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로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전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장분석가나 전략가들은 전장의 마찰효과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전장의 마찰 효과란, 큰 차원의 작전은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행동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그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므로 결국 큰 차원의 전투나 작전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무전기 한개의 고장이나 한두명의 판단이나 임무수행의 착오가 굉장히 중요한 전투의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등을 전사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지요.



전장 분석가들은 전장연구와 예측의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군사용 워게임을 쓰곤 하는데요, 군사용 혹은 연구용 워게임은 재미라는 요소가 철저히 배제되고 사용목적에 부합하게 실행하고 결과가 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사실성(게임 자체의 완성도와 전혀 별개의 문젭니다.)이라는 것은 상용 게임과는 비교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91년의 걸프전 직전에 여러 분석가들이 워게임을 비롯한 여러 방법을 통해서 전쟁결과를 예측했지만, 실제의 결과를 제대로 예측한 경우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모의실험의 도구가 얼마나 사실적이든간에 실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인적 요인, 즉 인적 마찰효과까지 재현하지 못하는 것이, 극히 사실적인 전문 워게임으로도 실전을 비슷하게조차 예측할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죠. (인적 요소라는 것은 단순히 모럴이나 훈련수치정도를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논단의 글의 결론 부분에서 좀더 자세하게 말했어야 할 부분이었지만, 전투플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완성도 있는 전투플심게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게임 그자체의 완성도가 전쟁의 사실적인 재현의 완성도를 대변하는 결정적 기준은 결코 될 수가 없죠. 워게임은 인적요소를 연산에 삽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의 재현이 되지 못한다고 하지만, 전투플심 게임은 전쟁의 인적 마찰요소를 게이머가 직접 가지고 있음에도 역시 사실의 재현이 될 수 없다면, 결국 실제 전장의 군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인적 요소와 게이머에게서 나타나는 인적 요소가 상이하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것은 단지 훈련을 어떻게 얼마나 받았느냐의 문제라기보다도(실전에 임하는 군인들도 게이머만큼의 개인 기량이나 훈련도 제대로 못맏고 전투에 투입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궁극적으로 전투플심의 사실성이란 게임 프로그램의 내용이 아니라 게이머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애기죠.



실화인데, 어느 게이머가 멀티로 동료의 윙맨으로 날고 있다가 SAM이 발사되어 리더인 동료가 격추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멋있더라고 무척 즐운 경험인 양 얘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접하게 게임하는 사람도 아니고 굉장히 엄격한 가상대대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사람은 윙맨으로서의 어떠한 경고나 대응조치도 취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때문에 리더가 죽었음에도 그저 마냥 즐거워하면서 더군다나 자랑삼아 말하더군요. 아무리 게이머라지만, 한사람의 비행 참가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반성이나 적어도 멀티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이라도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이 저를 너무나 경악시켰습니다.

만약 그사람이 게임으로 겪은 일을 저와 같이 해야 하는 동료나 후임이었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 절대로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간단히, 어떤 플심게임으로 멀티비행을 하더라도 대부분 얼마못가 "이게 무슨 전투비행이야"라는 회의가 들어버리고 마는데, 항상 그 이유는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비행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비행과 전투 스타일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역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는 나름대로 시뮬 매니아가 쏘고 즐기는 단순한 게임 매니아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보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그분들께 인식시켜드리기 위해 주의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에선지 제 취미를 예의로서 대해준 현역분들도 종종 있구요. 그렇지만, 솔직히 시뮬게이머라는 집단 전체의 보편적인 모습은 실제로 그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언제인가 나름대로 알려진 시뮬게이머가 플심에 별로 관심없던 현역분 앞에서 비행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였다면 무언가 현역분께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만한 것을 보여드려보려고 노력했을텐데, 그래픽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혼자 감탄하고 하더니, 폭격기 후방 사수석으로 가서는 윙맨을 격추시킨 다음 자기 뒷날개를 쏴서 부셔버리고 나서 즐거워하더군요. 그나마 비행 잘하는 모습 자랑하겠다고 핑거팁 대형을 시도하다가는 리더기에게 부딪혀 추락해버리고요. 그러면서 부끄러운 기색도 별로 없는 듯 하더군요. 새로 인스톨한 게임을 그런 식으로 돌려본다는 것은 게이머로서 흔한 일이지만, 현역 앞에서는 그저 끔찍한 "사이버 파일롯"의 현실일 뿐이었습니다.



시뮬게이머가 전투조종사의 노력의 수준을 동일하게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겠죠. 하지만, 노력의 절대량의 대소 여부를 떠나서, 근본적인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최소한의 진지함, 게임 너머의 것을 보려는 자세가 깃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함과 태도가 뒷받침되어있다면 사실 시뮬게이머로서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은 어차피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그렇게 불가능한 노력은 아닐거라고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