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15SE 사일런트 이글 조종석 시뮬레이터 탑승기 *

* 월간항공 2011년 11월호 원고입니다

예쁜 미스코리아 출신 모델이 광고하는 기능성 운동화를 신고 매일같이 남산 팔각정에 오르는 여유로운 중구민의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월간항공 편집장님이 흥미로운 제안을 해오셨다. F-15SE 사일런트 이글(Silent Eagle)의 조종석 시뮬레이터 공개 행사가 있는데 보잉 측과 협의를 해둘 터이니 비행시뮬레이션 테크니션으로서 탑승 체험을 해보고 원고를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한 제안이라 흔쾌히 수락했다. 마침 장소도 필자의 동네인 신라호텔이었다. 신라호텔 길 건너에 20년 넘게 살면서 남산에 올라갈 때 정문 앞으로 지나다니지만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 구경하게 생겼다.

필자는 항공분야 비전공 출신으로 독학과 PC 시뮬레이션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 분야 한쪽 귀퉁이에서 재미난 일들을 종종 맡아서 해오고 있다. 물론 전문성을 가진 테크니션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비전공 출신이다 보니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는 별개로 심적인 긴장은 항상 하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세계적인 방산 대기업인 보잉이 국내 최고 수준의 호텔인 신라호텔에서 하는 행사라니, 필자 입장에서는 괜시리 더 긴장이 되는 느낌이었다. 자신감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장소에 맞는 좋은 옷이라는 생각에 관혼상제에나 입는 깨끗한 옷을 모처럼 꺼내 입기로 했다. 그런데 행사 당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백수에게 약속이 생기면 비가 오거나 약속이 겹친다는 머피의 법칙이 있는데, 재택업무를 하는 사회인에게도 머피 선생은 자비가 없었다. 흠뻑 젖을 정도의 폭우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행사장 입구 바로 앞의 데스크탑에는 한국공군 마크를 날개에 그리고 수직꼬리날개가 밖으로 경사져 있어 쩍벌남이란 별명이 어울릴 것 같은 F-15SE 전투기가 독도를 공격하고 있는 국적불명의 전투함(어느 나라 소속인지 표시가 없었고 필자도 절대로 짐작할 수가 없음)과 역시 우리 영공을 침범해온 국적불명의 MiG-29(역시 어느 나라 전투기인지 결코 짐작 안 됨)들을 격추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그린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프리젠테이션에서는 F-15SE의 개량 사항에 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고, 그 다음 AESA 레이더에 관한 소개가 있었다. 기체 개량 사항에 대한 내용들은 대개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들인 것 같았다. 주요한 개량 사항들을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 레이더단면적(RCS) 감소 조치
  - 내부 무기탑재실
  - 경사형 수직꼬리날개
*
무기 장착소 증가
*
능동전자주사배열(AESA) 레이더
*
플라이바이와이어(FBW) 전자식 비행제어시스템
*
디지털전자전장비(DEWS)
*
조종석의 일체형 대형 디스플레이

그 밖에 한국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F-15K와의 유사성을 통한 이점, 입증된 기체이며 적시 도입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FX 3차 사업에서 다른 경쟁기종들에 대한 장점으로 소개가 되었다. 일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때는 조금 늦게 입장한 탓에 뒤에 서서 보고 있었는데, AESA 레이더를 소개할 때는 흥미로운 내용에 이끌려 조용히 앞으로 가서 좌석에 앉아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다. AESA 레이더가 기술적으로 우수하다는 것 자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고, 보잉 측에서 설명하는 바를 간단하게 표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기계식(MSA) 레이더

전자식(AESA) 레이더

전원

중앙집중식 송신기

분산형 송수신 모듈

안테나 탐색 기능

안테나 빔의 방향이 기계적으로 회전

위상변환기(Phase Shifter)로 주사 방향 조종

(Beam) 민첩성

제한적

거의 순간적

빔 형태

고정

가변적

신뢰성

좋음

향상됨

탐지범위 및 해상도

좋음

향상됨

 

조종사의 입장에서라면 기술적인 부분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전술적 이점으로 연결되는지가 더 와 닿는 부분일 텐데 그 부분에 대한 설명도 있어 흥미로웠다. 후에 시뮬레이터에서 전술적 운용을 직접 해볼 수 있었다.

