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버와 미그의 대결: 미그 앨리 (MiG Alley) *

* 월간항공 1013년 6월호 원고입니다.

 

W. 하비슨(Harbison) 소령은 한국전 당시 우리나라 공군의 전투발전단에 해당하는 영국공군 중앙전투기단(Central Fighter Establishment)의 일원으로서 6.25 당시 19522~5월의 4개월간 한반도의 미군 전투비행대대에서 파견 근무를 한 후 공중전 양상 전반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의 주요한 내용들을 재구성하여 역사적인 공중전역의 최전선에서 싸운 제트 전투 조종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전쟁 중 유엔군 측 시점에서 작성된 자료이므로 전후에 추가로 알려진 사실들에 비해서 객관성은 부족할 수도 있지만 당시 일선 조종사들의 시각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다.
(보고서 원문 전문은 여기로)


보고서 원본 커버

1952년 초반 당시, 한반도에서는 김포에 주둔하는 제4전투요격비행단과 수원에 주둔하는 제51전투요격비행단 2개의 비행단이 F-86 세이버 전투기를 운용했다. 4비행단은 3, 51비행단은 2개의 비행대대로 구성되었고, 51비행단은 후에 1개 대대가 추가되어 3개 대대가 되었다. 각 비행대대는 25대를 보유했다. 따라서 한반도 전체에 배치된 F-86의 총 전력은 125~150대 가량이었다. 한편 공산군 측은 순환 배치 전력을 모두 합쳐 850대 가량의 MiG-15를 보유했으며 그 중 350대 가량이 일선 전력으로서 안둥(安東 - 현 단둥), 펑청(鳳城), 다구산(大孤山), 대동구(大東溝 - 현 둥강) 기지에 배치되었다.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비행대대는 통상 5개 편대로 구성되었고, 보고서 작성자인 하비슨 소령이 배속된 대대의 경우에는 25대의 기체에 44명의 조종사가 배치되었다. 전대와 비행단 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조종장교들도 대대들에 배속되어 비행을 했고, 대대장과 비행단장등의 고위 지휘관들도 전투 출격에 나섰다. 김포의 기지사령관은 여러 대의 적기 격추 전과를 실제로 갖고 있기도 했다. 일선 대대의 조종사들은 휴일 없이 매일 근무를 했으므로 적절한 휴식을 위해 6주간 근무한 후에는 3일간의 일본 휴가를 받았다. 이 휴가에는 일본까지의 왕복에 필요한 2일간이 추가되었고, 복귀한 후에는 3일간의 복귀 적응 기간을 거쳤다.

전입
가장 처음 한반도에 배치된 F-86 전대인 제4전투요격전대는 신입 조종사를 대상으로 클로버 칼리지(Clobber Collage)라는 전투준비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2일간의 생환훈련과 전투비행훈련의 2단계 구분되었다. 조종사들은 URC-4 비상용 무전기를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생환 장비로 여기고 항상 몸에 휴대했다. 2단계 훈련에서는 한두 차례의 솔로 관숙 비행, 그리고 2~8기 단위의 편대 비행이 이루어졌다. 기본 훈련을 마치면 우군 공군의 폭격이 허용되는 기준선인 폭격기선(bomb line)까지 정찰 비행을 나갔다. 이 임무에서는 적기와 만났을 때 교전을 의도적으로 피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에서 출격 경험을 쌓으면서 리더가 일선 지형 숙지 등의 교육을 실시했다.

4전투요격전대 조종사들의 평균 나이는 29세였고, 적기를 5대 이상 격추한 에이스조종사들의 평균 나이는 30.5세였다. 조종사들의 평균 비행 경력은 1,100시간이었다. 제트 전투기의 전투는 높은 속도에서 이루어지므로 교전을 회피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미군은 임무에 대한 열정과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성향을 전투조종사로서의 중요한 자질로 여겼고, 나이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차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전투조종사들은 이러한 적극성을 갖춘 경우가 많았고 이들이 다른 조종사들을 이끌었다. 때로는 세이버 2기 편대가 16대의 미그기 편대에게 공격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한국전의 일부라는 것을 잊고 마치 중세의 마상창시합에 나간 기사들처럼 자신들만의 시합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세상의 이목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이들 조종사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열정적인 조종사들은 거의 영웅 대접 수준의 명예와 군에서의 장래를 사실상 보장하는 에이스(Ace 적기 5대 격추 조종사)”가 되기를 열망했다. 다만 2년 기간으로 소집된 예비역 조종사들은 그러한 명예보다는 일선 근무 조건인 100회의 출격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성향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그리고 폭격기 조종사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편한 임무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보았기에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전반적으로는 미군의 세이버 조종사들이 미그 조종사들에 비해 리더들의 경험이 많고, 기량이 우수하고, 적극적이고, 항공기를 신뢰했고, 전술적으로 우세했다.

