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 동료인 외국인 친구들에게 *

 안녕 외국의 친구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 영어의 용도의 95% 는 비행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고 영어로 된 많은 군사관련 문서들을 읽기 위함이다. 그중에서도 이제까지는 주로 읽는 용도로 영어를 접해왔다. 작문은 힘들지만서도 (그래서 이 글도 영어가 아닌 내나라 말로 쓴다.)

  얼마 전부터는 온라인 비행 시뮬레이션인 Aces High의 메인 아레나를 정식으로 등록하고 플레이하면서, 말하고 듣기가 좀더 필요하게 되었다. 에이스 하이의 메인 아레나는 음성 채팅이 기본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아레나에서 정보 교환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문자 채팅으로만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 나는 외국에 어학 연수를 가거나 원어민이 가르치는 회화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고, 영어로 원어민과 대화해본 것이라고 해야 미8군 기지 부근 유흥가인 이태원에서 한국에 근무하는 미군들과 간단한 친분을 나눈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듣기 능력이 필요하다. 게임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교신을 알아듣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내가 속한 가상 전투비행대대 사람들과 비행을 할 때에도 대부분의 서방측 공군이 그러하듯이 영어로 표준 교신용어를 삼고 있기에, 얼마 안되는 항공 군사 용어 위주이긴 하지만 영어로 듣고 말하기를 조금 해왔었다. 덕분에 나는 기본적인 전투 교신에는 어느정도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내게는 영어로 일상 대화를 하는 것보다 전투 교신이 더 쉽다.) 에이스 하이의 메인 아레나를 들어가서도 전투 교신 위주로나마 음성 교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해왔다. 에이스 하이를 플레이하는 한국인 동료들중에는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음성 교신은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여하튼, 내가 아레나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라 봤자 주로 check ur 6!hi con from SW 같은 몇 가지 정해진 문장을 통한 간단한 의사소통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라디오를 자주 사용하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아레나에 등록을 한지 별로 오래되지 않고 하이테크 게시판에 들르지 않는데도 아는척을 해주는 동료 플레이어들이 몇몇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전투 교신 말고도 이런저런 개인적인 대화를 걸어오기도 하곤 한다. 그러면 안되는 작문과 발음으로 어렵게나마 간단한 대화를 하는 것도 다른데서 영어로 대화할 일이 없는 내가 요즘 에이스 하이를 하면서 즐기는 재미중의 하나이다. 악센트가 독일 사람 같다는 말을 자주 듣긴 하지만 :)

 비행 이외의 잡담을 할 때는 보통 어느 나라 출신이냐는 얘기가 나오고, 그러다 보면 남한과 북한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럽게 나오곤 한다. 여러분들이 종종 물어보다시피, 남한과 북한은 도합 200만명에 가까운 군대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고,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그런 휴전선에서 불과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렇지만 일상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고 외국의 뉴스에 걱정스럽게 나오는 것에 비해 실제로는 극히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어떤 매체들은 국민들이 안보 위협을 너무 무시하고 평화로움을 너무 즐기고 있다고 걱정을 할 정도지.

 다만, 북한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크게 염려하고 있다. 뉴저지에 사는 어떤 친구가 이야기해주길,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북한 출신 여자 유학생이 있는데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미국에서 결혼을 하던지 할 방법을 찾고 있다더군.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 여학생과 같은 동포로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남한 국민들은 개인이나 단체, 정부가 북한에 아주 많은 식량이나 물건을 지원해준다. 심지어 생리대까지.) 이외에는 북한의 정치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남한 국민들이, 특히 개인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차라리 뉴저지에 사는 미국인이었다면 그 불쌍한 북한 유학생(망명을 하고 싶어하는 그 불쌍한 유학생은 아마 북한에서 몇% 이내에 드는 고위층일 것이다.)과 결혼을 해서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겠지만, 북한의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 아래에 있는 남한 국민들에게는 북한을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남한 국민들 전체의 목숨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리는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 비록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 남한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저 개인 차원에서는 그저 언젠가 통일이 되어서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잘 살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막연하게 기원할 뿐이다.

 비행 시뮬레이션 이야기를 하면서 한반도의 군사 정치적 상황을 이야기하자니, 마이크로 프로즈의 명작 팰콘 4.0을 이야기하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한국의 팰커니어들은 농담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조국의 하늘은 내가 지킨다 ? (농담이든 진담이든, 한국판 라이센스 패키지 박스에 써있는 문구이다)

