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한테 꿀밤만 맞아도 폭력이라고 항의하는 현대인들의 인권 상식으로는 2차대전의 전략폭격이 무의미한 무차별 살상행위로만 인식되곤 합니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 그런 대량살상 전략폭격이 이루어진데에는 분명한 논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1차대전은 군인 전사자만 천만에 민간인 사망자도 천만 이상(추정) 가량이었습니다. 이건 개별 전투에서 막대한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전쟁이 단기전이 아닌 장기 소모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위 기간당 전투사상율은 오히려 그 이전 전쟁보다 낮아진게 1차대전입니다.)
그러다보니, 1차대전이 끝난 후 군사전략사상가들은 다음 전쟁을 단기전으로 끝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게 육군에서는 기갑부대를 이용한 기동전 계열의 이론이고, 공군에서는 두헤를 비롯한 항공전략가들의 전략폭격론입니다.
두헤는 적국의 민간인에서 대량의 희생자가 나오면 민간인들이 반전 폭동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하고 평화협상에 나설 것이며, 그러면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전체 전쟁의 희생자 수는 적어진다는게 그의 논리입니다.
즉, 적의 민간인을 적의 전략중심으로 보고 대규모의 폭격기대를 일시에 집중하여 주요 인구밀집지역에 대량살상 공세를 가하면 적의 전투기대가 방어를 하더라도 그중 상당수가 살아남아서 폭격을 성공할 것이고 방어군에 의해 입는 피해를 훨씬 웃도는 전략적 파괴효과를 거두어 전쟁 승리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게 두헤의 전략폭격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두헤 당시의 공군으로는 인구밀집지역을 파멸시킬 정도로 많은 폭탄을 정확하게 떨어뜨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헤는 폭격부대들이 인구밀집지역에 화학탄 폭격을 할 것까지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 수를 수십만 단위로 예측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인구 밀집지역을 그것도 화학탄으로? -_-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당시에는 수십만, 혹은 백만 단위의 민간인이 죽더라도 그 덕분에 전쟁을 며칠 안으로 끝내면 5년동안 2천만명이 죽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손익계산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목적을 가진 방안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1차대전의 경험은 그정도로 큰 트라우마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2차대전이 끝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그러한 이론은 맞지 않는다고 판명되었습니다. 폭격을 받은 민간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는 커녕 더욱 단결했죠. 그래서 이제는 적어도 서방 공군에서는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공격하는 작전을 하지 않습니다. (체첸의 예를 보면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하거나 민간인 피해에 더 무감각한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차대전의 전략폭격이 인도주의정신을 갖지 못한 사령관들이 무분별하게 시행한 비인도적인 것이었나? 그건 아닙니다. 드레스덴과 같이 일부 논란이 되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로서는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이 적의 전략 중심이라고 판단된 표적을 공격하는 정상적인 군사작전의 범주에 해당했고, 일선의 소모전으로 인한 사상자의 증가를 피하고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시도된 방법이었습니다. 단지 민간인=전략중심이라는 판단이 틀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략중심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모두 다 다르고 결과론으로만 입증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전략 기획자들에게도 항상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지루하고 참혹한 참호선에서의 소모전을 피하고 적의 중심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각광받았으나 결국 또다른 소모전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2차대전 당시 공군의 지위입니다. 그리고 민간인 공격도 처음에는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기 위한 한가지 방안으로서 시도되었으나 전쟁이 장기 소모전화되면서 민간인들도 소모전의 희생양이 되어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