비행 임무
전투 임무는 브리핑으로 시작된다. 브리핑에서는 자세한 지상 상황, 폭격기선 변경, 암호, 그 날의 지상 대공포판과 신호탄 색상을 공지했다. 그리고 임무에는 임무 번호가 붙었다. 임무 브리핑의 예는 이렇다.

Mission No. 0403, 36 F.86s, callsign JOHN to cover 30 F.80s callsign MIDAS and 25 F.51s callsign FILTER straff the MSR (Main Supply Route) East of SINANJU with a T.O.T. of 1530 hours.
[
임무 번호 0403, 콜사인 JOHNF-86 36대로 콜사인 MIDASF-80 30대 및 콜사인 FOILTERF-51 25대가 신안주 동쪽 주보급로를 공격하는 임무를 엄호. 표적 도착시각 1530.]

주변의 우군 공중 전력과 구조전력 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브리핑이 되었다. 시정, 매우 중요한 비행운 고도, 태양의 위치를 포함한 기상 예보도 제공되었다. 작전 시간에 따라서는 태양이 시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에 선글라스나 바이저가 필요했다. 또한 모든 브리핑에서 풍향/풍속 정보도 제공되었다. 겨울에는 북서풍, 여름에는 남서풍이 불었는데 고고도에서는 풍속이 100노트를 넘고 150노트에 이를 때도 있어서, 겨울바람을 받으면 적은 연료로도 압록강 지역에서 중부 지역의 기지까지 쉽게 귀환할 수 있었다. 바다나 섬 쪽에 비상탈출을 할 경우를 대비해서도 풍향/풍속 정보가 필요했고, 조류 상태도 알고 있어야 했다.

지정된 엔진 시동 시각에 정확히 엔진을 시동하고 바로 택싱을 시작했다. 전시의 택싱은 평시보다 더 빠르게 이루어졌다. 김포 비행장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는 뒷바람이 15노트를 넘지 않는 한은 바람이 뒤에서 불더라도 항상 320 방향 활주로를 사용해서 전선으로 곧장 향할 수 있도록 했다. 작전 고도에 이를 때까지 마하 0.75의 속도로 상승하고, 리더는 대원들이 정위치할 때까지 통상 92%안팎의 출력으로 비행해서 대원들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여유를 주었다.

4기 단위 편대로 작전을 할 때는 편대 간 이륙 간격을 3분을 두었고, 따라서 한 개 비행단의 3개 대대가 각기 16대의 4개 편대 전력으로 출격을 한다면 이륙에 걸리는 시간이 33분이 되었다. 만약 적과의 교전이 없다면 같은 간격을 유지한 채 귀환을 해서 비행장의 착륙 트래픽이 과중해지지 않도록 했다.

작전 환경
한국전에서 미군은 항상 리더-윙맨(leader-wingman)으로 구성되는 2기 분대를 최소 기본 단위로 해서 전투에 임했다. 전입한 조종사는 계급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최소한 10, 통상 15회의 임무를 No.2, 즉 윙맨 위치에서 비행해야 했다. 일부 대대에서는 분대장을 맡기 전에 No.2 위치에서 최소한 2회의 전투 경험을 갖기를 요구했다. 윙맨은 높은 고도와 속도에서 엄호기 위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리더의 안전을 책임지는 어려운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이와 같이 윙맨의 엄호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만약 편대가 분리되어 홀로 떨어진 전투기는 무조건 전장에서 벗어나라는 지침이 있었다. 단 편대를 다시 찾는다면 전장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있었다.

