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사업에 대한 기나긴 논쟁들

 아마도 대한민국의 밀리타리 매니아 치고 FX 사업에 대해서 게시판에 자기주장 한번쯤 안올려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통신과 인터넷이 활발해져서 매니아계층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이래로, FX사업은 가장 길고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본인 역시 FX 사업과 관련한 논쟁에 깊이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FX사업에 대한 장문의 글을 천리안 등에 올린 것이 몇 번은 된다.

 언뜻 생각하면 이렇게 수많은 논쟁들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들 사이에서 여지껏 개략적인 여론조차도 확립되지 못한 것은 신기해보인다. 그러나, 한발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할 수밖에 없으며 애당초 논의가 진전될 수 있는 방법의 토론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왕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이니, 아예 이제까지의 모든 논쟁과 근거들을 없었다고 생각하고 원점에서부터 느긋하게 다시 살펴보자.
 우리는 이제 국방부가 새로 발표한 FX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시점에 서있다. 국방부는 친절하게 4개 대상기종을 발표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퇴근하는대로 또는 하교하는 대로 자신의 주장을 정성껏 정리하여 공개함으로써 군사관련 이슈에 대한 밀리타리 매니아들의 전문성과 자신의 지식을 과시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로 이제까지 FX사업에 대해서 무의미하고 지루한 논쟁을 이끌어왔던 게시판 훌리건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FX에 대한 논쟁이 오래 지속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은, 이제까지의 논쟁들이 발전적인 토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지 수많은 밀리타리 매니아들이(매니아라고 말해주기도 부끄럽다) 자신의 주관적 취향을 타인에게 억지로 납득시키려고 반복해서 떼를 써왔던 것에 불과하다. 사실 오랜기간 논쟁을 해왔지만, 3-4년 전에 올라오던 글들이나 지금 올라오는 글들이나 내용은 거의 발전이 없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발전적인 토론 결과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일단 가용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후 그 근거들을 토대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려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밀리타리 매니아들은 이제까지 상당부분 근거 없는 전제를 가지고 논쟁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로, FX사업기종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되는 "종심 타격론"을 보자. 거의 모든 매니아들은 종심 타격력이 공군에서 원하는 FX기의 가장 중요한 요구사항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에 따라 나름대로 논지를 전개해나간다. 기체들의 특성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FX사업에 대한 논쟁중 상당부분이 기체 자체보다도 종심타격에 대한 찬반양론이다. 그러니까 F-15를지지하는 사람은 종심타격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라팔을지지하는 사람은 종심타격력 무용론을 제기하는 식으로 자기 선호기종을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종심 타격력"에 대한 정의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이해되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막연히 종심 타격을 해야되니까 항속거리가 길고 폭탄 탑재력이 많아야되고...이런 식이다. 일부 사람들은 종심타격력=도꾜 왕궁 폭격능력이라는 식으로 주장을 전개하기도 한다.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는게 종심 타격인가? 도쿄 왕궁을 폭격하는 것이 종심 타격인가? 매니아들의 글을 살펴보면 종심 타격이라는 것을 2차대전당시 연합군의 전략폭격과 유사한 것 아니면 둘리틀 특공대의 자살적 보복 폭격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공대지 능력이 요구된다고 해서 다량의 폭장의 융단폭격 능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만약 그러한 것들이 공군의 주된 요구사항이라면 우리는 전투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폭격기를 사야할 것이다. F-15E는 정확하게 말해 공대공 전투도 할 수 있는 침투 폭격기이므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F-15K 이외의 대안은 전혀 없고 모든 논쟁은 이미 끝났어야 한다. 논쟁은 커녕 애당초 다른 몇몇 기종들은 FX사업 후보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종심 타격기를 원했다면 라팔이나 수호이, 타이푼이 아니라 F-111, B-52같은 기종이 후보가 되어야 했을 것이고, F-15C/D형 레이더에 공대지 능력을 조금 보강한 APG-63(v)1를 F-15K에 장착하여 후보로 세운다는 것도 용도상 맞지 않는 것이 된다. 매니아들사이에서 논쟁의 중심인 종심 타격론은 뭔가 잘못되어있다.

