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을 마치고

* 이 글의 바탕은 팰콘3.0에서, 미군 비행대대를 이끌고 인도-파키스탄 분쟁 시나리오에 참가했던 경험입니다. 천리안에 95-6년경에 쓴 글이라고 생각되네요. 웹에 등록하면서 교정을 거쳤습니다.


 이번에 겪었던 전장은 파키스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싸우는 동안 아군이 돕고 있는 측이 인도인지 파키스탄인지도 몰랐다. 일선에서 보면, 그것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단지 우리 비행대는 정치가들의 요구에 의하여 외국에서 임무수행을 하고 있는 중일 뿐, 우리가 싸우는데 있어서 지켜야 할 가치나 대의명분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일을 먹여야 할 상대가 인도군이건 파키스탄군이건 그것은 중요치 않고 중요한 것은 상공에 떠있는 항공기가 아군에 우호적일 것이냐 아니면 IFF에서 기분나쁜 찍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총알세례를 퍼부을 것이냐의 구분밖에 없었다.

 우리가 싸운 이유는, 국가의 존망을 지키기 위함도 아니요,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함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는 정치가들이 이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왔고, 적이 나를 죽이는 것을 막기위해,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 싸웠다. 정치가들이 어떠한 목적에서 우리를 전쟁터로 내몰았던간에, 역사 이래로 전장에 있는 모든 군인들의 궁극적인 단 한가지 임무는 승리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다. 이기고 있었으나, 결코 승리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그랬고, 우리 비행대가 겪은 지난 3번의 전장에서도 그랬다. 우리는 하늘에 우리의 피를 뿌리면서 승리를 향해 다가갔으나, 결국은 우리를 전쟁터로 내몬 정치가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흥정을 해버리고 말았다.사람들은 정치가들이 우리를 이곳까지 보냈으며 우리는 단지 그들이 보냈기에 왔을 뿐이라는 것은 잊고 정치가들의 위대한 결단으로 피비린내나는 살륙에서부터 무고한 생명들을 건질 수 있었다고만 기억할 것이고, 군인들은 그 가공된 기억 속에서 학살의 주범으로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쨌든 결말은 정치가들의 흥정으로 끝났다. 전쟁이 정치의 일부라면, 전쟁의 결말도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정치적인 타협으로 결말지어질 일이었다면 어째서 우리들은 전쟁터에서 흙속에 머리를 쳐박고 죽어넘어져야만 하는가? 정치가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면 군인들이 죽어넘어지는 것을 보기 이전에 당연히 정치적인 해결점을 찾았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도대체 어떤 명분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정당화 시킬수 있는 것일까? 

 2차대전당시 연합국은 "히틀러의 독재정권을 말살시키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2차대전이 승리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히틀러보다 훨씬 강하고 더욱 악날한 공산 독재제국만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무의미한 전쟁이 될 것을 미리 알았으며 승리 이후에는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감언이설에 속지 않았던들 군인들이 그렇게 정치가들의 개가 되어 막연한 증오심을 갖고 적을 죽일 수 있었을까. 6.25도 갖가지 구실과 책임전가를 떠들어대지만 결국은 비슷한 장소에 38선이 휴전선이라고 이름이 바뀐 것밖에 없는 경계선만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런 결과를 미리 내다볼 수 있었다면 수많은 군인들이 앞다투어 자신의 몸을 적의 탱크밑에 깔아뭉개려 발버둥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양의 역사에서 군인과 정치가간의 관계는 확실하였다. 즉 정치가는 군대를 소유하고, 정치가와 군인은 계약관계이며, 군인은 신분과 부를 보장받는 댓가로 자신의 목숨을 정치가에게 바쳤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계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정치가는 여전히 군대를 소유하지만, 정치가와 군인간의 관계는 불평등해보인다.

 우리 비행대는 이제껏 22명의 실종자와 5명의 전사자를 냈다. 그들은 단지 폭탄을 실어나르는 기계를 조종하는 자동인형이 아니라 모두 따뜻한 가정과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 하나의 소중한 인간들이었다. 무엇이 그의 친구들과 가족으로부터 그를 떼어갔는가?
 처음에는 그들의 죽음이 비행대를 이끄는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비행대가 잘 꾸려져 나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죽게 마련이다.  답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정치가의 욕심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정치가들은 한푼두푼 벌어서 일하는 착실한 인간이 아니라 가진 돈을 모두 잃을 때까지 카지노판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노름꾼과도 같아서 자신의 돈이 모두 없어지기 전에는 계속해서 자기 재산을 탕진하면서 큰소리 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계 방방곡곡에서 무고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죽을 것이고 화목한 가정들이 파괴될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정치가이지 군인이 아니므로, 그것을 막을 사람도 역시 군인이 아니라 정치가이다. 내 전우들이 죽어간 것은 다행히도 컴퓨터 CPU 안에서였지만, 지금도 어디선가는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대한민국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는 것에 문득 감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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