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의 공포 *

많은 사람들이 비행시뮬레이션에 대해서 각종 사실성을 논합니다. 게임의 사실성이라고 하면 무기데이터나 성능의 재현의 사실성을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 조종사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이입도 중요한 사실성의 판단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전투시에 전투원에게 발생하는 공포심 역시 감정 이입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군대에 있을때 겪은 일인데, 7.62밀리탄을 쓰는 M60 실거리 사격장에서 점수 확인하는 병사가 타겟에 너무 가까이 있다가 머리위로 집중탄이 날아다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약 50미터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낮은 포복으로 기어 나왔다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항공기 기총으로 따진다면 프롭기에서도 7.62밀리탄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7.62밀리탄은 단 한발로 사람의 팔다리를 찢어버리고 죽일 수 있습니다. 7.62밀리는 고사하고, 5.56밀리탄을 사용하는 소총사격장에만 가봐도 오발사고가 날까봐 모든 장교와 사병이 매우 조심하지요. 이런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시뮬레이션에서 그 무기들이 가지는 효과를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인가 한번쯤 숙고해보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연산으로 모든 결과를 산출한다는 시뮬레이션의 특성상 무기가 가진 파괴력을 수치화 시킴으로써 무기가 가지는 파괴적인 특성을 숨기는 면이 있습니다.  

 군사 저술가인 존 키건은 전장에서 사상당한 병사의 가장 큰 사상원인이 옆에 있던 병사의 뼈조각 때문이라는 것을 농담반 진담반 말했을 때 그것을 듣고 있던 민간 군사 매니아의 극히 부정적이고 혐오스런 표정을 본 적이 있다고 실토한바 있습니다. 필자 역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사중 옆의 부하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자신의 온 몸에 뒤집어 씌워졌던 하사관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와 비슷한 충격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공중전투를 보자면, 하찮게 취급되는 7.62밀리탄은 한발로도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합니다. 하물며 20밀리탄은 어떠할 것이며 미사일은 또 어떠할까요. 자신에게 겨누어지지도 않은 총구에서 위협을 느끼고 약실 검사로 실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소총이 자신에게 겨누어지는 것도 꺼리는 것이 실제 현실인데 시뮬레이션은 도대체 우리에게 얼마만한 무기의 두려움을 체험하게 할까요.

 시뮬레이션에서 헤드 온 사격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실상의 일면을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적기의 화력이 낮다고 해서, 심지어는 화력이 동등한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헤드온 패스로 진입해서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탄환이라고 해도 어쩌다 한발이 캐노피를 뚫고 들어와서 조종사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헤드 온 대결이 전술적인 면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쉽게 받아들여질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뮬레이션에는 실제 전투의 공포가 배제되어있으며, 이것은 비행시뮬레이션이 실제 공중(혹은 지상 및 해상)전투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중 하나일 것입니다. 비행특성이니 무기 사실성이니 하는 것들은 어찌 보면 단지 부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적기가 뒤에 붙었을 때, 시뮬레이션이라면 단지 기기묘묘한 기동술로써 적기를 순식간에 따돌릴 생각을 하겠지만, 탑건의 초기부분 적기 요격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조종사라면 아마도 상당한 공포를 느낄 것이며 그 결과 정상적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을 항상 실행에 옮긴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포의 원천은 생명의 소중함입니다. 만약 자신의 사이버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조종사는 모든 판단에 있어서 최대한 안전한 방책을 취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즉 적극적인 행동으로 성과는 크지만 생존율은 50퍼센트밖에 안되는 행동과 소극적인 행동으로 기대성과는 작지만 생존율은 80퍼센트 이상인 행동을 놓고 선택하라면 당연히 생존율이 더 높은 행동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기준은 전투의 거의 모든 시간에 작용함으로써, 수행하는 전체 공중전의 상황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뒤바꿔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생명의 유지는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본능중 하나인데, 전투중이라면 그러한 본능이 최대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파일롯 역시 그러한 본능을 똑같이 느끼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았을 때는 실제 전쟁의 공중전 기록에서 4대2의 상황에서 2기의 팀이 도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공중에서 수적인 우세의 결정적인 유리성, 그리고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야 그러한 행동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극히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포의 체험이라는 문제는 다소의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전투조종사라면, 두려움 따위의 감정을 억제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두려움이 판단의 최우선 기준이 될 때는, 그 조종사는 결코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이버 파일롯 역시 두려움을 가급적 억제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객관적인 최선의 판단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의 존재는 사이버 파일롯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생명의 경시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임무를 수행하려는 태도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생명의 경시는 경거망동과 시뮬레이션의 전자오락화를 초래하고,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한 노력은 실제 전투에서의 판단에 근접한 최선의 행동을 시도하는 원천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홈지기의 경험에 입각해 말씀드리자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대략 두 가지입니다.
 첫째 캠페인을 꾸려나갈때. 이때 물론 리플레이로 죽었던 기록을 지우거나 죽은 조종사를 되살리지 말아야 하며, 그 경우 캠페인이 장기화되고 조종사가 높은 계급과 경력으로 커리어에 무게가 더해질수록 죽으면 안된다는 책임감이 생기고 그 결과 전투중 전사에 대한 두려움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적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했을 때 특히 극대화됩니다. 너무 자주 캠페인이나 혹은 전투출격을 해서는 안되며, 하나 하나의 쏘티에 많은 정성과 희소성이 부여될 때 보다 생동감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 인간대 인간의 대결일 경우. 컴퓨터는 인간의 잘못을 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비교적 뛰어난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데 비하여, 인간대 인간의 대결이라면 한번의 아주 작은 행동 실수 하나라도 곧바로 죽음과 연결될 수가 있습니다. 이때도 지나치게 많이 전투를 실시하여 각각의 출격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면 역시 두려움은 그만큼 감소합니다. 특히 공식 대회 등등으로 한 번의 전투가 결정적인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에는 전투의 긴장감은 가상적인 체험이 아니라 실제로 온몸을 지배하게 되곤 하지요. 실제로 어떤 대회 결선에 있어서는 참가자들이 긴장한 나머지 전투 이후 한동안이나 손이 떨려서 음료수 컵을 제대로 들고 있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요한 전투들을 수 시간씩이나 수행했을 경우에는 정신적인 피로는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명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데도 이 정도인데 필자의 이러한 경험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아마 실전에서 실탄이 날아다니고 한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라면 그 공포와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본인은 탑건에 등장한 전투공포증에 빠진 조종사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겁쟁이가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라면 누구라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었겠지요.

 지금까지 말한 전투시의 공포나 긴장 등의 감정 체험은 시뮬레이션을 보다 생동감 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라는 면에서 말씀드렸지만, 어쩌면 단지 무기를 발사하고 공중기동을 흉내내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 조종사의 감정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시뮬레이션이 우리에게 주는 또다른 깊이있는 매력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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