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격

오늘도 대한민국 공군은 나를 부른다. 조국의 하늘은 내 어깨에 달려있다.

 오늘의 임무는 원산을 방어하고 있는 SAM을 제거하는 것이다. 신촌 우드스탁 단골 중에 샘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북한의 간첩이었나?
 출격을 위해서는 매사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다. 키보드 앞의 밥 비벼먹던 사발을 설거지 그릇에 갖다놓은 것이 대부분의 출격임무의 첫번째 행동이다.

 부라보콘만큼 유명한 팰콘 4.0을 실행시키고 캠페인에 들어간다. 금연 캠페인도 질서 지키기 캠페인도 아닌 한국전 캠페인이다.

 출격 전에 작전지역 정찰사진을 검토하고 비행구역 지도를 프린트한다. 세부지형이 실제 한국과는 다르므로 한국상공을 비행하지만 사회과부도는 필요가 없고 게임 내에 있는 지도만이 가용하다. 임무 브리핑내용을 정리한 Line up카드의 작성은 필수적인데, 그것은 Line up의 한국말 번역이 홈지기의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Line up : 진용)

 팰콘4.0은 사이버 세계에도 빈부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Skidrow의 상대성 이론: 같은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컴퓨터에 따라서 로딩시간은 다르다) 32M이하의 램을 가진 사람은 팰콘4.0을 로딩시켜놓고 시장에 다녀오기도 했다는데, 로딩에 있어서만큼은 필자는 중산층에 속하기 때문에 화장실에만 다녀오면 된다. 로딩은 덜 끝났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아마도 팰콘4.0의 로딩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쌔끈한 F-16의 조종석에 앉았다. 무엇부터 하지? 일단 카 오디오부터 틀자. 채널을 살펴보니 타워라는 게 있다. 아직 남산타워는 한번도 안 가봤으므로 한번 선택해본다. 명령어 몇 개가 화면에 뜬다. 그중에 익숙한 단어는 "Request Taxi"밖에 없는데, 아마 콜택시를 부른다는 말인 것 같다. 선택하니까 어떤 여자가 "Taxi Clear for Runway"라고 말한다.(아니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이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명령어는 없는데, 다음 버전 패치에서 같은 편대 내의 여자 조종사에게 같이 커피 마시자는 명령어를 추가해 달라고 수퍼팩 개발팀에게 제의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택시를 타고 도망갈 길을 청소하라? 본인은 조종사지 청소부가 아닌 고로, 지시를 무시하고 그냥 이륙해서 가버린다. 아마도 궂은 일을 시키느라고 여자가 지시를 하도록 한 것 같다. 홈지기가 여자한테 약한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어디선가 새소리 물결소리들이 들린다. 매뉴얼을 보니 RWR에서 나는 소리라고 한다. 조종석에서 조종사의 심적 안정을 기하기 위해 들려주는 명상음악인가보다.

 목적지까지 2/3쯤 왔을 때, 전화가 걸려온다. 폭격중에 전화가 오면 영락없는 여자친구다. (Skidrow의 게임중 전화법칙: 끝내기에 오래 걸리는 게임을 할수록 중간에 오는 전화는 여자친구일 가능성이 높다.)

그녀: "오빠 나 오빠 집 앞인데"
나: "응 추운데 일찍 들어가"

폭격 끝내자면 1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1시간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조국의 영공을 사수하는 막중한 책임이 지워져있는데 말이다. 모든 비행시뮬레이션에 비행중 save기능은 없다. 그래서 그 여자친구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신다면, 게임 종류를 불문하고 게임중에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save가 되던 안되던 잽싸게 게임을 멈추고 여자친구를 만나라고 충고해드리는 바이다.

 라디오에서는 농구 좋아하는 미국 아니랄까봐 조종사들이 비행중에 계속 시카고 불스의 농구점수를 중계하고 있다.

 드디어 목표에 다다랐다. 목표점에서 적의 레이다가 발견되었다. 이때를 위해 함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오징어 가면은 쓰지 않았다. 함 값은 받지 않았지만 함을 일단 선사해주고, 정찰사진에 나온 목표지점 상공으로 간다. 육안식별은 안되지만 이곳에는 적의 AAA들이 있을 것이다. (적의 대공기관포를 AAA라고 하는것은 아마도 그들의 사격실력의 학점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클러스터 탄을 정확히 투하한다. 지면에서는 수백 개의 폭탄들이 흩뿌려져 검은 먼지와 함께 불꽃을 일구어내고 파괴되는 적군의 대공포들이 장관이다. 파괴된 포신이 하늘높이 솟구치고 적병들의 피가 캐노피에 묻는다...라고 할 줄 알았는가? 죄송하다. 항공작전에서 자신의 폭탄투하 성공여부는 단지 뒤따라오는 편대원이나 후속정찰기가 확인할 수 있으며, 자신은 한번의 패스에 가진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귀환할 뿐이다. 비행시뮬레이션에서 역시 자신이 떨어뜨린 폭탄이 터지는 장관을 구경할 기회는 없다. 굳이 따진다면 있기는 하지만, 그 순간은 바로 적의 대공화기가 가장 치열한 순간이므로 한가하게 그런 것 구경할 때가 아니다. 30분 비행해와서 폭탄 하나 떨어뜨리는데 구경도 못한다니 억울하다 싶은 분은, 녹화기능을 이용하여 나중에 다시 보시면 된다.

 이탈하는데 계기판에 붉은 글씨로 "Missile Launch"라는 불이 들어온다. "미사일 점심"? 아마도 미사일이 나를 점심으로 먹는다는 소리인 것 같다. 미사일의 회피는 근본적으로 기술이 아니라 확률인데,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확률이 나의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미사일의 점심밥이 되었다. 라디오에서는 윙맨이 격추된 것을 알리는 "노동절 노동절(Mayday Mayday? 5월 1일에 비행 안했는데...), 조종사 피격....등등의 교신이 쏟아진다. 어서 헬기 시뮬레이션 하는 사람이 조종사 구출미션을 빨리 실행해야겠다.   

경우에 따라서 조종사가 탈출하면 권총을 가지고 둠처럼 전투를 벌이는 시뮬레이션도 있으나, 팰콘4.0은 아니다.

 적진 깊숙히에서 격추되었지만 무사히 돌아와 디브리핑에 참여하였다. 그 방법은 생각 외로 간단하다. 이 마법같은 비법은, esc를 누르고 엔드 미션을 클릭하는 것이다.         

 고작 곤충들의 XY좌표를 이동하는 계산만을 하고 있는 CPU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 동안, 비행시뮬레이션을 끝내고 나면 항상 나의 컴퓨터는 내게 인사를 한다.

 "주인님 오늘도 저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해야지. 전략게임 하기 위해 업그레이드 한 사람 못 들어봤고 팰콘4.0 하는데 업그레이드 안한 사람 못들어봤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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