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창기병의 대전차 돌격 사건 *

 2차 세계대전은 많은 국가의 군대와 병사들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6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때문에 그만큼 극적인 에피소드들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폴란드 창기병 연대가 독일 전차에 창과 기병도를 뽑아들고 돌격을 했다가 궤멸당한 사건이 대전의 가장 초기에 일어났으면서 대전중 가장 극적인 사건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최근 어떤 지식 검색 사이트에서 탑에 오른 글중에서 독일의 마분지 전차 에피소드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홈지기는 얼마전에 폴란드 기병대가 실제로 전차를 향해 무모한 돌격을 한 적은 없다는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독일 공보당국에 의해 날조된 선전자료가 그대로 정설로 전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사건에 대한 여러 논쟁들을 조금 찾을 수 있었다.  "고공 출격" 홈페이지에도 이 허구론이 간단히 소개되어있다. 이 글에서는 기존에 알려져있던 폴란드 창기병대의 독일 전차 공격 신화와 그에 대응하는 허구론의 내용들을 살펴보고,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어디쯤에 있는가 하는 것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이 사건은 완전한 허위 사실인가? 과장되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 비슷한 사례라도 있었는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면,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가?

1. 창기병대의 돌격
 폴란드 창기병이 독일 전차에 대해 창과 기병도로 돌격 공격(charge)을 감행한 사건에 대해서, 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을 만한 정도의 수준에서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자료로 타임라이브 2차세계대전사를 꼽을 수 있다. 한국일보 타임라이프의 2차 세계대전사 번역판에 소개된 "창기병의 돌격"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구데리안이 짜안(Zahn)에 있는 자기 사령부에 돌아와 보니 부하장교와 군속들은 쩔쩔매며 개인호를 파고 대공기관총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창을 든 폴란드 기병부대가 독일군 전방을 돌파하여 자기들을 돼지처럼 찔러 죽이러 온다는 유언비어에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도 장군은 부하들을 호통쳐서 정상 업무로 돌아가게 했다.

 폴란드 기병부대는 그로부터 2-3일 지난 뒤 출현했으나 그것은 구데리안 사령부 앞에서가 아니었다. 구데리안은 신속한 진격을 계속, 그 군단은 폴란드 회랑을 가로질러 동프러시아로 향해 나아가 폴란드 병력의 상당부분을 북쪽으로 떼어 밀어내고 말았다. 이 폴란드 부대중에서 회랑을 돌파하여 남동부에 있는 폴란드 주력군에 합류하려는 선두주자가 된 것은 최정예인 포모르스케 기병 여단이었다. 독일군쪽이 설마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폴란드 기병들은 준마를 걸쳐타고 북쪽으로부터 습격해왔다. 흰 장갑을 낀 장교가 신호를 내리자 나팔이 울려퍼지며 창기(槍旗)가 나부끼고 기병도(騎兵刀)가 햇빛에 번쩍였다. 옛날의 역사 이야기책에서 오려낸 것 같은 기병여단은 지축을 뒤흔드는 발굽 소리를 일으키며 창을 꼬나잡고 평야를 질주하여 구데리안 전차대의 포화 한복판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리고 불과 수 분 후에는 기병대는 초연(硝燃) 속에서 손발이 산산조각 나고 창자가 비어져나온 사람과 말의 처참한 시체더미로 화했다. 독일군의 기록에 의하면 이 폴란드 기병 패잔병은 독일 포로 수용소로 터벅터벅 걸어갈 때에 때마침 길가에 멈춰 서 있는 독일군 전차의 겉을 미심쩍은 듯이 쾅쾅 두드렸다고 한다. 그들은 독일 전차는 마분지로 만든 것이라고 듣고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은 나머지 중세적인 용감무쌍한 기병돌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타임라이프 세계대전사는 2차대전 자료중에서 베스트셀러급의 자료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타임라이프는 학술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 아니라 사진 보도 위주로 이루어진 내용의 잡지를 발행하는 언론사이고, 타임라이프의 2차세계대전사도 역시 많은 전문가들이 감수를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진자료 모음집의 성격이 짙다. 때문에 학술적인 관점보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흥미 위주의 관점으로 쓰여있으며, 학술적으로는 독-소전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거나 하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소개된 부분도 언론사 기사답게 매우 장엄한 문체로 쓰여져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도리어 그로인해 여기에 소개된 내용의 사실여부가 의심스러워지는 면도 있다. 장면묘사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설명을 너무나 단순화시킨 나머지 교전 부대와 장소, 일자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 내용만 보아서는 구체적인 사실의 소개인지 아니면 단순한 2차대전 당시에 유명했던 루머를 검증 없이 삽입한 것인지가 막연하다. 폴란드 기병대의 공격을 소개하는 다른 많은 홈페이지들에서는 개전후 3-4일만에 전멸한 포모르스카 기병 여단이 폴란드 전역 막바지에 기병 돌격을 했다는 둥, 기병들이 갑옷을 입고 있었다는 둥 척 보기에도 홈페이지 주인이 일반 상식을 바탕으로 마음대로 지어냈다는 것이 드러나는 신빙성 없는 얘기들이 상당수라 도리어 실체적 사실에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2. 허구론
 폴란드 창기병 공격의 허구론의 요지는, 간단히 말하면 폴란드 창기병이 독일 전차를 향해 타임라이프에 묘사된 것과 같은 정면 장창 돌격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허구론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로 의견이 나뉜다.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보병부대를 향해 돌격을 했으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독일 전차의 반격을 받아 궤멸당했다는 주장, 이탈리아 종군기자가 우연히 군마들의 시체와 독일 전차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자의적으로 완전히 지어낸 허위보도라는 주장, 또는 독일 전차병들이 하차해있는 사이에 기병대가 기습 돌격을 시도했으나 전차병들이 전차에 탑승하여 반격을 했기 때문에 돌격이 실패한 사건이었다는 등의 여러 주장이 있다. 이 각각의 주장들만 보아서는 어느 주장이 신빙성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가 힘들지만, 그중에서도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보병의 행군대열에 공격을 가하였으나 전차의 반격을 받고 궤멸당했으며, 이탈리아 종군기자가 그 전장을 보고 기사를 전송한 것을 독일 당국이 과장선전에 이용했다는 내용이 허구론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상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내용을 가장 자세하게 설명된 버전을 기초로 소개해본다.  