기계식 레이더와 AESA 레이더의 능력의 차이를 필자 나름대로 정리해서 비유해보자면 이렇다. 기존의 기계식 레이더는 대략 종이로 된 문지방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반대편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반대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눈에 보기가 힘들다. 한군데만 보고 있자면 전체에서 무슨 일어나는지를 잘 모르고, 돌아가면서 보자니 어느 한 부분을 집중해서 볼 수가 없다. 반면 AESA 레이더는 아파트 문의 도어뷰로 밖을 내다보는 정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격차를 비유하는 것임을 다시금 밝힌다)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거의 한 눈에 알 수 있다. 따라서 AESA 레이더를 사용하는 조종사는 전체적인 상황인식을 더 잘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유리하게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이 먼저 시뮬레이터에 앉아보면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미 공군의 베테랑 F-15 전방석 조종사와 후방석 무기관제사(WSO) 출신인 보잉 소속의 시험비행조종사 2명이 각각 전, 후방석의 안내를 맡았다. 필자는 별도로 충분히 시간을 갖고 탑승을 해보기로 했으므로 다른 기자들이 체험을 하고 있는 동안 어지간해서는 내 돈 내고 먹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은 오찬을 한 후, 다른 기자들이 대부분 철수한 후에 본격적으로 시뮬레이터를 탑승했다. 시험비행조종사들과 반갑게 인사하면서 후방석과 전방석의 조종석에 차례로 앉아보았다. 후방석에는 항공기 기재취급을 위한 버튼들이 붙어있는 스틱이 좌우 양측에 각각 하나씩 있고, 가랑이 사이에는 F-4 스틱 형태의 비행 조종용 센터 스틱이 있었다. 전방에는 통상의 F-15 센터 스틱 형태의 HOTAS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일런트 이글은 전후방 모두 조종간이 센터 스틱 형태이지만 FBW 전자식 비행제어시스템을 사용한다. 그래서 안내 조종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종특성이 기존의 F-15계열기 보다는 역시 FBW 시스템을 사용하는 F-16과 더 비슷하고, 항공기의 움직임이 딱딱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F-15SE 조종석 시뮬레이터 (출처: flickr)

SE 버전 조종석에서는 기존의 F-15에서 사용하던 여러 개의 다기능디스플레이(MFD)가 한 개의 대형 터치스크린 방식 디스플레이로 바뀐 것이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었다. 이 대형 디스플레이는 여러 개의 정보 구획으로 분할되어 각각의 구획이 기존의 MFD 한 개에 해당하는 기능을 한다. 이 정보 구획들은 윈도우즈의 창처럼 필요에 따라 위치를 옮기거나 그 중 특정한 구획을 확대해서 시현할 수도 있다. 전방석과 후방석이 동일한 대형 스크린으로 되어있었다. 기존의 F-15는 전, 후방에 각각 제한된 수의 MFD들을 가지고 있다. 반면 F-15SE의 일체형 대형 화면은 통상 8개의 MFD에 해당하는 창을 기본적으로 띄울 수 있기 때문에 두 명의 승무원이 모두 기존의 F-15 조종석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또한 기존의 MFD도 내용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있지만 SE의 대형 패널 스크린은 각 창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조정해가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MFD에는 여러 개의 MFD들이 각각 이를 컨트롤하는 물리 버튼을 가지고 있어 MFD 버튼들이 조종석의 상당한 공간을 차지했다. 하지만 터치스크린 방식에서는 그러한 공간 낭비가 적고 따라서 정보를 시현하는 전체 면적을 그만큼 키울 수 있었을 것 같다.

