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2연패를 하면서 WBC가 끝났네요. 이번 대회는 4강에서 아시아 2개국 vs 메이저 출신 2개국이 맡붙은 것에서 보다시피 아시아 야구 vs MLB의 구도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MLB 쪽에서 보면 스몰볼 vs 롱볼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일단 우리나라 스타일은 좀 제쳐두고, 일본 스몰볼과 MLB의 롱볼을 좀 얘기해보겠습니다.
어쩌면 일본은 WBC에서 2연패를 했고 미국을 이겼으므로 스몰볼 > 롱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미국은 패배를 인정 안하고 있죠. 선수들 컨디션 등의 이유를 들어서요. 저는 이것이 단지 승리에 다가가기 위한 전술의 차이가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야구에 투영된거라고 봅니다.
미국 야구팬들은 기본적으로 빵빵 터뜨리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야구 스타일이 그에 맞게 진화된거지요. 이번 미국 감독이 말하길, MLB에서 일본식으로 타격을 한다면 잘못하면 투수한테서 빈 볼 날아올 수도 있을거라고 했다죠. 그 발언이 미국이 야구를 대하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나타내준거라고 봅니다. 하여튼 미국은 팬들이 원하는 호쾌한 야구를 하고 그덕분에 팬들이 많이 찾고 그결과 시장이 큽니다. 그러니까 미국 팀은 패인으로 선수 컨디션 같은 이유를 대지만 실상 '장타도 못치는 것들이 무슨 야구를 한다고' 이렇게 일본 야구를 무시하는 시각이 처음부터 바탕에 깔려있고 때문에 지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거죠.
반면 일본은 지는걸 용납 못하죠. 허구연 해설 위원이 여러 차례 말했다시피, 일본 투수들은 장타 맞는게 용납 안된다고 하죠. 그러니까 어려운 공 위주로 승부하고 타자들도 단타 위주로 타격을 하고 4번 타자도 번트 대고 하면서 과정에는 상관없이 일단 이기는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또 일본 팬들도 결과위주의 승부를 요구하니 플레이도 그렇게밖에 될 수 없고요. 어떤게 먼저랄 것 없이 문화 자체가 그렇다는겁니다. 그러니 일본은 장타든 단타든 결과적으로 점수 내고 이겼으니 스몰볼 한 우리가 진정한 세계최고다 이렇게 생각하겠죠.
어쨌든 스몰 볼과 롱 볼이 만나서 승부를 냈고 여러 조건이야 어쨌든 WBC의 결과만 놓고 보면 홈런도 거의 치지 못한 일본이 2연패를 했네요. 그리고 미국은 선구안, 기본기 문제, 개인 위주의 플레이 등등 여러가지 문제로 욕을 먹게 됐지요. 그런데 이건 미국이 자국 스타일대로 할 때는 크게 드러나지 않던 부분입니다. 이를테면 상대적으로 정직하게 투구하고 힘으로 승부하는 MLB 투수에 대해서는 선구안보다는 파워가 더 중요하겠죠. 그러다보니 타자들도 그렇게 진화한거고 그러다 유인구 위주로 피칭하는 일본 투수들을 만나니 헛스윙 남발한거고요.
일본이라고 약점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일본은 자국 리그에서는 홈런 많이 나오지만 WBC에서는 홈런이 단 4개에 그것도 거의다 우리팀한테서 얻은 것이고(3개는 확실한데 나머지 한개는 어느 팀과의 경기서 친건지 모르겠네요) MLB 투수 상대로는 홈런친게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MLB는 장타만 두들겨대는 원시인 야구가 아니라 MLB급 수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래는 수비력도 우수하죠. 그러니 MLB 선수들이 제컨디션 가지고 플레이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는 얘기, 다시말해 승패와 관계없는 야구 자체의 수준은 MLB가 일본보다 우위라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는거고요. 실제 한일전에서는 두세 점 정도로 승부가 갈리는 정도였지만 미국이나 중남미 국가들과 할 때는 그게 안심권이 전혀 안됐죠. 아무 타순에서나 큰 거 한 방 걸리면 아무때나 따라올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힘들게 경기를 한겁니다. 미일전만 해도 내용상으로는 그저 어느 팀이 이길 수도 있는 상황으로 비슷하게 가다가 일본에 승운이 좀 더 따른 경기였지 우리나라가 베네수엘라를 이길 때처럼 일본의 경기력이 미국을 확실하게 눌러서 이긴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습니다. 미국 선수들 플레이는 MLB 경기라고 하면 기대되는 그런 수준의 플레이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종반까지 막상막하였죠.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 모두 스몰볼과 롱볼의 장단점을 스스로 분석한 결과 각자 다른 결론을 내고 그 스타일을 따라간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야구스타일의 차이는 전략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그냥 양국의 야구와 사회 문화가 자연적으로 투영됐을 따름이라는거죠.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단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두 개의 서로다른 문화에 속한 가진 군대들이 맞붙어 싸울 때는 그 승패를 단순히 표면적인 전술이나 지략의 우열로서 평가하는 것 이외에도 그러한 전술들의 문화적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2차대전때 끝까지 격투전 스타일을 버리지 못한 일본 사람들은 심지어 지금도 온라인 비행시뮬에서 극단적인 격투전 테크닉에 유독 많이 집착합니다. 게임이니까 재미삼아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전반적인 스타일이 그렇다는건 단순히 게임을 접하는 개개인의 취향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해석을 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