허걱... 그런데 한 100여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전철역을 총총걸음으로 다녀오는데 숨이 찬 것이다 -_- 집밖에 나갈 일이 워낙에 별로 없어 전철역 다니는 것도 숨찰 정도의 운동부족 상태라는 건 이미 알고 있긴 했었지만 전투화 무게도 또한 장난이 아니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전투화를 일부러 신고 다니면서도 전투화의 무게라는 개념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야전에서 박박 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훈련장.
과학화 훈련장은 속초행 44번 국도에서 현리로 넘어가는 중간쯤에 있다. 아버지는 양구대교 바로 너머인 신월리에서 태어나셔서 6.25 나기 전에 소양강을 넘어 월남하셨고, 어머니는 그 옆 마을인 관대리에서 태어나셔서 역시 6.25 이전에 소양강을 넘어 월남하셨다. (6.25 이전에는 해당 지역에서 소양강이 38선의 경계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는 44번 국도상의 신남에서, 그리고 어머니는 역시 44번 국도상인 두촌면 장남리에서 사시다가 결혼하시고 조금 있다가 서울로 상경하셨다. 때문에 홈지기에게 44번 국도는 어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시골에 내려가던 추억이 깃든 길이다. 과학화 훈련장은 부모님 고향들에서 약 12~3km 가량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훈련장 지근거리의 오개탕 계곡이라는 곳에도 몇 번 놀러가 본 적이 있었다.
부모님의 고향 근처라는 것말고도 감회가 남다를 만한 이유가 또 있었다. 훈련단 부지에서 길을 따라 동쪽으로 몇 km만 더 넘어가면 6.25당시 중공군의 2차 춘계공세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현리 전투에서 결정적인 요충지였던 오마치 고개가 나온다. 평소 한번 답사를 해보고 싶었던 곳인데, 그 근처에 훈련단이 있다니 왠지 마음이 비장해졌다. 또한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는 현리전투 며칠 후 미 10군단 예하의 187공수연대전투단이 TF 게르하르트를 구성하여 지금의 철정에서 출발, 소양강과 44번 국도가 만나는 지금의 부평 지역까지 적후방으로 종심 기동을 실시하여 성공적인 반격의 토대가 되었던, 한국전에서 몇 안되는 기갑부대의 종심 기동 루트이기도 하다. 지금은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길이 많이 달라지고 루트도 상당히 바뀌었지만, 홈지기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지형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옛 도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부대 측과 계속 연락을 하면서 가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출발한 분들 중에서 훈련장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분이 안계신 것 같아 혹시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 44번 국도상에서 과학화 훈련단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대문짝만하게 과학화 훈련단 방면이라고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김이 샜다. -_-a

