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밀리 게시판들에서 종종 언급되는 제네레이션 킬을 마침 구해서 봤습니다.
http://www.hbo.com/generationkill/
이라크전에 투입된 해병 제1특수수색대대에 임베드된 기자가 그들의 이야기를 실화로 펴낸 책이 이 드라마의 원작입니다. 몇 가지 느낀 점...

1.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쓴 리뷰들은 대개 엿같은 지휘관 만나면 사병들이 고생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군대얘기라고 이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기자가 일선 분대와 함께 다녔기 때문에 작품의 시점이 기본적으로 사병들의 시각을 기초로 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런 고질적인 사병대 장교의 갈등을 그렸다기보다는 전장에서는 누구든 엿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반적으로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엿같은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도 불가피하게 엿같은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개념인으로 나오는 캐릭터도 때로는 엿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또 사병들 스스로도 엿같은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전반적으로는 전체 드라마에 걸쳐서 대부분의 직책의 인물들이 모두 엿같은 일들을 겪지만 다른 한편으로 각자의 입장도 충분히 대변될 기회를 가졌다고 느꼈습니다.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 일부 등장하기는 하지만요.

2. 또 이 작품에 대한 기준의 평들에서 두드러진 점이, 전투신이 별로 없어서 지루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7편의 에피소드 중에 전면전 단계가 끝나고 평정작전으로 전환한 마지막 2회 정도를 빼면 전체 작품의 거의 전부가 옷도 못갈아입고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일선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내용이더군요. 해서 제 정서에서는 전투신이 없어서 지루하다는 평가가 별로 공감이 되지 않네요.

등장인물 중에 게임덕후 출신으로 트리거 해피 즐기러 입대한 녀석이 한 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석이 이런 말을 하죠. 자기한테는 이라크에서 전투를 겪고 있는 지금보다 게임할 때가 더 긴장되었다고. 전투신이 없어서 지루하더라는 사람들은 이 트리거 해피 게임덕후가 느꼈던 기분과 같은 이유에서 지루했다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논단에서도 말쓰드린 적 있다시피,그만큼 우리가 영화와 게임의 과잉 액션에 익숙해져있기에 야전에서 쉬지않고 임무수행하는 내용의 논픽션 전쟁 드라마를 지루해하는게 아니겠냐는 말입니다. 팰콘 3.0 매뉴얼에서도 실전은 55분의 지루함과 5분간의 극단적인 공포로 이루어지며 그것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상업성이 없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었죠.

3. 밴드오브브러더스는 그래도 영화에 정의의 전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고 얼핏보기에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히로이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히로이즘의 묘사형태가 기존의 전쟁영화들과 다를 뿐이지요. 그런데 제네레이션 킬은 보면서 두 가지 느낌이 계속들었습니다. 하나는 엿같음. 둘 째는 그런 모든 엿같은 현실들이 다 그저 장난이라고 말하고싶은 듯한 낄낄낄 하는(뭐라고 말로 설명하기가...-_-) 분위기. 이 정 반대되는 두 정서가 희한하게 공존하더군요. 어쩌면 작품 내내 깔리는 말그대로 썩소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유머들과 낄낄낄 하는 정서가 엿같음 정서에 그림자처럼 따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엿같은 느낌을 강조하고자 작가나 연출자가 낄낄낄하는 정서를 같이 공존시켰는지도 모르겠고, 또 어쩌면 실제로 실전에 참가한 병사들이 자기들이 처한 엿같은 상황을 희석시키고 싶어서 그런 정서들을 가졌던 것을 기자가 있는그대로 보여준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에피소드에선가 엔딩 크레딧에서 해병들이 서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붓고 게이 농담과 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치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내용이 나옵니다. 어느 국내 리뷰에서는 이 작품이 인종차별과 미군내 게이문제를 폭로했다는 식으로 묘사하던데, 아마 그사람은 엔딩 크레딧들은 안봤거나 아니면 자막을 못구해서 내용도 못알으들으면서 총쏘는 장면들만 열심히 즐겼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4. 7편을 한 번에 다 이어서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작품 내내 멋진 전투신을 기다리는 재미로 본다기보다는(사실 등장인물들도 그런 전투를 기다립니다.) 쟤들 대체 저기가서 뭔짓거리들을 하고 온거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액션 연출에 실패한게 아니라 오히려 시청자들이 그런 느낌을 받기를 연출자가 원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작품 내내 통신의 중요성이 매우 부각되더군요. 배우들이 통신이 중요하다! 이런 대사를 외치는 것은 아니지만, 전투해나가는 과정들을 보고 있다 보면 절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7개 에피소드 거의 모든 엔딩 크레딧들에서 무선교신들을 들려줍니다. 부대간 교신뿐 아니라 FAC 교신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교신들이 나옵니다. 그밖에 드라마 전반에서 무선교신 용어나 통화절차같은 것도 굉장히 고증이 잘 된 것 같습니다. (이라크전에 실제 참전한 군사자문담당이 무선통화 대본도 고증했다고 합니다.) 원작자나 연출자가 그만큼 전장통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거나 아니면 전장통신이 실전을 묘사하는데 매우 중요한 소품이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