단 정보의 시현 양과 방식은 달라졌지만 각 창에 시현되는 내용 자체는 기존의 MFD들에서와 큰 차이가 없었다. 때문에 실제 임무에서 고강도의 위협 상황에서 높은 작업 부담을 받고 있을 때 일체형 터치스크린이라는 점만으로 기존의 조종석에 비해 어느 정도 편의성이 제공될지는 시뮬레이션의 짧은 체험만으로는 명확하게 예상해서 말하기가 다소 힘들다. 아마도 실제 임무에서는 스크린이 일체형이라는 것보다는 각종 항전장비들을 통합 운용하는 시스템인 디지털전자전장비(DEWS)가 조종사에게 주는 편의성이 더 클 것 같다. 기본 화면 분할 방식은 윗부분에 큰 창 3개와 아래 부분에 작은 크기의 창 5개로 나뉘는데, 큰 화면 3개는 컨트롤러로 직접 제어할 수 있는 화면들을 놓고 레이더, 타게팅 포드(TGP)와 같은 센서 정보나 다른 중요한 정보를 띄워놓는다. 그리고 아래의 작은 창들은 대개 기존의 아날로그 계기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보조적인 정보들 띄워놓는 용도로 쓰게 되는 것 같다.

조종석 디스플레이와 전방시현장치(HUD)에 표시되는 정보와 기호들은 미제 비행기들이 원래 다 비슷하다시피 전체적으로 F-16이나 기존의 F-15 모델들과 비슷해 보였다. 진짜 비행기를 타본 적은 없는 필자의 입장에서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F-15 F-16을 세밀하게 묘사한 PC 비행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와 대동소이했다. 그래서 각 화면들에 대해서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이 화면의 정보들을 대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PC 비행시뮬레이션이 진짜 비행기와 결코 같다고 말하면 안 될 것이다. 다만 필자는 PC 비행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진짜 전투기 조종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책이나 영화에 비해서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터렉티브한 간접 체험을 위해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PC 시뮬레이션의 경험 덕분에 진짜 비행기의 시뮬레이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조종석 시뮬레이터 자체도 역시 진짜 비행기와는 큰 차이가 있고 시뮬레이터에서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일 것임도 명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 시뮬레이터를 타보고 F-15SE의 비행특성을 장황하게 평가하려고 시도한다면 넌센스일 것이다. 아마도 실물과 비슷한 조종석 모형에 앉아서 PC 모니터가 아닌 180도 폭의 대형 화면을 본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 조종석 시뮬레이터는 진짜 전투기보다는 오히려 PC 시뮬레이션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CPU가 열심히 고생해서 뿌려주는 화면을 보며 조종을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처음 후방석에 탔을 때는 주로 기본적인 화면 시현 방식 설명을 듣고 레이더와 TGP 컨트롤을 해보았다. 후방석에서는 센서를 컨트롤하고, 무장 발사는 후방석에서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보통 전방석 조종사가 한다. 안내 조종사의 조언을 받으며 TGP로 어떤 건물을 처음 타게팅하고 나서 그 표적을 레이저 유도폭탄으로 박살을 내보고 싶다고 했을 때 전방석에서는 착륙을 하고 있어 우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다시 전방석 쪽과 말을 맞추며 표적을 조준해서 폭탄을 투하해보았다. 그리고 공대공 모드에서 4대의 적기를 락온하고 전방석이 공격할 수 있도록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전방석으로 옮겼다. 전방석 시험비행조종사에게 WSO가 아닌 진짜 파이터 파일럿을 해보고 싶다고 손을 부비면서 말했더니 맞장구를 치면서 즐겁게 안내를 해주었다. 공대공 모드에서는 후방석에서와 같이 레이더 컨트롤로 4대의 적기를 공격해 보았는데 직접 조종을 하고 전방을 보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 이외에는 센서 조작 자체는 후방석과 다를 바 없었다.

