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趙)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아들 조괄(趙括)을 좀체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모두들 병법은 조괄을 당할 사람이 없다고들 하는 터였다. 답답해진 그의 아내가 연유를 물었다. 조사가 말했다. "군대는 죽는 곳인데 저 아이는 너무 쉽게 말을 하오. 조나라가 저 아이를 장수로 삼는다면 조나라 군대를 무너뜨릴 자는 반드시 저 아이일 것이오." 훗날 조나라 왕이 진(秦)나라와의 전투에서 싸울 생각을 않고 성을 지키고만 있던 노장 염파(廉頗)를 빼고 젊은 조괄을 투입하려 했다. 그러자 그 어미가 안 된다며 막고 나섰다.

왕이 이유를 묻자, 대답이 이랬다. 그 아비는 상을 받으면 아랫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고, 명을 받으면 집안일을 묻지 않고 떠났는데, 아들은 왕에게 하사금을 받으면 집에 간직해두고 좋은 밭과 집 살 궁리만 하니, 부자의 마음가짐이 같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왕이 번복하지 않자, 그렇다면 아들이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연좌시키지 말라고 했다. 어미의 말인데 참 모질고 매섭다. 경솔했던 조괄은 우쭐해서 그날로 진나라 총공격에 나섰다가, 계략에 말려 조나라 40만 대군을 하루아침에 모두 잃었다.

조선시대 어떤 무사가 병서 강독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관이 물었다. "만약 북을 쳤는데도 사졸들이 진격하지 않고, 징을 쳤는데도 퇴각하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는가?" 무사가 물러나와 시험관의 어리석은 질문을 두고 깔깔대며 비웃었다. 그 말을 들은 이가 말했다.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하나, 종이 위에서 군대를 논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닐세. 분명히 그 사람은 직접 군대 일을 겪어본 사람인 듯하이." 알아보니 그 시험관은 예전에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공을 이루지 못해 파직되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쓰린 실패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거두절미하고 실제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던 것이다. 홍길주(洪吉周)의 '수여난필속(睡餘瀾筆續)'에 나온다.

이른바 지상담병(紙上談兵), 즉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말은 이론만 능하고 실전에 약한 병통을 꼬집어 하는 말이다. 탁상공론(卓上空論)과 같다. 사람들은 노장 염파의 경륜보다 조괄의 화끈함을 좋아한다. 문제는 늘 이 지점에서 생긴다. 내는 문제마다 거침없이 척척 대답했던 아들 조괄을 아버지 조사가 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원문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17/20090917017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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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속에서 병법을 논하는 저같은 사람이 보고 뜨끔해야 할 글인 것 같아 소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