"아마도 9월의 폴란드 전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무모한 폴란드군 창기병(lancers)들이 강철로 된 전차에 돌격(charge)을 한 사례일 것이다. 그 전설은 개전 첫날 포메라니아(Pomeranian) 전선의 이탈리아 특파원의 펜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독일 사진사들과 동행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이야기들로 내용이 점점 더 윤색되었다. 원래 이 이야기의 근원은 9월 1일 저녁에 Krojanty에 있는 마을에서 벌어진 접전이었다. 포메라니아 회랑은 몇 개의 보병 사단과 포메라니아 기병 여단(Pomorska 기병 여단이라고 표기하기도 함; 주)이 방어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방어하기가 힘들었지만, 체코의 슈테텐란트처럼 무혈 점령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대가 배치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부대들은 즉시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Mastalerz 대령이 지휘하는 제 18 창기병 연대(18th Lancers. 자료에 따라서 제 18 Ulan Regiment라고 표기하기도 함; 주)와 몇 개의 보병 연대가 이 철수를 엄호하였다. 9월 1일 아침에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uderian)의 제 2 차량화 보병사단과 제 20 차량화 보병사단이 Tuchola 삼림의 폴란드군 전방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기병과 보병들은 이들을 이른 오후까지 막아냈으나, 후퇴를 해야 했다. 오후 늦게 숲을 지나는 주 철도와 도로 교차로가 위협을 받게 되었고, Mastalerz 대령은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독일군의 전진을 격퇴하라고 명령했다. Mastalerz 대령은 자신의 기병 연대, 약간의 보병, 그리고 여단의 수색용 경전차(tankettes)를 지휘하고 있었다. TK 경전차들은 낡고 구식이었기 때문에 연대의 일부와 함께 현 위치에 남았다. 그리고 두 개의 창기병 대대(squadron)가 말을 타고 독일군의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측면으로 기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초저녁쯤에 개활지에 노출되어 있는 독일군의 보병대대를 발견하였다. 기병 대대들은 그들로부터 불과 수백 야드 거리에 있었으며, 기병검(sabre) 돌격이 가능해보였다. 기병대는 숲을 박차고 나와서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독일군을 쓸어버렸다. 부대가 재편성을 하는 동안, 20mm 기관포와 기관총을 탑재한 독일 장갑차들이 나타나서 사격을 시작했다. 기병대는 완전히 노출되어있었으며, 근처의 구릉 뒤로 숨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였다. Mastalerz와 주변의 참모들이 이때 전사했으며, 피해는 심각했다. 다음날 이탈리아의 종군 특파원들이 이 반격 작전의 잔인한 흔적들을 발견하였고, 독일군들은 기병대가 전차를 향해 돌격한 결과라고 이 특파원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전설이 시작되었다....중략...

