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착각에 관하여 (상) *

* 2006년 6월 11일자
 이 글은 F-15K 사고와 관련하여 유용원 기자님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진 토론에 참여하면서 비행 착각과 관련하여 별도로 쓴 2편의 글 중 하나입니다.
제가 쓴 글들 기록 보존 차원에서 원문을 수정 없이 이곳에 옮깁니다.

 

 비행착각 현상에 대해서 저보다 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설명이나 증언을 해주실, 그리고 이미 해주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굳이 제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만, 그래도 글로서만 접한 분들보다는 비행 착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만한 입장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고수분들이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무례가 됨을 무릅쓰고 제 작은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밀리터리 포럼들에서 좀 안다고 자처하는 매니아분들 중 상당수가 대부분 비행착각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계기판이 어떻고 경고음이 어떻고 베테랑 조종사가 두 명씩이 되는데 어떻고 하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들어가면서 말입니다.

 그런 논리에 현실성이 있다면, 자세계가 안달린 비행기란 없으니 이세상에 비행착각 사고는 단 한건도 안 일어나야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비행착각과 그로 인한 사고는 빈번히 일어나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즉, 계기판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비행착각 사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F-15K라고 해서 다른 기체와 다른 특별한 계기나 자동 회복 장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자들이 잘 모르면서 오해하여 와전시킨 얘기입니다.)

 보통은 비행착각이라고 하면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는 류의 현상만을 떠올리기 쉽고, 따라서 계기판을 보면 되는데 왜 사고가 나는가?" 라는 결론(사실은 오해)에 쉽게 이릅니다. 물론 시각 착각도 비행 착각의 일부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無名人인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기에 제가 구체적인 설명을 다시 할 이유는 없지만, 간단하게 핵심을 지적하자면, 대부분의 비행착각은 "눈"이 착각하는게 아니고 "몸"이 착각하는겁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 수평 비행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원위치시킵니다. 내 자세가 잘못됐다고 느껴집니다.
- 수평비행 합니다. 가속합니다. 상승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 한쪽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선회를 풀고 수평 비행으로 돌아옵니다. 기울어져 있다고 느껴집니다.

 아마 저런 상황에서 자신은 착각 안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분들 적지 않을겁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어나는 신체 현상입니다. 정신을 집중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 예로 든 현상들 겪어보신 분 있습니까? 위 현상을 겪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또 그럴 때 계기판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겪어보셨나요? 몸이 느끼는 현상을 겪어보지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 두들기면서 계기판 보면 되니까 착각할 리 없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해도 되는 것일까요? 물론 비행착각에 빠지면 어떤 현상이 생기고... 하는 자료는 많이들 보셨을겁니다. 그러나 몸으로 겪는 현상을 글로 접해서는 그 본질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할겁니다. 문제는, "그래서 나는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야 할 것을, "나는 그런 지식들이 있으니 비행 착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매니아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지식 착각이라고 정의하면 적당하겠습니다.)

 술먹고 걸어가던 홍길동씨가 이런 말 합니다. "어 가만히 서있는데 땅바닥이 일어나서 나를 치네? 우~씨 -_-^”
홍길동씨한테 계기판이 없어서 자기가 쓰러진걸 모르는걸까요? 땅바닥 그 자체가 0.1%의 오류 가능성도 없는 완벽한 자세계인데요.
코끼리코 20바퀴 돌고 달리던 임꺽정씨가 엉뚱한 곳으로 달리다가 자빠졌습니다.
임꺽정씨에게 경고음을 들려주지 않아서 자빠졌습니까? 경고음 들려주면 잘 달릴 수 있을까요?

 비행착각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는 vertigo는 본래 "현기증"이라는 의미입니다. "현기증"을 염두에 두면 비행착각 현상을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본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끼리코 돌고 어지럽지 않은 사람은 이세상에 없습니다. 계기판 있으니 비행착각 빠질 리가 없다는 얘기는, 모자에 계기판 달고 코끼리코 돌면 어지러울 리가 없다는 얘기와 똑같습니다.

 흔히들 비행착각에 빠지면 계기를 불신하고 몸을 과신하게 된다는 식으로 표현을 해서 조종사가 비행착각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비행착각에 빠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어지럼증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행착각도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앉아계신 회전의자에서 빠르게 50바퀴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회전 의자 아니시면 그냥 서서 돌아보시길) 사물이 제대로 보이시나요? 의자에 똑바로 앉아계실 수 있나요? 어지러울 때 주변을 보면 주변이 보이긴 보이지만, "술취한 홍길동씨"와 마찬가지로 내가 쓰러진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나는 분명히 똑바로 있으려고 하는데 왜 자꾸 쓰러지는지 (혹은 주변이 기울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게 됩니다.