 공군이 종심 타격력을 원한다는 말은 너무나 많이 전제되어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공군의 요구사항이라면 당연히 공식적인 공개 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월간항공 2001년 10월호에는 공군이 요구하는 FX기의 작전 요구사항이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여러 항목중에 종심 타격력을 원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구체적인 사양이나 제원이 나열되어있을 뿐, 그것도 요구제원에서 반드시 "종심 타격"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현대 항공기술을 적용한 멀티롤 항공기로서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군 홈페이지의 FX사업 설명을 뒤져봐도, 종심 타격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혹시 고급 장교들이 언론에 기고하면서 종심타격이라는 표현을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고문은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므로 공군의 공식 입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공군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섣불리 공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구체적인 의도가 명시되어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매니아들에게는 애당초 종심 타격이 공군의 요구사항이라고 전제할 근거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군대라는 조직은 어디보다도 단어 정의에 목을 맨다. 일반 정서로는 흔히 비슷한 것으로 치부하기 쉬운 유사 단어도, 군대 용어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군에서 종심 타격이라는 것을 원하는데 군에서 다른 단어로 진의를 얼버무려 발표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제껏 매니아들은 공군이 공식적으로 제기하지도 않은 종심 타격이라는 말을, 그 단어의 정의도 불분명한 채로 FX사업기종의 요구사항이라고 마음대로 단정하고 서로 말싸움을 해왔던 것이다.

 공군이 추구하는 FX기종의 운용개념은 공군 홈페이지에 명확하게 나와있는데, 핵심 개념은 "억제전력"과 "공중 우세 확보"이다.
 이중에서 "억제전력"이라는 말은 홈페이지에 분명하게 설명되어있다. 즉 "전쟁억제는 상대국가가 군사적 침공시 얻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끔 만들어 전쟁발발을 막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굳이 갖다붙이자면 도쿄 왕궁 폭격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적의 수도 폭격능력이나 보복공격 능력이 전쟁억제력의 주된 본질은 아니다. 공군 주력의 전멸을 각오하고 두세 개 전략 표적을 공격할 능력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의 개전의지가 얼마나 줄어들까? 어느정도 영향은 있겠지만, 어차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상황이 된다면 적또한 그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상황일 것이라 본다. 공중 우세를 획득하지 않은 채로 소수 표적에 보복공격을 한다는 것은 아군의 전체 공중전력을 위협에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보복공격으로 얻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하므로, 테러 수준의 보복능력은 적의 공중우세에 의해 억제될 수밖에 없다는게 본인의 생각이다. 물론 전력의 존재자체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지만, 위협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필요시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어야 적에 대한 위협으로서의 존재의의도 있을 것이다. 일부 국가들은 전수방위 전략을 채택하면서도 역시 앞에 설명한 것과 같은 의미의 전쟁억지를 추구한다.
 "공중 우세 확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공권 확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엄밀히 말하면 제공권 장악이란 공중우세 확보의 극단적인 상황을 나타낸다. 공중 우세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FX기의 임무는 좀더 명확해진다. 공군의 ROC를 보면 공대공 전문의 기체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공대지 능력에 특화된 기체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상당한 정도의 공대지 작전능력을 함께 갖춘 전투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멀티롤 능력이 제공권을 장악한 후에 지상 부대를 공격하는 임무로 전환하기 위해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일선 주력기를 지상 부대 공격 임무로 전용하는 것은 공중우세가 상당히 확보된 후라도 힘들 것이다. 공군에서 말하는 공세적 제공작전(OCA)의 개념은 단순히 하늘에서의 공대공 전투로 우세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비행장, 지휘시설 등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적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공중 우세를 획득하기 위해서 공대지 능력, 그것도 정밀 표적 공격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목적에서 종심 타격(deep strike) 능력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는데(이 능력은 부분적으로는 보복 능력도 함께 의미한다), 산업시설을 파괴하고 경제를 붕괴시키며 적국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전통적인 전략폭격 개념보다는 오히려 2차대전 독일 공군의 전술폭격 교리의 초기단계로서의 공중 우세 획득 단계와 유사하고, 둘리틀 특공대의 자살적 보복 공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방공은 KF-16이 맡으면 되니까 공대공 능력이야 어떻든 폭탄을 많이 적재하고 멀리 갈 수 있는 폭격능력이 우선이라는 주장은 FX사업의 본질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방어적 제공전투를 벌여야 할 때 공대공 전투의 주체로서 적의 주력 전투기와 상대할 것도 역시 FX기이지, F-16이 아니다. 더군다나 KF-16이 공중 엄호를 맡고 FX기가 지상군 근접지원을 맡는다는 얘기까지 가면 밀리타리 매니아가 아니라 판타지 매니아라고 부르는게 나을 듯 싶다. FX사업은 종심 타격을 위한 "폭격기"를 도입하는 사업이 아니라, 공중 우세를 획득하기 위한 "다목적 전투기"를 도입하는 사업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를 새삼 강조해야 한다는게 우습다.

