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션 - 어느 노병과의 인터뷰 *

 김기자는 창신동 산동네에 있는 한 집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그 주소는 재향군인회를 통해 어렵게 받아든 한 6.25 참전 노병의 주소였다.

월초의 기획 회의에서, 편집장은 이번 달에 6.25가 있는 만큼 국내 제일의 군사잡지인 우리 잡지가 무언가 대박 기사를 하나 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노병과의 인터뷰였다. 여러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등을 보면 노병들이 나와서 그때의 무용담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지 않는가. 군사잡지에서도 그런 노병의 회고를 기사화하면 무기데이터로 가득찬 다른 허접한 군사잡지들을 한번에 누르는 대단한 특종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인터뷰할 노병을 구하기가 쉬울 줄 알았다. 국내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증언한 노병들도 많이 있었으니 인터뷰하는게 문제될 이유가 없을 것이고, 국내제일의 군사잡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는 것이 얼마나 뜻 깊고 영광된 일인가 말이다. 그렇지만 생각과 달리 막상 재향군인회의 협조를 얻어 노병들에게 연락을 하는 족족 노병들은 하나같이 거절의사를 밝혀왔다. 별 이유도 없었다. 그냥 싫다는 것이었다. 이번 기획기사를 날려야 할 판이었다. 그렇지만 편집장에게 말도 못 꺼냈다. 하는 수없이 김기자는 마지막으로 연락처를 받은 서울에 거주하는 한 노병의 주소지를 받아들고 직접 찾아갔다.
인터뷰는커녕 문도 안열어 줬다.
초라하게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분한 생각이 들었다. 현역 군부대 취재에서도 많은 편의를 제공받는 국내제일의 군사잡지 기자가 이런 수모를 겪다니 분했다. 김기자는 분함 때문에라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찾아갔다. 며칠을 문전에서 기다린 끝에, 결국 손녀딸로부터 매일아침 파고다 공원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회에 쓸모없는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 죽치고 앉아서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는 그 파고다공원 말인가? 김기자는 재향군인회에서 훈장도 수여받은 적이 있는 전쟁영웅이라고 소개받은 노병이 왜 그런데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파고다공원으로 향했다.

파고다공원에서 몇바퀴 돌아다닌 끝에, 맞는 인상착의를 가진 할아버님을 발견했다. 그 할아버님은 장기를 두고 계셨다. 음료수를 한 캔 사들고 가서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님, 김모 할아버님 맞으시죠?"

"뭔데?"

"아 안녕하세요? 저는 모모잡지의 기자인데요"

"몰라 비켜"

그리고 그 할아버님은 기자는 신경도 안쓰고 장기에만 열중했다. 말을 한두 번 붙여봤지만 무시당했다. 그래도 그할아버님을 계속 쫓아다녔다.
몇 시간이고 쫓아다니니 이윽고 벤치에 앉은 할아버님이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따라댕기는겨?"

"할아버님 전쟁때 무용담이 듣고 싶어서요"

"미친소리 하네. 그런거 없으니까 얼릉 가라. 젊은사람이 바쁠텐데"

그리고는 이내 기자에게 관심을 끊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것이었다.
문득 할아버님의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없는 것이 보였다. 그걸 구실로 말을 붙이면 될 것 같았다.

"전쟁때 손가락을 잃으신건가요?"

할아버님은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훈장받을 때 다치신 거에요?"

또다시 물어보자 할아버님은 그제서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기자에게 반응했다.

"자네는 손가락이랑 훈장이랑 바꾸자면 바꿀텐가?"

"예? 아... 그건 아니지만... 용감히 싸우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용감히 싸웠다고 누가 그래?"

"125 고지에서 적진에 돌격해서 고지를 구하셨잖아요 이원 상륙작전에도 참가하셨고..."

할아버님은 대답이 없으셨다.

"125 고지에 참가했던 전우분들은 요즘도 만나세요?"

그러자 할아버님은 대답했다.

"다 죽었어."

"아... 오래전 일이라 다들 연로하셔서..."

"전쟁때 다 죽었다고."

"네? 아..."

"훈장 받은지 며칠 있다가 소대 전초가 기습당해서 다죽고 나만 살아나왔어."

"아 역시 용감한 분이셨네요.."

이제야 영웅적인 무용담을 쏟아놓으시려는 것 같았다.

"소대 전초를 중공군 수백 명이 포위하고 달려드는걸 혼자 계곡 밑으로 도망쳐서 잡초속에 숨어있다가 나혼자 도망왔어"

헉... 말로만 듣던 도망병인가. 그런데 도망병이 훈장받을 만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김기자는 궁금해졌다.

"아 저기 그게 아니고... 그래도 훈장도 받으셨잖아요"

""그것도 지랄같은 소리지"

"어떠셨는데요?"

"중대본부에 탄약 받으러 가보니까 중공군 수백명이 고지로 올라오는 통에 밑에 소대들이랑 유선이 다 끊어졌더라구. 그때 중대본부에 수류탄이 한 발 날아왔거든. 그러니까 연대 참모로 있다가 온지 얼마 안되는 중대장이 얼이 빠져가주구서는 도망간다고 뛰어나간게 적군쪽으로 냅다 뛰더라고. 할 수 없이 중대장 시체라도 끌어올 심산으로 본부애들이 따라나섰는데 마침 그때 전투기 편대가 나타나서 공격을 하기 시작하니까 적군들이 다도망갔지. 그랬는데 나중에 중대장이 돌격으로 적을 물리쳤다고 훈장 주더라고."

