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 착각에 관하여 (하) *

* 2006년 6월 13일자
 이 글은 F-15K 사고와 관련하여 유용원 기자님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진 토론에 참여하면서 비행 착각과 관련하여 별도로 쓴 2편의 글 중 하나입니다.
제가 쓴 글들 기록 보존 차원에서 원문을 수정 없이 이곳에 옮깁니다.

 앞서의 글에서 비행착각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사족을 달아서 좋을 것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비행착각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가지고 조종사 과실<-->기체결함의 대립관계로 해석하는 분들이 적지 않게 계시기에 한가지만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비행착각은 과실이 아닙니다.

 이름이 비행 착각이다보니 아마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쉽게 하나봅니다.

 착각 = 바보

 저는 비행 착각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어있다고 주장합니다.
 비행착각의 정식 영문 표기는 Spatial disorientation 입니다.

네이버 영어사전을 빌려봅니다.

spa·tial, -cial a.
1 공간(space)의, 공간적인;장소의;우주의
2 공간에 존재하는

dis·o·ri·en·ta·tion n.
방향 감각 상실;혼미

야후 사전을 봅니다.

spatial
1. 공간의, 공간적인.
2. 장소의, 공간에 존재하는[일어나는], 장소[공간]를 차지하는.
3. 우주의. (또는 spacial)

disorientation
1. 방향을 잃게 함, 어리둥절케 함.
2. 동향이 안 되게 함.
3. 〈정신의학〉 소재 의식[방향 감각] 상실, 정신적 혼란.

또 비행착각을 vertigo라고도 합니다.
이것도 영어사전에서 봅니다.

네이버 사전:
ver·ti·go〔L 「회전」의 뜻에서〕 n. (pl. vertigos, vertigoes, ver·tig·i·nes[]) [U.C]
1【병리】 현기(眩氣), 어지러움
2 (정신적) 혼란

야후 사전:
vertigo
( ~es, -tig·i·nes [v tíd nì z])
1. 〈병리〉 현기증.
feel a ~ 현기증을 느끼다.

 원어에서는 착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spatial disorientation은 정확히 번역자면 "공간 방향감각 상실" 내지 "공간 지각 능력 상실"이 됩니다.
 즉, 무언가를 잘못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할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기절하는게 과실이 아니듯이, 어지러운게 과실이 아니듯이, 비행착각도 과실이 아닙니다.
 생리 현상입니다.
 수업중에 소변 마려운것이나 코끼리코 돌고 어지러운게 과실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종사의 자의적인 의도나 의지로 어떤 것을 행하는 과정에서의 과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행착각이라는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조종사의 과실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순직한 분들에 대한 대단한 무례입니다.

 전투기를 조종할 때는 누구나 다 비행착각을 자주 겪습니다. 비행착각이 발생하는 자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전투기 조종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고, 전투기 조종석에 앉는 그순간부터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군인인겁니다.

 레이싱 선수들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운전의 달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레이싱을 하다가 수시로 사고나고, 다치고, 죽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정비사들이 정비한 아무리 최첨단의 레이싱 카를 아무리 뛰어난 베테랑 선수가 몰더라도 레이싱카를 타는 그순간 목숨을 거는겁니다. 사고가 나는 이유가 드라이버나 정비사가 못나서가 아니라, 레이싱이라는 그자체가 본질적으로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아주 사소한 원인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레이싱 경주에서 차사고 난다고 해서 누가 잘못했나 따지지 않습니다. 운전사 과실인지 설계 결함인지 따져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고 비방하지 않습니다. 레이싱이 원래 위험한 것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모두가 그것을 감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대책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전투기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사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비난하기 위해서 사고 조사를 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또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누구편 누구편 하면서 청백전 하는 분들은 자중하십시오.
가족오락관이 아닙니다.

 보상문제같은 것이 걸려있지만, 그것은 앞으로 있을 사고를 방지한다는 궁극적인 목적을 방해할 수 있는 충분한 요인이 아닙니다. 만약 당장의 금전적인 보상 문제로 사고 조사에 부정이 개입되어 이후의 또다른 사고를 막지 못한다면 자신들에게 훨씬 더 큰 금전과 인명 손실이 수반될 것임을 누구보다 사고를 조사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공군이든 보잉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공군의 사고 조사가 정확하게 이루어지기를 가장 바라는 것도 누구보다도 조종사들일 것입니다.

 공군의 사고 조사를 못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두 명의 젊은이가 여러분을 지켜주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도 믿지 마십시오.
 두 명의 희생에 궁극적인 빚을 져야 하는 것은 공군도, 보잉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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