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시뮬레이션 예찬 *

예전에 공군 웹진에 올렸던 글을 조금 편집하였습니다.

Scene 1.
베를린을 폭격하는 B-17 편대를 호위하는 P-51의 조종석. 오른쪽 아래에서 몇 개의 점이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점들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 점들이 B-17을 폭격하러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독일군 Bf-109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와 동시에 무전기에서 대대장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Tally ho, one-o-nine 3o
clock low! Engage!"
(3 하방에 Bf-109 발견! 공격한다!)
그 명령에 우리 P-51 비행대대는 편대 별로 산개하며 독일기 후미를 향해 급강하 공격에 나선다

 

Scene 2.
고도 15천 피트. 속도 500kts. 바그다드 상공. 밤하늘에는 대공포의 예광탄들이 곡선을 그리며 올라오고 있지만 정확하게 우리를 조준하고 있지는 않다. 이라크군 공역으로 넘어오면서 무장 안전스위치를 해제했었다. 레이저 유도폭탄을 조준하기 위한 TGP(Targeting Pod) 화면에 목표인 이라크군 사령부 건물이 정조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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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의 카운터가 0이 됨과 동시에 사령부 건물이 거대한 먼지 덩어리로 변한다.
치열하지만 부정확한 대공포 화망을 뒤로 하면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귀환길에 오른다.

깨어보니 꿈이더라...
가 아니라,
깨어보니 게임이더라.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는 이유.
주관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 웬만한 사람들, 특히 남자들 중 상당수는 비행기, 혹은 군사무기나 전쟁영화 등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그 중 아주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조종사나 군인을 실제 직업으로 갖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의 관심을 고이 접어두고 다른 꿈을 좆아서, 또는 생계를 위해서 각자의 길을 간다. 이처럼 예전에는 비행이나 항공전이라는 것이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었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독자나 관객의 입장으로서 구경하는 소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PC가 발달하면서 그러한 간접 체험의 형태는 가상공간을 통해서 역사적 사실이나 가상의 시나리오에 직접 뛰어드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가장 높은 현실감을 제공하는 수단이 바로 비행 시뮬레이션이다. 비행 시뮬레이션 게이머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미드웨이를 공격한 일본의 기동함대를 막아서던 급강하폭격기 조종사가 되어볼 수도 있고, 북베트남 상공에서 전투공중초계(CAP)를 수행하던 팬텀기 조종사가 되어볼 수도 있다. 혹은 뉴욕에서 이륙해서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울에 도착하는 장거리 노선을 실시간으로 밟아볼 수도 있다. 필자가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트로에 묘사했듯 2차 대전 전투기에 탄 채 전자장비가 아닌 육안으로 적을 발견하고 무전기에 이를 외치면서(요즘에는 헤드셋으로 동료들과 교신을 하면서 온라인으로 비행을 한다.) 적기 쪽으로 기수를 꺾을 때 느껴지는 아드레날린 효과이다.

전투기는 영웅을 만들고, 폭격기는 역사를 만든다.
그리고 게이머는 그들이 만든 역사에 참여한다. (IL-2 1946) 

 물론 PC 비행 시뮬레이션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일종이고 궁극적으로 재미를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다른 장르의 게임들과는 다른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현실세계를 가상으로 "가급적 비슷하게" 구현하고 거기에 참여하는데서 재미를 느낀다는 점이다. 때문에 비행시뮬레이션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대개 영화나 책 등의 다른 간접체험 수단도 상대적으로 많이 즐기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러한 인터렉티브적인 측면 때문에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분야의 시장이나 커뮤니티는 전쟁이나 영화, 사건 같은 외부적인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 이를테면, 91년 걸프전 이후인 90년대 초-중반에는 당시의 PC의 한계로 인해 게임의 품질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음에도 비행 시뮬레이션의 호황기였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치 전쟁을 게임처럼 보이게 만든 걸프전 보도 화면을 통해서 전쟁에 대한 몰입감(적절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지만)이 깊어졌고 그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고 싶어진 사람들의 욕구를 비행시뮬레이션이 간접적으로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공전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아드레날린을 느끼고 전투기 조종석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그럴 듯하게 그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바로 비행시뮬레이션이다.