 그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팰콘4.0이 단지 하나의 게임일 뿐이지만, 한국의 팰커니어들은 팰콘 4.0에 대해서 상당히 특별한 관점과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작게는 ROKAF 스킨의 고증 오류를 한국의 팰커니어들이 더 잘 집어낼 수 있다는 것일 수도 있고, 넓게는 팰콘 4.0이 그리고 있는 가상의 전쟁터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배경으로 해서 다른 나라 군대가 내나라 땅에서 싸우는 것을 게임으로 즐기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일 수도 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자네가 미국사람이라면, 영국군이 미국 본토에서 소련군과 싸우면서 미국 땅에 폭격을 하는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면 한국의 팰커니어의 정서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게임 자체가 워낙 명작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배경이라는 점 때문에 팰콘 4.0은 한국에서 특별한 성공을 했다. 일반적인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패키지가 1000카피 나가기도 힘든 한국의 플심 시장에서 팰콘 4.0은 3만 + a의 판매고를 올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팰콘 4.0의 캠페인에서, 해주 기지에 있는 MiG-19 비행대대를 선택하여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무심코 공격 목표를 파괴하고 돌아와서 디브리핑을 보니, 내가 투하한 폭탄으로 서울에 주둔한 예비군 4개 중대를 궤멸시켰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마 대부분의 팰커니어들은 이 결과에 기뻐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실제 세상에서 내가 바로 서울에 주둔하는 예비군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 남자는 2년간 의무적으로 군에 복무하고, 그 후 8년간 예비군에 편입된다.) 결국 나는 게임에서이긴 하지만 내 고향을 파괴하고 나 자신을 폭격해서 죽여버린 것이다. 그 디브리핑 결과에 경악한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북한 공군으로 캠페인을 비행하지 않았다.

 게임에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반드시 즐거운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비단 내가 남한 국민으로서 북한의 전투기를 조종할 때 뿐만이 아니고, ROKAF나 USAF의 전투기를 조종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북한군 1개 전차대대를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치자. 일반적인 경우라면, CBU-58을 뿌리고 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마을에 사는 몇 백명의 사람들이 클러스터탄에 함께 희생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미군이 민간인이 살고 있는 마을에 클러스터탄을 투하해서 문제가 되었던 이라크전의 실제 사례를 기억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그것이 개별 사례였지만, 게임에서는 흔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적어도 나로서는 내가 투하한 폭탄이 떨어진 곳이 설령 논밭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이 내가 사는 곳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나의 친척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투하한 폭탄이 민간인들에게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은 민간인들이 전쟁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곳이 없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고, 내 부모님의 고향은 휴전선 동부전선에서 아주 가까운 농촌 마을이다.) 내가 CCIP의 투하버튼을 1초 차이로 잘못 눌러서 Mk-82가 100미터 빗나갔다면, 그 폭탄은 내가 원했던 북한의 군사기지를 파괴하는 대신 나의 친척 수십 명을 죽였을 수도 있는 거거든. (남한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북한에 50년간 한번도 만나지도 못한 친척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산 가족이 남북한 인구 7000만명 중에서 100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하나의 혈연 공동체이다.)

 때로는 한국의 팰커니어들, 혹은 다른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한국의 게이머들이 게임에 감정이입을 너무 많이 하는 나의 태도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영화나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며 2차대전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 모습과 역사적 전장에서 싸웠던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연상되면서 눈물 흘리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그리고 전쟁 게임을 많이 하는 내 성격이 점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증상을 닮아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게임에 너무 감정적으로 몰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스스로 들기도 한다.

 물론, 게임은 게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전 세계의 게이머들이 나와 같은 정서를 가지고 가상 공간에서 죽어가는 수백명의 민간인을 위해 슬퍼하라고 요구하지는 않겠다. 단지 나는, 지나간 전쟁의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들로 인해 내가 그때 당시의 사건과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전쟁을 소재로 하여 가상에서 벌이는 일들이 실제 세상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하루빨리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대립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되어서 더 이상 한반도가 전쟁 게임의 가장 좋은 소재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고, 외국인 친구들 여러분이 내 나라에 대해서 물어볼 때 더 이상 북한의 정치상황을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산좋고 물좋은 내 나라에 놀러 오는 방법을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시절이 오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아마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문과 같이 냉전 시대의 마지막 역사적 유적이 되어있을 판문점으로 여러분들을 안내하면서 이곳이 바로 여러분들이 CAS 미션에서 비행하던 그곳이라고 즐거운 표정으로 소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금은 나 자신도 가볼 수 없는 장진호를 여러분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싸웠던 미 해병대원들 ? 내 나라를 위해 싸워준 여러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여러분이 미국인이 아니라면, 가평 전투에서 싸운 글로스터 연대나 지평리 전투의 프랑스 대대에 대해서도 괜찮을 것이고. 쨌든 한국전에서 UN의 이름으로 함께 싸운 나라들은 16개 국에 달하니. 설령 꼭 그나라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때가 되면 세계의 모든 전쟁 게이머 전우들이 게임 소재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하기보다 냉전의 마지막 남은 꽃샘 추위가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서 나와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먼저 축하를 건네줄 것으로 믿는다.

 - 전쟁 게임의 가장 흔한 배경, 한국에서. Skid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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