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호크 다운'을 보고

 '블랙 호크 다운'은 참전용사들과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모가디슈 전투를 재구성한 논픽션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근래의 군사 저술가들의 주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자료들로 주된 흐름을 파악하고 각개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세부 디테일을 채워나감으로써 상호보완적으로 전체적인 상황 재현을 시도하는 것이다. 모가디슈 전투의 생존자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고 또 제한된 시간과 공간의 특수전이었던만큼 당시 상황이 모두 직접 촬영되고 교신내용들이 보존되어있어, 블랙호크 다운은 어느 군사저술물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소부대 전투를 보여주는 작품중 하나가 되었다. (아래 사진: 실제 전투가 벌어진 지역)

영화 이야기
 영화 블랙호크 다운이 전투장면 묘사에 지나치게 치중되어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책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책에서 제공하는 전체 에피소드와 서술의 일부분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나중에 봤는데, 그덕분에 책을 보는 동안 매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반대 순서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상승작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 논픽션이니만큼 영화를 보기 전에 어느정도가 되든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있으면 그만큼 이해에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평론가들이야 생판 모르던 사건을 영화로 접하니 영화에서 배경설명등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미국인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영화가 제작된것 같다. 영화에서는 원래 호송대에 탑승해서 복귀했던 에버스맨의 쵸크4가 추락지점에서 밤을 보낸 것으로 나오고 다른 사람이 겪은 에피소드들을 다른 캐릭터가 대신 겪는 등 약간의 각색은 되어있지만, 원작자인 마크 보우든이 시나리오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던 만큼 원작에 상당히 충실하다. 배우들이 레인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음은 물론, 군당국의 공식적인 지원을 얻어 당시 참전 부대였던 100여명의 레인저 부대원들과 160 특수작전 항공연대가 직접 출연하였다. (어쩐지 병사들의 각개전투 자세가 범상치 않았다.)

 영화의 한장면흔히 이 영화를 두고 리얼리티 넘치는 액션 스펙터클이라고 하지만,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그랜저가 나오면 안되는 것처럼 서사물인 이상 장르에 상관 없이 고증에 충실하는 것은 완성도에 있어서 당연한 전제일 것이고, 내가 보기에는 서정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것 같다. 끔찍한 장면을 많이 담고 있다고 해서 몬도가네 보듯이 엽기성을 즐기거나 리얼한 전투장면에서 액션물의 파괴본능 충족을 기대한다면 블랙호크다운에서 많은 것을 놓치는 게 될 것이다. 람보의 액션과 블랙호크다운의 액션은 분명 다르며, 그 기준이 꼭 사실성과 비사실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포탄이 배를 뚫고...하는 엽기장면이 얼마나 나오느냐 하는 것으로 다른 비슷한 영화들과 비교하는 것도 적당치 않다. 그것보다도, 그러한 장면묘사들로부터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우측 사진: 영화의 한 장면)
 넓은 꽃밭에 나비가 나는 장면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심미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끔찍한 전투장면을 보고 전쟁의 비참함을 느끼는 것 역시 심미적일 것이다. 내 성격이 감상적이라서 그렇게 느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무미건조한 액션의 나열이라는 비판은 사실무근이다. 평화시건 전쟁중이건 사람의 목숨값은 똑같은데 사람이 죽고사는 이야기와 생사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그것도 거의 각색되지 않은 논픽션)에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영화를 탓할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정서가 메마른게 아닌지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원작에 비해서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다소 무미건조하게 표현되고 실전에 임한 병사들의 흥분상태 묘사가 부족한 것 같긴 하다. 실제 교신음성을 들어봐도, 영화의 그것보다 훨씬 흥분하고 긴장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전에 투입된 군인의 감정상태가 애당초 연출로 재현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있기 때문일듯 싶다. 싸구려 감상주의적인 묘사로 반전주의를 표방하는 풀메탈 재킷은 오히려 M60 BB건을 들고 뛰어다니는 밀리타리 오타쿠를 만들어냈으니, 그와 비교하면 묘사된 사건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자제한 이 영화가 전쟁영화로서 관객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헐리우드 영화는 오히려 관객에게 감동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지 않는가. 감동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과잉이라고 비판하고...미국만세, 제국주의적 작품, 물량공세 등등, 미국 영화 헐뜯는 관점은 이젠 천편일률적이 되어 아무 영화에나 제목만 바꾸어 붙이면 될만큼 정형화되었다. 헐리우드 영화에 알레르기가 있는 영화평론가들과 미국의 ㅁ자만 들어도 구역질을 하는 자칭 진보주의자적인 시각대로만 아니라면, 블랙호크다운은 왜 전쟁이 나면 안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작품중 하나임에 틀림 없다. 전쟁영화를 보고 전쟁이 나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면 그이상의 어떤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겠는가.