공대지의 경우에는 전방석에서는 항공기 조종과 무기발사를 하고 표적 조준 작업은 후방석에서 하게끔 안내를 받았다. 아무래도 전후방석 간에 적절한 작업분담을 할 수 있다는 점이 2인승기의 장점이 될 수 있겠다. 단순히 손이 편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전방석에서 공대공 레이더 교전을 하고 있는 동안 후방석에서는 공대지 센서 작업을 할 수 있는 등과 같이 1인승기가 갖지 못하는 고유한 이점이 있다. (물론 더 넓게 보면 2인승기가 오직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 터이겠지만 말이다.)

그 밖에 전방석에서 착륙, 그리고 항법포드를 이용한 지형추적 비행등을 해보았다. 이런 일반적인 비행들에서는 시뮬레이터라는 특성 상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떤 논평을 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그리고 SE만의 고유한 기능도 아니겠다.

필자가 말할 수 있는 선에서는 SE가 탑재하는 AESA 레이더(APG-63v3)의 성능이 꽤 인상적이었다. 기계식 레이더의 경우 탐색 모드인 RWS(Range While Search; 색적 중 거리표시) 모드에서는 탐색물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추적 모드인 STT(Single Target Tracking; 단일 표적 추적) 모드에서는 조준한 물체 하나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 그 대안으로서 탐색과 추적을 병행하는 TWS(Track While Scan; 탐색 중 추적) 모드가 있으나, 이 기능은 RWS에 비해서는 탐색 범위가 좁고 STT에 비해서는 정보의 정확성이 낮다. 또한 RWS 모드에서는 탐색 영역을 상하좌우로 넓히면 탐색 주기가 길어져 정확성이 낮아지고, 영역을 좁히면 정확성은 높아지는 대신 상황 인식이 나빠진다. 그래서 기계식 레이더를 쓰는 조종사는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여러 모드들의 장단점을 적절히 타협해야 한다. 반면 AESA 레이더에서는 SWT(Search While Track; 추적 중 색적) 모드만으로 원거리 교전을 한다. 이 모드는 RWS 모드 수준의 탐색 범위에서 여러 개의 탐지 물체들에 대해 STT 수준의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종사의 딜레마가 대폭 줄어들고 상황인식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여기에 데이터링크 능력이 결합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데이터링크는 전반적인 상황인식을 크게 향상할 수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전술적인 이점이 있다. 물론 데이터링크가 SE만의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데이터링크를 통해서 SE의 우수한 센서 능력을 다른 아군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겠다.

안내 조종사들과 대화를 하면서 필자는 PC 시뮬레이션 게이머이기 때문에 여러 시대의 비행기를 체험해보는데 F-22를 소재로 한 게임이 나왔을 때 게이머들이 너무 전투가 쉬워서 아케이드 게임 같고 현실성이 없다고 하더란 얘기를 하고, 그런데 이 SE 조종석은 그 F-22 게임에서 보던 능력들을 다시 접한 느낌이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안내 조종사들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20 년 전에는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에서나 보던 기능을 이제는 진짜 비행기가 가지게 되었다고 비유했다.

영어 회화에 그리 자신이 없는 편인데 조종사의 언어로 안내조종사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기뻤다. (필자는 영어로 일상 회화 하는 것보다 전투 교신을 하는 것이 더 쉽다.) 이번에 공개된 사일런트 이글 조종석 시뮬레이터를 체험하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부분은 외적인 개량 사항이나 기체 사양보다는 주로 조종석 인터페이스와 AESA 레이더 부분이었다. 그 부분에 한정해서 전반적인 느낌을 종합해본다면, 다른 기존의 4세대급 항공기와 비교할 때 사일런트 이글은 상황인식의 향상, 우수한 정보 능력 및 정보 유통의 편의성 등을 통한 전술적 능력의 향상이라는 점에서 차별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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