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도나도 비싼 돈 내면서 영어공부 안하는 사람 없고 해외연수 안가본 사람이 적을 정도고 토익점수 안높은 사람 없다보니 스스로 영어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가봅니다. 그런데 번역은 토익점수나 생활영어실력과는 별 상관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준이하의 오역을 번역이라고 들이대는 일들이 너무 많아 보이네요. 특히 취미 분야에서 말입니다.

제가 작업 했던 번역물들은 철도 안전 매뉴얼, 차량 정비매뉴얼, 군 기술매뉴얼, 군교범 등등입니다. 이런 번역물들 중 상당수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로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도 있는 문서들입니다. 제가 하는 번역이 100% 항상 맞다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만(실제 오류지적이 자주 나옵니다만...), 최소한 번역산물에 대한 책임의식만큼은 철저해지더군요. 전문용어나 생소한 내용은 단순한 사전적 의미가 아닌 배경지식까지 일일이 찾아서 직접 이해한 뒤에 우리말로 옮기고,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들도 문맥에 따라서는 혹시 다른 뜻으로 쓰이지 않는가까지  확인해보게 됩니다. 우리말 바로쓰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구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작업한 초벌 번역물 감수작업을 맡아보면 이런걸 어떻게 번역이라고 했나 싶은 경우도 자주 접합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영어실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번역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겠지만, 질낮은 번역물은 근본적으로 원문의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려고하기보다 그냥 자기가 아는 상식 수준에서 짜맞추는 수준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더군요. 사실 하청 번역작업은 분량=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게 번역사 수입 측면에서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전문번역은 그래서는 도저히 돈이 왔다갔다하는 납품물로서의 수준을 충족하기 힘듭니다. 하긴 대학 교수가 직접 번역했다는 정식으로 출판된 전문서적들도 보다가 집어던져버리고 싶은게 많으니...

돈이 왔다갔다 하는 정식 납품일에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취미로 원문 번역소개해올리는 게시물들이야 더말할 나위가 없죠. 논단에 쓴 적 있는 고의적인 오역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개의 스타일이 원문 내용을 고증하려는 철저한 노력 없이 신문 보듯이 원문을 쑥쑥 훑어보면서 자기가 아는 내용들을 기초로 내용을 적당히 꿰어맞춰놓는 식입니다. 짧은 시간에 전반적인 내용의 흐름을 의역해서 이해해야 하는 영어시험 스타일이 그런걸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지만 영자신문볼 때나 영어시험볼 때가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대충 읽고 대충 이해하는 것을 "번역"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적인 용도로 영문을 읽을 때는 불과 60~70%정도만 이해해도 크게 탈날 일은 없겠지만, 설령 취미로라도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는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공개한 번역문은 그저 원문 읽기를 도와주는 참고자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된 컨텐츠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머리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상상력이나 오역으로 채워넣는 번역물은 고의적이든 아니든 일종의 허위사실 유포행위가 됩니다. 시간들여 번역했으니 오역이라도 고마워하라고 말할 문제가 아니라는겁니다. 물론 사람이 항상 100% 정확할 수는 없지만, 오역도 어느 정도문제라야죠.

세 줄 요약:
1. 영어 실력과 번역 실력은 별개이다.
2. 번역이란 단순히 자기 머리로 이해한 만큼만을 우리말로 적어놓는 작업이 아니다.
3. 최소한의 책임감 없이 장난하듯 오역 대량생산할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게 돕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