 FX의 4개 후보 기종이 확정발표된 것은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매니아들은 4개기종뿐만 아니라 토네이도, F/A-18, JSF등 후보에도 오르지 않거나 아직 개발도 채 안끝난 항공기를 도입하자고 버젓이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심지어는 기종별로 10대씩 사자는 말도 드물지 않았다. 이건 공군의 앞날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자는게 아니라 단순히 지식 과시와 튀어보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후보기종도 아닌 비행기를 사자고 주장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전투기가 문방구에서 파는 프라모델쯤이라도 되는가 말이다.

 그동안 매니아들이 후보기종들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토론과 여론의 주된 흐름은 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에어쇼때 수호이가 날면 수호이기의 인기가 대폭 치솟고, 탤런트가 프랑스에 가서 라팔을 타고 오면 라팔지지가 대폭 늘고, 에어쇼에서 F-15가 시연비행을 하니 이번에는 또 F-15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고...이런 식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지지기종에 대한 이유를 대겠지만, 실제 여론은 지엽적인 홍보소스에 이리저리 휩쓸려다닌 것이다. 매니아들이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면 탤런트의 유람기나 에어쇼의 눈요기쇼(개인적으로 돌고래 쇼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따위를 가지고 이른 바 매니아들의 여론이 줏대없이 이리 저리 쏠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4개기종에 대해서 그동안 객관적인 성능이나 장단점들은 거의 다 알려졌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기종들은 장단점이 다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자기 취향에 맞는대로 선호기종의 장점을 과장하고 반대기종의 단점을 부각시키면 아무리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자기 주관의 강요 이외에 발전적인 토론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러니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논쟁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각자의 관점만을 맹목적으로 되풀이하며 서로 소귀에 경읽기를 해왔던 것이다. 더우기, 앞서 말했듯이 애당초 공군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보편적인 이해가 없이 서로 자기 취향에 성능을 거꾸로 꿰어맞췄으니, 정상적인 이야기가 될리 없다. 누구는 공대지 능력이 제일 좋으니까 종심 타격을 위한 F-15가 최선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공대공 능력이 좋으니까 라팔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토론이 아니다. 공군이 요구하는 능력이 어떤 것인지부터 명확하게 하고 일관된 기준들에 입각해서 각 기체의 장단점과 능력들을 비교분석해봐야지, 무작정 자기가 좋아하는 기체의 장점만을 들어서 그러니까 이 비행기가 더 좋다라고 말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류의 사람들은 밀리타리 매니아라기 보다는 라팔 빠순이 F-15 빠돌이 등등으로 부르는게 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비행기가 더 "좋은가" 하는 식으로 논쟁이 이끌어진 것도 혼란을 부채질한 요인중 하나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전제되지 않은 "좋다" "나쁘다"는 말은 "아름답다", "감미롭다"등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주관적인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주관적인 가치는 누구라도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주장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피자가 맛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삼겹살이 맛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자가 더 좋으냐 삼겹살이 더 좋으냐 결론을 내라고 하면 당연히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여러 이유를 대겠지만, 어떤 것이 더 훌륭한 음식이라는 결론은 누구도 내지 못하며 그럴 자격도 없다.

BF109E형과 스핏파이어 I형을 비교해보자. 선회력은 스핏파이어가, 상승력은 Bf109가 조금씩 앞선다. 이건 대체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사실들이며 논쟁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나 스핏파이어가 좋으냐 Bf109가 좋으냐라는 관점으로 보게 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특성이 다른 두 기체를 놓고 아무 조건 없이 어떤게 좋으냐는 막연한 질문을 하게 되면, 성능의 객관적 분석에는 수많은 가변적 요소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에 결국은 몇몇가지 근거를 바탕으로 개인의 취향을 합리화하는 이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즉 스핏파이어를 선호하는 사람과 Bf109를 선호하는 사람사이에 무의미한 논쟁만이 반복되고 그러다보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스핏 파이어가 더 멋있게 생겨서...등등의 본질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게된다. 애당초 어떤 비행기가 더 좋은 비행기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허무맹랑한 것이다. 최소한 어떤 용도에 쓸 것이라는 객관적인 전제가 뒤따라야 한다. 하다못해 중학교 과학시험문제에서도 전제조건이 붙지 않는가.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가면서 자기 취향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오랜 기간동안 주관적인 취향들을 서로 들먹이다보니 이제는 아예 자신의 취향이 아닌 것을 어떻게든 깎아내림으로써 자기 취향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아무 객관적 근거가 될 수 없는 감정적인 발언들이 FX사업에 대한 논쟁의 핵심으로 부각되어 버렸다. 단순히 미제니까 F-15는 절대 안된다거나, 규장각 도서를 훔쳐간 프랑스니까 라팔이 안된다거나, 이런 식이다. 박씨네 수퍼집 딸이 박경림일지도 모르니까 박씨네 수퍼에서는 과자를 사먹지 말자는 소리나 똑같다.

