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생리 훈련 체험 후기 (2001.11.19)

유성우와 함께 시작한 소원성취의 하루

 지난 11월 19일 밤에는 밤새워 떨어진 유성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소망을 이루어주었다. 19일 아침 7시에 항공생리교육 체험을 위해 집합장소인 국방부 민원실 앞에 갔을 때는 어둑한 하늘에 마지막 유성이 간혹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난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소원을 빌었고 또 그 유성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줄 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항공생리교육에 입과하는 대회 입상자들은 오늘 하루가 작은 하나의 소망을 이루는 날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었다.

 7시 정각에 인원파악을 해보니, 대상 16명 중 행사 통지 메일에 대한 미응답 3명은 제외하고 참석 희망자중 2명이 안나와 있었다. 그중 한 분은 전화로 불참통보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의 행방을 기다리던 중에, 남은 한 명인 임종호 군으로부터 현재 신도림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솔을 맡으신 이영권 중령님께 말씀드렸더니 기다릴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셔서, 임종호 군으로부터 고속버스로 직접 청주 항의원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우리는 국방부 앞을 출발하였다. 중학교 3학년생인 임종호 군은 어려운 길을 마다하고 우리보다 조금 늦게 어렵사리 택시와 고속버스를 갈아타가며 항의원에 도착했다.

 

더 높은 G로 돌려주세요

 첫 과목은 고공생리 이론으로, 최재문 대위님께서 고공의 저산소 조건 및 기압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의 신체의 변화에 대하여 친절한 강의를 해주셨다. 요약하자면...대체로 좋은 말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한 귀로 들어감과 거의 동시에 다른 쪽 귀로 다시 나왔다. 물론 최대위님의 교육이 지루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도 어서 실습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재로 주신 책자중에는, '비행과 알코올'이라는 챕터가 있었다. 다른 항공생리 이론은 게이머들에게 별반 관계가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이 비행과 알코올 챕터만큼은 시뮬 게이머들에게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사이버 조종사들 중에는 소주가 한 병 이하로 들어가면 사격이 잘 안된다는 점을 호소하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이런 분들을 새로운 생리 연구주제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잡념을 잠시 했다.

 한편 교무과장님께서 몸이 안좋은 사람은 훈련에 꼭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의를 주셨지만, 참가자들은 당연히 훈련받으러 왔는데 참가하지 않는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고 교무과장님의 말씀을 들은 척 만척하며 가속도 훈련에서 더 높은 G를 겪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는 열성을 보였다. 참석자들은 모두들 9G를 체험하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는데, 결국은 일단 6G 체험을 한 후에 사정을 봐서 희망자를 대상으로 추가 교육을 하기로 하였다.

 

어디서 교육받은 분들이죠?

 두 번째 과목은 비행착각 훈련으로서, 비행 중 신체에서 느끼는 자세와 실제 자세간에 어떻게 착각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김용성 원사님의 담당으로 이론교육 후 실습이 실시되었다. 실습은 2개 장비로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 것은 2차원 장비로서 비행착각을 직접 느껴서 신체평형 감각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 장비는 3차원 신장비로서 임의적으로 콕핏을 돌린 후 계기를 보고 자세를 바로잡는 훈련을 하는 장비였다.

 처음에 담당 교관님은 2차원장비 위주로 실습을 하기로 하고 3차원 장비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경력이 꽤 되는 헬기 조종사들도 적응하기 매우 까다롭다고 하시며 장비 가동을 주저하셨었다. 그러나 이영권 중령님께서 참가자들의 특수성을 설명하셔서 게이머이자 인솔자인 원대훈 중위가 3차원 장비의 첫 시범을 보이게 되었다. 이 장비는 게이머들이 뛰어난 계기 적응력을 보일 것이라고 예전부터 나와 원대훈 중위가 이영권 중령님께 줄곧 주장하던 바로 그 장비였다.   

