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고가 전투조종사가 된다면? *

* 월간항공 2016년 4월호 기사 초고 버전입니다.

 

바둑 그 이상이었던 바둑 대국

3월의 초중순은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대국으로 온통 화제였다. 인간과 컴퓨터가 겨룬 수단은 바둑이었지만 이는 단지 바둑계만의 이벤트가 아니었고 인류가 내디딘 한 걸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국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역사 속의 한 주를 지나왔다.

대국 결과를 간단히 돌아보면 놀라웠으면서도 적절한 결과였던 것 같다. 인간이 전승을 했다면 사람들이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컴퓨터가 전승을 했다면 컴퓨터에 대한 과도한 맹신과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서 과도한 거부심리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었을 것 같다. 알파고가 전체적으로 압승하는 가운데 이세돌 기사가 귀중한 한 판을 이김으로써 인간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도 되새기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는 바둑계나 구글 쪽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성적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세돌 기사는 승패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페어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반응은 엄청났다. 방송국들은 야구경기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바둑이라는 경기를 풀타임으로 생중계했고, 이세돌과 알파고는 구글 검색순위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서점에 알파고 관련 책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유머를 비롯해서 알파고와 관련된 아주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알파고 열풍을 적나라하게 잡아내서 화제가 된 인터넷 유머. 출처: MLBPARK 

이번 대국이 이처럼 세계적인 화제가 된 것은 모든 사람이 이번 대국이 단지 바둑의 승부를 겨루는 경기가 아니었음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구글은 바둑이라는 사례를 통해 인공지능(AI)의 발전상을 시연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사람들이 그동안 가졌던 인공지능에 대한 선입견을 한참 앞서나가는 것이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사람들이 컴퓨터가 바둑을 잘 못 둘 것이라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는 계산기이기 때문에 부분전투에서의 수싸움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 판세를 읽고 세 싸움을 하는 부분은 수읽기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고 인간의 직관만으로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알파고는 컴퓨터이고, 나름대로의 연산 루틴을 통해서 궁극적인 승리를 하기 위한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방법으로 바둑을 둔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바둑에서 사람을 이겼다는 것은 그러한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람의 직관력을 흉내낼 정도로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연산을 하는 단계까지 올라섰음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결과였다. 알파고는 부분 전투에서는 실리를 내주면서도 그 결과로 외곽을 두텁게 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고차원적인 연산을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였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흔히 그 궁극의 형태라 수 있는 자아를 갖추고 감정을 가진 사람과 동격의 존재라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며, SF 창작물들에서는 특히 그런 인간형 인공지능의 존재들을 다룰 때 존재론적 측면에서 접근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고, 공학자들도 그것을 단기적인 목표로 두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그렇게 너무 먼 미래의 일을 상상하려다 보니 과학기술의 시각이 아닌 철학의 시각에서 접근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알파고에서 보다시피 현재 과학기술 수준에서의 인공지능은 그런 철학적 존재가 아니라 쉽게 말해 그냥 연산을 엄청나게 잘 하는 계산기라고 이해하는게 타당하다. 그리고 그런 연산 기계로서의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쓰이고 있다. 심지어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보도는 인공지능이 생산해내는 세상이 이미 되어있을 정도이다.