F-86은 통상 25,000~47,000 ft, 그리고 대부분은 30,000~42,000 ft에서 주로 폭격기나 전폭기의 엄호 임무를 수행했다. 35,000 ft 이상의 고고도에서는 엔진 배기구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출력을 줄여야 하고, 스로틀을 조심해서 조금만 움직여야 했다. 출력이 그대로일 때 속도가 15노트 이상 떨어져도 역시 배기구 온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고고도에서는 가속이 느리기 때문에 선회를 하면서 속도가 15노트만 떨어져도 편대에서 위치를 다시 회복하는데 5분이 걸렸다.

F-86은 작전 지역에서 MiG-15에 비해 상당한 불리함을 안고 싸웠다. F-86은 기지에서 수백 km 떨어진 적의 상공에서 싸웠기 때문에 지상관제 정보를 많이 활용할 수가 없었다.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예를 들면 "Bandit flight are in the ANTUNG area(적 편대가 안둥 지역에 있다)" 혹은 "BANDITS flights two are 20 miles South East of ANJU(2개 편대가 안주 20마일 동남쪽에 있다)"와 같이 간단한 2차원 좌표로만 제공되었고, 정보가 전달되는데 시간 지연이 있었다. 반면 MiG-15는 기지와 가까운 자신들의 영공에서 싸웠고, 만주가 유엔군에게 불가침구역이라는 점을 활용할 수 있었으며, 방공 레이더를 이용하는 정확하고 세밀한 지상관제를 받았다. 그에 덧붙여서 미그기들은 고도 우위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벌이거나 중지할 수 있었다. 반면 세이버기들은 미그기가 공격해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때문에 세이버기들은 고도의 불리성을 감수하는 대신 높은 속도를 유지함으로써 공격해오는 미그기들에게 대응기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F-86기들은 주변 지역에 적기가 나타났다는 경고를 받으면 연료탱크를 투하하고 전투준비에 임했다. 연료탱크가 투하되지 않고 매달려 있는 경우에는 기동성이 둔화되기 때문에 즉시 전장을 벗어나야 했다. 연료탱크는 임무 범위는 늘려주었지만 미국에서 제작해서 한국으로 보내는 총 비용이 많이 들었다. 수송 비용을 포함한 1대분 연료탱크 2개의 총 비용은 1,600달러였고, 김포 기지에서는 한 달에 연료탱크를 투하해서 버리는 비용만 1백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이렇게 조달이 힘들고 소모량은 많았기 때문에 때로는 연료탱크가 부족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원래 양 날개에 한 쌍으로 달아야 하는 연료탱크를 한쪽에만 달고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압록강 지역에서 기지로 귀환하려면 김포까지는 1,500파운드(250갤런), 수원까지는 1,800파운드(300갤런)의 연료가 남았을 때 귀환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연료는 순항 고도와 속도로 연료를 절약하면서 귀환할 때의 기준이었고, 만약 적기가 추격을 해온다면 대응 기동을 하기 위해 엔진 출력을 높여야 했으므로 연료가 부족해져 기지까지 귀환을 못 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이와 같은 경우나 그 밖의 다른 이유들로 인해 엔진이 꺼진 채로 활공을 해서 귀환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고, 김포 비행장의 경우 평균적으로 1주일에 한차례정도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 연료가 부족할 때의 한 가지 요령은, 귀환하는 동안은 연료를 남겨둔 채로 엔진을 끄고 가급적 연료를 남겨둔 채로 기지 부근까지 활공을 해서 온 후에 다시 엔진을 켜서 나머지 연료를 가지고 착륙에 필요한 비행 조종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작전 환경이 거칠고 활주로 시설도 불충분했다. 수원과 김포에서는 활주로 폭의 절반만을 사용해서 작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에서 F-86의 사고율은 이례적으로 낮았고 심지어 미국 본토보다도 낮았다. 부품을 구하기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일선 정비 인력 덕분에 정비 상태도 훌륭해서, 25대를 보유한 1개 대대가 항상 18~20대를 작전 상태로 유지했다. 그리고 임무를 마치고 온 항공기의 연료와 무장을 보충하고 재이륙을 시키는 작업을 5명이 할 경우 1대는 17, 12대는 60분이 걸렸다. 정비 기장 제도는 효과적이라고 평가되었다. 극단적인 전투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제4전투요격전대의 경우 엔진 수명이 평균 82시간으로 크게 줄었다.