견학.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지 않고 그냥 전투복을 입고 갔다. 다른 매니아분들은 공들여 수집한 소장품 군복과 군장들을 준비하시기도 했지만, 홈지기는 특별한 군장이나 군복이 없기도 했으려니와 박박 길 것을 생각해서 일부러 낡디 낡은 옷들을 꺼내 입고 갔다. (군복에 대한 홈지기의 지론은 "전투복은 입고 폼 잡으라는 옷이 아니라 이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일 할 때 입는 작업복"이라는 것이다) 해서 옛날에 서바이벌 게임용으로 샀던 구형 우드랜드 야상 상의에 페인트 덕지덕지 묻은 군에서 입던 민무늬 하의를 입은 상태였다. 학교다닐 때 그렇게 하고 동원훈련 갔더니 양복 수트 케이스에 전투복 다려서 넣어온 학우들이 똥작업 나왔냐고 표현했던, 뭐 그런 분위기였다. 게다가 야상이고 전투화고 할 것 없이 풀어 헤칠거 다 풀어헤치고 있었는데, 차에서 내리는 순간 준장인 훈련단장님을 필두로 고급 영관장교분들께서 모두 나와 직접 일일이 참가자들과 악수를 하면서 맞아주셨다. 민간인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멋쩍었다. 강당에 들어가 앉아서 겨우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우선 훈련단 통제본부의 시설과 장비에 대한 견학이 있었다. 기본적인 운영 개념은 언론 기사나 먼저 방문했던 다른 분들의 소개로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특히 방대한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축적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PC 게임에서도 아마 그 정도로 자세한 전투결과 데이터가 출력되는 게임은 없는 것 같다. PC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자면 게임 플레이 그 자체에서 보다도 디브리핑 과정에서 더욱 많은 전투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니, 사후 강평에 그러한 방대한 데이터까지 뒷받침되는 사후강평 및 분석을 통해서 귀중한 전투분석이 많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제시설 견학 때에는 그동안 소문으로 알려져 있던 마일즈 장비의 버그나 한계점같은 것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고 단장님과 담당 장교분들께서 그 질문들에 명쾌한 답변들을 주셨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실탄사격이 아닌데서 오는 본질적인 한계(이를테면, 마일즈 장비로는 탄착점을 보고 조준점을 수정한다든가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훈련 전반을 진행하는데 심각한 지장을 끼칠 정도의 왜곡된 묘사는 없다는 것이다. 언론기사나 인터넷 등에서 떠돌던 부정적인 소문들은 단지 마일즈 시스템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여러 추측들이 개입하여 생긴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었다. 여러 참가자 분들은 그 정확한 사실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듣고는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실내 통제시설 견학을 마친 후에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 각종 마일즈 장비 시범사격을 관람했다. 간단히 말해 화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공포탄을 발사하고 그 신호에 따라 레이저를 발사, 표적에 장착된 수신기에서 이를 수신하여 피격 여부를 판정하는 방식이다. 시험사격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시범을 위해 비오는날 옥외에서(훈련단은 고도가 높은 산악지역이라 날씨가 상당히 춥다) 장시간 대기했을 장병들의 노고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년만에 화약 냄새를 다시 맡아보니 대대 사격대표로 뽑혀 하루종일 총 쏘던 군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시범사격이 있고 난 후에는 분대급 공격-방어 훈련 시범이 있었다.

점심은 잘 차려진 식당에서 여러 간부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고급 장교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뜻 깊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훈련단에서 유일하게 야전적이지 않은 식사가 좀 부담스러웠다. 물론 그곳 분들이 그렇게 드시는 것이 불만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왕 체험하러온 거 전투식량을 배급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참가자 일반의 정서가 아니라 홈지기 개인의 순간적인 느낌이었음을 강조한다.)

장전.
이번 행사는 처음부터 비가 와도 진행한다고 공지되어 있었다. 실제 훈련단의 훈련도 날씨에 일체 상관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긴 비온다고 전쟁 안하는거 아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도 과학화 훈련단은 단순히 장비가 첨단이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운영체계 자체가 뼛속부터 철저히 실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 중에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을 때에도, 대항군 대대장님은 이정도면 해가 쨍쨍한 편이니 훈련하기 좋은 날씨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어디 비 맞고 죽기라도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대항군 대대장님의 저런 진정 투사적인 태도가 대항군의 막강한 전투력의 근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어떤 군관련 행사에서든 진짜 군인이다 싶은 느낌이 팍팍 드는 분들을 만나면 정말 기분이 좋다.) 이왕 하는거 폭우 속에서 박박 기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보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나오자 비가 그쳐 있었다. 김이 조금 샜다. 오전에 대항군 대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와 닿았다.

장비를 착용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분대편성을 했다. 분대 기념사진을 찍는 와중에 엉겹결에 분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남의 군장 빌려쓰기 싫어서 H밴드를 가져갔었는데, 30발 삽탄된 탄창 한 개만을 지급받았으므로 착용하지 않았다. 폼으로 착용하면 보나 마나 귀찮을 것 같았다.
체험행사 규모는 2개 분대의 방어군, 4개 분대의 공격군 규모였다. 각 분대는 민간 참가자가 주력이고 현역병들이 약간 명씩 혼성 편제되었다. 소대급 공격이었는데, 분대장은 선임하였지만 소대 지휘계통은 없어서 분대 별로 재량껏 작전하도록 되어있었다. 방어군은 K-4 유탄발사기와 기타 대전차 공용화기가 지원하고 있었고, 1개 포병대대의 지원도 있었다.

