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몽 *

주몽을 비롯한 우리나라 사극들을 보면 전투신을 묘사할 때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쌍방의 전병사가 잘 섞은 김치 속 마냥 골고루 뒤섞여서 난전을 벌이고 주인공들은 10초에도 서너 명씩 적군을 죽이곤 한다. TV나 영화 사극은 전투신 고증이 연출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으므로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지만, 자칫 그러한 관행적인 연출로 인해 옛날에는 진짜로 그렇게 싸웠다고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사극의 전투신 연출대로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등장인물들은 전투 시 10초에도 두어 명씩 적군을 죽인다. 심지어 주몽은 칼 한번 휘두를 때마다 서너 명씩 죽이기도 한다. 뭐 이건 주인공이니까 극단적인 경우라고 해두자. 평범한 병사들의 경우라면? 그래도 치명적인 흉기를 들고 싸우는 일대일 전투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무술 시합마냥 힘빠질 때까지 하염없이 싸우는게 아니라 대개의 경우 상대방의 헛점을 보고 급소를 강타하면 바로 끝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례로, 때리거나 차는 것을 점수화하는 무술시합은 경기시간이 비교적 길지만 한번 찌르는 걸로 승부가 갈리는 펜싱 경기는 금방 끝난다. 실전에서의 창칼 대결도 태권도 시합보다는 펜싱 시합에 가까울 것이다.

사극의 연출대로라면 개인간 전투가 이보다 훨씬 빨리 끝나고도 남겠지만, 임의로 3분쯤 걸린다고 가정해보자. 사극의 전투신에서는 전병력이 적군과 골고루 맞붙으므로, 3분이 지나면 전체 교전 병력의 절반이 사상당한다는 말이 된다. 그 병력이 또 서로 맡붙어서 3분만에 다시 병력이 절반으로 줄고... 이렇게 반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전투가 몇시간쯤 걸릴까? 한 번의 개인간 교전마다 병력이 반씩 줄어들므로, 3분 길이의 개인간의 교전으로 이루어지는 전투를 30분간 하면 총 병력은 1/(2**10)로 줄어든다. 약 1000분의 1이다. 즉, 1만명 대 1만 명이 맡붙어서 30분간 전투를 하고 나면 쌍방 10여 명씩만 남고 다 죽거나 다친다는 것이다. 한쪽에 승기가 있다면 전투는 훨씬 더 빨리 끝난다. 예를 들어 쌍방 전투 사상율이 2:1이라고만 가정해도, 1만명대 1만명의 접전에서 첫 3분 후 생존자는 6666명 대 3333명이 되고 그 다음 3분에는 3333명 측이 몰살당하므로 한 전투가 5분 정도면 끝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창칼 들고 싸우던 시절의 만 단위 이상의 전투는 빨라도 두어 시간, 길면 하루 종일이나 그 이상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도 승리한 측의 손실율은 통상 절반에도 한참 못미친다. 결국 실제 사상율과 교전 시간을 따져본다면, 창칼들고 싸우는 전투는 실제로는 사극에 나오는 것과 같이 너죽고 나죽는 백병전이라기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정서로 말하자면 "강력한 대치상태"정도라고 표현하는게 적당하겠다. 군인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보호본능 때문에 전투인원들은 자연스럽게 집단으로 뭉치고 그 대오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으며 적에게 공격을 하려 한다. 그러므로 대오를 갖춘 채로 서로 맞상대하고 있으면 실제 충돌강도는 의외로 그다지 강하지 않으며 사상자도 그렇게 높은 비율로 발생하지 않는다. 때문에 고대의 전쟁은 중앙 돌파나 측면 공격, 포위 등과 같은 방법으로 적의 전투 대오를 무너뜨리는 것이 전술의 목표였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전투하러 갈 때만 대오를 갖추고 있다가 막상 전투를 할 때는 전병력이 자동으로 대오를 푼다면 대오라는 것이 애당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단간 무력 충돌을 벌이는 폭력시위 장면을 예로 들어 상상해보자. 조직력이 있는 경찰들은 시위대의 격렬한 공격에도 대오를 유지하면서 장시간 버티지만, 결집력이 없거나 상당히 희박한 채로 각개전투 단위로 싸우는 시위대는 경찰이 공격해들어갈 때 쉽게 와해된다. 여기서, 쌍방이 동일한 수준의 치명적인 무장을 갖추고 교전을 한다면 대오를 갖추고 조직화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간의 전투력의 차이를 어렴풋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또한, 교전에서 발생하는 인명손실은 서로 대오를 갖추고 대치하고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하다가 어떤 이유로 한쪽의 대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한쪽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도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는 그런식으로 연출할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불특정다수를 위한 비쥬얼적인 재미를 충족시켜줘야 하므로 액션이 과장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극의 경우에는 전투신 고증이 군사학자가 아닌 무술감독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도 기형적인 전투신의 한 원인이 된다고 생각된다. 무술가 출신이 전투신 고증을 담당하다보니 집단과 집단간의 전투를 연출하는게 아니라 무술 도장에서나 할법한 개인 대련을 단순히 여럿 모아놓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진압 중대에 대오가 필요하다면, 창칼을 들고 싸우는 군사들에게는 대오가 훨씬 더 절실한 것이 당연하다.