... 독일 선전당국은 이 사건을 가지고 "멍청한 폴란드 기병" 신화를 만들어냈다(몇몇 병사들은 폴란드군들이 전차에 대고 기병도와 장창을 휘둘렀다고 기억에 새기기도 했는데, 폴란드군들이 전차가 마분지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후략"

(http://web.archive.org/web/20011006021230/mops.uci.agh.edu.pl/~rzepinsk/1939/html/cav.htm에서 발췌)

 
Tankette                                                                  1호 전차

이 텍스트가 이른바 Krojanty 전투에 대한 가장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버전마다 조금씩의 세부내용의 차이는 있다. 이를테면 기병대가 독일 장갑차의 반대편으로 도망을 치려다가 궤멸당한 것이 아니라, 지휘관인 Mastalerz 대령이 그 상황에서 도망칠 경우 독일군 포화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멸당할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독일 장갑차쪽으로 역으로 돌격해서 장갑차가 사격을 못하게끔 한 다음 그 반대편의 숲으로 퇴각하여 부대를 전멸에서 구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때 기병대의 피해가 심각했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다른 자료들에서는 기병대의 희생이 20여명이었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연대장과 참모들이 전사한 것은 틀림 없는 것 같다) 또한, 기병대를 급습한 것이 20mm 기관포를 탑재한 장갑차라는 얘기도 있고, 1호전차라는 얘기도 있다. 하여튼 주된 골격은 독일 보병에 대한 폴란드 기병대의 돌격, 독일 장갑차량의 반격, 그리고 이탈리아 종군기자의 과장 왜곡 보도의 흐름으로 대개 비슷하다.
 특히 이 전투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 교전 부대와 지휘관 이름까지 명시되어 있어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전투를 사실대로 묘사한 텍스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료에 따라서 이 사건이 벌어진 지명이 Krojanty라고  하기도 하고 Chojnice 또는 Konitz라고도 되어있지만, 확인해본 결과 Chojnice(폴란드어)와 Konitz(독일어)는 같은 지명에 대한 다른 표기이고 Krojanity부근의 조금 더 큰 도시 이름이라 사실상 같은 지역을 의미하고, 발생 시간과 교전 부대도 대개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사건이 조금씩 와전되어 여러 버전으로 퍼졌다고 생각된다. (이 전투의 내용도 일반 상식 수준으로 상당히 부정확하게 와전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실체적 사실에의 접근에 역시 방해가 되고 있다.)

9월 1일의 전투가 벌어진 Chojnice

 이 전투가 신화의 근거라는 주장에서는 대부분 폴란드 기병대가 전차에 칼과 창으로 돌격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존재는 아니며, 2차대전 당시의 폴란드 기병대는 더 이상 창과 칼로 전투를 하는 부대가 아니라 야포와 대전차포, 대전차 소총 등의 지원 화력을 장비하고 병사 개인들도 소총으로 무장한 부대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작전 기동에는 말의 기동성을 이용했지만 전투시에는 말에서 내려서 소총과 대포를 가지고 보병의 전술대로 싸웠다는 것이다.

 3. 신화를 넘어서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바보 창기병의 돌격" 사건이 단지 독일 공보당국에 의해 날조된 허위사실이라면, 과연 그렇게 오랜동안 전사에서 정설로 굳어져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바보 창기병의 돌격"이 아니라 "바보 역사학자들의 옹고집" 사건이라고 해야될 것이 아닐까?

 이 사건은 하인츠 구데리안이 지휘하는 19군단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위 텍스트에도 나와있듯이, 구데리안은 제 2 및 제 20 차량화 보병 사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최우익(남쪽)에 있는 제3전차사단을 더해서 19군단을 이루고 있었다. 전사에 따르면 구데리안의 19군단이 위 텍스트에 포메라니아 기병여단이라고 호칭된 포모르스카(Pomorska) 기병여단과 대치한 것은 사실이었고, 이들이 오전중에 독일군에 많은 피해를 입힌 것도 사실이었다. 따라서, 위 텍스트는 내용상 교차검증이 되므로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 어느정도 입증된다.
 구데리안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격 첫날의 혼란된 상황을 서술하면서, 폴란드 기병대에 의해 전 군단이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 내용들중 일부는 타임라이프의 2차 세계대전사에도 인용된 것으로, 회고록 원문의 관련 부분들을 인용해보면 이렇다.