지형은 대략 폭 50m, 길이 200~250m 가량의 크기로, 방어군 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계단식 평탄지형이며 최종 목표는 급격히 가파르게 솟은 고지에 있는 일련의 방어군 벙커들이었다. 전장 우측으로는 와디(논에 물대는 수로정도 크기), 그리고 그 우측으로는 약간의 갈대밭이 있은 다음 가파른 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장 좌측으로는 수 m 깊이로 깊게 패인 계곡 하천이 있었다. 최 우측 구역을 지정받은 우리 분대는 통제관님으로부터 행사 목적상 와디 우측으로는 기동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왕 분대장을 맡은 김에 나름대로 체계적인 분대전투를 수행해보고자 했다. 90년대 초반에 서바이벌 게임을 몇 년동안 해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분대전투같은 개념이 없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때이기는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을 했던 것보다 군에서 분대장을 했던 것이 더 최근의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체험은 서바이벌 게이머로서의 체험이라기보다는 분대장 출신 예비군(정확히 말해 민방위 대원)으로서의 체험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소부대전술이라는 측면에서는 PC 밀리터리 게이머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또 어떻게 보면 소부대전투 자료를 찾아보던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그중 어느 하나 딱 부러지게 "이 방면 전문가"라고는 하기는 애매하지만(정식으로 분교대를 다녀온 적도 역시 없다) 오만가지 경험이 조금씩 짬뽕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공격 전술에 대하여 분대원 분들과 약간의 의견 교환을 하였다. 분대장인 홈지기의 생각은 공격 개시선이 노출된 개활지이므로 일단 50여 m 전방의 첫 논둑까지 분대 전원이 동시에 신속히 이동하여 엄폐물을 확보한 후 통제관님이 지정해주신 분대 작전구역 폭을 유지하면서 분대장조와 부분대장조(현역병 상병을 부분대장으로 선임하였다)가 상호간 사격과 기동을 협조하면서 교대 약진을 하는 방법으로 전진할 계획이었다. 다소간의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일단 분대장 계획대로 출발하고 그 후에는 전진하면서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것으로 분대원 분들이 뜻을 함께해 주셨다.
군에서 이곳과 대략 비슷한 정도의 오르막 경사와 또한 거의 비슷한 거리를 가진 실거리 사격장에서 공격 훈련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상당히 숨찼던 기억이 있다. 당시 훈련을 지휘했던 중대장님은 250m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처음부터 힘 빼면 나중에 돌격을 못한다는 지적을 하셨었다. 이번에도 그보다 더 힘들면 더 힘들었지 전혀 더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분대장을 비롯한 분대원들의 체력이 전반적으로 현역병과 비교할 수 없는 상태일테니 더더욱 말이다. 해서 주어진 시간을 거리로 나누어서 구간 별로 천천히 쉬면서 올라갈 생각이었다.

분대 대형은 이런 식이었다. 군에서 배운 분대 횡대 대형을 기억해서 재현하려 해보았다.
부분대장에게는 좌인접 2분대와의 접촉을 유지하는 임무도 부여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필요 없었다.)

2분대 | <-- (부) (원) (원) (원) (분) (원) (원) (원) (원) --> 와디
* 분: 분대장
  부: 부분대장
  원: 분대원

약진 앞으로.
"1분대, 전방 50m 논둑까지 전원 약진 앞으로" (대략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라는 구령과 함께 기동이 시작되었고, 우리 1분대의 전진이 전체 공격부대의 공격개시 신호가 되었다. 후에 동영상과 사진을 보니 우리가 출발하자마자 공격개시선에 적 포탄이 낙하한 것 같다.
그런데 첫 50m를 전진하는 동안 '앗 이게 아닌데..'라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이 진흙뻘이라 발이 푹푹 빠지면서서 엎어질 뻔 하는 것을 겨우 쓰러지지 않고 호랑나비 춤을 추며 첫 논둑까지 가까스로 도달하고 났더니 벌써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여튼 첫 논둑에 도달하여 분대 사격개시 명령을 내리고 잠깐 쉬었다. 그리고 부분대장 조를 먼저 보내고, 그 다음 분대장 조가 뒤따르는 식으로 한 두 구간 정도 더 전진하였다.

부분대장이 오더니 이런 식으로 개활지를 전진하면 안될 것 같다고 건의해왔다. 우측 와디선의 수풀이 은폐를 제공하므로 은폐된 경로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분대장의 당초 생각은 와디선이 협소한 지역이기 때문에 아무리 은폐된 경로라 하더라도 병력이 밀집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산개 대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분대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정지 간 산개대형은 유지하되 와디선을 이용해서 기동하기로 하였다.