실제 전투보다 영화나 드라마의 전투신 연출 강도가 지나치게 강한 현상은 현대극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의 소총수의 경우 개인 실탄 휴대량이 기껏해야 200~300발 가량이다. 그런데 돌격소총은 대략 분당 1000발 가까이 나간다. 한탄창 비우는데 2~3초면 되는데, 300발이라고 해봤자 탄창 십여개 정도 분량이다. 이걸 액션 영화처럼 자동으로 놓고 긁으면 1~2분이면 휴대탄 다쓴다. 물론 그런 식으로는 전쟁 못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자동화기 사수가 아닌 한 단발 모드로 아껴가며 쏜다고 봐야한다. 결국 실제 전투에서 말하는 "치열한 교전"이 민간인의 언어 정서로 볼 때는 "산발적인 교전" 수준일 수도 있다. (현장에서 직접 총알 날아오는 입장에서의 표현과 제3자의 표현이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라크전 전투장면들을 봐도 분명히 치열한 교전이라고 설명은 되는데 막상 화면은 귀청떨어질 듯한 난사전이 아니라 엉거주춤하고 다니면서 따콩~ 따콩 하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 이런것도 역시 영화적 과장에 길들여진 민간인의 관점과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모가디슈 전투에서 백명 남짓한 레인저 대원들이 수천 명의 적에게 포위된 채로 싸웠으면서도 대부분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도, 실전 치고는 격렬한 교전 축에 드는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대부분의 병사 및 리더들이 상황인식을 유지하고 이를 어느정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산발적인(액션 영화의 기준으로 볼 때)" 교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상황 파악과 제어가 불가능한 수준의 적의 공격에 직면한다면 그 병력은 궤멸될 운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장된 액션에 익숙해짐으로 인한 문제는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는 일이지만 플레이어가 액션에 직접 참여하는 게임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성이 뒷받침된 게임일수록 효율적인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보다 실전에 가깝게 싸워야 하는데, 영화적 과장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영화적 과장 수준으로 교전을 하려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전투 액션이 격해지면 상황인식이 불가능해지고 상황을 제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 결과 사상율이 매우 높아진다. 반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면서 교전할 수 있으려면 전투액션의 강도가 가급적 낮아야 한다. 오래 살고 싶을수록 소극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전이라면 임무 수행과 생존본능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액션의 강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반대로 액션을 즐기는 것이 게임의 목적 중 하나이므로 죽으면 또하면 되는 사이버공간의 고질적인 특성상 현실보다 대폭 과장된 액션이 나타나게 된다. 기본적인 정서가 그 수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재미로 게임을 하기 때문뿐만 아니라 게임에서 죽으면 어떤 종류의 불이익을 받거나 리얼하게 게임을 하자고 각오하고 모여서 플레이하는 경우에서도 여전히 과장된 액션, 즉 비정상적으로 높은 사상율을 내면서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곧잘 나탄난다. 창칼 시대의 전쟁으로 생각해보았듯이, 대오라는 것은 집단의 힘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력은 흡수함으로써 우군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고 집단의 공격력을 집중하여 적을 보다 강력하게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전의 전술 대형도 멋있으라고 또는 군기 들어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갖추는 것이 아니다. 최소의 손실로 적에게 최대의 피해를 입히기 위하여 상황에 따른 전술 대형이 필요한 것이다. 전투원 개개인들에게 조직적인 대형과 전술 구사능력 혹은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리얼리티가 뛰어난 게임을 한다고 할지라도 군대의 전투가 아니라 주몽의 전투신마냥 단순한 패싸움에 불과하게 된다. 공중전투에서도 마찬가지다. 적기를 보고 "저놈과 맞붙어서 실력을 겨뤄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스틱을 움켜잡는다면 수시로 죽는 것이 당연하다. 주몽만큼 칼싸움 잘하지 않는 다음에야 허구헌날 일기토를 걸고 다니면 내가 죽기 전에 몇 명의 적을 죽이느냐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수시로 죽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가 적에 비해서 기량이 떨어져서 자꾸 죽는게 아니라, 군사행동으로서의 "전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죽음한다는 것이다. 리얼리즘 성향의 밀리터리 게임에서 자꾸 죽기 싫다면, 일기토 고수가 되려하기보다는 생존본능을 가진 실제 세상의 군사들이 그렇듯이 집단의 일원으로서 동료와 협동하여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전투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죽는 것 자체도 게임적으로 즐길 수 있는 취향이라야 할것이다. 물론 같은 게임이라고 해도 한 번도 안죽고 적을 세 번 죽이고 싶어하는 게이머와 열 번 죽더라도 열 번 죽이고 싶어하는 게이머가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까지나 취향은 자유고, 서로 다른 취향의 사람을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

하긴 게이머라면 순식간에 벌어지는 떼죽음과 과장된 액션을 오히려 즐거워할지도 모르겠다. 전 병력이 더 빨리 몰살될수록 다음 판을 기다리는 지루함이 줄어드니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FPS 게이머들은 빠른 게임 템포를 선호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좁은 맵일수록 인기있고 무대뽀 러시를 매너라고 여기는 게임 문화속에서야 게임 속에서의 과장된 액션을 비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명색이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대일 전투의 집합을 전투신이라고 보여주는 주몽이 재미있는 드라마인 것은 틀림없지만 잘된 밀리터리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기토 영웅이 되는 것을 꿈꾸면서 여느 게임과는 차별화되는 깊이 있는 그무언가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홈지기 역시 주몽의 팬이고 재미있는 게임을 좋아한다. 하지만 밀리터리적인 관점의 완성도를 구현하고픈 욕구도 있다. 물론 게임의 재미와 저변이 게임 자체의 존재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하드코어 취향의 플레이어들이 게임 운영의 깊이를 구현함으로써 이 장르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추구할 필요가 또한 있다고 본다. 주몽이 영웅인 이유가 한칼에 세 명을 죽이는 칼싸움 실력 때문이 아니라 고구려 건국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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