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이유 하면 엄청난 고득점(?)과 화려한 기동술로 유명하지요. 그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전쟁에 참전한 실제 인물같지가 않고 무슨 게이머 얘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얘기를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사람들 문제도 있겠지만서도...) 그러다보니 게이머들 중에서도 마르세이유의 기동술을 궁금해하고 그의 스타일을 추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르세이유의 스타일은 독일공군의 다른 파일럿들이 따라해서 같은 전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즉 애당초 보편화하여 전수할 수 있는 기동술 패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마르세이유 기동술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님은 마르세이유처럼 타고난 비행의 신인가요? 라고 말입니다. 스틱 처음 잡은 사람이 게임 후기마냥 꾸며진 마르세이유 스토리를 접하고 나서 그를 추종한다는 것은 앞날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겁니다.

마르세이유는 단기간동안 높은비율의  전과를 올렸지만 그대신 죽을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첫 8대 격추하는 동안 6번 격추당하고 그 후에도 수시로 비행기가 벌집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하죠. 어디엔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임에서 캠페인이나 커리어 모드를 하다보면 게임 종류를 불문하고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화려하게 싸울 수록 단기간의 스코어는 높아지는 대신 죽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높은 스코어를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가급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전투에 임하면 매 비행에서 얻는 전과는 줄어들지만 오래 살 수 있고 그결과 최종적인 누적 스코어는 높아집니다. 전자를 마르세이유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하르트만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르세이유는 148대를 격추하고 죽었고, 하르트만은 352대를 격추하고도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마르세이유는 사고사를 당했지만, 그의 스타일로 보건대 사고로 죽지 않았어도 오래 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좀더 매정하게 생각한다면 그보다 일찍 전사했어도 당연했을 사람입니다. 독일공군에 더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면, 당연히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고 더 많은 적기를 격추한 하르트만입니다.

마르세이유가 살아있던 당시에는 독일공군이 압도적인 전력 열세에서 힘겹게 싸우던 막장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대등하거나 유리한 상황에서라면 부대원들 중 한두명이 튀는 짓을 하고 적극적으로 적기에게 달려들면 킬스코어가 그사람한테 몰리는 결과가 나오기 쉽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그사람의 위험천만한 행동에 대한 백업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니까요. (이런 경우 사실 동료들 입장에서는 고까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니 시다바리냐...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열세한 상황에서 튀는 짓을 하면 반대로 먼저 죽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르트만은 막장상황도 겪고 살아남았죠.

"독빠"의 입장이라고 가정할 때 마르세이유 스타일을 추종할 필요가 없는 또한가지 이유는, 마르세이유 스타일은 독일공군의 표준 전술과 완전히 동떨어진 기형적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독일공군은 2기 단위의 상호협조 플레이가 기본전술입니다. 마르세이유는 혼자 열심히 했죠. 이는 탑건 초반부의 매버릭의 행태와도 비슷한데, 이런 스타일은 군에서는 전혀 환영받을 스타일이 아닙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싸우기 위해서는 혼자 잘나고 전체 부대의 통합을 깨뜨리는 사람보다는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는 표준적인 스타일로 서로를 보호하면서 싸우는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마르세이유를 보고 배우라고 권장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주변여건을 모조리 도외시하고 개인의 스코어에 초점을 맞추는 전쟁 무용담이라는 것은 일종의 미신입니다.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극단적인 몇가지 사례를 보편화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2차대전에 종군한 독일공군 조종사는 물경 몇만명입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교범 무시하고 자살적으로 싸워서 운좋게 안죽고 단기간 높은 전과를 올리는 사람이 몇 명정도는 확률적으로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한두명 나오는 동안 똑같은 짓 하다가 개죽음 하는 사람은 몇천명이었을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극단적인 개별 사례를 함부로 모범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하르트만도 넓게 보면 그런 드문 확률의 혜택을 입은 사람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마르세이유 스타일로 싸운다는 것을 높은 스코어의 표본으로 삼기는 힘든 반면 하르트만 스타일을 오래 살아남는 표본으로 삼을 여지는 더 많다는 점이 다릅니다. 실전에서는 살아있어야만 경력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에 마르세이유 스타일보다는 하르트만 스타일이어야 할 이유가 더 절실했을 것입니다.

게임에서는 그냥 죽으면 다시하면 됩니다. 그러다보니 적극적으로 싸운다고 해서 전장에서 도태되어 사라지지 않고, 격추되는 게이머들도 계속 경험을 쌓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플레이에 가보면 2차대전이었다면 마르세이유급이었을 법한 기동술과 사격술을 가진 사람들도 넘쳐납니다. 즉 게임에서는 어떤 스타일이 꼭 좋다 나쁘다고 할 이유가 없고 그냥 자기 취향대로 즐기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게임에서도 화려한 기동술로 격투전을 하는 스타일에 비해서 상황인식을 통제하면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스코어가 보편적으로 더 높습니다. 주도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마르세이유 스타일로 싸운다고 해서 마르세이유 같은 전과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각오를 해야합니다. 마르세이유가 단기간 높은 전과를 올린 것은 그만의 손기술, 특히 사격술 때문이지 격투전을 즐겼다는 스타일 때문은 아니니 말입니다.
마르세이유같은 특출난 손기술을 가지는 경지에 이르거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지 않았다면 게임에서 마르세이유 스타일로 싸운다는 것은 그냥 많이 죽고 킬은 조금밖에 못한다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래서야 게임이 재미있기가 힘들겠죠^^; 도전적인 상황을 극복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낀다거나 하는 식으로 스코어 이외의 재미를 추구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르세이유 >>> 하르트만이라고 잘라말할 수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르트만이 격투전보다 아웃파이팅을 추구했다고 해서 하르트만이 마르세이유에 비해 손기술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52회의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격투전을 하는데 필요한 것과 대동소이한 손기술과 사격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웃파이팅을 하는 사람에게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아나오기 위해서는 격투전 기술이 필수입니다. 하르트만처럼 천몇백 번의 공중전을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특히 말입니다. 사실 격투전 기술은 올라가야 할 목표가 아니라 다져야 할 기초에 해당합니다. 아웃파이팅하는 사람이 격투전은 할 줄 모른다고 착각하니까 격투전 >>> 아웃파이팅이라는 오해를 하는거지요. 물론 게임에서는 그런 사람도 있을 수는 있는데... 그래서는 오래살면서 높은 누적 스코어를 올린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합니다. 그런 경우는 스코어가 그저그렇지요.

사실 마르에이유는 잘생긴 외모, 뛰어난 학교 성적, 높은 스코어, 삐딱한 성격, 여성편력 등 현실상의 에이스 모델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소설의 먼치킨 주인공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상화되는 경향도 생긴다고 생각되지만, 실전은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에 "전투조종사"의 입장에서는 그를 보편적인 모범사례로서 추종해서는 안됩니다. 실전은 고사하고 게임속의 현실에서만 하더라도 마르세이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그처럼 되고 싶다고 흉내낸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신이 만들어주셔야지요. 그보다는 하르트만이 사람의 능력으로 도달하기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