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소령 김도현님을 추모하며 *

 

 홈지기가 블랙이글팀과 첫 인연을 갖게된 것은 PC 통신 시절이었다.
 아직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온라인이라고 하면 파란 화면에서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고작이며 PC통신이라는 것은 일부 집단의 한가한 취미로만 여겨지던 95년 당시, 정부 기구, 그것도 군에서 PC통신에 홍보 포럼을 개설한 것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참신하게 느껴졌었다. 이 포럼은 그때 당시 블랙이글팀을 담당하고 있던 제8 전투비행단의 정훈실장님을 비롯한 뜻있는 공군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엄격한 보안 등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알차게 운영되고 있었다. 우연치 않게 들렀던 그곳에서 홈지기는 "조종사와 함께 하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메뉴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곳이 공군에 있는 여러 좋은 분들과 처음 인연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기회를 통해 블랙이글팀 대원분들과도 영광스런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정식 블랙이글 팬클럽이나 공식적인 부대 초청 행사는 없었지만 하늘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마음으로 뭉친 공군 분들과 항공 매니아들이 비공식적으로 모기지를 방문하여 친목을 다지는 일이 자주 있었고, 그때 공군 분들은 우리 항공 매니아들에게 많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98년의 어느날, 홈지기와 동료 항공 매니아들은 뜻하지 않은 비보를 접하였다. 블랙 이글 팀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돌아가신 분은 남달리 항공 매니아들을 많이 아껴주시고 홈지기에게 선물로 조종장갑을 건네주신 적도 있는, 당시 블랙이글 비행팀장이셨던 故 조원훈 중령님이었다. 우리 몇몇은 비보를 접한 즉시 비행단으로 향했다. 서너 명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가 거의 첫 조문객이었고, 대전에서 하관식을 마칠 때까지 3일간을 함께 했었다. 최근에는 모기지를 잘 찾지 않는 와중에 팀원분들이 거의 교체되었기에 무작정 방문하기가 낯설어 져서 조문을 가기 겸연쩍은 입장이 되었지만, 98년 사고 당시 홈지기와 함께 조문을 했었던 현 블랙이글 공식 팬클럽 회장님은 이번에도 사고 소식 직후에 블랙이글팀의 모기지로 떠났고, 또 몇몇 팬클럽 회원분들도 블랙이글 팀과 어려운 시간을 함께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때의 그 자리에 그 때와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아프다.