 처음에 자세 확인을 하고, 계기와 모니터를 끄고 무작위로 콕핏을 돌린 후 모니터와 자세계가 켜지고 회복을 하는 방식의 훈련이었다. 모니터가 다시 켜졌을 때 원중위의 자세는 약 50도정도 오른쪽으로 뱅크져 있었고, 자세를 바로잡으세요 라는 지시에 원중위는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약간 힘들어하는 것 같긴 했지만 조금 흔들리면서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는데 성공했다. 교관님은 신체감각과 모니터로 보는 감각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느냐고 물어보셨고 원중위는 45도 정도라고 대답했다. 원중위에게 약간의 설명을 곁들이신 후, 교관님은 이영권 중령님께 이 정도면 상당히 회복을 잘하는 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다음은 나의 차례였다. 대충 어떤 식으로 교육이 진행되는지를 미리 봐서 알고 올라가기 때문에 나는 '속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벨트를 매고, 헤드셋을 쓰고 센터스틱형인 조종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자세가 흐트러져서 스틱을 잘못 흔들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틱을 잡은 손에는 일체 압력을 주지 않고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 팔의 각도를 유지했다. 준비가 되자 모니터와 계기가 꺼져 콕핏 내부는 완전히 암흑이 되고 콕핏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암흑인 상태에서 교관님은 '하강하는 느낌이 나죠?' 라던가 '상승하고 있는 것 같죠?' 라는 질문을 해오셨는데, 나는 일부러 착각을 일으키게 하려는 유도심문이라고 생각하고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충 둘러대면서 자세가 유지되고 있다고 계속 상상을 했다. 그리고 또 원사님은 중간에 '수평비행으로 자세를 잡아보세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역시 속임수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스틱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콕핏이 거꾸로 확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아마 회전하고 있는 콕핏이 바깥을 향하게 되어 원심력을 받게 된 것이었을 텐데, 느낌은 배면비행을 하는 느낌이 나고 헤드셋이 머리에서 벗겨졌다. 아마 이때 순간적으로 스틱을 옆으로 움직인게 아닌가 싶다. 잠시 후 모니터와 계기가 켜지고 교관님은 계기를 보고 자세를 잡으라고 하셨다. 내 느낌은 135도정도 오른쪽으로 뱅크져 있는 것 같았는데, 계기는 45도쯤 오른쪽 뱅크였다. 헤드셋이 벗겨지면 교관님 말씀이 안들리므로 오른손으로 스틱을 그대로 잡은 채 헤드셋을 왼손으로 다시 고쳐 썼다. 자세를 바로잡으라시니 스틱을 왼쪽으로 밀어야 했는데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고 있어서 스틱을 왼쪽으로 약간 미는데 힘이 들긴 했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금방 생각이 되었다. 아마 코엑스 몰의 360도 통돌이 게임기를 한번 탔던 경험이 도움되는 것 같기도 하고, 원대훈 중위가 탔을 때와 자세가 거의 같았기 때문에 더욱 회복조작 파악이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천천히 왼쪽으로 뱅크를 주다가, 회복 속도가 좀 늦은 것 같아 조금 세게 밀었더니 기체가 반대편으로 확 넘어갔다. 그래서 다시 스틱을 천천히 움직여 수평으로 조심스럽게 회복을 하였다. 처음에는 한쪽으로 쏠린 자세가 좀 불편했지만, 일단 수평으로 회복을 하고 나니 평소 모니터를 보고 게임을 하던 생각이 나서 내 자세가 기울었다는 생각은 더이상 들지 않고 단지 누가 옆에서 내 몸을 밀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때 교관님은 '신체가 느끼는 대로 수평을 잡아보세요'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아니 지금이 수평인데 뭘 어떻게 잡으라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이미 모니터를 보고 하는 게임에 익숙해져서 신체평형기관이 자세파악에 아무 도움을 못 주고 시각과 계기만이 자세유지의 기준이 되어있었기에, 그러한 교관님의 요구는 오히려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신체평형감각대로 평형조작을 하는 것이 계기평형을 잡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여하튼 아까 한 원중위의 경우와 상황이 비슷했으므로 방금 원중위가 할 때 했던 대로 약간 오른쪽으로 뱅크를 주고 '45도정도 오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원중위의 대답을 적당히 반복했다.

 내려와서 말씀을 들으니, 교관님이 이영권 중령님께 신기하다는 듯 '어디서 교육받은 분들인가요?' 라고 물어보며 감탄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신체 평형감각을 무시하고 계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불굴의 의지력이라고 이후에 탑승하는 교육생들에 대해서도 교육 내내 계속 감탄을 하셨다. 처음 사람들이 생각 외로 잘하자 교관님은 다른 사람들도 3차원 신장비를 탑승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셨고, 참가자들의 열띤 관심으로 인하여 정해진 식사시간을 30분 넘겨서까지 교육을 진행했으나 시간관계상 신장비를 탑승해보지 못한 교육생도 몇 명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와보게 될 조종 장학생인 교육생들이 다른 일반인 교육생들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아량을 보여주었다. 다른 참가자들도 전반적으로 평균 이상으로 뛰어난 자세 회복 능력을 보였고, 특히 공군 부사관 합격자인 박신이라는 친구는 배면자세에서 1초만에 부드럽게 완벽히 자세를 회복하여 교관님의 말문을 막히게 하기도 했다.

 사실, 비행착각 훈련장비가 2G까지밖에 내지 못하기는 하지만, 모니터로 모든 상황인식을 하고 모니터 화면에 생사를 맡겨야 하는 게이머로서는 몸이 좀 기울어있거나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계기를 보고 자세를 잡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실제 비행으로 신체평형감각에 선입견을 가진 기성 조종사들과는 달리 시뮬 게이머들은 오로지 처음부터 모니터로만 모든 상황인식을 해왔기 때문에, 자세 파악을 위해 신체평형감각을 활용하는 경험이 전무했다는 것이 계기 적응 훈련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영권 중령님은 우리의 비행착각 훈련에서의 자세회복 능력을 보고 생도들에게 시뮬게임을 적극 권장해야겠다는 소견을 피력하기도 하셨다.

 

인간 로켓이 되어

 양배추 보쌈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비상탈출 훈련장으로 갔다. 비상탈출 훈련장의 교관은 동네 슈퍼 아저씨처럼 인자한 인상을 가지신 현종구 상사님이었다.