책 이야기
 밀리타리 서적 치고는 드물게 블랙호크다운 원작 논픽션이 국내에 번역판으로 발매가 되었다. 한글판의 역자는 번역작업을 하던 도중에 우연히 9.11 사건과 맞아떨어져 번역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쨌던간에 번역판이 서점에 나올 수 있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영화 개봉인것 같다. 출판사에서는 아예 영화 장면을 책 표지로 삼고 발행 날짜도 영화 개봉 10일전에 맞추었다. (아마 역자께서 기일에 맞추느라 수고를 하셨을 듯 하다.) 그러니까, 베스트 셀러를 영화화한 원래 순서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영화가 먼저 알려지고 원작인 책은 뒤늦게 알려지는 셈이다. 배경설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국내에서의 영화에 대한 부정적 비판중 상당부분이 원작이나 사건에 대한 이해 없이 영화를 먼저 접하게 된 것이 그 이유가 되어 보인다.

 원작이 애당초 워낙 충실하게 되어있어서, 한글판 역시 그만한 값어치를 지닌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책이 전체적으로 좀 싸구려티가 나고, 원인이 무엇이 되었던간에(개인적인 의도로 작업을 시작해서였던가 아니면 출판사의 독촉기한때문에 그랬는지 등등), 번역 상태가 A급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냥 읽어나가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어색한 용어도 종종 눈에 띄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의역이 되어 원작의 뉘앙스가 상당부분 훼손되어있다. 긴박한 상황 묘사를 그저 간단하게 역자가 이해하는대로 재구성해서 서술해버린다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된 의미의 잘된 번역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참고로 원작과 번역판의 한 부분을 비교해본다.

원작:
 "Struecker tried to leave it at that. So far nobody on their side had been killed, as far as he knew, and he didn't want to be the one to put news like that on the air. Men in battle drink up information as if downing water; it becomes more important than water. Unlike most of these guys, Struecker had been to war before, in Panama and the Persian Gulf, and he knew soldiers fought a lot better when things were going their way. Once things turned, it was real hard to reassert control. People panic. It was happening to Moynihan and the other guys in his humvee right now. Panic was a virus."

같은 부분에 대한 한글판의 번역:
 "파나마와 걸프에서 실전경험이 있던 스트루에커는 전장에서 공포가 치명적 바이러스임을 알고 있었기에 아군 전사자의 소식을 보고하고 싶지 않았다. 교전 지역 내의 모든 무전병들이 이 소식을 듣고 있을 것이다."

 이정도면 의역의 차워을 넘어서 줄거리 재구성이라고 하는게 나을듯 싶지만, 어쨌든 원작의 분량대로 모가디슈 전투가 묘사되어있고 영어 원작을 읽지 않는 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사건을 이해하는 가용한 소스로서는 여전히 훌륭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인터넷상에는 출판되기 전에 공개된 원작(책과는 조금 다름) 과, 실제 전투 촬영 화면, 교신내용, 작전 진행과정을 나타낸 지도, 삽화 등등 모가디슈 전투에 대한 상당히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실제 투입장면원작과 영화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전투의 생생한 현장들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영화와 원작 블랙호크다운, 그리고 모가디슈 전투는 전투와 전장의 군인들에 대하여 몇가지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평론에서는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보여주는 것은 감독의 몫이고 느끼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일 것이다. 오히려 시시콜콜한 감동들을 감독이 미리 다 정해놓고 관객들에게 강요했다면 배달의 기수풍의 허접스런 영화가 되었지 않겠는가. 영화 말미에 델타 요원중 한명이 민간인들이 이짓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고 했듯이 평론가들은 블랙호크 다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애당초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에 가보지 않은 우리 형도 영화를 보고 나서 액션은 재미있었지만 도대체 뭐하는 난장판이냐고 비아냥거렸지만, 목숨을 서로에게 의지해야 하는 동료간의 전우애라는 것은 아무 관심 없는 사람에게 간단하게 설명해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나도 형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미군의 전우애와 희생정신에 대해서 우리가 걱정해줄 이유가 무엇이냐는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인도주의와 인류애라는 덕목이 지구상의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전우애라는 덕목 역시 지구상의 모든 군인들에게 똑같은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컬트 영화이다. (왼쪽 사진: 목표건물에 대한 실제 투입장면)