전투
MiG-15F-86에 비해 모든 고도에서 상승력이 좋았다. 30,000 ft 이상의 고도에서는 미그기의 최대속도가 더 높았고, 상승한도도 최소한 5,000 ft 더 높았다. 반면 30,000 ft 이하에서는 F-86이 수평선회나 강하 선회 능력이 더 좋았다. 그리고 지속적인 강하에서도 세이버가 우세했다. 20,000 ft 밑에서는 두 비행기의 최대 속도가 거의 비슷했다.

F-86은 주로 폭격기나 전투폭격기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폭격 전력들이 압록강 중하류에 인접한 한반도 북서부 지역의 보급로 차단 임무를 많이 수행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공중전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고 그로 인해 이 지역이 미그 앨리(Mig Alley)라고 불리게 되었다.


미그 앨리

F-86RF-80 정찰기 호위 임무도 자주 맡았다. 이 임무는 대개 대대급의 세이버기들이 수행했다. 처음에는 각 기종들이 각자 이륙해서 정해진 지점에서 합류하는 방법을 썼으나 기상조건 상 합류가 힘들면 임무를 취소해야 했기 때문에 같은 기지에서 함께 이륙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호위를 할 때는 RF-80의 속도가 느려 호위기들이 갈지자 비행을 해야 했고 이는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엄호 덕분에 RF-80은 적기에게 격추되는 일이 드물었다. 반면 대공포는 정찰기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위협적인 존재였다.

미그기들은 보다 많은 조종사들에게 전투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 부대들을 평균 1달 정도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순환 배치했다. 그래서 이러한 순환 주기에 따라서 전투력이 달라졌다. 순환배치 초반에는 공격을 하지 않고 고고도에서 F-86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하다가 귀환을 했으나, 시기가 흐르면서 그 중 몇 대가 일격이탈 공격을 시도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중에는 대부분의 적기들이 공격에 나섰다. 그러다가 부대가 교체되면 다시 처음의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와 같이 교육 목적으로 신참 부대들을 순환 배치하는 것을 두고 미군은 안둥 대학교(Antung University)라고 표현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점차 전술이 발전하고 소단위 편대 비행이나 전술 구사 능력이 향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미그 조종사들은 실력이 고르지 못하고 극단적인 두 부류로 나뉘었다. 적극적으로 전투를 걸어오고 고난이도의 전투기동을 소화할 수 있는 소수의 조종사들이 있는가 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대규모 편대를 유지하기에도 버거워 보였고 어려운 전투기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극단적인 경우 피격을 당하지 않았는데도 전투를 포기하고 비행기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해버리거나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사격을 하는 경우도 목격될 정도였고, 고고도에 있는 미그기들이 저고도에서 위험에 빠진 자신들의 동료기들을 구하러 내려오지 않고 보고만 있는 경우도 많았다. 앞에 말한 소수의 뛰어난 조종사들은 교관이거나 러시아 조종사라고 짐작되었는데 미군은 이들을 혼초(Honcho; ‘반장(班長)’의 일본 발음인 ‘hanchō’에서 유래한 말)라고 불렀다.

보통의 경우 미그기들은 항상 유엔군기보다 많은 숫자로 기지에서 이륙해서 압록강 이북에서 유엔군이 트레인(train)이라고 부른 대규모 종대 대형을 만들어 압록강 중~하류 지역에서 강을 건넜다. 세이버가 미그기를 육안으로 발견하는 단서들은 만주의 비행장들에서 이륙하는 미그기들의 흙먼지, 비행운, 미그기 편대들이 전투에 돌입하기 위해 떨어뜨린 연료탱크의 반짝임이나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연료 등이었다. 일부 조종사는 쌍안경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그기들이 늘 동일한 참조점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를 적을 찾는 단서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고도에서는 가시거리가 줄어서 육안 색적이 더 힘들어졌다. 그리고 제트기 간의 전투는 2차대전에 비해 더 넓어진 범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육안 관측이 더 곤란했다.