 비행 착각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비행착각에 빠졌을 때 계기를 보면 "아 계기가 보이니까 여기에 맞춰야지"라고 생각하고 그리 실행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나는 똑바로 간다고 생각하는데 계기가 왜 기울어있는지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현재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당연히 이를 바로잡을 수도 없습니다.
이럴 때 자세를 바로잡으려면 비행착각에 빠졌다는 것을 이성이 의식해서 감각이 주는 판단을 무시하여 자세를 기울이겠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인 오조작(당시 느낌으로는)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죠. 나는 분명히 비행기가 똑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계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고 표시됩니다. 내 몸이 잘못 느끼고 있다고 대번에 인정하기가 쉬울까요? 일단은 이상하게 생각되고 현실 파악을 제대로못한 채로 헤매는 것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그럴 때는 계기를 보면 자세를 대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과 눈으로부터 받는 정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는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설령 비행 착각에 빠졌음을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앞에 예로 든 상황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려면 내 몸이 느끼기에는 비행기를 땅으로 꼬라박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계기판을 보면서 조종을 하지만 내 몸이 느끼기에 땅으로 꼬라박을 정도로 비행기를 푹 수그러뜨리(는 느낌이 들)도록 조종하기가 쉽겠습니까? 과연 이성의 명령만으로 감각상으로는 "자살적인 조작"을 쉽게 할 수 있을까요? 엄연히 내 몸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부정하고 계기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마당에 만에 하나 계기가 오작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전혀 안 들겠습니까? 물론 계기를 믿으라고 훈련을 받는다고 하지만, 강의실에서 교육받는 것과 실제 상황에서 대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비행착각에 빠진 상황에서는 비행착각에 빠진 것을 인정하고 이성의 판단으로 계기를 보고 자세를 바로잡겠다고 결심을 했더라도 몸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항공생리 교육 체험 때 뱅크각 착각을 겪은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 드리면 이렇습니다.
나는 분명히 똑바로라고 생각하는데 계기판은 기울어있습니다. 미리 비행착각에 빠질 것임을 알고 있어서 대비를 하기 때문에, 비행착각 훈련 시에는 “아 이게 바로 비행착각에 빠져있는 거로구나”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인정이 됩니다. (실제 조종석에 비해서 한 단계 먹고 들어가는겁니다) 그러면 이제 계기판을 보고 자세를 바로잡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고작 30도 정도 기울기를 바로잡는 그 단순한 동작을 마음대로 못합니다. 몸이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로는 스틱을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몸을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거죠. 결국 시간이 약간 지나서 어지럼증이 좀 풀어진 후에야 기를 쓰고 조종간을 반대편으로 끝까지 밀겠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서 조종간을 밀어서 겨우 30도 정도의 뱅크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코끼리코 돌고 나서 마음은 앞으로 똑바로 달려가고 싶어도 몸이 마음대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때 똑바로 달려가겠다면 반대편으로 달려가겠다고 기를 써야 합니다. 그래도 잘 달릴 수 있을지는 물론 해봐야 알지요.)
그나마 이정도 하고도 교관님께 잘한 편이라고 칭찬 받았고, 저와 같이 체험에 참가했던 분들 중에서는 비행착각에 빠진다는 것을 미리 예고하고 계기를 보면서 자세를 바로잡는 것만을 훈련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세를 바로잡지 못한 분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거 실패한 분들 다 어디 모자란 분들 아닙니다. 시뮬게임으로 계기 비행하는건 지겨우리만치 하던 분들입니다.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겠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셔서 코끼리코 50바퀴 돌고 엉덩이로 이름 써보시면 바로 이해되실겁니다. 단 2분이면 해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행착각에 빠졌다면 우선 비행착각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았더라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비행착각을 회복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만약 비행기 고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방향의 착각이라면 지상에 충돌할 위험이 당장은 낮을 테니 이를 회복할 시간 여유가 있겠지만, 비행기 기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형태의 착각이라면 고도가 높았더라도 회복 못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기사에는 임무 중지 교신이 11000 피트에서였다는데, 전술속도로 비행하는 전투기로 1만 피트 고도 떨어지는건 금방입니다. (전투기에서는 1만 피트는 고고도로 치지도 않습니다)

 비행 착각 얘기하는데 계기가 어떻고 허드가 어떻고 경고음이 어떻고... 하는 얘기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충분히 설명되었을지 모르겠네요.

 베테랑 조종사 두 명이 탔는데 비행착각에 동시에 빠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명이 한 비행기에서 똑 같은 기동을 했으니 두 명이 똑같이 착각할 가능성이 당연히 있지요. 회전의자에 두 명 앉혀놓고 돌릴 때 한 명만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두 명 모두 어지러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두 명이 탔다면 둘 중 한 명이 비행착각을 인지하고 그를 회복할 기회가 혼자일 때보다는 많다는 이점은 있겠지만, 만약 현실의 결과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말은 하나마나 한 것입니다. 요는, 두 명이 탔다는 것이 비행착각으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인승 기체에서 비행착각 사고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항공 생리훈련 과정에 비행착각 훈련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비행착각 훈련은 비행착각에 대한 내성을 키워서 어떤 상황에서든 비행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훈련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형태의 비행착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현실에서 이런 상황이 의심되면 빨리 이를 이성적으로 인지해서 회복을 하라는 “체험”을 시켜주는 훈련입니다.

 비행착각이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결론(반드시 이것일 것이다,혹은 이것은 반드시 아닐 것이다라는 것 모두)로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실제로는 비행착각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극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간접 지식들 몇 가지를 가지고 그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근거로 비행착각이 절대 아닐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태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비단 비행착각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고원인 추론, 나아가 군사분야의 다른 모든 이슈들에서도 겪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단편적 지식들을 악의적으로 재단하면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가 이미 충분히 겪고 있는 바가 아닙니까? 선의의 취지에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단편적 지식을 어설프게 해석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결과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지 말고 무언가 알아갈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여러 고수분들께서 굳이 말씀을 아끼고 계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조종사들에게는 비행착각이 위험하고, 매니아들에게는 지식 착각이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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