항공 분야와 인공지능

실용 기술 측면에서 인공지능은 항공 분야와도 관련이 있고 앞으로 그 용도가 더 커질 이유가 충분한 영역일 것이다. 민항 분야에서도 자동조종 관련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고, 전투항공 분야에서도 무인전투기를 실용화하면서 무인기 스스로 비행할 수 있는 자율성을 점차 높여가는 추세이다. 당장은 스텔스 공격기의 형태로서 무인전투기의 실용화가 우선 추진되고 있지만, 조금 더 먼 미래에는 공대공 전투 능력을 갖춘 본격적인 무인전투기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믿을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SF 창작물들이 무척 많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을 갖춘 전투기들이 등장하는 작품들도 역시 드물지 않다. 영화 스텔스에서는 인간 주인공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공지능 전투기와 상대를 하고, 전투요정 유키카제에서는 전투기의 미션컴퓨터가 고도로 발전해서 인간 조종사와 상호협력하는 존재로 나온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R2-D2도 전투기에 탑재되었을 때는 후방석 조종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이 중 영화 스텔스는 단순히 오락물의 배경 설정으로서 스스로 싸우는 무인기를 등장시킨 것 같고, 전투요정 유키카제에 등장하는 전투기 인공지능은 실용적 측면보다는 철학적인 존재로서의 성격이 더 큰 것 같다. 오히려 가장 오래된 작품인 스타워즈의 R2-D2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4세대 전투기의 미션컴퓨터 역할에 해당하기 때문에 가장 현실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R2-D2는 후방석조종사의 역할만을 대체하는 존재이므로 완전한 무인전투기와는 거리가 있지만 후방석을 컴퓨터로 대체할 수 있다면 전방석도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사실 PC게이머 입장에서라면 가상의 공간에서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이 전투기를 컨트롤해서 공중전을 한다는 개념은 수십 년간 일상으로 접해온 너무 익숙한 얘기이다. PC용 전투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것이 80년대 후반부터 등장했으니,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에서의 전투기 AI는 무려 근 30년간을 발전해온 것이다. 초기에는 비행심 자체의 완성도가 현격히 낮았고 AI의 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냉정하게 말해서 사실상 3차원 액션게임보다 조금 더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게임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PC의 성능, 게임의 물리모델이나 AI의 연산능력이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발전했기 때문에 게임의 AI를 통해서 현실의 미래를 추론해보는게 다소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개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게임에서 쓰이는 것과 같은 AI를 실제 비행체에 이식하면 그게 바로 무인전투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그 지능 수준이 현격히 높아져야 할 것이고, 전투기동을 하기 위한 연산의 근거가 되는 주변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실용성 있는 전술기가 될 것이다.

게임에서의 인공지능

전투비행심 게임 속에서 AI전투기들이 보이는 전투능력은 단기 기동에 한해서는 대체로 이미 사람 수준에 근접했다고 보인다. 게임에서의 AI의 난이도를 높이면 어느 게임에서든 적어도 일대일 공중전에서는 AI 적기를 격추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단 여러 대의 항공기나 지상 유닛이 개입되는 복잡한 전장환경이 될수록 상황이 복잡해지고 상호협조 알고리즘이 떨어져서 AI의 행동력이 급격히 하락하는 것 같다. 그리고 AI의 알고리즘을 만들 때 그 게임 제작사가 얼마나 AI를 사람이 조종하는 것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는지의 차이도 있다. 어떤 게임에서는 AI를 격추하기가 힘들기는 하되 이건 도저히 사람이 조종석에 탄 채로는 해낼 수 없는 기동이라는 느낌이 바로 드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경우에는 난이도가 높다 하더라도 사실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반면 어떤 게임에서는 전투기가 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게끔 움직일 뿐만 아니라 공중전 교범을 학습한 것처럼 기동하기도 한다. 특히 전현직 전투조종사가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고 알려진 팰콘4.0 계열 게임에 등장하는 AI가 가장 공중전 교범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알파고를 개발할 때 실제 바둑 고수들이 참여해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투기의 AI를 만들 때도 전투비행을 잘 아는 사람이 자문 역할을 해야 그 현실성이 높아진다는 인과관계는 당연할 것이고, 미래에 실전용 무인전투기를 만든다고 해도 그처럼 전현직 군인들이 제시하는 임무 수행 방법을 AI에게 학습시키는 과정이 포함되리라 추론해볼 수 있다. 군 교범이라는 것은 주어진 전투 상황에서 최선의 대응요령을 정리해놓은 것이고 도그파이팅도 3차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기동의 범위와 선택의 여지는 어느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위한 알고리즘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게임의 세계에서는 AI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 이미 낯설지 않은 일이다. Falcon BMS 4.33 버전의 공중전 장면. 