 또한편에서는, 조종사들이 뭐뭐를 선호하기 때문에 국방부의 선택은 그것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매우 많았다. 택시 회사의 차종은 택시 운전사들의 취향대로 결정하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조종사들 투표로 FX기종을 결정하지 뭐하러 여러 과정을 거치겠는가. 더욱이 조종사들의 취향이라는 것도 주관적인 거라서, 담당자가 아닌 바에야 데이터를 이해하는 관점이 일반인들과 조금 다를 수는 있을지언정 조종사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사업을 바라보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 처지다. 조종사가 뭐를 좋아한다더라 하는 식의 얘기는 객관적인 근거가 아니라 그저 조종사의 막연한 권위를 들먹여서 자기 주장을 합리화시키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발전적이고 객관적인 결론을 얻으려면, 어떤 비행기가 주어진 요구조건에 더 "적합"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제까지 밀리타리 매니아들은 그러한 시도조차 거의 안했다. 기본적인 요구조건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가 없었으니 시도를 했더라도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사업 요구조건과 대상의 적합성 여부는 담당자들이 가장 잘 안다. 매니아들은 이점에 있어서 월권행위까지 저질렀는데, 자기들이 관계자들보다 해당기종에 대해 더 잘안다고 생각하고 틈만 나면 관계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비방을 퍼부어왔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담당자들이 항공기의 성능에 무지해서 계약서와는 틀린 다운그레이드된 기체를 받아올 것이라는 전제하에 논지를 전개하기조차했다. 사업에 대한 평가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담당자들이다. 무기회사 카탈로그 몇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밀리타리 매니아들보다 훨씬 구체적인 정보들을 많이 얻는 것이 사실이다. 대상 기종을 직접 시험비행을 한 것도 현역 고참 조종사들이다. 그결과, 공군은 공식적으로 4개기종 모두에 작전 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 전까지는 매니아들의 논쟁들이 최소한의 의미라도 있었지만, 공군에서 공식적인 판정을 낸 시점에서 어떤 능력이 더 뛰어나니까 그 비행기가 더 좋다 하는 식의 논쟁은 뒷북일 뿐이다. 이제는 설령 국방부나 정치가들이 뇌물을 먹거나 외부의 압력을 받고서 4개 기종 중 하나를 선정한다고 해도 공군의 의사에 반하여 작전 수행에 지장이 초래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른 바 군사전문가라고 자칭하면서 공군이 이미 기종을 정해놓고 쇼를 하고 있다는둥 하는 등의 악성 루머들을 아무 객관적 근거도 없이 공공연하게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곤 했다.
 언론계(특히 방송)에서는 F-15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보잉사가 JSF 사업에 탈락한 것을 확대 해석해서 F-15K의 신뢰성을 깎아내리는 뉘앙스까지 풍긴게 언론이다. FX사업을 보도하는 것은 국방부 출입기자들이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소스를 제공하는 것은 다름아닌 국방부와 공군의 담당장교들이다. FX기종에 대한 분석같은 것은 기자들이 타인의 도움 없이 자료집 한두권 사서 숫자로 나온 제원 몇 개 비교해본다고 해서 기체 성능을 파악하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밀리타리 매니아들은 그런 짓을 잘도 하지만). 기자들은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면 당연히 군 내부에서 나온 정보를 주된 근거로 할 수밖에 없다. 공군이 애당초 F-15로 기종을 미리 정해놓고 사업을 추진했다면, 과연 언론이 F-15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담당자들이 앉아서 보고만 있었겠는가? 군 입장과 상반되는 부정적 보도 하나만 나가도 발칵 뒤집어지는데 말이다.