중간을 채 못가서 힘이 빠져 버렸고 각 구간에서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자 통제관님께서는 한 자리에 오래 눌러있으면 포탄이 날아온다고 지적해주셨다. 할 수 없이 다시 부분대장조를 먼저 보내놓고는 그냥 누워서 퍼져 버렸다. 잠시 그렇게 하고 있었더니, 뒤에 쳐진 채로 전방의 부분대장조를 시야에서 놓친데다가 타분대도 와디선을 타고 기동했기 때문에 분대원들이 섞여버려서 분대장으로서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때쯤은 개활지에 공격군을 지원하는 연막탄이 투하되고 있었기에 연막을 이용하여 어기적거리면서 주변의 다른 분들(이미 분대가 섞인)과 함께 몇 개의 논둑을 더 전진하였다. 개활지를 천천히 움직였음에도 한 번도 죽지를 않았는데(이번 체험에서는 죽더라도 통제관님이 다시 살려주셔서 체험을 계속진행 했다), 아마 뒤에 쳐져 있어서 방어군의 주된 표적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수 차례 떨어진 포탄도 모두 홈지기의 앞에 떨어졌다. (후에 분대원분들께 들은 바에 의하면 현역병인 부분대장이 이끄는 우리 분대 주력은 포탄 낙하지역을 앞서 나갔다고 한다.)

논둑에서 누워서 쉬면서 뒤를 돌아볼 때마다 촬영하는 카메라들이 보였는데, 전진하면서 남은 사람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카메라들이 거의 홈지기만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힘들어 걷기도 힘든 마당에 촬영은 하고 있으니 폼은 잡고 있어야겠고... 죽을 맛이었다. 촬영 카메라가 마치 돌격을 독려하는 독전대의 총구같이 느껴졌다. 뭐 그러나 전쟁을 멋으로 하는게 아닌 이상 퍼질러진 모습이 잡히더라도 할 수 없다 싶었다.

중간쯤 갔으려나... 좀 큰 둑 뒤에서 사격을 하면서(=빙자하여) 쉬려고 하는데 통제관님이 1분대를 전장 좌측의 계곡 통로로 우회기동을 하라고 지시하셨다. 타 분대들도 와디선으로 기동을 했기 때문에 우측에 병력이 너무 몰려 있어 이를 분산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통제하신 것 같다. 통제관님이 1분대장인 홈지기를 계속 따라오다가 지시사항을 전달하신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니 1분대원들은 이미 거의 안보이고 다른 분대 소속으로 뒤쳐진 분들이 몇 분 보였다. 해서 일단 주변 분들과 함께 좌측 계곡으로 이동하여 엄폐된 통로를 통해 다소간 전진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방어군 진지 바로 밑의 돌격선까지 이동을 하였는데, 그때 즈음에는 다른 공격군 참가자 분들은 거의 모두 방어진지 돌입을 마쳤고 남아있는 공격군은 몇 명 안되었다. 돌격선에서 약간의 근거리 사격전을 벌인 후 다시 우측방으로 기동하려고 움직였다. 이때는 다리가 완전히 풀려 버렸기 때문에 최소한의 전술 이동이나 각개전투 행동을 할 여력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을 마무리 해가는 분위기고... 해서 우측으로 움직인다고 억지로 일어나서 걸어가다가 근거리에서 사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홈지기가 사망한 후 얼마 안있어 전체 훈련이 끝났다.

후에 훈련단 간부님들은 매니아 분들의 전술행동이 인상 깊으셨다고 말씀해주셨다. 특히 진흙바닥을 포복으로 이동하는 등의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았다. 훈련단에서 많은 시간과 수고를 투자하여 준비해주신 행사에서, 비록 홈지기는 낙오되어 퍼질러져 있다가 나왔지만 서바이벌 게이머 분들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 분들 덕분에 좋은 인상을 심어드린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
다른 참가자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분대장을 맡고 그 소임을 수행하려고 노력했던 홈지기 입장에서는 체험을 해보기 전에 어서 해보고 싶었던 생각보다도 오히려 마치고 난 후의 아쉬움이 오히려 더 커졌다.
분대장이 더 잘해서 분대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을까.