우리나라에서도 가상 전장환경의 모의 전투 훈련 체계를 개발하면서 AI 연구 프로젝트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인공지능으로 실제 전투기를 컨트롤하기 이전에 인공지능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외국에서는 상용 게임 부문에서 이미 근 30년에 걸쳐 발전시켜온 가상전장환경 속의 AI를 이제서야 백지상태에서부터 연구소나 업체 주도로 연구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개념적으로 보자면 쓸모 있는 수준의 전투용 AI를 개발했다면 그것을 어떤 비행체에 탑재해서 자율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인공지능 전투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투비행심 게임에서의 인공지능은 단지 전투기의 전투기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팰콘4.0은 전투기들이 기동하면서 싸우는 게임일 뿐만 아니라 전략형 전쟁게임에서처럼 컴퓨터가 가상의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의 육해공군을 컨트롤해서 하나의 큰 전쟁 양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런 전쟁양상 속에서 항공전력을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종합적인 출격 계획인 항공임무명령서(Air Tasking Order) AI가 생산해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항공임무명령서는 실제전쟁에서는 하루에도 천 단위 수의 소티를 생산해내야 하기 때문에 자동화의 이점이 상당히 클 부분일 것 같다.


 
팰콘 게임에서는 컴퓨터가 전쟁 수준의 전장을 생성해서 운영하면서 육해공군의 유닛들의 임무명령을 자동으로 생산한다. 삽화는 Falcon BMS 4.33 버전 캠페인 모드의 ATO와 전략 화면.

물론 게임에 쓰이는 AIPC라는 환경에서 원활히 돌아가야 하고 제작비의 제약도 있기 때문에 아주 단순화되어 있고, 비교적 단순한 패턴으로 진행이 되는 일대일 공중전에서는 그럭저럭 싸움을 하지만 언급했다시피 더 복잡한 상황이 되거나 전쟁을 운영하는 부분은 실제 세상에서라면 믿고 맏기기 힘들 정도로 수준 낮은 지능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도그파이팅 영역에 한해서는 인공지능을 통한 전투기 무인화가 되면 임무 수행능력이 다소 부족하다 하더라도 조종사의 생명을 아낀다는 장점으로서 감수할 여지가 있을 부분이겠고, 또한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는다면 무인기를 만들 때 현용 전투기들에 반영된 것과 같은 인간적 G 제한조건을 고려치 않고 전투기를 설계할 수 있고 조종석 자체를 없앨 수도 있어서 전체적인 기동성에서 현격한 이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길게 본다면 더 발전되는 고성능의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더 복잡한 상황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점차 높아져 언젠가는 실전에 투입할 정도의 품질도 얻을 수 있게 되리라고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을 바둑으로 절대 못 이길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그런 날이 결국 도래한 것처럼 말이다.

결언

바둑계에서는 대체로 알파고가 기존의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수를 계산해내는 기계라는 측면에서 그 능력을 인정하고, 앞으로 바둑의 지평이 더 넓어지고 바둑이 수준이 더 높아지는 계기가 되리라는 긍정적 측면에 방점을 두고 이번 대국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같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을 존재라고 예단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자아를 가진 새로운 생명체처럼 받아들여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를 존재라고 생각해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은 결국은 계산기일 뿐이고, 인간들은 지금까지도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현대문명을 풍요롭게 만들어왔으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컴퓨터가 인간사회를 풍요롭게 해왔다면, 더 고성능의 컴퓨터가 인간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게 불합리하지는 않다고 본다.

극단적으로는 이번 결과를 두고 터미네이터가 쳐들어올 것이라는 농담반 식의 이야기들도 많이 한다. 하지만 영화 터미네이터는 아무리 자아를 갖춘 인공지능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실제로 인류를 지배하기는 힘든 여러가지 현실적 이유들을 모조리 무시한 설정이기 때문에 그저 무서운 암살로봇이 나오는 오락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럴 듯한 구실을 적당히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이는게 마땅해 보인다. SF 오락영화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미래가 현실에서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영화 매드맥스나 워터월드가 실제로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넌센스라고 본다. 또한 과학기술이 인류를 멸망시킬 가능성으로 이야기하자면, 먼 훗날에 나타날지 모르는 자아를 갖춘 인공지능을 걱정할 것도 없이 이미 우리 인류는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이미 오래전에 만들었다는 점을 되새겨보는게 좋을 것 같다. 즉 결국은 인간이 그 기술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하는지가 관건일 것이고, 그러한 점만 뒷받침된다면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까지의 다른 과학기술들과 컴퓨터기술의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알파고가 바둑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리라 기대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전문직업군의 세계를 더 발전시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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