" ...나는 잔(Zahn)에 있는 내 군단 사령부로 돌아갔으며, 황혼 무렵(폴란드 기병의 반격 직후 시점이라고 생각됨; 주)에야 그곳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긴 도로에는 인적이 없었으며, 한 발의 총성도 들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잔 교외에서 내 자신의 참모부 요원들로부터 정지를 당했을 때 대단히 놀래 버렸으며, 그들이 머리에 철모를 쓰고서 1문의 대전차포(타임라이프에서는 대공포라고 하는데, 어느 번역본에서 실수를 한 듯 함; 주)를 설치하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설치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들은 폴란드군 기병이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진격중에 있으며 언제라도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킨 후에 사령부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서 길을 재촉해 나갔다....중략...

...밤 동안에 나는 전투 초일의 신경과민 증상을 여러번 느끼게 되었다. 자정이 지난 직후에 제2 차량화 보병사단은 그들이 폴란드군 기병에 의해서 철수를 강요받고 있다고 나에게 알려왔던 것이다. 나는 잠시동안 말문이 막혀 버렸으며,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사단장에게 포메라니아 척탄병이 적의 기병에게 파괴되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으며, 그제서야 그의 진지를 확보할 수가 있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후략"

(구데리안, Panzer Leader, 한글본 128-129P)

 Krojanty 전투에서 교전한 것은 제 20 보병사단의 예하부대였으므로, 제 2 보병사단이 철수를 건의한 것이나 군단 사령부 요원들이 허겁지겁 했던 것은 기병 돌격에 의한 물리적 피해때문이라기보다는 꾸준한 사격전의 결과 또는 Krojanty 전투에서의 폴란드 기병대의 장창 돌격의 소문이 퍼져나가서 군단 전체가 상당한 정신적인 공황에 빠졌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다가 한가지 의문을 발견했다. 타임라이프에 나오는 폴란드 기병의 돌격은 전투개시 후 2-3일이 지나서 있었다고 되어있는데, 2절에서 소개한 Krojanty 전투는 9월 1일, 즉 개전 당일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Krojanty 전투 개요는 신빙성있다고 생각되므로, 그렇다면 타임라이프에서 날짜에 착오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전투가 있던 것은 아닐까?
 구데리안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폴란드 전선에서 자신의 19군단의 작전을 지루하리만치 꼼꼼하게 서술해놓았다. 그런데, 구데리안의 회고록에 따르면 9월 3일에 또다른 기병 돌격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투를 구데리안은 이렇게 서술했다.

" 9월 3일에는 그라프.부록크도르프(Graf Brockdorff) 장군 휘하의 제 23 보병사단(군 예비; 주)이 비스툴라 강으로 밀고 나간 제3 전차 사단과 제 20 차량화 보병 사단 사이에 투입이 되었으며, 아군은 이 기동에 의해서 많은 위기의 순간과 약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에 쉬베쯔 북쪽 및 그라우덴즈 서쪽의 수목이 무성한 야지에 있는 아군 전면의 적을 완전히 포위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아군 전차의 특성을 알지 못했던 폴란드군의 포모르스카 기병 여단은 칼과 창으로 전차에 돌격해왔으며, 막대한 손실을 당해 버렸다....후략"

 요는, 9월 3일에 폴란드 기병여단이 독일 전차에 창과 칼로 돌격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타임라이프에 언급된 사건과 시간(9월 3일)과 소속부대(포모르스카 기병여단), 기타 전반적인 사건 정황이 일치한다. 타임라이프의 내용이 최소한 부분적으로 구데리안의 회고록을 참고한 것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구데리안의 회고록을 근거로 장엄한 묘사를 지어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소스를 함께 참고하여 쓰여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만약 타임라이프의 내용이 단순히 구데리안의 회고를 근거로 지어낸 얘기라면 교차검증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투에 대해서 추가 자료가 또 있다. 앞에 이야기했다시피, 구데리안 예하에는 최우익에 제 3 전차사단이 있었는데, 구데리안이 서술한 9월 3일 전투 내용은 폴란드 기병여단이 자신들의 후방을 차단한 제 3전차사단을 향해 돌격을 해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서, 인터넷의 관련 포럼에서 독일군 제 3전차사단 예하부대의 공식 보고서를 소개한 것이 있어서 그 내용을 인용해본다.

"제 3 기갑 수색 대대의 무선 교신: ...폴란드 기병이 우리 대대에게 반격을 하고 있다. 대대중 일부는 거의 탄약이 떨어졌다.

제3 전차사단 공식 전사:
 북쪽의 Tucheler Heide에서 폴란드 기병 여단이 사단의 좌익으로 공격을 해왔다. 대대들은 기병도를 가지고 공격을 하였다. 마치 1차대전때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폴란드 병사들은 독일 전차가 강철로 만들어져있으며 나무나 판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믿고싶어하지 않았다. 기관총은 공격해오는 기병대원들에게 지독한 피해를 입혔다..."