 우선 교관님은 이젝션 시트의 개요, 자세, 방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강의 마지막에는 비상 사출 훈련 교관으로서 역시 러시아제 사출좌석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으셨다. 헬멧을 쓰고 한 명씩 실습에 들어갔다. 각각의 학생들이 자리에 앉으면 교관님께서 어깨와 다리의 자세를 교정해주셨다. 원래는 조종사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반인 교육임을 감안하여 교관님께서 보조해주셨다. 이젝션 훈련장비는 나쁜 자세에서는 사출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의 훈련효과를 높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총 14명의 훈련 참가자 중 한 명이 실제로 자세가 흐트러져서 이젝션에 한번 실패해서 다시 시도하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또 몇몇 학생은 사출이 됨과 동시에 신발도 발에서 사출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다지 힘든 과목인 것 같진 않았지만 왠지 놀이기구 타고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내기 싫어서 진지한 표정을 애써 지었다. 아니, 사실은 긴장이 좀 되었다.  교관님이 잡아주신 자세대로 몸을 바로 세우고, 다리를 시트에 꼭 대고, 발을 당겼다. 6.5G로 사출되는 것이라 긴장이 돼서 몸에 힘이 들어갔다. 통제 교관님의 지시에 따라 스로틀을 뒤로 당기고, 머리를 뒤로 딱 붙여 누르고 한 손으로 다른 손 손목을 잡고 그 손의 손목과 팔꿈치로 사출레버를 당겼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볼 때는 '딸깍' 하는 소리와 동시에 사출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막상 내가 레버를 당겨보니 '딸깍'하는 소리에서부터 사출이 이루어지기까지가 꼭 무한히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건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의 기분은 앞으로 닥쳐올 충격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꽤나 찜찜했다. 하지만 일단 몸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느새 나와 좌석은 몇 미터 위의 레일에 매달려 있었다. 다행히 이젝션 후 자세가 많이 흐트러져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좌석은 곧 천천히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훈련이 끝나자 이 장비로 10G 힘의 사출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미리 들었던 교육생들은 실제 조종사들은 몇G로 훈련받느냐고 질문을 했다. 아마 최대 10G까지 낼 수 있는 장비에서 6.5G의 힘으로 훈련을 받은 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에 대해 교관님은 실제 조종사들도 부상의 위험 때문에 높은 압력으로 훈련을 받지는 않는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훈련 그자체는 무난히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비상탈출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을 수반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기지로 귀환하기 귀찮다거나 HUD가 조금 망가졌다고 해서, 혹은 미사일이 단지 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고 해서 다리를 꼬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탈출 버튼을 누르고 게임에서의 생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일부 게이머들의 태도에는 충분히 경종을 울릴만한 과목이었다.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

 그 다음 교육은 대망의 가속도 훈련이었다. G를 받아본다는 것은 모든 사이버 조종사들의 소원중의 하나이니, 아마도 모든 교육생들이 이 교육을 가장 많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가속도 훈련은 유영록 준위님께서 강의를 맡아주셨다.

 우선 가속도 훈련에 대한 개요, 훈련방법, L-1 호흡법 등의 내용으로 교관님의 유머감각 있는 화술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강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서로 예견할 수만 있었다면 이 사전 강의 부분에서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어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G를 견디는 방법에 관한 실제적인 코멘트가 좀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L-1 호흡법도 교관님께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기는 하셨지만, 나중에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느낀 점은 처음 접하는 일반인들로서는 호흡법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되지 못한 듯 하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개인 신체 카드를 작성하고, 첫 타자로 원대훈 중위가 늠름하게 나섰다. 심전도 장비를 부착하고 원심 분리기 또는 짤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곤돌라에 탑승하자 대기실 전방의 모니터에 원중위의 얼굴이 나타났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현재 G와 경과 시간 등을 알 수 있도록 상단에 자막이 붙어있었다.

 첫 번째 선수인 원대훈 중위의 순서가 시작되었다. G 표시가 6G까지 도달하자 원중위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엄청난 고통을 받는 듯 했다. 일전에 경험자 분들로부터 고개가 한번 숙여지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고개가 수그러지는 원중위를 보고 첫 타자부터 맛이 가는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의외로 원중위는 숙여지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G를 견디기 시작했다.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다가 호흡법을 하면 뒤로 젖혀지고, 다시 앞으로 수그러들다가, 또 호흡을 하면 다시 뒤로 젖혀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목표인 30초를 무사히 견뎠다.

 첫 번째 시범에서 성공을 한 것을 보고 저마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한두 명씩 자원하기 시작했고, 매도 먼저 맞는게 낫겠다는 생각과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도 앞쪽 순서로 줄을 섰다.

