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추의 예술

    몇년 전 교보문고의 소프트웨어 매장에서 두꺼운 팰콘 골드의 쌍용 수입판을 발견했을 때, 이미 그때는 팰콘3.0이 발매된지 수 년이 지난 상태였고 또 나에게 이미 팰콘3.0과 오퍼레이션 파이팅 타이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기쁘고 흥분이 되었다. 특히나 그 안에 들어있는 매뉴얼의 두께를 상상케 하는 박스의 무게는 또한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결국 그 안에서 전투비행시뮬계의 최고 교범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Art Of The Kill"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여러 군사 저술물들을 보면, 전문가적인 입장에 있는 직업 군인들은 전쟁과 전략, 전술, 용병술 등등에 대해 단순한 승리기술을 벗어난 예술의 차원으로까지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용병술은 예술이다"라고 하는 직업군인및 군사 평론가들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팰콘골드에 포함된 "Art Of The Kill" 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에도 그러한 견지에서 제목을 이해했었다. 즉, 공중전이란 예술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행위라는 뜻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Art"라는 단어에는, 예술, 미술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그 이전에 근본적으로 "기술"이라는 뜻이 있다(=Skill).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오역된 명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통상 "예술" 이라고 번역하는 "Art"라는 단어중 몇몇은 원래 "기술"을 뜻한다. 직업군인이나 군사평론가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Art of the Kill"은 단지 "격추 기술"이라는 무미건조한 제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Art Of The Kill"은 절대로 "격추의 예술"로써 번역될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술이란, 주어진 당시대에 적합한 매체나 도구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행위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클라우제빗츠에 따르자면, 전투란 "강제적인 수단에 의하여 자신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행위"이다. 언뜻 생각하면 창작활동인 예술과 파괴행위의 전투는 오히려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예술의 창작물과 전투의 파괴행위는 모두 행위의 부산물일 뿐, 파괴와 창작물 자체가 전투와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아무런 창작물도 남기지 않으며 오히려 파괴적인 행동으로써 예술적 행위를 하는 경우나, 물리적인 파괴는 거의 없이 병참선을 차단하여 적을 후퇴시킨다거나 적을 공황상태에 빠뜨려 단지 조직을 와해시킴으로써 "아군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데 성공하는 경우들이 그 예이다. 또한, 예술의 "의미 전달"과, 전투의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는 두 가지 모두 일종의 의사표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투와 예술을 동일하게 묘사하는 이러한 주장을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할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직업군인들과 군사 평론가들은 전문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전문적인 자부심에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다면, 이러한 관점에 대해 논리의 비약이 아니라 사고의 확대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직업을 막론하고 전문가 정신이 없이 존재하는 직업인이란 사회에 기생하는 암적인 존재에 다름아닐테니 말이다.

  예술계에서는 기존의 기술을 잘 응용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닌 "장인"으로 불리며, 주어진 매체를 이용한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능력과 업적을 가진 사람을 "예술가"로서 인정한다. 전투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의 교범을 잘 적용하고 수행하는 사람은 "장인"이며, 전술을 창조하고 항공기 기동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사람은 "예술가적"인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의 영역에 있어서 이전과 똑같은 상황은 잘 발생하지 않으며 기존의 전쟁형태를 재현해내는 것은 전투의 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 못해왔다. 즉 신기술을 보다 빨리 전투에 응용할 줄 알고 전술적인 창의성이 있는 군인이 항상 결정적인 승리를 달성해왔던 것이다.

 사이버 파일롯은, 현실적으로 공중전술을 "창조"할 입장에 있지는 않다. 창조는 커녕 실전의 공중전투전술과 기동을 잘 적용하는 "장인"이 되는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며, 그러한 "장인"의 수준에서 사이버 공중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범위를 다소 축소해서 본다면, 가상의 하늘은 실제 공중전투 전술을 완전히 응용하는 것에는 아직도 다소 격차가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게임의 기술적인 문제, 또 부분적으로는 군사보안상 아마도 이 격차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가상의 하늘만을 대상으로 보았을 때는, 사이버 파일롯들은 지금 현재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 되며, 실제 공중전투 이론을 사이버하늘에 적용시키거나 혹은 사이버 하늘 나름대로 스스로 공중전투전술을 깨달아 그 표현범위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스틱을 통한 붓질이 "예술적"인 범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Art Of The Kill"이 "격추기술"로 번역되느냐 아니면 "격추의 예술"로 번역되느냐는 전적으로 사이버 파일롯 스스로의 책임이며 그 대답은 자신의 행동과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적기를 한대 더 격추시키겠다는 생각만으로 실전에서는 전혀 적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음에 해당하는 행위를 아케이드적 감각에 의하여 마구 즐기는 사람은 "예술가"는 커녕 "장인"으로서의 의미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이버 공중전투란 단지 파괴와 살인 본능의 대리 충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의 "Art of the Kill"은 "살인 기술"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반면 실제 공중전투 이론을 사이버하늘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하고 그 기량을 사이버하늘에서 실전적으로 응용하는 사람은 "격추 예술가"가 될 것이고 그 사람의 "Art of the Kill"은 "격추의 예술"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공중전 전술에 대해서 "이 어찌 예술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라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팰콘 골드에 들어있던 AOTK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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