세이버기들은 가능한 경우 강을 건너오는 미그기 대열의 후미를 공격하려 시도하기도 했는데, 미그기 집단은 후미로 갈수록 대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떨어져 대형이 흩어지고 늘어졌다. 그러다 보니 선두 집단의 낙오한 후미인지 아니면 후속 집단의 선두인지를 정확히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쌍방의 일부 기체들이 비행운이 생기는 고도 아래 매복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경우에는 상대들이 낮은 고도에 있는 표적을 더 쉽게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효과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전술을 쓰는 경우든 비행운은 항상 매우 중요한 전술적 변수로서 고려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를 좀 더 잘 협공하기 위해서 전력을 편대나 분대 단위로 분산해서 전선에 투입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경우 전장이 복잡해지므로 적아식별이 힘든 문제가 생겼다. 오인 공격을 받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회피기동을 해야 했고 이는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 때문에 미군의 경우는 대대급, 공산군은 그 이상의 대규모 편대로 전장에 진입해서 교전에 들어가는 형태가 더 보편적이었다. 단 일단 교전이 시작되고 나면 전투는 편대나 분대 단위의 작은 싸움들로 나뉘었다. 이런 작은 단위의 교전에서는 더 이상 대대장이나 비행단장과 같은 상급 지휘관이 컨트롤을 할 수 없었고 편대장이나 분대장이 교전 상황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었다.

미군은 통상 2차대전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4기 핑거 포(Finger-four) 대형을 사용했으며, 이 경우 1번기와 3번기가 적을 공격하는 공격기 역할이 되고 2번기와 4번기는 각각 1, 3번기를 엄호하는 윙맨이 되었다. 편대 대형이 2차대전과 같았을 뿐만 아니라, 제트기 간의 공중전에서도 도그파이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대신 더 높은 속도에서 교전이 벌어졌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더 높은 G에 노출되었다. 그래서 조종사가 높은 G를 잘 버티는 능력도 공중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데, 유엔군은 G슈트를 사용했고 훈련을 적절히 받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유리하다고 여겨졌고 미그 조종사들은 격렬한 기동을 오래 지속하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저고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세이버기의 성능 열세가 적어졌다는 점 때문에 미군 조종사들은 미그기에게 꼬리를 물리게 되면 깊은 강하 선회를 하는 스파이럴 다이브(Spiral Dive) 기동을 유용한 최후방어기동으로서 사용했다.


핑거 포 대형

무장
전반적으로 전투기 간 전투에서는 F-86의 무장이 우세하다고 판단되었다. F-8612.7mm 기관총은 발사율이 높아서 고속의 전투에서 높은 각도로 지나가는 적기를 명중시키는데 유리했다. 반면 미그기의 23mm 37mm 기관포는 발사율이 낮고 탄속이 느려서 빠르게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기 힘들었다. 그리고 탄속이 다른 2가지 무장을 사용하다보니 탄도가 다른 것도 문제였다. 심지어 23mm탄은 표적의 위로, 37mm탄은 아래로 흩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조종사의 훈련 수준 차이도 하나의 요소였다. 실제로 4만 피트 이상에서 적기에게 격추되는 F-86은 거의 없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F-86의 기관총은 파괴력이 부족하고 사거리가 짧다는 조종사들의 평가가 있었고, 미그기의 강력한 무장은 느리고 크고 급기동을 하지 않는 폭격기를 공격할 때는 큰 효과를 발휘했다. 때문에 미군 조종사들은 발사속도와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더 파괴력 있고 사거리가 긴 무장을 원했다. 고고도에서 6정의 12.7mm 기관총을 모두 사격할 경우에는 그 반동으로 인해 속도가 10~15노트 떨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고고도에서는 속도 회복이 힘들었기 때문에 이는 전투에 걸림돌이 되는 사항이었다. 미군은 매 10일마다 지상에서 기관총 6정의 조준점을 보정했고 이 덕분에 높은 명중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F-86은 레이더 거리측정 조준기인 A1-CM, 그리고 프로펠러 전투기에서부터 사용하던 자이로식 조준기인 Mk.18 이렇게 2가지의 조준기를 사용했다. 세이버 기체들 중의 장비 비율은 A1-CMMk.18이 약 7:3 정도였다. A1-CM은 이론상으로는 우수했지만 구조가 복잡해서 신뢰성과 정비성이 떨어지고 레이더 계측이 부정확했기 때문에 일선에서 크게 신뢰받지는 못했다. 단 장거리의 사격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리라 여겨졌다. Mk.18은 자동 거리 측정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더 구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부 조종사들은 신뢰성이 더 높다는 이유로 이 조준기를 더 선호했고, 일반적인 추적 기동에서는 쓸 만했다.