사실 체력관리라는 것은 전혀 하지 않으며 살고있고, 하는 운동이라야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나로서는 애당초 가속도 훈련 통과를 잘 해내기 힘들 것이라는 포기에 가까운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훈련대비 사전 체력훈련같은 것도 전혀 안하고, 단지 인터넷 교재에 나와있는 L-1 호흡법 강의를 사전에 예습하고 그에 따라 집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자세와 호흡을 몇 번인가 연습해본 것이 준비의 전부였다. 그러나 왠지 훈련 당일날은 굳이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곤돌라에 타자 교관님께서 전방의 발판 길이를 조절해주시고, 긴장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주셨다. 전면에는 카메라, 모니터, 그리고 블랙아웃 정도를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초록 등과 붉은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1.2G로 천천히 회전하다가 스틱을 앞으로 밀어 트리거를 한번 당기자 제어권이 나에게로 넘어왔고, 통제관님의 지시에 따라 오른손으로 스틱을 주욱 당겼다. 왼손은 스로틀 위치의 팔걸이 손잡이를 잡도록 되어있었다. 아마 내가 스틱을 급하게 당기지 않고 약간 천천히 당겼던 듯한데, 나중에 나와서 말을 들어보니 6G까지 올라가는데 약간의 시간 지체(남들보다 1-2초 정도)가 있었다고 했다. 하여튼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G가 상승하여 그만큼 견디기 쉬워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스틱을 끝까지 당겼다는 느낌을 받은 후 호흡을 한번 하는데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관님의 사전 강의에서도 스틱을 끝까지 당기 후 최초 호흡을 한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었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 처음 숨을 쉴 때의 기분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몸이 아래로 심하게 밀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워낙 머리를 뒤로 있는 힘을 다해 밀고 있던 터라 자세를 잃지는 않았고 이대로 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겼다. 전에 연습해봤던 대로 속으로 하나둘셋넷을 세고 호흡하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원래 3초 간격으로 호흡하기로 되어있으나, 전에 연습할 때 속으로 숫자를 세면 1초보다 빠른 템포가 되었었고 또 일반인들은 훈련을 받을 때 정해진 것보다 호흡이 빨라진다는 교관님의 말씀을 들어 넷까지 세기로 했다. 호흡을 한번씩 하면서, 그럭저럭 견디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리듬을 타고 호흡하면서 가다가, 통제관님께서 20초가 지났다는 말씀을 하신 직후부터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체력이 워낙 딸리다보니 그새 힘들어진 것도 있었던 것 같고, 한편으로는 10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고 방심하게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20초를 지나고 나자 발판을 있는 힘껏 차고 있던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흡을 하기도 힘들어졌다. 아마 마지막 몇 초간은 호흡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이때쯤이 되자 시야도 갑자기 어두컴컴해지고 여름에 조회를 설 때 기절하기 직전에 보이는 아지랑이같은 것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터널시야가 되면 주변부터 점차 어두워진다고 하는데, 워낙 곤돌라 안쪽이 그다지 밝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야가 좁아지는 것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전체적으로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필름을 보니 처음 20초 동안은 카메라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가 20초가 되자 그때부터 눈이 아래로 쳐지고 얼굴이 사색이 되는 장면이 역력하게 찍혀 있었다. 한가지, 블랙아웃이 되어가니까 시야만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청각 역시 급격하게 저하되어 통제관님의 말씀이 저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리가 내 느낌으로도 심하게 후들거리고 호흡하기도 힘들어졌지만, 자세는 여전히 머리를 머리받이에 꽉 밀어붙이고 있는 그대로라 끝까지 견딜 수 있다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그렇게 해서 10초를 견디고 나서, 통제관님께서 스틱을 놓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듣긴 들었지만 혹시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해서 조금 더 당기고 있었더니 다시 놓으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셔서 그제야 스틱을 놓았다. 스틱을 놓고 나자, 통제관님께서 앞에 무엇이 보였냐고 물어보시고는 그레이 아웃-블랙 아웃을 지나 거의 의식상실 직전까지 잠깐 갔다가 왔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스틱을 놓으라는 말씀까지 분명히 듣고 마지막까지 머리위치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곤돌라를 나왔지만, G-LOC에 빠지면 자신이 의식상실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 못한다는 말을 본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밖에 있던 다른 교육생에게 혹시 내가 의식상실이 되었었는지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필름을 보고 알았는데, 시야가 좁아졌지만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마지막 10초 정도는 눈이 거의 감겨있고 겉보기에는 맛이 간거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단지 완전히 기절해서 자세가 앞으로 고꾸라지지만 않은 정도였다. 특히 G를 풀라고 통제관님께서 말씀하신 후 지시에 따라 G를 풀고 있는 동안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동자가 한 1-2초 정도 제멋대로 요동을 쳤다. 그래서 결국은 G-LOC(의식상실)은 아니었지만 그 직전 상태인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블랙아웃에 도달해서 겨우 정신만 차리고 있었다는 결론에 자체적으로 도달했다. 그렇게 결론짓고 나니, 마지막 몇 초간의 심각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심적으로는 여유 있고 편안한 생각이 들던 것이, 뇌에 산소 공급이 거의 끊긴 기절하기 직전의 상태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무렵에 기절 직전까지 갔다가 나오는 통에 부축을 받고 나와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성공한 사람에게 해주었듯 나에게도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는지 지금은 그것도 제대로 기억이 안나지만, 여하튼 정해진 시간 동안은 정신은 차리고 있었고 그렇게 해서 가속도 체험을 가까스로 마쳤다. 훈련을 마치고 나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신체 고통이 없이 G를 당길 수 있는 게이머로서의 원죄적인 죄책감이 약간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교육생들도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6G의 가속도 체험을 무난히 통과하였다. 화면을 보기에는 L-1 호흡법을 정확히 실행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 대신 곤돌라 나사가 망가지느냐 내 몸이 망가지느냐라는 표정으로 악으로 밀어붙이면서 견디는 모습들은 약간은 진기해 보였다.