분대장으로서 가장 큰 문제는 일단 체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라고 해야겠다. 체력이 앞서야 분대원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면서 충분한 상황파악을 하고 분대의 기동을 리드할 수 있는데 뒤에 쳐지다보니 분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분대장이 앞에 서서 분대원들을 뒤로 보면서 지휘를 해야 적절한 지휘를 할 수 있는데 부분대장조가 먼저 나가고 분대장은 뒤에서 논둑에 머리를 쳐박고 있다보니 분대원들을 시야에서 놓치고 부분대장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또한, 분대장은 기동을 지휘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격을 지휘할 책임도 있다. 우리 1분대에서는 4개 공격분대 중 유일하게 적 사살 전과가 단 한 건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분대장으로서 명확하게 사격 지휘와 관련한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는 첫 논둑에서 사격개시 구령을 외친 것, 그리고 초기 약진에서 몇 차례 특정한 표적을 명시하지 않고 엄호사격을 지시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분대 통제력 자체를 상실한 것이 사격 지휘가 미흡했던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분대장조와 부분대장조의 사격과 기동을 협조하기 위한, 그리고 특정한 표적에 각 조나 분대의 화력을 효과적으로 집중하기 위한 분대 화력 통제를 적절히 시도하지 못했다. Close Combat Marines의 훈련 교안에서도 강조되어 있는 사항인데 막상 야전에 섰을 때 머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점이 통탄스럽다.

그리고 홈지기는 올라가는데 힘들 것을 생각해서 천천히 전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통제관님 말씀처럼 느리게 올라가면 오히려 적의 사격에 더 오래노출될 뿐 아니라 지원화기까지 끌어들인다는 점은 고려하지 못했다. 이번처럼 공격군이 방어군 화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지형에서는 공격군이 최대한 신속히 전진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방어군의 벙커 위치가 높아서 양호한 사계를 제공하긴 했지만, 벙커 바로밑이 통상 방어화력의 사각지대이고 벙커 위치가 높을수록 그 밑으로 사각이 더 많이 생긴다. 따라서 공격병력이 은폐엄폐된 경로를 이용, 방어군 벙커 아래쪽 사각에 신속히 도달하게끔 했어야 할 것 같다.

그밖에 후에 다과회 시간에 접근 루트나 분대 책임구역 등과 같은 몇몇 문제를 부분대장이었던 현역병과 함께 토의해보기도 하였다. 부분대장과의 토의에서는 4개 분대가 올라갔던 공격이었던 만큼 소대 차원의 통제 혹은 분대간의 협조가 있어야 했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를 하였다. 아마도 그렇지 못했던 것이 후의 강평에서 지적되었던 병력 밀집현상의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저런 되새김질을 하다보니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다른 분들의 기회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전적인 상상으로서 만약 또다시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또다시 참가해서 또다시 분대장 역할로서 공격개시선에 또다시 서게 된다면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더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이틀 지나며 몸은 욱신욱신 쑤셨지만 전의는 활활 타올랐다. 신기한 경험을 "한 번" 해보러 간 것이 전투 본능을 더욱 자극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다른 분들의 후기를 보더라도, 아직 못 가본 곳을 처음 가보고 싶은 느낌보다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보고 싶은 느낌이 더 강렬한 분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정리.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과학화 훈련단이 참여 장병들에게 주는 훈련효과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투가 직업이 아니고 일생에 그와 비슷한 체험을 반복해서 해볼 가능성이 희박한 홈지기도 머리 속에서나마 전투 의지가 활활 타오르는데 그것이 직업인 현역들은 어떻겠는가 말이다.
과학화 훈련장은 부대단위 훈련장이다. 사격술 훈련은 그냥 사격술 훈련으로 하면 되지 굳이 마일즈 사격을 할 필요가 없다. 각개전투나 분대전투 정도의 기량도 각개전투교장이나 분대전투 교장에서 그 기본기를 연마할 수 있다. 단순히 무작위의 이동표적에 대고 사격을 해보고 각개전투를 해보는 것이 과학화 훈련의 궁극적인 컨셉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마일즈 장비로 각개전투를 해보라는 것이 훈련단 측에서 이번 자리를 만들어주신 취지의 전부도 역시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서바이벌 게임도 해보았고 군에서 사격도 비교적 많이 해본 홈지기로서도 근거리에서 이동하는 실제 사람을 조준선에 올려놓고 실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느낌은 정말 기묘한 것이었긴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하찮게 여겨질 정도로 다른 관점에서의 느낌이 더 강렬했다.
훈련 부대들은 부대 단위로 전투에 투입된다. 병사들은 부대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그리고 지휘자나 지휘관들은 부대를 이끄는 리더나 커맨더로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노력으로 얻은 객관적인 전투 결과를 손에 받아든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고 교훈을 얻는다. 모르긴 몰라도 과학화 훈련단을 거쳐가는 훈련부대의 병사나 지휘자, 지휘관들 중 상당수가 홈지기와 같은 아쉬운 기분으로 원대복귀를 할 것 같다. 그 아쉬운 마음이 곧 훈련의 근본적인 효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앞부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러한 실전적인 전투를 통해 얻는 전투 교훈은 마일즈 훈련에서 몸을 굴려서 얻는 전투원 개개인의 전투기량 향상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화 훈련단의 시스템은 이러한 전투교훈을 도출하는 것에 최적화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즉 단순히 실전적인 전투체험을 시켜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투를 데이터화하고, 그 데이터를 기초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이를 평가하고 교훈을 도출하여 이를 타 부대와 공유하는 것까지가 과학화 훈련단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체인 것이다.