 98년의 사고는 방송 촬영 지원 중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이번에는 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공개 행사중에 일어난 사고라서, 팀 차원에서나 공군 차원에서 충격이 훨씬 클 것 같다. 공군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는 낡은 비행기로 위험한 에어쇼를 하지 말라는 항의성 글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블랙이글팀 창설 당시부터도 우리 항공 매니아들과 공군 측의 팬클럽 운영진 분들은 군을 홍보하는 곡예비행팀이 낡은 비행기를 사용해서 홍보 효과가 제대로 살아나겠느냐는 것과, 외국의 경우도 일선 전투기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과연 A-37이 여러 면에서 곡예 비행용으로 적합한 기종인가 하는 등의 논의를 꾸준히 벌여왔었다. 사실 외국에서도 훈련기급, 심지어 프로펠러 기종으로 곡예 비행팀을 꾸리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상당수 국가의 곡예비행팀은 자국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고 훈련기라고 할지라도 노후기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사고가 났으니 이러한 문제가 새삼 부각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공군 곡예 비행팀인 선더버즈는 53년 창설 이후 줄곧 일선 전술기급을 주기종으로 사용하다가, F-4 팬텀이 여러 이유로 곡예 팀 운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어 1974년에 처음으로 훈련기인 T-38로 기종 전환을 했었다. 그러나 1982년에 선더버드팀은 훈련 중 4기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루프 기동을 하던 도중 리더기의 기체 결함으로 인해 4기 편대 전체가 지상에 충돌하여 전원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를 겪었다. 이 사건은 지금은 죽음을 불사하는 팀웍의 전설적인 사례로 남아 있지만, 당시 선더버즈 팀은 국민의 세금으로 비싼 돈을 들여서 위험한 곡예 비행팀을 운영할 이유가 있느냐며 곡예팀 폐지의 거센 여론에 직면해야 했었다. 그러나 미공군은 곡예비행팀을 폐지하는 대신 다시금 최일선기인 F-16으로 기종을 업그레이드하여 새출발을 함으로써 이에 맞섰고, 82년에 F-16으로 기종전환(당시는 A형, 현재는 C형)을 한 후로는 다시는 큰 사고를 겪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의 수호이나 미그기들이 에어쇼에서 사고를 자주 내고 대형 참사로 이어진 적도 있던 것을 생각한다면, 최신 기체를 이용하면 사고가 없어진다고 단선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곡예 비행이 그만큼 위험한 임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아가 홈지기는 곡예 비행팀의 기종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사고 통계 차원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나아가 곡예 비행팀을 대하는 태도와 의지의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군의 제로 전투기는 2차대전 초기 태평양 전선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기 축에 속했다. 그러나 연합군에서 계속 신형 기체가 개발되어 성능이 향상되고 있음에도 일본군은 조종사들에게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기체를 맡기면서 이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라고 요구하였다. 그 결과 제로 전투기는 더 이상 전투원의 목숨을 보호해주고 승리를 가져다주는 정상적인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가미가제 특공대원을 실어나르는 유인 폭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살 공격에 나선 일본군 조종사들의 군인 정신은 높이 추앙될 만 하지만, 부하들에게 그것을 요구한 지휘관들은 극도로 무책임한 죄인들이었다. 2006년도의 대한민국에서도 조종사의 기량이 뛰어나고 정비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오래된 전투기를 남들보다 오래 운용할 수 있다라는 말은 결코 자랑스러운 표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뛰어난 인력들에게 노후 장비를 쥐어줄 수밖에 없음에 죄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해야만 한다. 홈지기의 정서로는, 노후 기체로 곡예 비행을 하라고 하는 것은 예비군용 칼빈 소총을 들고 이라크전에 나가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선 전투기들조차도 낡을대로 낡은 것들을 울며 겨자먹기로 쓰고 있는 마당에 곡예비행팀의 기체를 챙길 여유가 있을까라는 문제가 제기될 법도 하다. 특히나 전투 병과를 우선시하는 문화 속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군에서 병과나 조직의 우선순위를 나눈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군대라는 것은 나라를 지키고 전시에 적과 싸워 이긴다는 단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조직이고, 군의 모든 예하 조직은 그 단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요소들이다. 보병이나 기갑부대가 적과 싸우는 부대이므로 보급부대나 취사반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가? 보급부대가 없으면 보병은 총을 못쏘고 기갑부대는 움직이지를 못한다. 보병과 기갑이 적과 싸울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보급부대가 필요한 것이므로, 어느 병과가 더 중요한지를 따지는 것은 멍청한 얘기에 불과하다. 휴전선 상공에서 초계 비행을 하는 KF-16 조종사도, 동사무소에서 예비군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상근 예비역 병사도 모두 대한민국 국군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런 마당에 민간인들 앞에서 곡예비행을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비행대가 일선 전투 초계를 하는 전투대대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곡예비행팀의 곡예 비행은 단순히 심심해서 자기들 임의대로 나가서 재미로 서커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학생들이 공군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홍보를 하라고 공군에서 "제 239 특수비행대"에게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탑건이라는 단 한편의 영화로 인하여 당시 미해군에 지원한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홍보 임무라는 것이 결코 군에서 그저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부수적인 과외 업무라고 치부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전투 조종사는 징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집을 하는 것이므로, 홍보의 중요성은 미군이나 우리나라 공군이나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겠다. 게다가, 곡예 비행 임무가 일선의 전투 초계 임무보다 더 한가한 것도 아니다. 전투기가 적기와 급기동을 하면서 교전을 할 때 목숨을 건다면, 곡예 비행팀은 곡예비행을 할 때마다 목숨을 건다. 즉, 곡예 비행팀이 비행을 하는 것은 일선 전투기가 실제로 적과 만나서 싸우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최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위험성이라는 것에 의문이 든다면, 다음 통계를 생각해보자. 언론에서 사고가 잦다는 평을 듣는 우리나라의 F-16 계열 기체들은 1986년부터 180대가 도입되어, 그 중 7대를 사고로 손실하였다. 반면, 8대 편성의 블랙이글 팀에서는 94년부터 지금까지 2대를 잃었고 모두 사망 사고였다.

사고 원인이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현재 블랙이글 팀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체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산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본다. 전투 대대의 A-37도 이미 교체 대상인 만큼 블랙이글 팀 기체도 어차피 조만간 교체될 것이었겠지만, 홈지기가 아는 선에서는 아직은 블랙이글 팀 기종 교체용 예산이 정식으로 계획된 적이 없었다. T/A-50이 무리라면 KT-1이라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KT-1도 국산 기체라는 명분이 있고, 그와 동급 기종도 외국에서 곡예비행팀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무책임으로 인하여 줄이거나 피할 수도 있는 위험을 계속 감수해야 한다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중 순직한 고인들의 희생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가 군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라고 요구한 이상 그들(물론 이는 비단 공군 특수비행팀이라는 대상으로만 한정되는 말은 아니다.)이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최선의 지원을 해주는것에 무신경하거나 태만하지 않았는지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정예 군장병들에게 가미가제 특공대원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임무 중 순직한 故 소령 김도현님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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