 6G에서 모든 교육생들의 교육을 마치고 나서는 희망자를 대상으로 G-슈트를 입고 좀더 높은 G 시도를 다시 하였으며, 박성진님은 7.3G 도달 성공, 유동현님은 9G까지 도전하여 그 중에서 7G정도까지 갔었고, 비싼 택시비와 고속버스비를 부담하여 힘들에 훈련에 참가한 중3학생인 임종호 군은 도전자들 중 유일하게 9G 도달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임종호군은 최연소일 뿐만 아니라 장신에 갸름한 체격으로 언뜻 봐서는 흔히 말하는 G를 잘 견딜 수 있는 채형과는 거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9G에 갔다왔다는 것이 그저 마냥 즐겁기만 한 것 같았다.

 한편 인솔자인 이영권 중령님은 교육목적상 실전에서는 6G를 당기고 있는 와중에도 기기조작과 교신등을 해야 한다는 코멘트도 잊지 않으셨다.

 

저압실? 가스실?

 마지막 훈련은 조정훈 원사님의 담당으로 저압실 비행 체험이 진행되었다. 오전에 배웠던 고공생리 이론을 보충하는 강의를 조금 더 듣고 저압실로 이동하였다. 저압실 비행 훈련은 고공에서 여하한 이유로 여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때 조종사가 저산소 상황을 빨리 인지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옛날에 어떤 사무실 벽과 천장 페인트 작업을 했을 때 정해진 휴식시간을 지키지 않고 있다가 신너중독 초기상황에 빠진 것을 다른 분이 와서 불러내시는 바람에 함께 일하던 세명이 심각한 상태로까지는 가지 않고 골이 띵한 정도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되면서 비로소 정신을 차렸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가스중독과 같은 저산소증 상황은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숨이 막힌다거나 하는 등의 자각증세가 전혀 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명적인 상황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말을 실감했었기에 저압실 훈련의 취지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훈련의 과정은 단순하게 구성되어있었다. 우선 1만 피트 고도상황까지 갔다가 내려오면서 기압이 변화할 때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점검을 잠시 하고, 주 교육은 2만 5천 피트 고도상황까지 가서 교육생들이 짝홀수로 나뉘어 한사람씩 산소마스크를 벗고서 장시간 경과하면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옆사람이 보고 또 그 다음에는 직접 체험을 해보는 것이었다. 훈련 전에 만년필, 시계 등등 기압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빼놓고 훈련실에 들어갔다.

 고공상황으로 설정이 되면서 저압상황이 되니, 매달아놓은 고무장갑이 부풀고 공기가 쌀쌀해진 느낌이 들었다. 바깥의 압력이 낮아지는 만큼 배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느라 계속 트림과 방귀가 나왔다. 하지만 기압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에 예의상 참는다거나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적응을 하고 있으면 되었다. 안에 있던 우리들은 산소 마스크를 쓰고 있느라 잘 몰랐지만, 이 때문에 훈련이 끝나면 저압실에는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해서 바깥에 있던 인원들은 저압실 문이 열릴 때 문 근처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25천 피트 상황에 도달하자, 산소마스크를 벗은 사람에게는 종이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계속 써 내려가도록 임무가 주어졌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나우누리 윙즈 시삽이고 월간항공 기자로 참석하신 이종태님이었다. 처음 산소마스크를 쓰고 한 줄을 쓰고 나서 대기하다가, 교관님의 지시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벗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래 좀 악필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씨가 점점 오른쪽으로 흐르며 조금씩 더 글씨가 휘갈겨지는 것이었다. 약 3분쯤 지나자 오자가 나왔는지 내부 통제교관님이 이종태님에게 마스크를 다시 씌워주었다.

 그 다음 내 차례가 되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최대한 제정신을 유지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첫 한 줄을 쓰고 산소마스크를 벗었다.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너무 빨리 쓰지 않도록 주의하며 천천히 줄을 맞춰서 또박또박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벌써 한 3-4줄 쓸때부터 줄이 잘 안맞춰진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며 손발 끝이 약간씩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마음을 가다듬고 쓰는데 10줄 정도 썼을 때쯤에는 주민등록 번호를 쓸 자리에 '김'자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아차 잠깐 실수했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는데, 이때 피식 웃은 것이 옆에서 보기에는 희한하게 보였는지 옆에 있던 분들이 그때 왜 웃었냐고 나중에 물어보셨다. 혹시 실성한 사람이 웃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난 실성하지는 않고 있었고 단지 실수일 뿐이라며 다음 줄을 쓰기 시작했는데, 실수는 무슨 실수...역시나 주민등록 번호란에 내 이름을 쓰고 있었고 옆에서 본 이종태님 말씀으로는 얼굴은 멀쩡해 보였지만 손은 쓴 줄에 또 쓰고...제멋대로였다고 한다. 그러자 내부 통제교관님이 와서 바로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산소흐름을 확인해주고 가셨다. 처음 생각에는 정신만 멀쩡하면 내 이름 하나 못 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막상 저산소 환경이 되어보니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내 희망사항일 뿐이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생각을 여전히 할 수 있고 손이 보이고 하였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이미 약간 저능해진 상태의 판단들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회복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이렇게 저산소증 상황을 자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교육생들은 내부 통제관님이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시자 괜찮은데 왜 그러냐고 하여 통제관님이 이미 휘갈겨 쓰고 있던 연습장을 다시 보여주자 그제야 수긍을 하기도 하였다.