우리나라 군대였다면?
 블랙호크 다운을 보고 밀리타리 매니아의 입장에서 가장 크게 떠올랐던 생각이, 우리나라 군대였다면 과연 어땠을까라는 것이었다. 장비면에서가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병사들의 프로정신이라는 면에서 말이다. 장비면에서도, 모가디슈의 레인저들은 야시장비도 휴대하지 않고 방탄복의 방탄판도 빼버리고 지원화력도 미미한 채로 작전에 임해서 우리나라 군대보다 사실상 별반 나을 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군대라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내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미리 말해보자면, 장비가 똑같더라도 우리나라 군대는 그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예비역들, 특히 이른바 정예부대 출신 마쵸 예비역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정예부대들이 자신들이 선봉이고 정예라고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복무하는 것을 안다. 그들은 모가디슈의 레인저들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과 실제 전투력은 별개의 것이다. 빨리 전역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병사의 마쵸기질과 자원병의 프로정신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통계적으로, 전장에서 한 부대의 인원손실이 30%정도가 되면 조직이 와해되고 전투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30%의 손실에 이르면 전멸했다고 표현한다. 이런 군대식 표현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친 모가디슈의 미군은 전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전투의지를 상실하지 않고 살아서 자신과 동료들을 사지에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임무완수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미군중 최정예 부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레인저 병사들은 모가디슈 전투를 치르기 전까지는 실전을 원하고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지만, 원작을 보면 델타 요원들은 전투시의 레인저(우리나라로 치자면 특공여단 정도와 비교하면 적당할 것 같다)를 보고 자기 목숨도 제대로 부지할줄 모르는 철없는 애숭이들이라고 평가했으며, 레인저 병력들은 실전에 임해서 갈팡질팡하고 허둥댔고 각개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구출에 투입된 10산악사단도 신속대응군 소속의 정예부대지만, 레인저의 어수룩함에 학을 떼던 델타팀들은 전장에서 말그대로 개념없이 행동하는 10산악사단 병사들을 보고는 할말을 잊고 말았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체로 미군에 비해서 훨씬 많은 고생을 한다. 그중 대부분은 생활 그자체에서 나오는 어려움들이다. 부대에 따라서는 훈련도 많이 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 훈련과 생활이 얼마나 실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레인저 출신의 어떤 델타요원은 레인저들의 훈련을 "터프가이 흉내놀이"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했다. 영화나 원작에 등장하는 델타요원들의 레인저에 대한 비하는 레인저부대의 실전능력 추구와 동떨어진 허세부리기가 그 원인이었다. 우리나라 군대가 병사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부과하든간에, 실전에 유용한 능력을 부여해줄만한 특별한 수단이 없는 않는 한은 모가디슈의 레인저보다 더 잘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는 것이다. 모가디슈 전투는 훈련이 혹독하고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다고 해서 꼭 실전에서 잘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모가디슈의 레인저들중에는 그나마 걸프전과 파나마 침공에 참전해서 실전을 겪은 베테랑들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군대는 그렇지도 않다. 훈련이 약하고 인원의 자질이 떨어져서 실전에 적응못할 것이라는게 아니다. 구조와 운영 특성이 실전에 대비한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몇몇 전장 연구들에서, 소부대의 전투력 발휘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주변에 있는 5-6명 정도의 소그룹 내에서의 리더십이라는 결론이 있다. 모가디슈 전투는 이러한 소부대의 리더십의 중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델타 요원들을 비롯한 일부 병사들이 주변의 다른 병사들을 챙겨주면서 전투를 수행했고, 지휘계통에 의한 일선 지휘는 상당히 미흡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무전으로 내리는 명령보다도 주변의 동료들과 직접 눈으로 보는 상황에 따라서 행동해야 했고, 많은 경우 이쪽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내리는 무전명령은 이행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전투를 이끌어간 힘은 지휘계통의 작용이라기보다는 병사들속에 섞여있는 고참병사들(주로 델타요원)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첨단 장비를 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는 지연되고 혼란되었으며, 지휘관들은 부상당하거나 스스로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여 지휘권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병사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못했다.