비행 시뮬레이션은 게이머를 치열한 공중전을 펼치는 전투기 조종석으로 던져 넣는다. (LOMAC)

이러한 간접 체험으로서의 시뮬레이션의 의의는 비단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유서 깊은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시리즈는 게이머에게 복잡하고 기도의 기술을 요하는 현대 항공 교통체계의 구성원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게이머는 실제의 항공 교통 차트를 구해서 그와 동일하거나 흡사한 절차에 따라서 관제를 받으면서 정교하게 재현된 가상의 세계에서 노선을 운항해볼 수 있다.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공군 등이 공개한 자료를 기초로 실제의 전술과 절차를 비슷하게 모방해서 군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최신예 전투기로 가상의 임무를 수행해볼 수 있다. 이렇게 실제 항공기 운영을 재현해보기 위해 실제의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비행 시뮬레이션 게이머들의 부수적인 활동 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게임을 위해서 기본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이 진입장벽을 높이는 한 가지 요인이 되기는 한다. 그 대신 온라인상에서 여러 동호회들이 가상비행단, 가상항공사, 가상비행학교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컨셉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취향에 맞는 곳에서 필요한 수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복잡한 항공 교통체계의 일원이 된다. (FSX)

 비행 시뮬레이션은 이와 같이 단순히 즐기는 것에 게임의 구성을 최적화한 다른 장르의 게임들과는 달리 게이머들에게 실제의 조종사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려주고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인 팰콘4.0의 제작진은 매뉴얼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전 세계의 국가들은 나라의 아들딸들에게 국가와 주권을 지키는 것을 돕기 위해서 목숨을 걸라고 요구한다. 이 제품(팰콘4.0)을 통해서, 우리가 이들에게 하라고 요구하는 일과 이들이 치르는 희생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이는 단지 업체의 홍보성 멘트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도 많은 비행 시뮬레이션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재미삼아 즐기는 일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목숨을 걸고 하는 전문적이고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실제 조종사들에 대해서도 스승 혹은 선배로 여기고 그들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게이머들의 태도에 군이나 항공업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연례 공군참모총장배 비행시뮬레이션 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통해서 지속적인 교류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공군참모총장이 PC에서 최신 전투기로 비행 시뮬레이션 게이머들과 함께 편대를 이루고 지휘비행을 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전 세계를 자유롭게 날 수도 있다. (FSX)

비행시뮬레이션 장비.

레이싱 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게임들에서는 키보드나 마우스 이외의 다른 입력장치가 필요 없는데 비해서, 비행시뮬레이션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조종장비를 필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론적인 기능상으로는 키보드나 마우스 조작도 가능하게 되어있지만, 키보드나 마우스로는 실제의 비행을 모방한 정교한 비행이나 복잡한 전투기동을 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그리고 넓은 가상의 공간을 날아다니는 비행시뮬레이션의 특성상, 그리고 시각적인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게임에서 멋진 그래픽 옵션을 걸고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좋은 개인 시스템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서 용돈이 빠듯한 학생층에서는 입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평균연령대가 다른 PC 게임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일단 초기 투자가 이루어지면 그 후의 유지비는 그렇게 부담이 많지 않은 편이다. 야외 취미는 밖으로 움직이는데만도 기본비용이 들고 혹은 RC와 같은 경우 실물 장비 구입과 유지에 많은 돈이 계속 들지만 비행 시뮬레이션에는 그런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고, 또 일부 취미의 경우에는 한번 장비에 눈뜨기 시작하면 장비 구입에 천만원대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행 시뮬레이션은 상대적으로 지출할 소재 자체가 별로 없다.

PC를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이 꾸준히 들지만 PC는 비행시뮬레이션에만 사용하는 장비가 아니라 현대의 실생활에서 폭넓게 쓰이는 가전제품이므로 비행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하기는 적절치 않을 것 같다. 전적으로 비행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주로 게임 구입비와 조종장비를 구입하는 비용 정도이다. 비행 시뮬레이션은 게임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10년 정도 가는 게임도 적지 않다) 게임 구입비 부담도 적은 편이고, 조종장비도 상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다른 고가 취미들에 비하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최소한의 필수 조종 기능을 제공하는 저가형 스틱은 5만원선 아래로 구입할 수 있다. 또 복잡한 조종 기능을 갖춘 중가형은 대체로 10~20만원 사이이고, 실제 비행기의 조종스틱 디자인을 모방하고 금속 재질로 제작한 최상위급 조종장비라도 40만원 가량이면 구입할 수 있다. 그밖에 러더 페달이나 데이터 입력장치 등을 옵션으로 구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필요한 기능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넓은 편이다. 옛날에는 한 달 정도면 못쓰게 되는 내구성이 형편없는 제품이 싸게 팔리고 했지만, 요즘에는 주로 기능 위주로 가격대의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제품 품질은 다들 갖추었기 때문에 저가형 스틱도 잘만 관리하면 오래 쓸 수 있다.

저가형 스틱

중가형 스틱

고가형 스틱

러더 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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