 저산소증 상태에서 회복하는 순간의 느낌은 마치 예전에 신너냄새에 맛이 가서 어벙벙하던 상태에서 신선한 공기를 쐬고 맨정신으로 돌아오면서 아 방금 내가 좀 어벙벙한 상태였구나라는 느낌이 들던 때와 비슷했다. 두 경우 모두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고 저산소 증세가 막 나타나기 시작하려는 최초 단계에서 회복이 된 셈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저압실에서는 산소 분압이 낮아서 저산소증 상태가 된 것이었고 페인트 칠 작업을 할 때는 밀폐된 공기의 신너 농도가 높아져서 저산소증 상태가 된 것이므로 저압실에서는 아무 냄새가 안났고, 도색 작업때는 신너냄새를 맡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이 훈련으로 저산소증을 자각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흔히 생각하기를 산소가 부족해지면 숨이 막힌다거나 정신이 갑자기 몽롱해지면서 쓰러지거나 하는 모습을 생각하기 쉬운데, 저산소 상태가 되더라도 스스로는 여전히 정신이 아직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있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이 상태로 계속 있어도 괜찮다고 굳게 믿고 있을지라도, 옆에서 보기에는 눈이 풀리고 어벙벙한 상태가 되어 유아적인 몸놀림을 하고 있다가 그런 식으로 완전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명적인 상황에까지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런 훈련을 하고 나니 가스가 가득 찬 맨홀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다가 단체로 질식하고 구조하러 들어간 사람까지 함께 질식사하는 뉴스들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훈련들은 좋게 말해서 놀이기구 탄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되는 것이라서 몸은 힘들지라도 나름대로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저압실 훈련은 축축하고 찜찜한 느낌을 주는 산소마스크에서부터 시작해서 기분 나쁜 복부 포만감, 기압 변화로 인한 신체 반응 등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이 그저 찜찜함으로 일관된 훈련이었다.

 

새로 허물을 벗은 느낌

 어떤 과목은 쉽게, 또 어떤 과목은 어렵사리 지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모든 과목을 모두 체험하고 또 G테스트도 기절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버텼다.

 모든 훈련이 끝나자 강의실에서 훈련부장님께서 간단한 치사와 함께 교육생들에게 훈련 수료 필증을 나눠주셨다. 이 훈련필증은 앞으로 3년간 항공기에 탑승할 자격을 부여하는 공식성을 띤 것이었다. 어차피 내게는 향후 3년은 고사하고 30년 동안이라도 전투기 후방석에 탑승할 기회가 있을 가망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훈련을 수료했다는 것은 내게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 의미란 단순히 시뮬게이머로서 조종사들이 겪는 것을 함께 체험해보고 싶다는 애당초의 기대와도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 하나의 체험 그것이 아니라, 인간이 닥칠 수 있는 한계상황 중 몇 가지를 미약하게나마 겪어보고 견뎠다는 성취감이었다.

 돌아오면서 몇 명인가를 고속도로 바로 옆에 내려주면서 '한참 걸어가야 될텐데요'라고 운전하는 부사관이 말했을 때, 문득 "6G도 견딘 사람들인데 1G로 걸어가는 것쯤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생교육을 받은 경험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를 헤쳐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참석자들 역시 유사한 종류의 성취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조종사들에 대해서 존경한다고 말해오긴 했었지만 그것은 경외감이라기보다는 고통을 견디며 비행을 하는 조종사들이라고 막연히 이해하고 싶어하는 상상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인간의 한계상황들을 자신의 생활의 일부로 삼아 살아가는 조종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년식을 치른 지 어느새 10년이 지나버렸다. 오지의 어떤 원주민 부족들은 성년식을 할 때 온 몸에 상처를 내거나 혹은 맨 땅바닥에 대고 길이도 알 수 없는 직접 만든 줄로 번지점프를 한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꽃과 선물, 키스 등등이 성년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성년식 당시 키스는 커녕 손톱깎이도 하나 기념품으로 받지 못했었다. 그리고 10년 후 곤돌라에서 6G를 견뎠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6G를 견딘 체험이 내 인생의 많은 과정들 중에서 한번의 큰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키스를 성년의 날 선물로 받은 사람보다 훨씬 인생에 값진 경험을 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소중한 체험을 하고 나자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성년식때 번지점프로 용기를 증명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성인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한결 가슴에 와 닿았다. 애인과 키스 혹은 더 심한 일을 한다고 해서 성년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성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나라에 호적상으로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숙아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원시부족의 성년식이 남성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마쵸이즘적 행사에 다름아니다라고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간이 성장을 한다는데 있어서는 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 없을 것이고, 성년식을 상품화하고 그를 빙자하여 성적인 접촉을 조장하는 행위들이야말로 진정 성차별적이며 반문명적인 것이 아닐까? 여건만 된다면 성년의날이 되면 모든 성인이 되는 남자와 여자들을 곤돌라에 태워 6G를 견디게 하는 것은 어떨까? 등등 온갖 잡생각이 귀가길에 들었다.