(http://forum.axishistory.com/viewtopic.php?t=48194)

여기에는 날짜는 명시되어있지 않지만, 전선 후방 약 30마일 지역인 Tucheler Heide에서 9월 3일에 폴란드군이 포위되었고 제 3전차사단이 포위망의 우측을 맡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구데리안이 언급한 3일의 폴란드 기병의 공격과 정황이 일치한다.

 구데리안의 회고록이나 야전부대의 공식 보고서는 독일 공보당국의 왜곡선전의 영향을 받을 이유가 없는 자료들이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기초로 9월 3일에 폴란드 기병대가 독일 기갑부대에 대해서 창과 칼을 가지고 무모한 돌격을 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단, 정황상 이 돌격은 아무 이유없이 만용을 부렸다기보다는 포위된 부대의 혈로를 뚫기 위해서 기병대가 어쩔 수 없이 앞장서게 된, 전술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폴란드 기병대의 대전차 돌격 허구론에서는 폴란드 기병이 그때 당시에는 화약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과 칼로 돌격을 했다는 것은 사실일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례뿐만 아니라 폴란드 전역 기간중에 폴란드 기병들이 주로 노출된 독일 보병부대에 대해서 창과 칼로 돌격을 한 사례는 여러번 있었다. 앞서 2 절에서 언급한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만 보아도 폴란드 기병대의 기병도 돌격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9월 3일의 전투를 비롯해서 그 홈페이지에 나온 목록 이외의 기병 돌격들이 있었다는 자료들도 있다. 그리고 기병대는 총이나 화포와 함께 창과 칼을 엄연히 전투장비로 소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2차대전 당시에도 폴란드 기병대의 칼과 창을 이용한 돌격 전법은 도태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건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시도되었던 보편적인 전법으로 여전히 남아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 몇몇은 매우 성공적이기까지 했다. (9월 1일 전투 현장을 목격한 이탈리아 특파원들은 다른 지역에서의 폴란드군 기병 돌격에 대한 기록도 남긴 바 있다. 따라서, 9월 1일 전투 지점에서 동쪽으로 3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불과 이틀 후에 발생한 포모르스카 기병 여단의 포위망 돌파 전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기병 돌격 허구론에서는 폴란드 기병들이 독일 전차가 강철로 만들어져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하지만, 위 홈페이지에 인용된 참전 폴란드 기병들의 증언중에 기병대원들이 지휘관으로부터 독일 전차가 마분지로 만들어진 가짜라고 교육받았다는 내용이 있고, 독일군측 기록에도 폴란드 기병들이 전차의 특성을 몰랐다고 하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마분지 오인론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4. 결론
 기병대의 전차에 대한 공격이란 매우 흥미있는 에피소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가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주장도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홈지기의 조사 결과로는 폴란드 기병대는 기병도와 장창을 이용한 돌격 전법을 여러차례 사용했으며, 그중 몇몇 경우에는 기갑 차량과 만나거나 혹은 기갑부대를 목표로 해서 돌격전법을 시도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또한 폴란드 기병들이 독일 전차를 마분지로 만든 가짜라고 오인했다는 것도 신빙성 있는 얘기였다. 최소한 9월 3일에 포모르스카 기병 여단이 제 3 전차사단 예하의 기갑부대에 대하여 기병도 돌격을 감행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허구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9월 1일의 전투에서는 기병대가 독일 전차를 향해 돌격을 감행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단지 기병 돌격 허구론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병 돌격 사건(9월 3일의 전투)"과는 다른 교전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병 돌격 사건"이 실제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설령 독일 당국의 과장 선전이 9월 1일의 Krojanity 전투에서 처음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기병 돌격사건이 역사에 정설로 남게 된 것은 이탈리아 종군 기자와 독일의 공보당국의 과대선전 때문이 아니라, 9월 3일에 있었던 독일 전차에 대한 폴란드 기병대의 실제 돌격 사건이 전투 보고서와 같은 다른 신빙성 있는 소스들에 의해 기록되어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확한 사실이 어떻든간에, 설령 독일 전차를 마분지로 오해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대부분의 기병 돌격들이 기갑부대에 대해서가 아니라 보병에 대해서 시도되었다고 하더라도, 기관총 화력 앞에 자신을 기꺼이 내밀고 돌격을 감행한 폴란드 기병의 용맹함만은 전사에 깊이 각인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폴란드 기병 여단의 돌격은 단순히 독일 전차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포위된 우군 보병들을 구하기 위해 혈로를 뚫는데 앞장선 희생적인 행동이었다. 폴란드군 기병대는 어리석었다는 비웃음을 살 이유가 없으며, 전사상 가장 용감했던 부대중의 하나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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