F-86은 철갑탄과 소이탄을 1:1 비율로, 그리고 매 5발의 탄약마다 예광탄을 한 발씩 넣어서 사용했다. 예광탄은 적기을 위협해서 선회전으로 들어오게끔 하는 효과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조준기가 완전히 고장난 상황에서 예광탄만을 참조해서 적기를 명중시키기도 했다. 소이탄은 고고도에서 적기에게 불을 내는 효과를 내지 못했는데 아마도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였다.

맺음

F-86은 든든하고 믿을 만한 항공기였고 조종사들이 매우 신뢰했다. MiG-15도 기술적으로 우수했지만 세이버 조종사들은 공중전에서 미그에 비해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이는 적극적이고, 전술적인 판단력이 우수하고, F-86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우수한 인적 자원의 덕분이었다.

옮긴이의 논평

6.25의 공중전에서 미그기는 상승력 우위, 만주 불가침 구역, 수적 우세, GCI 도움 등의 여러가지 유리함을 안고 싸웠다. 그렇지만 결과적인 공중전 손실비는 세이버에게 크게 밀린다. 6.25 참전 소련 조종사들의 전과를 보면 의아한 점이 생기는데, 주요 소련 조종사들의 전과들만 모으면 UN공군이 공대공에서 손실한 거의 전량과 맞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 원문에 묘사된 공산군 조종사에 대한 평가를 보니 극소수의 혼초들이 대부분의 공중전과를 독차지한 사실이 상당히 이해가 된다. 나머지 많은 조종사들은 서방의 기준에서 일선 전투조종사라고 부르기 힘든 정도였다는 인상을 받는다. 제트기에서 기본 이착륙과 편대 유지 능력을 훈련하는데만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당시 우리 공군은 일선 공대공 전투에 나가지 않고 F-51 전투기를 타고 지상 지원임무만 수행했고 북한 공군은 미그기를 타고 전투에 나갔다는 점이 때로는 미묘한 자존심 문제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공이나 북한 미그 파일럿들의 수준이 그 정도였다면 우리 파일럿들이 자존심 상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종사들은 부여받은 임무가 제한적이기는 했으나 주어진 임무 범위 안에서는 제 역할을 온전히 다 했으니 말이다. 우리 쪽에서는 현실적으로 능력이 되는 만큼의 임무를 부여받았고, 공산군 측은 최소한의 능력이 안 되는 조종사들을 무책임하게 전투에 내몰아서 귀중한 인명과 항공기 손실을 감수했던 정책상의 차이였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공산군은 원래 지상전투에서도 숙달된 전투원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훈련을 잘 받지 못한 병력들이라도 전투에 대량으로 투입해서 사람의 목숨으로 전황을 유지해나가는 혁명군 성향이 정규군에서도 상당부분 이어지는데, 그런 근본적인 마인드가 전문 기술군인 공군 운용에도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 세이버 vs 미그 성능 우열 표

기동성

0~2ft

2~3ft

3~4ft

4만 이상

상승률

-1

+2

+3

+4

수평속도

-1

0

+1

+2

롤속도

-1

0

0

0

급강하 *

-2

-2

-2

-2

얕은 강하 **

0

0

0

0

선회반경

-1

-1

+1

+2

상승능력

+1

+2

+3

+4

상승고도

-

-

-

+3

“G” 한계

0

0

0

0

가속

+2

+2

+2

+3

감속

-1

-1

-1

-1

속도 제한

0

0

0

0

*: 마하 0.95 이상
**: 마하 0.95 미만

범례 (표시 기준: MiG-15)
-3:
결정적 열세
-2: 보통 열세
-1: 약간 열세
0: 대등
+1: 약간 우세
+2: 제한적 우세
+3: 보통 우세
+4: 완벽한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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