"재향군인회에서 알려준 훈장 상신 자료에는 당시 상황을 "중대장의 과감한 역습명령에 따라 본부대원들은 결연한 눈빛으로 참호를 박차고 나아가..." 이렇게 되어있는데요"

"그거 다 지어낸거지! 눈빛 보고 훈장주냐?"

"......그래도 손가락을 잃으실 정도의 부상을 당하셨으면 훈장받으실 자격은 되실 것 같은데요.."

"자네 지금 뭐라고 하나? 손가락 잘라진거 정도는 부상에 끼지도 못해. 향군회에서 만난 어떤 노인네는 폭탄 파편에 맞아서 얼굴 한쪽이 박살났는데도 용케 살았다는데, 얼굴이 괴물이 돼가지고는 일평생 천으로 얼굴 가리개를 하고죽밖에 못먹고 살어. 그양반은 어린 손주들도 무섭다고 피해서 잘 못만나고 살았어. 글고 팔다리 잘라진 사람도 부지기수야. 그런데 손가락 잘라진게 뭐. 이정도로는 제대도 안시켜줬어."

"그래도 나라를 위해 싸우셨는데 상이용사분들은 나라에서 보상을 좀 받지 않으셨나요?"

"보상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

"나만 해도 어디가서 손 보여주면 손가락 병신이라고 이상하게 쳐다봐서 감추고 살았지. 전쟁 끝나고 우리동네 살던 다리 잘라져나간 한 양반은 동네에서 병신 취급해서 맨날 술쳐먹고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아느냐'며 의족 휘두르면서 행패 부리다가 헌병한테 뚜드려맞는게 일이었어. 결국 동네 창피하다고 흉보는 통에 조상때부터 살던 동네를 떠나갔지. 사돈의 팔촌은 전쟁 갔다 오더니 반미쳤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받으면서 살다가 어느날 사람취급도 안하는 동네 사람이랑 싸우다가 칼로 찔러 죽이고는 붙잡혀서 사형됐대나..."

아니 이 할아버지 왜 이런 쓸데없는 얘기만 자꾸 하는거지... 군사잡지 다운 인터뷰를 하자. 김기자는 화제를 돌렸다.

"이원 상륙작전에 참가하셨죠?"

"이원이 어디야?"

"원산 북쪽에..."

"이원인지 뭔지는 모르고 동해 어디로 배타고 올라갔다 온 적은 있어"

"그때 말씀좀 해주세요"

"무슨 말을 해? 그냥 영문도 모르고 추운 산속으로 옷도 제대로 못챙겨입고 들어갔다가 죄다 얼어죽어 나온걸"

죄다 얼어죽다니?

"장진호로 갔던 미해병 1사단은 중공군 9병단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받고 후퇴했는데 할아버님 부대는 어떠셨어요? 중공군들 많이 보셨나요?"

"중공군이야 사변 내내 많이 봤지"

"이원에서 중공군한테 피해는 많으셨나요?"

"다 얼어죽었다니까"

"그래도 전투하면서..."

"총맞아 죽은 놈보다 얼어죽은 놈이 더 많어"

"북한이 그때당시 추웠던건 저도 알고 있는데요, 전쟁에서 그래도 총맞아 죽는 사람이 많지 않나요?"

"무슨 소리야 내가 그때 당시 있던 사람인데. 얼어죽다 뿐인가? 현리에서는 중공군한테 포위돼서 수태 죽었는데 그때도 중공군한테 죽은 사람보다 산으로 도망갔다가 굶어죽은 사람이 더 많았어."

"... 참혹하셨나요?"

"이젊은이 말하는 것좀 보게"

노병은 주변의 노인들을 둘러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다.

"자네는 전쟁이 멋있는줄 아나?"

"그런건 아니지만요..."

"멋있으면 자네가 가서 해봐"

피식. 내가 명색이 밀리터리 매니아인데 대 전쟁이 발발했을 때 태어났으면 나도 참전용사 될 수 있었다고. 기회가 안주어져서 그렇지.

"그래야되는 상황이 온다면야 기꺼이..."

"동란때 자원해서 온 양반들도 가끔 있었지. 그래봤자 전투한번 나가서 옆에서 몇 명 죽어자빠지는거 보면 다들 집에 가고 싶어하더만."

"그래도 남아서 싸우셨잖아요"

"좋아서 싸운줄 아나? 전쟁터가 달리 끔찍한게 아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짓거리를 하니까 그게 끔찍한거지."

"..."

더 인터뷰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명색이 훈장 받은 참전용사가 뭐든지 질문하면 부정적으로만 대답하니 말이다. 김기자는 주섬주섬 일어나서 사무실로 향했다. 돌아가서 편집장과 인터뷰 내용을 검토했다.

인터뷰는 잡지 컨셉과 맞지 않고 독자들의 정서와 부합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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