 

사실적인 게임? 실제 공중전 교재? 집어치워라!

 훈련을 마치고 난 후 한 몇시간동안은 해냈다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훈련이 생각보다 쉬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조종사들이 이제까지 우는소리를 하면서 어려움들을 감수하고 비행을 한다는 말들이 에이 뭐 그 정도쯤이야...라고 잠시 생각되게끔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잠깐이나마 건방졌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우선, 우리가 받은 교육은 단지 교육일 뿐이었다. 이것만 하면 전투기동을 잘 할 수 있는 신체를 갖추었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체조건이 전투기를 타지 못할 만큼의 하자가 없다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훈련을 통과했다고 해서 조종사와 동등한 선에 서게 되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마치 고등학교 체육수업에 수를 맞았다고 해서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말 그대로 훈련이었으니만큼,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따라 미리 숙지받은 대처방법을 실습해본 것에 불과했다. 가속도 훈련의 경우에는 미리 방법과 요령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동안 견딜 수 있었지만, 견뎠다는 것과 그 상황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호흡을 한번만 잘못해도 블랙아웃이 급격하게 다가오는데 전투교신은 어떻게 할 것이며, 머리를 머리받이에 고정하느라고 온 힘을 쏟고 견디는데 주변 상황인식이나 6시 후방 체크는 또 무슨 수로 할 것인가? G를 견디느라 온 힘을 다해 발판을 밀고 있는 두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무슨 수로 러더를 차면서 고난도 기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훈련기준은 30초를 견디는 것이었지만, 30초면 한바퀴 선회할 시간정도에 불과한데 한바퀴 선회하고 끝나는 전투가 어디에 있나? 등등... 비행착각 훈련의 경우에도, 이미 착각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대처했기 때문에 대응이 쉬웠을 뿐만 아니라 내 경우에는 앞사람을 커닝하고 훈련에 임했기 때문에 사실상 반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착각에 빠질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누가 비행착각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범하겠는가? 그건 이미 착각이 아닌 것이다. 착각에 절대로 안 빠져있다고 믿고 있는 착각을 하다보니까 계기를 못 믿어 치명적인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이니 말이다.  

 뿐만 아니다. 실제 하늘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과목별로 나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 아무리 안전벨트를 꽉 조여 맸다고 해도 롤을 조금만 돌려도 온몸이 조종석 한쪽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축축하고 찜찜한 산소 마스크는 원래 무게의 몇 배로 얼굴을 아래로 잡아뜯으면서 호흡을 방해하고, 교신은 저 멀리서 들리는지 어떤지 파악이 잘 안되고, 깨어있긴 하지만 높은 G로 인한 산소부족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급격히 저하시키고, G로 인하여 시야가 흐려지며 좁아진 상황에 더해서 덜컹거리는 기체에서 수많은 계기를 크로스체크하면서 상황인식과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나로서는 정말이지 요령부득이라고 밖에 상상이 안된다. 아마 시뮬게임을 했을 때와 항공생리훈련을 받았을 때의 느낌의 차이보다도 항공생리훈련을 받을 때와 실제 전투기동을 할 때의 느낌 차이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공중전에 대해 조금이나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전투중의 에너지 유지의 목적은 에너지가 기동의 원천이고... 하는 식의 이론적 관점에서만 받아들여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에너지 기동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G를 덜 당기는 기동인데, 전투중에 G를 덜 당긴다는 것은 단순히 에너지관리의 필요성 때문만이 아니라 불과 수 분의 급기동만으로도 모든 체력이 소진되고 마는 조종사 스스로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 사격한다는 사격 원칙이나 높은 교차각도에서의 스냅샷이 거의 무의미하다는 등의 이야기들 역시, 몹시 흔들리는 실제 항공기에서는 원거리에서 계산기로 계산한 듯한 리드값을 적용하여 자로 잰 듯 사격하기가 사실상 극히 힘들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비로소 더욱 실감이 나게 이해가 되었다.

