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8월자

* 블랙이글과의 운명적 대결 *

조종사와 함께 한 시뮬레이션 넷플레이

- 이 글은 1997년 처음으로 KOEX의 전시회에서 공군 분들과 처음 인연을 맺던 이야기입니다. 3166 대대 창설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 행사이기도 합니다.

 블랙이글을 처음 접한 것은 천리안에서였다. 시뮬동에서 활동하던 나로서는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 블랙이글 코너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조종사와 함께 하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메뉴에 상당한 관심이 갔고, 그 곳에서 다소의 활동을 한 덕분에 블랙이글 코너를 운영하는 조종사분들과 약간의 친분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블랙이글은 KOEX에서 열리는 정보화 추진 전시회에 참가하려 하고 있었고, 이것은 블랙이글 운영진 분들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실은 행사 처음부터 가서 도와드릴까도 생각했었는데, 정부 주관 행사인 탓에 도우미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에 그냥 가서 잠깐 인사나 드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기말 시험 기간이고 해서, 16일부터인 행사에는 처음부터 참가하지 못하고 18일에야 처음으로 행사장에 가게 되었다. 행사장에는 예상과는 달리 도우미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첫날부터 행사장에 올걸... 하는 다소의 후회를 뒤로 한 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블랙이글 부스를 찾아냈다. 블랙이글 부스에는 도우미는 없었지만, 도우미 복장보다 훨씬 멋진 조종복의 사나이들이 보였다. 다름 아닌 블랙이글 운영진 여러분이었다. 운영진 분들께 인사를 하고, 이미 첫 날부터 블랙이글 부스에 와서 살고 있는, 통신 공간에서 친분이 있는 사이버 편대장도 만났다. (블랙이글 동호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뮬게이머에게는 블랙이글 운영진으로부터 사이버 편대장이라는 영광스런 칭호가 붙는다.) 한동안 강병환 소령님 및 이영권 소령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얻어먹는 영광을 누리고 본격적인 사이버 비행에 들어갔다.

 준비된 컴퓨터는 4대이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다. 실행하는 기종은 EF2000 에볼루션이라는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이었다. 1대1의 모뎀 플레이는 몇 번 해봤지만 4대를 한꺼번에 띄우는 네트워크 플레이는 난생 처음이라 무척 긴장되면서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4대 공동작전을 잠시 해보다가 나중에는 2대 2 교전에 들어갔는데, 김승규 대위님께서 같이 출격을 해주셨다.

 처음으로 해보는 2대2 교전은 전투비행 시뮬레이션의 새로운 세계라 할 만 했다. 몇 년 동안 비행을 하여 비행 시간이 약 5,000 시간(시뮬게임 매니아 중에서는 이만한 비행 시간은 많은 것은 아니다)은 되는 나였지만, 2대2 교전 상황이 주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세상은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온 것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사막에 홀로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터넷 상에서 수백 명이 실시하는 공중전에도 약간 참가해본 적은 있으나, 바로 옆에 있는 아군과 실제 대화를 하면서 하는 비행은 또다른 맛이 있었다. 블랙이글 사이버 편대장들은 나름대로 내노라 하는 기량을 가진 사람들이고 1대1 교전에서는 어떤 면에서 실제 조종사보다 훨씬 뛰어난 게이머임에도 불구하고, 2대2 교전 상황에 대해서는 실제 조종사분들에 대해 완전히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몇몇 시뮬게이머들은 게임에서 1대1 전투기량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실제 전투 조종사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 일단 2대2 교전에 들어가서 전술적인 판단과 편대전투의 필요성이 생기자 실제 조종사의 직업적인 지식과 기량은 잘한다는 시뮬게이머들을 한낱 오락 잘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우리 사이버 편대장들은 그 때부터 실제 조종사분들을 진실로 경외스런 마음을 갖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실제 조종사들은 직업적인 이유에서 시뮬 게이머만큼 시뮬레이션 게임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닐 뿐더러, 실제 전투기와 시뮬 게임의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시뮬 게임을 많이 할수록 실전 감각의 저하를 크게 우려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실제 조종사분들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는데, 몇몇 대화시간에 들을 수 있었던 실제 비행과 공중전투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마도 그 내용들이 실제 조종사분들이 겪거나 알고 있는 부분 중 수백 분의 1밖에 안되는 부분일텐데도 시뮬게이머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아쉽게도 다음날인 19일은 행사 마지막 날이었다. 왜 진작 일찍부터 이 곳에 오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하면서, 마지막 날에는 내 재산 목록 1호인 Thrust Master 스틱 세트(FLCS, TQS, RCS)를 들고서 아침 일찍 행사장으로 향했다. 이 세트는 우여곡절 끝에 오후에 가서야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첫 날부터 와있던 사이버 편대장인 강현민 씨는 저녁때가 기말 시험인데도 불구하고 오전에 행사장에 나타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날은 여러 통신 동호회에서 시뮬게이머들이 찾아와서 서로의 친분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천리안 블랙이글을 통한 조종사와의 만남은 시뮬 게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시뮬 게임을 대하는 조종사의 관점은 시뮬게이머의 관점과 크게 달랐다. 조종사들은 훨씬 전문적이고 실전과 비교를 하면서 시뮬게임을 평가했다. 조종사들은 시뮬게이머들이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점이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했고, 시뮬게임이 실전과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비판을 가했다. 이들의 충고는 단순히 적기 격추기술을 자랑하는 시뮬게이머들의 헛된 우월감을 깨닫게 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으며, 공부하는 자세를 더욱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통신 공간에서의 조종사와의 만남도 무척이나 좋은 기회지만, 블랙이글 운영진 여러분들께서 어렵게 참가하신 이번 KOEX의 행사는 시뮬게이머들에게 정말로 대단한 경험을 제공하는 자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민과 군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모형항공기 대회를 군에서 주최하듯이 군에서 비행 시뮬레이션에 관한 이러한 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거나 혹은 주최함으로써 공군에 대한 이미지 상승 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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