훈련단에 상주하는 대항군 부대가 고도의 전투력을 나타내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훈련단을 한 번이라도 거쳐간 부대와 그렇지 못한 부대간의 차이도 역시 엄청날 것 같다. 어떻게 보자면 전쟁을 대비하여 군대를 유지하는 군당국이 장병들에게 이러한 실전적인 체험을 단 한 번이라도 시켜주지 않고 그들을 전쟁터에 내보낸다면 그것이 오히려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 연대 규모로 훈련단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고, 그렇게 되면 직업군인들뿐 아니라 일반 병사들도 군생활 중 한번은 과학화 훈련단을 거쳐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런 기대를 하니 홈지기가 직접 받을 훈련도 아닌 마당에 왠지 마음이 들뜨기까지 한다.

감사.
훈련단장님과 간부님들은 물론 자원해서 참여한 사병들까지 이번 체험행사를 위해 정말 많은 수고를 하셨다는 것이 너무나 많이 느껴지는 행사였다. 더욱이 날씨도 무척 나빴던 주말에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단장님 이하 모든 주요 간부님들이 일일이 손수 커피를 제공하고 화장실까지 안내해주실 정도로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방문단을 환영하고 인솔해주셔서 미안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하루종일 방문단들과 함께 섞여서 많은 대화를 나누어주셨다. 체험행사를 하고 나서 소총 및 장비를 원래 주인인 사병들에게 반납했는데, 총열덮개에 흠집도 별로 안난 새 총을 땅에 쳐박으면서 기어다닌 것이 왠지 미안해졌다. 그밖에 이 행사를 하면서 너무 많은 군폐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훈련단측에서도 매니아 참가자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고 방문단들도 하루가 너무 짧아 아쉬웠다고 할 정도로 좋은 반응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참가자분들 모두 다음에 이런 좋은 기회가 조만간 또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물론 과학화 훈련단 본연의 임무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겠지만, 여건이 주어진다면 이런 귀한 경험을 좀 더 많은 다른 분들과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귀한 행사를 준비해주신 훈련단 단장님과 간부 여러분, 그리고 특히 고생 많이 한 병사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또한 행사를 꾸려주신 유용원 기자님과 minki님, 그리고 애써주신 다른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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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남긴 사진은 없습니다. 현장 장면은 유용원 기자님 홈페이지(bemil.chosun.com)에 minki님께서 올리신 취재기와 KODEF(www.kodef.net)에 있는 부대측에서 제작한 촬영 편집하여 제공해주신 행사 기념 동영상 주소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취재 및 촬영해주신 minki님과 훈련단 측에 감사드립니다.

= minki님의 취재기
밀리터리 매니아의 과학화 전투 훈련장 [KCTC] 방문기 1 
밀리터리 매니아의 과학화 전투 훈련장 [KCTC] 방문기2 - 장비소개 및 전투시현  
밀리터리 매니아의 과학화 전투 훈련장 [KCTC] 방문기3 - 전투 준비 
밀리터리 매니아의 과학화 전투 훈련장 [KCTC] 방문기4 - 전투! 전투!
밀리터리 매니아의 과학화 전투 훈련장 [KCTC] 방문기5 - 평가 그리고 아쉬움 

= 행사 기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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