  최근에는 가격입찰이 무산되면서 사업을 속행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어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거 구입 시기도 적절치 않으니 그냥 있다가 나중에 좋은 비행기 사자고 하는 주장은 지금 있는 펜티엄 II 잘 쓰고 있으니 램만 추가하고 있다가 펜티엄5 나오면 그때 새컴퓨터 사자고 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하자면 죽기 전날 컴퓨터를 사는게 제일 좋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도 이미 사업이 몇년 지연되어 늦은 상태인데 지금 사업비용은 다른데 써 버리고 기다렸다가 언제 개발이 끝날 지도 모르는 다른 비행기를 그때가서 궁리해보자는건 말도 안된다. 다른 비행기 사려고 기다리는 동안 위기가 발생하면 적에게 기다려달라고 할건가?
 사업 연기를 주장하는 사람은 F-16으로도 F-15나 라팔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니 굳이 FX기를 살 이유가 없고 F-15한 대 살 돈으로 F-16 두 대를 사는게 적절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F-16이 F-15와 성능이 비슷하다는 웃기는 억지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려니와, 이런 논리는 F-5 20대가 F-15 한 대를 이기니 고가의 전투기가 불필요하다는 지만원씨의 주장이나 매한가지지만, 지만원씨에게는 TOW찦 20대면 K-1전차 한 대를 이길 수 있는데 전차 무용론은 왜 제기하지 않는가라고 묻고싶다.
 무기는 그냥 무기로 끝나는게 아니다. 개별 무기들이 모여서 무기 체계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무기들이 결합되어 장단점을 보완하면서 전력을 최대화하도록 획득되고 조직된다. F-16 두 대가 F-15 한 대보다 낫다는 논리는 초등학교 산수책에서나 맞는 말이다. 5천원짜리 반바지 두 개 입으면 만원짜리 긴바지 하나 입은거랑 똑같나? 당장 F-16은 FX기의 ROC를 충족시키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F-16이 FX사업의 공백의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사업 연기론이 나오는 근본 이유는 가격 협상이 안되서이지 후보기종들의 성능이 KF-16정도밖에 안돼서 사나마나한 것이기 때문은 아니므로, 사업을 취소하고 그돈으로 KF-16을 늘리자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FX사업이라는게 애당초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말밖에 안된다. 이 시점에서 F-15K는 구형이니 그걸 살 바에는 아예 사지 말자고 하면서 그 돈으로 더 구형인 KF-16을 사자고 하는건 모순이다.

 본인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기종이 있긴 하지만 구태여 밝혀서 무의미한 삽질에 한삽 더 떠넣을 생각은 전혀 없다.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은, 어떤 기종이 들어오더라도 대한민국 공군의 전력증강에 획기적인 보탬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ROC를 모두 충족시키는 한에는 성능차이가 있어봤자 거기서 거기고, 무엇이 들어오더라도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구형이라 갖다 버려야 된다고 하는 F-15K에도 데이터 링크, HMS, IRST등등 달릴건 다 달리고 KF-16급과는 능력이나 기술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4개 기종 모두에 대해서 각각 지지하고 합리화하는 글을 쓰라고 해도 각각의 기체가 도입되어야 하는 타당한 근거를 가진 4개의 글을 별도로 하루 하나씩 쓸 수 있을텐데 어떤 비행기가 더 좋다는 말을 굳이 해서 뭐하겠는가. 어떤 기체를 사면 대한민국의 영공방위가 당장 위험에 처하는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빨간남방을 살까 줄무늬 남방을 살까를 고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사업이 투명하고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주어진 조건 하에서 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기를 애정어린 마음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본인이 우려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논쟁의 감정적 분위기로 봐서는 어떤 기체가 도입되더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체가 선정되지 않으면 뇌물이나 외부의 압력 혹은 도입사업 담당자들이 무식해서 부당한 선택을 했다고 근거없이 난도질하고 먼 미래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공군의 입장이나 그 비행기에 목숨을 맡길 조종사들의 사기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 분위기가 이러니 정치적인 이유로 사업을 연기해서 다음 정권으로 골치아픈 사업을 떠넘기려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게 아니겠는가. 클래식 음악을 욕하고 다니는 사람을 클래식 매니아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기 지식을 과시하고 개인적 취향을 합리화시키느라 군을 비방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 사람은 밀리타리 매니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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