   

 보통 이른바 하드코어 시뮬레이션 매니아들은 게임의 사실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실제 교재들 또는 게이머들이 만든 여러 문서들로 실제 전투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이해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비록 그것들이 게이머들로서는 공중전투의 유일무이한 간접체험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사실적인 시뮬레이션이라고 할지라도 실제 공중전투의 10%조차 재현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다는 것과 온 몸과 머리가 이쪽 저쪽으로 패대기쳐지면서 비행을 해야 한다는 차이만 가지고도 게임은 게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비행모델이 어떻고 전자장비 재현이 어떻고 하는 소리는 다 집어치우고, 코엑스 몰에 있는 360도 통돌이 게임기가 차라리 팰콘4.0보다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게이머가 만든 유명한 공중전 강의 문서중에 '사격을 위한 10가지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기동은 어떻게 하고, 트리거는 어떻게 당기고, 조준선은 어떻게 잡고...뭐 이런 식인데, 불과 6G로 30초 기동하고 블랙아웃에 빠져버리는 상황을 직접 겪고 나자 리드를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사격을 하고 피퍼를 적기 날개폭에 맞추고...이런 얘기는 한낱 동화책 속의 이야기로밖에 생각이 안되었다. 물론 그런 원칙들은 분명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이겠지만, 그런 원칙들을 공중전 도중에 기억해내는 것 자체가 힘들뿐만 아니라, 그런 원칙들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모니터만 크게 쳐다보고 픽셀 개수를 세면서 비행을 하면 그만인 게이머들에 비해서 실제 조종사는 아주 간단한 원칙 하나를 준수하기 위해서만도 매우 어려운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옛날에 한동안 팰콘 매니아들 사이에서 실제 F-16 조종사들이 9G를 견딜 수 있다는 몇몇 인터뷰를 토대로 팰콘4.0에서의 블랙아웃 옵션을 끄자는 의견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막연히 그러면 안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만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6G에서 30초도 못 견디고 낙엽처럼 쓰러져나가는데 블랙아웃 옵션을 없애서 시뮬게임에서의 유일한 마지막 재현수단마저 없애자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기절하지 않은 참가자들도 그저 기절하지 않았다 뿐이지, 주변상황체크, 교신 등등 아무 것도 할 여건이 못됐다. 전방 HUD 위치쯤에 있는 모니터를 잘 쳐다볼 수 있었던 사람조차도 거의 없었다. 조종사들이야 우리들보다 적응을 더 잘 하기는 하겠지만, 무한대의 체력으로 G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비행한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일 것이다. 더욱이 블랙아웃때문이 아니라도 흔들리는 기체에서는 이미 모니터 화면에 비해서 시야가 대폭 불량해질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2G 이내로 기동하는 비행착각 장비에 타고 있을 때의 느낌을 말로 설명하자면, 서스펜션이 고장난 트럭 뒷좌석에 거꾸로 매달린 채 비포장 도로를 가면서 게임을 하라고 한다면 아마 비슷할 것이다. 더 높은 G로 기동하면서 기류의 영향을 받는 실제 기체를 가정한다면,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L-1 호흡법은 팰콘 매니아 중에서 안 읽어본 사람 손들어보라면 한 명도 안나올 MCH 11 F-16v5 문서에 자세하게 잘 나와있다. 유명한 실제 교재에 나와있는 단순한 호흡법조차 실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제대로 수행한 게이머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책이름만 알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이머들의 흔해빠진 매너리즘일지도 모르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이론과 그 이론의 실제 적용 사이에 엄존하는 심각한 차이를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겠다. 숨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데 기동과 전술의 적용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시뮬게임에서의 전술에 자신이 있는 나를 포함해서 얘기다.

 

 지나치게 시뮬게이머를 스스로 비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시뮬게임이란 공중전을 이해하는 하나의 간접체험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번 항공생리교육도 공중전을 이해하는 하나의 간접체험기회였다. 그런데, 시뮬게임을 통해서 실제 사실을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써왔다고 나름대로 자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뮬게임을 할 때에 비해서 항공생리훈련에서 얻은 느낌은 너무나도 차이가 많이 났고 그동안 내가 간접체험을 추구한다고 말해오면서 정말 단편적인 일부만 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그동안 나와 다른 모든 게이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였을 뿐이고 일부러 외면하려 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뮬게이머로서 접해왔던 이해의 폭이 실제 공중전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라고 말할 자격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금에 와서는 느낀다. 그래서 시뮬게이머로서 정말 귀한 경험을 한 몇몇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서, 하늘을 사랑하고 비행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다른 분들에게 내가 겪은 시뮬게임과 훈련과의 차이,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차이를 가질 항생훈련과 실제훈련간의 격차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추측이라도 해볼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묘사를 하다보니 게이머를 격하시킬 수밖에 없었다. 단, 그것은 게이머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겪어왔던 체험들이 그만큼 제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자는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또 혹시 시뮬게이머는 나름대로 주어진 도구와 교재로 알아서 열심히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말리지는 않겠다. 그런 분들도 역시 여전히 시뮬게이머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단지 게임만의 기준으로 게임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그 노력이 아무리 열성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게임으로서 이외의 의미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한 태도를 가진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게임의 존재가치란 그 종류가 팰콘4.0이건 스타크래프트건간에 상관없이 그저 게임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눈앞의 적기 한 대를 격추하기 위해서 갖은 꽁수를 연구하는 사람을 진정한 사이버 파일롯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이, 시뮬게임을 게임으로서만 이해하고 하늘과 비행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하드코어 시뮬게이머가 되기에는 무언가가 빠진 채 목적지 없는 항해를 하는 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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