 소그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전우애라는 것이 단순한 군인들의 감정적 사치가 아니라 전투를 수행케 해주는 직접적인 동기라는 것이다. 레인저 인원들의 인터뷰는 그러한 점을 잘 말해준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점은 이미 미군에서는 제도권에 수용되어 부대 운영에 적용하고 있는 정설이다. 그래서 미군은 야전에서의 리더십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규모를 편제에 직접 반영하여 1개 분대를 2개의 사격팀 단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병사들에게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는 전우애를 깊이 교육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군대의 동기부여방식은 전우애라기보다는 지휘관의 말한마디에 병사들이 자동으로 죽을 수 있는 수직적 권위 확립에 치중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정신교육은 대부분 애국심이나 외침을 막아내는 민족정신같은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왼쪽 사진: 당시 전투의 흔적)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건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병사들은 전쟁이 나면 장교들부터 쏴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말을 흔히 한다. 우리 부대에서만 그런줄 알았더니, 다른 부대 출신 예비역들에게도 익숙한 표현이었다.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이렇게 지휘관에 대한 불신이 깊은데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명령할때 누가 그 명령을 곧이곧대로 수행하려 하겠는가? 상관에 대한 분노를 적에게 배출함으로써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얘기는 창들고 싸울때나 먹히던 말이다. 현대전의 병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과 상황인식 능력, 그리고 각개전투 능력이지, 훈련때 쌓여왔던 스트레스를 작전에 임해서 폭발시키는 야만성이 아니다(이 야만성은 반드시 적의 병사를 향해서만 분출되지 않는다). 레인저 부대의 장교조차도 상황조치가 미흡하더라고 하는 판국에 직업정신은 커녕 병사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제대할 날짜만 손꼽아기다리는 초급장교들이 과연 실전에서 어떻게 병사들을 전문성 있게 지휘를 하고 부하의 생명을 구해줄 것인가? 전장에서 적군의 총알이 빗발치는데 어떤 병사가 나라와 민족을 떠올리며 개죽음하겠는가? 군대에서 좋은 친구 만났다는 추억은 커녕 예비역들에게는 병들끼리 서로 갈구던 끔찍한 기억이 훨씬 많이 남는데 그런 병사들끼리 어떻게 실전에서 서로에게 목숨을 맡기겠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나라 군대는 병사들을 더욱 고달프게 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것 같지만, 애당초 방향이 잘못된 것을 더욱 강제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효과적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흔히 징병된 병사들이라 동기부여가 안되어 말을 안듣는다고 하지만, 지휘관들 역시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됨은 물론 병사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전문적인 능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맺음
 존 키건은 전장에서 병사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적의 총알 앞에 남아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했었다. 그 의문은 내가 궁금해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마크 보우든은 그점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묘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공포를 견뎌내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대체로 인간의 능력으로 곡포를 극복했다기 보다는 공포에 무감각해졌다고 표현하는게 적당할 것 같다. 그밖에도, 블랙호크다운은 모가디슈 전투의 생생한 재현을 통해 내가 그동안 전쟁을 간접체험해보고자 노력하면서 알고 싶었던 점들(시대와, 국가와, 병과에 상관없이 공통성을 찾을 수 있는, 전장에 놓인 군인들에 대한 모든 것들)에 대해 여러 생각할 자료를 제공해주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블랙호크다운에 이만큼이나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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